환상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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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었다. 단지 그 뿐이었다.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 몸은 마지막까지 찾을 수 없었다. 내가 투신했던 곳에 경찰 몇 명이 왔다 갔다 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없었다. 그것도 죽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그 때 뿐이었다. 장례식은 일찍이 치러졌다. 엄마는 거의 쓰러질 뻔 했다. 아빠는 울었다. 그렇게 서럽게 우는 걸 평생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검은 옷을 입어 알 수 없는 위화감을 조성했다. 설날과 같은 큰 잔칫날 한두 번 만나고 말았던 먼 친척들까지도 자리했더라. 간간히 친구들의 얼굴도 보였다.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 교복을 입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눈시울을 붉게 물들인 친구들은 되레 위로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볼 때에는 속에서 거북한 것이 계속 올라와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일종의 부러움. 혹은 열등감이었으리라. 꼴사나운 짓을 한 것이다. 나는 그 곳에 오래 있지 않았다. 어쩌면 오래 존재할 수 없었던 것 일지도 모른다. 내 사진을 둘러싼 꽃의 향기가 너무 독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향의 냄새가 자극적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나는 사진 속의 나를 남 보듯 바라보았다. 사실 남인 것처럼 보였다. 웃고 있는 내 모습은 참 낯설었다. 넌 누구니. 누군데 그렇게 웃고 있는 거야? 내가 투신한 다리를 지나가는 차들은 여전히 빨랐다. 그들은 모두 앞만 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타인의 죽음을 애도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하루 벌어먹고 살기도 바쁜 인생이었다. 나의 몸은 검은 물 아래에 묻혀 있었다. 물빛이 너무 어두워서 나조차도 날 볼 수 없었다. 물속에 있었으니 아마 지금쯤이면 꽤나 부패가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내 손가락-혹은 발가락-은 물고기 밥이 되어 온전치 못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눈은 누군가의 보금자리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물에게 먹혔으니 물의 내장이 날 모조리 소화시켰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내가 발견되지 않기를 바랐다. 사람들의 마지막 기억 속에서의 나는 온전한 모습이었으면 했다. 나는 다리 위를 걸어야 했다. 하늘을 나는 일 따위는 할 수 없었다. 어릴 적 보았던 동화책 소설책 영화의 내용은 모두 틀렸다.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 뒤 나는 집에 들렀다.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무엇 때문에 망설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막연하게 겁이 났을 뿐이다. 엉망이 된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을 대단했던 그 모습 그대로 기억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과는 다르게 나는 곧 집으로 들어갔다.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거실은 무척이나 차가웠다. 그 차가운 공간에서 엄마는 소파에 몸을 기댄 채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이질적이었다. 평범한 거실에 엄마 혼자 덩그러니 떼어다 놓은 것만 같았다. 엄마는 먼지를 보려는지 허공에 공기를 세려는지 한참을 텅 빈 눈을 하고 어딘가를 보았다. 그 시선의 끝은 너무 흐렸다. 엄마는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핸드폰을 들고 시간을 보는 것이다. 엄마의 잠금 화면에서는 내가 엄마와 함께 웃고 있었다. 꼭 몇 달 전에 찍은 사진이었다. 제주도에 갔었는데. 하늘이 청명하던 날이었다. 어쩜 구름이 한 점도 없니. 엄마는 내 사진을 많이 찍고 싶어 하셨다. 풍경을 찍으라니까. 엄마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툴툴거려도 내 사진만을 찍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엄마는 사진을 보며 그렇게 흐뭇해 하셨다. 뭐가 그리도 좋으셨는지. 본인의 사진은 몇 장 없이 전부 내 사진이었음에도 엄마는 웃었다. 사진은 유채꽃이 한창 이었던 들판에 머무른 내 기억을 어렴풋하게 상기시켰다. 그 사진은 내가 나온 사진 겸 몇 장 안 되는 엄마가 나온 사진이었다. 엄마는 황급히 핸드폰을 껐다.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웃고 있는 나와 엄마의 얼굴이 까맣게 사라졌다. 엄마의 눈이 다시 붉게 물들었다. 투박한 엄지손가락이 핸드폰 화면을 쓸고 지나갔다. 그때에 나는 내 어깨가 불에 덴 듯이 뜨겁게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있지도 않은 어깨가 타버리는 것만 같다. 고통이 생생하다. 있지도 않은 어깨. 그래서 더욱 아팠다. 핸드폰을 끈 엄마는 내 모습을 다시 보기가 겁이 나는 것일지도 몰랐다.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플 테니까. 그러나 나는 엄마가 곧 다시 핸드폰을 켜 그 사진을 보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엄마는 핸드폰 화면을 껐다 켜기를 반복했다. 망가질 때 까지 북만 치는 원숭이 인형 마냥. 엄마가 꼭 그 모양을 하고 있었다. 화면 속 엄마와 나는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반복했다. 어깨의 통증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나는 집에서 나와 하염없이 걸었다. 길을 걷는 사람들은 나를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볼 수 있었다. 썬팅이 짙게 된 틀 안에서 세상을 보는 기분이었다. 멀리서 누군가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고 누군가 샤워를 하는 듯 물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고, 고양이는 시끄럽게 울었다. 자동차 소리가 너무 컸던 탓에 귀를 막아야 했다. 그럼에도 온갖 소리는 내 영혼을 뚫고 들어왔다. 육체가 사라지자 모든 감각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오늘도 거리를 걷고 직장에서, 학교에서,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발걸음이 닫는 모든 곳에서 타인의 아픔을 몸에 묻혔다. 세상이 어둠에 물들 때 즈음 집에 오면 뜨거운 물을 틀고 타인의 아픔을 씻어내는 것이다. 내일의 아픔을 준비하며. 일순 내 세상이 흔들렸다. 이제는 있지도 않은 두 눈이 몹시 시렸다. 마음만 먹으면 두 손이 눈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두개골 깊은 곳에 눌어붙은 슬픔을 끄집어내어 눈으로 뽑아내면 더 이상 시리지 않을까? 살아있을 적 내 영혼이 육체 속에 숨어있던 자리에 물고기가 들어찬 것일까? 육신이 사라지고 두 번째로 도착한 곳은 학교였다. 그 사이 나는 새삼 이승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해는 조금 기울었다. 내 책상에는 흰 꽃 두어 송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수업시간이 영 재미가 없어 시간 죽이느라 책상 오른쪽 모서리를 커터칼로 긁어 만들어낸 상처는 여전했다. 몰래 그려놓은 그림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연필로 그렸던 탓에 색이 조금 옅어졌을 뿐이다. 그 낙서를 두고 친구와 나눴던 이야기들이 드문드문 기억이 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어떤 기분도 느낄 수 없었다. 죽으면 이렇게 다 무감각해질까. 기분이 좋아지지도, 눈물이 나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런 내가 낯설었다. 나는 그 책상이 빠른 시일 내로 치워졌으면 했다. 죽은 사람 책상 교실에 있어 봤자 분위기 흐리는 것 밖에 더 하겠어. 그래. 이런 건 빨리 치워버려야지. 그렇게 계속 되뇌었다. 속마음이 그렇지 않았던 탓이다. 내가 쓰던 책상이 이곳에 있으면 자꾸만 미련이 생길 것 같았다. 돌아가고 싶어. 돌아가고 싶어. 그런 마음이 자꾸 들면 그때에 나는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알지 못하기에. 빈 교실에 가만히 있으니 이 자리에서 수업하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난 그곳에 있었다.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메고. 선생님 말씀을 듣고, 샤프로 무언가를 적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교복을 입을 수도 샤프를 들 수도 없다. 애당초 그 자리에 앉을 수도 없다. 교실에 들어찬 책상 중에 날 위한 책상은 없었다. 내가 앉던 책상조차도 이제는 내 것이 아니다. 내가 속한 세상이 다른 사람들의 세상과는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이 느껴질 때 즈음 교실은 온통 붉게 물들었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나는 곧 그 자리를 떠나야만 했다. 항상 이맘때면 아빠가 돌아왔다. 그러니 지금 집에는 아빠와 엄마가 같이 있을 것이다. 집에 돌아온 아빠는 으레 술을 마셨다. 나는 아빠가 얼큰하게 취한 모습이 좋았다. 아빠는 술만 마시면 말이 많아졌다. 그러니까, 이만한 사탕을 내 입에 넣어주셨다니까. 막걸리 한 두 사발을 들이키고 나면 아빠는 으레 어릴 적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항상 같았다. 늘 왼손 엄지와 검지로-아빠는 오른손 검지가 없다- 동그라미를 만들며 내 앞에 내밀었다. 한 번은 밤에 할아버지가 아빠를 업고 논두렁을 건널 때였어. 잔치에 가셨었나 봐. 그때도 술에 취하셨는지 비틀비틀 걸어가시는데 아빠는 어린 마음에 그게 너무 재밌는 거야. 꼭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이. 휘청휘청 거리며 겨우 다 건너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니까. 술에 취할 적마다 한 이야기니 나는 수백 번도 넘게 그 이야기를 들은 셈이다. 그래도 난 항상 처음 듣는 것처럼 그 이야기를 들었다. 꼭 어릴 적 아빠의 얼굴이 보여서 차마 이야기를 끊을 수 없었다. 집안은 여전히 싸늘했다. 온기가 돌지 않았다. 엄마 아빠는 불을 켜는 것을 잊은 것일까? 아니, 엄마 아빠는 불을 켤 줄 모르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둠이 드리워지는 이 집 안에 그리 계실 리가 없다. 열린 문 틈 사이로 몸을 비집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떠났을 적 모습 그대로였다. 내가 숨겨 놓은 양말도 그대로 있었다. 내 방을 치우다 엄마가 그걸 보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웃을까. 짜증을 낼까. 울까. 문득 엄마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아직 엄마는 내 공책을 펼치지 않았다. 그 속에 껴놓은 편지가 그대로 있는 까닭이다. 만약 그 편지를 읽는다면 엄마는 그때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나는 엄마가 울 것임을 알았다. 때문에 그때에 나는 집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거실이 환해지자 내 방은 아까보다 더 짙은 어둠에 잠겼다. 아빠는 막걸리를 마셨다. 벌써 두어 잔이 거의 넘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말리지 않았다. 아빠는 뭐라고 계속 중얼거렸다. 그리고 계속 울었다. 무엇이 그렇게 서러우세요, 아빠. 아빠는 자꾸만 손가락이 아프다고 했다. 오른쪽 검지손가락이. 몇 년 전에 사라진 그 손가락이 그렇게 아프다고 했다. 그 고통에 잠을 못 이루겠다고 계속 울었다. 어제도 자다가 깼어, 그놈의 거지같은 손가락 때문에. 예전에 사라졌을 때도 이렇게 아프지 않았는데 요즘 날이 갈수록 더 아파져. 계속, 계속. 그러고 보니 아빠의 수염이 참 많이 길었더랬다. 이제는 아무도 아빠의 수염이 따갑다고 불평하지 않기 때문일 거다. 아빠는 왼손으로 뭉툭하게 밑동만 남은 오른손 검지를 꼭 쥐고 계속 울었다. 내가 본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나는 더 이상 집에 머무를 수 없었다.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온 세상이 어두웠다. 속이 뜨겁고 아프고 한 것이 꼭 매운 것을 먹은 것만 같다. 혀가 고통하기 때문에 느끼는 게 매운맛이라는데 혀도 몸도 없는 나는 대체 무엇으로 매운 맛을 느끼고 있을까. 무엇이 속에서 이리도 아프게 차오르는 것일까. 나는 왜 통증을 느끼고 있는 거지? 나는 집을 등진 채 걸었다. 거실에서 나오는 빛이 내 뒤로 어른거렸지만 땅바닥에 내 그림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를 통과한 빛은 그대로 길 위에 쏟아졌다. 이승에서 나는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있는데도 없는 존재였다. 소리는 영혼을 통해 들어왔다. 내가 지금 듣는 울음소리가 아빠의 울음소리가 아니기를 바랐다. 아빠의 손가락은 앞으로 얼마나 오래 아플까. 엄마는 앞으로 얼마나 핸드폰 껐다 켜기를 반복할까. 거리의 차들은 아직도 빠르고 가로등에는 노란 불빛이 들어오고, 담벼락 위에서 길고양이가 숨죽여 울면 음식 냄새가 곳곳으로 스며드는 저녁. 세상은 이다지도 잘 돌아가는데 나의 세상은 숨이 죽었다. 참, 있지도 않은 마음이 지독히 아려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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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개월 26 일 전
* "장례식은 일찍이 치러졌다." – "장례식은 서둘러 치러졌다." : 일찍이와 서둘러는 얼핏 비슷한 의미인 것 같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일찍이->일정한 시간보다 이르게, 서두르다 -> 일정한 시간보다 이르게, 입니다. 문맥 상 서두르다가 더 적당할 듯 합니다. * 빛낢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였어요. 잘 읽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라진 손가락과 사라진 나의 육체, 그 없는 자리에서 생겨나는 통증을 잘 표현한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망가질 때 까지 북만 치는 원숭이 인형 마냥"이라든지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고, 고양이는 시끄럽게 울었다"와 같은 표현들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소리를 지르는 사람",에서 "고양이는 시끄럽게 울었다"는 문장은 글을 많이 써 본 사람들만 쓸 수 있는 '힘'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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