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rdiac t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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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내가 금붕어 먹이를 주기. 밤에는 네가 어항 물을 갈아주는 거야. 혜야. 격주 토요일마다 유서를 한 줄씩 나누어 쓰자. 다음 주면 우리는 죽을지도 모르니까. 투명한 숨이 파란 혼으로 변할지도 모르니까. 매달의 첫 일요일에는 네가 분홍색 쉬폰 주름치마를 입어. 매달의 마지막 일요일에는 내가 푸른색 테니스 스커트를 입을게. 첫 숨은 내가 쉬었잖아. 마지막 숨은 혜, 네가 쉬어. 우리는 하나야. 몸은 나뉘었지만 영혼은 서로에게 귀속되어 있음을 잊지 마. 그걸 되새기는 순간 우리 사이의 경계선은 모호해져. 너는 너. 나는 나. 너는 나. 나는 너. 결국은 모든 게 다 뒤섞여서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지. 잊지 마. 우리는 하나. 우리는 하나.

 

 

혜의 치마는 짧습니다. 중학생은 치마 길이로 관계의 우열을 나누는 이상한 관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치마가 가장 짧은 혜는 너무나도 쉽게 우위를 차지했고요. 덕분에 혜는 학교에서 가장 진한 색 틴트를 바를 수 있었어요. 옅은 분홍빛 조가비 같은 입술을 핏빛 틴트로 덮은 혜는 예뻤습니다. 그런데도 혜는 자꾸 불안해했어요. 틴트 색과 같은 검붉은 피가 입술에 총총 박힐 때까지 입술을 물어뜯었고 종종 불규칙한 속도로 다리를 떨곤 했지요. 툭, 툭. 툭툭. 툭. 툭. 툭툭툭. 투툭. 그리고 가끔머리가 지끈거리는 날에는, 그러니까 눈을 뜨고도 악몽을 계속 꿔야만 했던 날에는 지치도록 울었어요. 아, 손거울을 집어던지며 울기도 했지. 가끔 그 거울 조각이 발바닥에 박혔거든요. 혜는 이불을 꼭 뒤집어쓰고 울면서 노래를 불렀고. 그러다가 묽은 숨을 뱉기도 했어요.

있잖아 아파 이번 생이 아파 도대체 얼마나 더 아파야 해? 선생이 나한테 뭐라고 한 줄 알아?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 같대 씨발 그래서 자꾸 손목을 긋는대 자꾸 이상한 환영에 시달린대 어긋나고 있대 조금만 더 늦으면 바로 잡을 수 없대 난 이대로가 좋은데 아니 싫은 건가 난 지독한 자기혐오에 시달리고 있어 근데 변하기는 싫어 내가 왜 변해야 해 그냥 난 자꾸 미워하고 싶어 아무 것도 몰라 이젠

아니 애초에 난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애잖아

혜는 그렇게 연신 악악 소리를 지르다가도 금방 잠이 들었습니다. 저는 가끔 잠든 혜의 손을 잡았어요. 내 손과 닮은 손. 아니 같은 손. 온통 희다가 문득 끝이 분홍인 손. 둥그스름한 손톱 아래 연한 살에 흉터가 가득한 손. 보면 아픈 손. 아프다가 영영 아프다가 그렇게 앓다가 미쳐버릴 손.

 

그것뿐인 손.

손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손.

자기를 보호 할 줄 모르고 자꾸 자기를 살해하는 손.

우리 살결에서는 같은 냄새가 났습니다.

 

 

혜와 저는 쌍둥이. 다른 몸에 같은 영혼을 공유하는 쌍둥이. 어릴 때부터 우리는 줄곧 규칙을 만들고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 했습니다. 수요일은 새벽에 샤워를 하기, 서로의 첫사랑은 공유하기, 혜가 머리를 푼 날에는 제가 머리를 묶고 혜가 머리를 묶은 날에는 제가 머리를 풀기. 일기장은 한 장씩 번갈아서 쓰기. 우리는 자랄수록 자꾸 닮아갔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동일해진 정신. 그래도 괜찮았어요. 우리는 무언의 약속을 했으니까. 투명한 새끼손가락을 물컹한 칼로 베어내서 아무도 볼 수 없는 혈서를 썼으니까. 우리 둘만의 세계에서 영영 살기를 희망했습니다. 우리의 법, 우리의 관념, 우리의 연애, 우리의 치마.

 

 

잔잔한 여름. 블루와 스카이 혹은 블루와 오션. 블루는 종종 푸른 것들을 형용하는 단어라는 사실을 캔디바를 꼭꼭 씹으면서 달콤하게 알게 된 그날. 입에서 톡 하고 터지는 캔디 또 저 건너편 하늘에서 톡 하고 터지는 불꽃을 구경한 날. 잊을 수 없습니다. 아니, 저는 그 날을 잊지 못 해요.

그 날 우리는 스케치북에 아무렇게나 그림을 그렸습니다. 붉은 선은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고 검은 눈동자는 학급 친구가 되었으며 손가락이 없는 손은 피아노가 되었어요. 그리고 저는 그 스케치북 한 장을 북북 찢어서 종이비행기를 접었습니다. 혜는 베란다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렸고요. 비행기는 곧장 추락했습니다. 혜는 종종 아무 이유도 없이 웃었습니다. 스케치북 모서리에 손가락이 이리저리 긁혔습니다. 제 손에서 하얀 스케치북 위로 뚝뚝 떨어지는 선혈을 바라보며 혜는 웃었고 저는 울었어요. 손이 아리고 시려서 전 종이비행기 접기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컴퓨터를 켰어요.

이 달의 운세, 오늘의 운세, 별자리, 띠…. 우리는 한 번에 두 명의 운명을 모두 엿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별자리가 뭐더라. 물고기 자리? 오늘의 운세는…곤경에 처해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굳게 먹고 하던 일에 열중하세요. 운명은 노력하는 자를 바라봅니다. 결국 도움의 손길은 오기 마련. 연애를 한다면… 이 부분부터는 읽을 필요가 없지. 우리는 시덥지 않은 주제로 속살거렸어요. 야, 연애래. 연애. 부끄러워라. 혜야. 우리도 언젠가 연애를 하겠지? 부부가 되겠지? 내가 속삭여주는 말들을 들으며 혜는 곧잘 웃었어요. 음이 유난히도 높았습니다. 꼭 노래 같았어요.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 혜는 종종 손목을 그었습니다. 오늘도 혜는 합니다. 저는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다 토했습니다. 속이 쓰렸어요. 혜는 걱정스럽다는 듯 내 등을 토닥거렸습니다. 더러워, 정말 더러워. 목이 갈라지면서 이상한 소리가 나왔어요. 목이 아파서 미간을 찌푸리니 걔가 물을 한 잔 떠왔습니다. 나는 물을 벌컥거리며 마셨어요. 약간 숨이 막혔고 몸 내부에 물이 가득 차서 익사 할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물은 딱 그즈음에서 바닥이 났고 나는 다시 숨을 쉬었어요. 짧은 치마. 진한 틴트. 피. 혜.

너도 해 볼래?

아마 조금 더 깊었습니다. 혜는 혼자만 아픈 걸 싫어합니다.

 

 

쌍둥이 법칙 하나 하나가 죽으면 둘도 죽을 것

쌍둥이 법칙 둘 하나는 종소리로 둘을 부를 것

쌍둥이 법칙 셋 하나가 죽은 계절은 겨울일 것

 

우리는 그 법칙을 퍽 좋아했습니다.

 

 

…지금 저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첫눈이 왔습니다. 저는 여전히 혜의 뒷모습을 봅니다. 거울을 한참 바라보다가 혜의 눈길을 바라봅니다. 혜는 죽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몸은 나뉘었지만 영혼은 서로에게 귀속되어 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해가 집니다.

내 자신이 무너진 자리를 바라봅니다. 혜의 동맥과 나의 동맥을 구분하는 법을 잊었습니다. 혜는 종이 비행기를 접다가 손가락을 다칩니다. 나는 종이 비행기를 날립니다. 멀리 멀리 날아가다가 툭 하고 떨어집니다. 그 비행기는 아마 작성자 불명의 유서.

너는 너. 나는 나. 너는 나. 나는 너. 결국은 모든 게 다 뒤섞여서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지. 잊지 마. 우리는 하나. 우리는 하나.

혜가 내 숨을 멈췄습니까. 내가 내 숨을 멈췄습니까. 내가 혜의 숨을 멈췄습니까.

너는 너. 나는 나. 너는 나. 나는 너. 결국은 모든 게 다 뒤섞여서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지. 잊지 마. 우리는 하나. 우리는 하나.

 

 

해가 무너진 자리에 달이 기울어지던 그 밤에

서늘한 바람이 목덜이를 베어 물던 그 밤에

직접 네 숨을 틀어막았어야만 했는데

그랬어야 했는데

 

 

우리의 끝은 기왕이면 같이. 내가 죽은 날 혜는 죽었습니까. 내 눈 앞에 작은 종이 보입니다. 종을 툭 칩니다. 종소리는 끊임이 없고 자꾸 퍼집니다. 혜는 길을 잃었나 봅니다. 어쩌면 내가 길을 잃었고 우리는 죽어서도 서로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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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개월 2 일 전
* 비행운님, 반갑습니다. 뜨거운 겨울을 보낸 것 같아요. ^^ 잘 읽었습니다. 지난 번 작품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감각적인 문장으로 가득찬 소설이네요. 산문에도 리듬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읽는 내내 문장이 가진 리듬들이 떠다녔습니다. 지난 번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acardiac twin이라는 특별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나와 혜의 이야기는 비행운님이 아니면 쓸 수 없었을 이야기였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지난 번에 제가 드린 조언을 잊지 않은 것 같아서 기쁘기도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를 드릴게요. 저는 시나 소설이나 어느 한 장르를 선택해서 그것만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시는 시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각각의 매력이 있고 그 매력이 다른 장르를 통해 충족될…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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