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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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행복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정말이지 나는 행복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느끼기는커녕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맡아지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는 하루하루가 행복으로 가득했는데, 지루하고 심심한 날도 있지만 행복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행복을 도저히 만질 수 없습니다. 너무 멀어지고 흐릿해져 나에게 행복이란 게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내가 아직 사춘기에 머물러있기 때문인 걸까요. 어른을 코앞에 두니까 책임감 때문에 우울해지는 것일까요. 내 머릿속에는 ‘독립’이라는 거대한 강박관념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이 빌어먹을 관념 때문에 내 상상력은 완전히 결여되고 말았습니다. 소설도 잘 써지지 않고 독후감도 잘 써지지 않습니다. 공부는 어쩔 수 없이 의무감으로 할 뿐입니다. 어렸을 때 신나게 떠올리던 만화적 상상력이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습니다. 자유롭고 풍부하던 상상이 차단되었다고 생각하면 미칠 듯이 자괴감이 밀려옵니다. 일곱 명의 식구, 50평 남짓 아파트, 아침마다 갔다 오는 도서관, 부모님의 잔소리, 누나의 타박과 욕, 동생들의 고함. 똑같은 배경에 똑같은 인물, 한결같은 세상에 한결같은 하루. 친구도 지인도 연인도 없고 쾌락도 편안함도 없습니다. 세상은 변함이 없고 내 마음에도 변화가 없지요. 이때까지 근근이 취미생활로 버텼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내 손을 떠나고 있군요. 글도 그림도 아무것도 잡히지 않습니다. 그것만으론 버티기 힘들다는 뜻이겠지요, 아마.

독립한다고 달라질까, 내가 이 집을 떠난다고 해서 과연 행복해질까, 바깥세상은 훨씬 위험하고, 무섭고, 잔인할 텐데 하는 걱정은 무뎌진지 오래입니다. 어떤 힘든 노동도 상관없으니 일단 나가보자는 떼어놓을 수 없는 끈질기고 강력한 강박이 내게 소리치고 있습니다. 다른 잡념은 제쳐두고 무조건 나가라고, 제발 나가라고.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는 것은 압니다. 나는 미성년자이고 미필이고 대학도 가지 않았고 취직할 수 있는 성인도 아니거든요. 이제 십대 후반인데, 인생의 반도 살지 않았는데 왜 그리 급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가족은 나까지 합해 일곱 명입니다. 부모님을 제외하고 모두 학교를 가지 않았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독자 여러분은 참 특이한 집안이라 생각하시겠지요. 20년 가까이 한집에서 한 가족이 살았습니다. 제겐 친한 친구도 친척도 없습니다. 부모님과 조부모님 관계가 좋지 않아 친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본 것도 오래되었습니다. 외가 조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친가 조부모님은 우리에게 연락 한번 해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학교를 다니지 않아 친구가 없는 것일까요. 학교 다녀도 친구 없는 외톨이는 많고 학교 다녀서 왕따 당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내 성격이 소심해서일까요? 한주에 한번 교회 갈 때마다 아는 애들과 친하게 지내는 걸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다 나의 고독과 우울의 원인을 찾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 된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으니 오해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찾고 싶은 것은 행복입니다. 어쩌면 코앞에 행복이 있는데 모르는 것일지 모르지요. 꽃향기를 맡으려 해도 감기 걸려 코가 막혀서 못 맡는 것처럼 말이에요.

요즘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습니다. 쉽지가 않더군요. 먼 곳에 가려면 차비가 들고 가까운 곳은 받아주는 곳이 없습니다. 나는 미성년자에 미경험자거든요.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없으니 받아주지 않는 것도 당연합니다. 계속 찾고는 있지만 사막에서 바늘 찾기처럼 어렵습니다. 내 용돈은 내가 벌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군요.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에 독립, 돈, 군대, 진로 걱정이 빈틈없이 차있어 골이 아픕니다. 이 글이 어색해 보이는 이유는 그만큼 내 마음이 혼란스럽다는 뜻이겠지요. 조부모님이나 친구에 관해서는 후일 더 자세히 다루고 싶습니다. 이런 복잡한 머리로 소설을 잘 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조금 비약이 심할지도 모르겠군요)

행복이 없으면 살아갈 이유가 있을까요. 예전엔 택시를 타거나 버스를 타면 불안감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혹시라도 사고가 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걱정. 그러나 이제는 마음을 놓아버립니다. 사고가 나서 죽으면 그냥 죽는 거지 뭐,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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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월 21 일 전
안녕하세요, 모로님. 요즘 고민이 많았군요. 살아야 할 삶의 목적을 ‘행복’이란 기준에 두고 찾아보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아 괴롭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글에서 느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마음을 놓아버리게 된다는 결론도 이해가 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기준을 행복이란 한 가지에서만 찾아야 할까요? 좋은 소설이나 시를 한 가지 기준으로만 판단할 수 없듯이 말이에요. 좀 더 사고를 확장한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처음부터 시를 쓸 만한 재능은 없었나봐.” “그걸 모르니까 시를 쓰는 거야.” “그걸 모르니까 시를 못 쓰는 거야.” “그걸 모르면 시를 써야 해.” “그걸 모르면 시를 쓸 수가 없어.” 손홍규 작가의 소설 ‘서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인생을 모른다는 의미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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