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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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찾아온 비가 학교 현관을 세차게 때렸다. 자그마한 우산 하나에 세 명, 네 명이 모여 평소보다 더 왁자지껄했다. 오늘 일기예보를 확인해 보지 못한 게 후회스러웠다. 혼자 우산을 쓰고 가는 현정이의 모습이 보였다.

“현정아.”

못들은 걸까. 몇몇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어색하게 고개를 돌려 뛰어가는 현정이의 뒷모습을 도저히 원망할 수는 없었다. 굵은 빗방울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후드집업 모자를 뒤집어쓰고 나는 학교 대문을 향해 뛰어갔다. 이런 모습을 한 내가 괜히 부끄러워져 귀가 화끈거렸다. 혹시라도 아는 얼굴이 있을까 싶어 모자를 더 깊게 눌러썼다.

집에 도착해 거울을 보니 내 모습이 꼭 물에 빠진 쥐 꼴이다. 옷을 대충 벗어던지고 샤워기로 몸을 적셨다. 샤워기에서 물줄기가 뿜어 나와 머리카락에 닿았다. 상쾌해야하는데 오히려 찝찝하기만 하다. 자꾸 그때 생각이 난다. 모든 걸 다시 돌려받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만 끝내고 싶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핸드폰을 켰다. 조용한 핸드폰도 죽도록 싫었다. 핸드폰을 끄자 컴컴한 어둠이 나를 둘러쌌다. 그 어두움이 마음에 들었다.

꿈을 꿨다. 그 아이가 서있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들면 그 아이가 보일 것 같았다. 왜 또 나타난 거야. 나는 이제 너무 지쳤다.

“그건 내 탓이 아니야…….”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난 잘못한 게 없어.”

나는 눈을 감고 주저앉았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다 끝내버리고 싶다.

지치지도 않고 비가 계속 쏟아졌다. 회색빛인 하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산을 잡은 손이 땀으로 젖었다. 학교에 가는 발이 질질 끌렸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이들의 시끌시끌한 말소리가 들렸다. 내가 자리에 앉자 아이들이 나를 힐끔 쳐다봤다.

“쟤잖아. 쟤가 죽였다면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아 나는 책상에 엎드렸다.

“띵-동”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화들짝 일어났다. 교실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오직 정적만이 나를 둘러싸고 있을 뿐이었다. 낯선 복도가 어느 때보다 길어보였다.

“너 왜 이렇게 늦었어! 체육복은 어디다 버렸고!”

나를 보자마자 선생님은 큰 소리로 질책했다. 뒤를 돌아봐 가지런히 줄을 서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나를 쳐다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무서웠다. 내 눈을 피하는 현정이의 모습이 보였다. 체육관에 부딪히는 비의 소리가 아이들의 말소리를 집어삼킬 듯 했다. 그 빗소리가 듣기 거북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오늘만큼은 더 이상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거리가 낯설었지만 좋았다.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남은 2년 내내 이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었고 피하고 싶었다.

무슨 정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냥 걷고 또 걸었다. 저 멀리 지하철역이 보였다. 뒷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든데 무슨 상관인가. 내가 이렇게 힘든데. 비를 맞아서 그런지 머리가 띵하게 울렸다. 그저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눈을 떴더니 불빛이 휙휙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불빛?’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지하철 안이었지.’

여기가 어디쯤인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내려 보니 하늘이 어둑어둑했다. 비는 계속 쉬지도 않고 쏟아졌다. 아직 문을 닫지 않은 가게조명들이 거리를 밝혔지만 으슥한 분위기에 덜컥 겁이 났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가출 청소년처럼 보이는 내 자신이 비참했다.

“저기요.”

갑작스러운 부름에 나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데다가 검정색 모자를 쓰고 검정 후드티를 입은, 내 또래처럼 보이는 한 거구의 남학생이었다.

“제가 버스비가 없어서 그러는데 딱 2천원만 꿔 주실래요?”

“저 돈 없어요.”

머리가 어지러웠다.

“야 씨.. 쟤 뭐래니?”

웃음을 머금었던 얼굴이 한순간에 확 바뀌었다.

나는 팔을 힘껏 밀치고 지하철 출구로 냅다 뛰었다. 주위가 환해지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자 나는 뛰는 것을 멈추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왜 도망쳐?”

그 남자였다.

“이리로 얌전히 따라와. 어이가 없어서.”

낮게 갈라지는 그 목소리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도와줍…….”

내 소리침은 남자의 손에 막혀 잇지 못했다. 달아나야 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도움을 요청하려고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거렸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게 맞긴 한가. 어쩌면 처음부터 보고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달아나려고?”

몸이 뻣뻣이 굳어 움직이지가 않았다. 두려움이 몸을 다 먹어버린 것 같았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원망스러웠다. 사람들은 다 똑같다. 여기서 누가 날 도와주겠는가. 눈물이 볼에서 뚝뚝 떨어졌다.

그 순간 호루라기소리가 좁은 지하철역에 울렸다. 경찰과 함께 어떤 젊은 여성이 달려왔다.

“모두 멈추세요!”

“아, 씨, 재수 더럽게 없네.”

남자는 나를 잡았던 손을 풀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요. 괜찮으세…….”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린 탓이었다. 손이 심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 뒤로는 일이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이상함을 느낀 그 젊은 여자가 역의 경찰서에 신고했다고 한다. 나와 젊은 여성 그리고 그 남자는 인근의 경찰서로 이송되었고 나는 곧 집으로 보내졌다.

침대에 가만히 누웠다. 나를 감싸주는 듯한 느낌에 힘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방을 칠흑같이 어두웠다. 아직도 그 남자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눈을 돌리는 그 사람들을 볼 때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경찰이 달려올 때 나는 얼마나 안도감을 느꼈는지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나는 가만히 책상으로 다가가 구석에 뉘여 있는 액자를 들었다. 너무 행복해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내 눈에 담겼다. 눈물이 사진을 적셨다. 나는 그 아이에게 절망만을 안겨준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닷없이 찾아온 비가 땅으로 무심히 떨어졌다. 많은 아이들 속에서 모자를 뒤집어 쓴 채 뛰어가는 현정이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우산을 피고 서둘러 그녀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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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월 25 일 전
* "옷을 대충 벗어던지고 샤워기로 몸을 적셨다." – "옷을 대충 벗어 던지고 샤워기를 틀어 몸을 적셨다." : 정확히는 샤워기가 몸을 적실 수 없습니다. 구어로는 이렇게 말해도 되지만 글을 쓸 때는 정확히 쓰는 훈련을 하셨으면 해요. * "나는 눈을 감고 주저앉았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다 끝내버리고 싶다. 지치지도 않고 비가 계속 쏟아졌다. 회색빛인 하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산을 잡은 손이 땀으로 젖었다. 학교에 가는 발이 질질 끌렸다." : 이 문맥의 바로 앞은 하교 후 비를 맞으며 돌아와 괴로워하는 '나'의 모습이 진술되고 있어요. 그런데 "지치지도 않고~"부터 다시 등교 장면인 거 같네요. 시간의 순서대로 모든 것을 진술할…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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