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다 – [브레이브 원]을 감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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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의 자아를 가지고 살아간다. 생각하는 나, 밥을 먹는 나, 잠을 자는 나를 가슴속에 품은 채 때로는 행복하게 때로는 불행하게 오늘을 산다. ‘나’는 ‘나’다. 또 다른 나, 내 몸을 대신할 수 있는 제2의 자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도플갱어 같은 미지의 생명체는 허무맹랑한 소문으로 간주되거나 신화적 동물로 여겨질 뿐이다. 그러나 간혹 여러 개의 인격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다중인격자라 불리는 그들은 자신이 나 혼자만이 아닌 나와 같은 얼굴을 지녔지만 나와는 다른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어떤 때는 괴팍하고 사나운 모습의 나로 또 어떤 때는 상냥하고 가냘픈 나로 행동할 뿐이다. 하지만 이런 유의 인격과는 별개로 이전까지의 나는 온데간데없는, 완전히 새로운 자아가 탄생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닐 조던 감독의 영화 <브레이브 원>에서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제2의 나’는 허구가 아닌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슬프고 비참한 드라마를 통해 증명한다. 도플갱어 같은 근거 없는 괴담이 아니라 우리 주변 혹은 나에게도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참혹한 사건을, <브레이브 원>은 과감하게, 첨예하게, 잔잔하게 파고든다.

 

유명한 라디오 진행자 에리카 베인은 사랑하는 연인 데이빗과 함께 ‘낯선 자의 입구(STRANGERS GATE)’라는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 길거리 조폭들에게 변을 당한다. 이유는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적잖이 발생하는 일련의 '묻지 마 폭행' 같이 조폭들은 에리카와 연인을 무참하게 폭행하며 캠코더로 폭행 장면을 촬영하면서 순식간에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린다. 둘은 병원으로 실려 가지만 연인 데이빗은 살아남지 못한다. 3주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에리카는 데이빗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자신을 무자비하게 폭행한 범인들이 체포되는 모습도 보지 못한다. 파출서로 가 수사를 촉구하지만 무능한 경찰들은 일처리를 거북이마냥 느릿느릿 진행할 뿐이다. 에리카는 급기야 불법으로 총기를 구입한다. 하지만 그녀가 맨 처음 시작한 복수는 연인을 죽음으로 몬 당사자들이 아닌 편의점에서 아내를 죽인 30대 남성이다. 우연히 편의점에서 살인을 목격한 에리카는 들고 있던 총으로 남성을 쏴 죽인다. 그것을 계기로 그녀는 여러 명의 범죄자를 살해하고 친한 친구 머서 형사에게 발각되지만 형사는 외려 그녀의 복수에 협력한다. 에리카는 연인을 잃기 전 '나'가 아닌, 연인을 잃고 살인을 시작하고 난 뒤의 '나'로 살아간다.

 

영화는 에리카 베인이 뉴욕 거리를 누비며 라디오 중계를 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연인과 행복하게 살고 있는 평범한 시민이다. 하지만 ‘STRANGERS GATE’라는 곳에 들어가 데이빗을 잃고 난 뒤 삶은 송두리째 전복된다. 여기서 ‘STRANGERS GATE’라는 공원은 극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낯선 문에 들어간 에리카는 실제로 낯선 자가 되어 나온다. 그녀는 두 번째 살인을 하고 익숙해진 얼굴로 거울 앞에 서서 또 다른 나, 낯선 자에게 “반가워” 하고 인사한다. 애인의 죽음 이후, 편의점의 살인 이후 완전히 변용된 나, 휘어지고 뒤틀린 나, 아니 어떤 측면에서 보면 매우 정상적인 나로 탈바꿈한 것이다. 낯선 자는 낯설 뿐이지 ‘틀린 나’가 아니다. ‘STRANGER’는 흉터와 통증으로 범벅된 '나'에게서 기인한다. 에리카는 우연히 만나게 된 형사 머서에게 인터뷰를 하며 말한다.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되어야 했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 아픔 속에 태어난 나, 사람을 죽인 살인자 나는 진짜 나인 걸까, 같은 자문은 무의미하다. 그녀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든 새로운 나든 모두 같은 주체인 것을. 자아는 분립되어있지만 결코 분열되어있는 것이 아니다. 흔히 다중인격, 이중인격을 두고 자아분열이라 하지만 에리카의 경우는 다르다. 그녀는 평범한 라디오 중계자 에리카에서 낯선 자 에리카로 연계되고 변신된 것이다.

 

에리카와 데이빗이 폭행당한 곳은 낯선 자의 문 속 음삼하게 생긴 터널이다. 이 터널은 서사 속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동시에 세부적인 역할을 맡는다. 에리카가 연인과 처음 터널에 들어갔을 때 자세히 관찰하면 화면이 몇 초간 몽환적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촬영기법은 사건 이후 주인공의 심리적 후유증이 심화될 때마다 더 과도하게 기운다. 이러한 현상은 터널이 아닌 ‘통로’에서도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에리카가 집안에 틀어박혀있다 친구의 부름으로 집밖을 나서려고 할 때 복도는 터널 때보다 훨씬 기운다. 장면의 중첩은 이밖에도 다양하게 펼쳐진다. 에리카를 치료하는 의사들이 수술하기 위해 그녀의 옷을 잘라내는데 데이빗과 사랑을 나누는 이미지와 자연스레 겹쳐진다. 이 장면은 영화 초반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사랑하는 순간의 탈의는 순식간에 괴로운 순간의 탈의로 증발해버리는 것이다. 탈의, 탈피는 지금의 ‘나’가 아닌 새로운 ‘나’, ‘낯선 자(STRANGER)’로 가는 시작점이다.

 

지하철에서 불량배들을 살해한 에리카는 완전히 낯선 자로 태어난다. 그녀는 화장실로 들어가 구토를 하고 얼굴을 씻은 다음 화장을 고친다. 의도적으로 무서운 분위기를 띄는, 어두운 화장을 한다. 그리고 네 번째 살인, 형사 머서가 잡고 싶어 한 흉악범을 잔인하게 살해하기 전 에리카는 ‘낯선 자의 문’ 앞에서 장갑을 낀다. 그녀의 결심, 확고부동한 다짐은 낯선 자의 문 앞에서 더욱 단단해지고 굳건해진다. 에리카는 말한다. 나는 죽음을 위해 멈출 수 없었기에 죽음이 나를 멈추었다고.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한 에리카는 결국 그녀와 연인을 폭행한 조폭들을 남김없이 죽인다.

지하철 살인 때 만난 형사 머서는 에리카에게 용의자 다섯 명을 보여준다. 그녀는 한 명을 마주보고 잠깐 의식하지만 범인은 아니라고 부정하며 경찰서를 벗어난다. 머서는 이때부터 그녀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에리카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머서의 추측은 확신으로 자리 잡는다. 머서는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절대 못 져버릴, 나와 가까운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체포할 배짱이 있는지 자문하고는 형사로서의 의무를 포기하고 에리카의 복수를 도와준다.

에리카는 저당 잡힌 반지를 찾아내 조폭의 애인을 찾아가 폭행 당시의 영상을 얻어낸다. 차마 바라볼 수 없는 그때의 장면을,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순간을 응시하며 그녀는 운다. 우리는 타인이 되지 않는 한 타인의 아픔을 완벽하게 공감할 수 없다. 에리카는 공포와 두려움이 남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고 방송에서 털어놓는다. 이 대목은 극중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FM 90.1 MKW 방송을 들으며 이 글을 끝맺으려 한다. 영화는 에리카가 데이빗과 함께 춤추며 들었던 음악이 울려 퍼지며 막을 내린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잊을 수 없다. 망각하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로 태어나는 수밖에 없다. ‘낯선 자’가 된 에리카는 영원히 낯선 자로 살아간다. 평범한 내가 아닌, 낯선 자의 문에 출입해 낯선 자가 되어 나온 나로.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진짜 나에게서 파생된 친밀한 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이방인이다. 사람들에 의해 배척되고 사람들에 의해 희생된 낯선 자. 비단 낯선 자는 <브레이브 원>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우리나라에서도 숱하게 태어난다. 세월호, 삼풍백화점, 셀 수 없이 많은 화재 등… 슬픔은 국적과 인종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에리카는 또 다른 나, 제2의 자아이면서 제1의 자아인 나를 품고 잃어버린 애완견을 되찾아 처음 그 장소로 돌아간다. 낯선 문으로, 낯선 곳으로. 그리고 이제는 화면이 기울지 않는다. 그곳은 나의 집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New york…… the safest big city in the world. but is horrible… to fear the place you once love. and to see a street corner you knew so well… and be afraid of its shadow. To see familiar steps, be unable climb them. I never understood how people lived with fear. woman afraid work home alone… people afraid of white powder in their mailbox… darkness and night. people afraid of people. I always believed that fear belonged to other people. weaker people. it never touched me. and then it did. and when it touches you, you know… that it’s been there are all along… waiting beneath the surfaces of everything you loved. and your skins crawls… and your heart sickens… and you look at the person you once were walking down that street… and you wonder, will you…? will you ever be her again?”

(뉴욕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죠. 하지만 끔찍해요. 사랑했던 도시를 두려워하는 게… 평소 다니던 길모퉁이에 드리운 그림자에 가슴이 철렁하고 평소 오르던 계단을 못 올라요. 공포에 떨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 못했죠. 밤길을 겁내는 여자들, 테러범들의 탄저균 공격을 겁내는 시민들. 어둠. 밤.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공포는 나와 상관없다 생각했죠. 나약한 자들의 전유물이라고… 근데 아니더군요. 공포를 경험하면 그제야 깨닫죠. 처음부터 존재했고 내가 사랑한 것들 속에 잠복해있었다는 걸. 팔엔 소름이 돋고 가슴은 아려와요. 거리를 활보했던 자신을 돌아보면서 문득 궁금해지죠. “옛날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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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월 22 시 전
모로 님 안녕하세요? 저는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했는데 모로 님의 글을 보니 무척 궁금해지네요^^ 이 글은 '자아'를 주요 글감으로 삼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타인의 악의(?), 범죄로 잃게 된 후 사람은 어떻게 삶을 지속할 수 있는가를 묻는 글이라고 읽었습니다. 모로 님이 퇴고하실 때 고려해주면 좋을 부분을 적어봅니다. *1문단: ‘하나의 자아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문장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더 명료하게 해주었으면 합니다. 모로 님이 생각하는 '하나의 자아'의 의미를 먼저 밝혀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밥을 먹는 나, 생각하는 나…이라는 표현에서 '일련'보다 '일종'이 더 적절한 표현이 될 것 같습니다^^ 사전에서 한 번 체크해보시기를요. *3문단: ‘또 다른 나’와의 만남에서 자아가 분립(각각 따로 떨어져나오다)/분리되었지만(분립/분리 의미…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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