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태양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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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태양에게」

 

[0. 네가]

 

20도 안팎의 온도임에도 수레를 잡은 손은 금세 땀에 절었다. 오르막을 향해 한발 내딛을 때마다 손바닥이 미끄러져 내렸다. 길 한 구석에 멈춰 서 수레를 세웠다. 숨을 고르며 들여다본 손바닥에는 온갖 고철과 수레의 손잡이에서 묻어난 녹이 배어 있다. 나는 두 손을 바지에 문지르며 쪼그려 앉았다.

 

빈틈없이 깔린 아스팔트 바닥이 시야에 가깝게 다가왔다. 한 군데 빠트린 곳도 없이 이어진 까만 알갱이들은 장벽과 같이 위와 아래를 가르고 있었다.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반대쪽에 무엇이 존재하긴 하는지 그 자체를 의심케 만드는, 그런 견고한 벽이었다.

 

태양이 이변을 일으켜 맹렬히 타오르기 시작한 그 날, 아직 시공도 다 끝나지 않은 지하 도시로 모두가 몰려들었다. 일부는 태양빛을 받아 죽고, 일부는 인원 초과로 쫓겨나 죽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인파에 깔려죽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곳에 터전을 일궜다.

 

이 바닥이 처음으로 사람에게 밟힌 그 날 이후로, 잊을 만 하면 등장하는 흔한 범죄에 한 가지 종목이 추가되었다. 드릴이든 망치든, 온갖 장비들로 아스팔트 바닥을 깨부수는 공공기물 파손 죄다. 밤새 요란하게 저지르던 범인은 제 몸 하나 뉘일 만큼의 공간도 파내지 못한 채 새벽을 맞기 일쑤였고, 그가 이름 위에 새로이 한줄 그어가며 일군 아스팔트는 금세 일감이 고픈 중장비들에 의해 원상 복구되곤 했다.

 

조그만 꼬마였던 나는 그 골목을 지박령처럼 서성였고, 내가 자라 수레를 끌기까지 골목의 밤은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따금 찾아오는 예의 범인들도 비록 일방적일지라도, 훌륭한 대화상대가 되어주었다.

 

망치보단 드릴이 낫지 않아요?
소리가 덜 나는 무언가, 그러니까 염산 같은 걸로 녹이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요란하면 잡힐 거고 잡히면 당신의 수고는 다시 시멘트로 밀봉될 텐데.
아니 아니, 어차피 평생 경찰을 피할 수도 없을 거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도 아닌데 왜 하세요?

 

나는 끝없이 질문을 던졌고 침묵으로 일관하던 범인은 말했다.

 

보고 싶었어. 그 아래, 깊숙이 파묻힌 게 흙인지, 과거인지, 아니면 나인지.

 

가로등 없는 길바닥의 어둠은 그의 표정을 가렸지만 목소리는 가리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들어버린 귀는, 미묘한 높낮이와 떨림으로부터 비롯된 쓸쓸함까지도 한껏 받아들였다.

 

그때 그의 말을 내가 이해했던가? 아니, 지금은 이해하나? 나는 골목에 주저앉을 때마다 물음을 반추한다. 그리고 언제나 같은 대답을 안고 자리를 옮긴다. '그때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나는 발 밑 깊숙이 파묻힌 게 무엇인지 모른다.', 고.

 

푸르게 칠해진 천장 빛이 점차 어두워져갔다. 6월경이니 점등 속도가 느리기는 하겠지만 서두르는 편이 나았다. 완전히 점등되고 나면 가로등이 희귀한 이 동네는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암흑천지가 되었다. 지상에는 해가 져도 또다른 무언가가 떠올라 밤을 밝혔다지만 나는 기억나지도 않는 오래전의 이야기다.

 

나는 몸을 일으켜 수레를 끌 준비를 하였다. 그때, 하수구 틈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빛을 순간적으로 반사해 시선을 끄는 게 제법이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다시금 발치에 시선을 줄 수밖에 없었다. 끌던 수레를 놓고 시커먼 구멍 속으로 얼굴을 들이댔다. 조용히 입을 다문 줄만 알았던 하수구는 내가 다가서자마자 시위하듯 악취를 뿜어냈다. 깊지 않은 곳에서 담배꽁초 사이에 숨은 동전이 보였다.

 

나는 수레에서 집게를 꺼내 하수구 틈새에 집어넣었다. 손가락만 살짝 창살에 댄 채로 동전을 잡아 올리자 쇳덩이의 표면에서 잿가루와 먼지가 떨어졌다. 후후 불어 그림을 확인하자 볼록 튀어나온 양각 숫자가 보였다. 500원이었다. 크기도 크고 학이 그려져 있는 걸 보니 구(舊)동전인 것이 분명했다.

 

동전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수레의 손잡이를 잡았다. 자로 잰 듯 반듯한 담벼락, 바닥 대신 화분에 심어진 몇 송이의 민들레, 간간이 나뒹구는 쓰레기를 지나서 달렸다. 바닥의 작은 요철을 만날 때마다 수레는 요란하게 달그락거렸다.

 

주택가와 동떨어진 채 우뚝 서 있는 창고의 문을 등으로 밀었다. 그리고 뒷걸음질 쳐 창고 안으로 수레를 들였다. 끼익 대는 철문이 바닥에 끌리고 형광등의 매서운 불빛들이 쏘아졌다.

 

“찬이냐?”

 

어떤 용도인지 모를 기계들이 한 무더기 쌓여있다. 그 가운데 앉아 스패너를 돌리던 남자가 나를 보았다. 내가 아는 한 언제나 똑같은 안경을 끼고 있던 그는 흰 머리카락을 모자 안 깊숙이 품고 있었다. 그는 수레를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안경을 바짝 올려 쓰고 수레 안을 뒤적거리는가 싶더니 그의 손에는 몇 가지 기계들이 들렸다.

 

“이거랑 이거는 kg당 1000원, 나머지는 420원씩.”

 

“왜 저번보다 안 나가요? 무겁긴 훨씬 무거운데.”

 

“무게보단 용도가 중요하지. 녹여서 쓸 고철이야 차고 넘쳐.”

 

나는 그가 건네는 돈을 대충 어림하고는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속에서 위인들이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그 무게감을 살갗으로 느끼며 바닥에 앉았다. 힘 풀린 다리를 좀 쉬게 해줄 요량이었다. 멍하니 앉아서 바닥의 나사들을 쌓으며 놀고 있자니, 그는 다시 스패너를 들었다. 하루 종일 온 동네를 뱅뱅 돌아 찾아온 기계들이 양파껍질처럼 벗겨져 나가며 속을 드러냈다. 똘똘 말린 나사들과 톱니바퀴, 그리고 무언지 알 수 없는 나머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괜히 바닥만 툭툭 걷어차며 눈을 끔벅거렸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기계가 오늘따라 눈앞에서 빙글댔다.

 

“그거, 하고 있는 건 잘 돼가요? 로카튼지 로킷인지 뭐 날아간다는 거.”

 

“인공위성에 가깝긴 하다만, 뭐, 이름이야 어찌됐든 이제 전보다는 좀 모양새가 나지 않냐?”

 

그는 고개를 까닥거리며 반팔 정도 길이의 철 덩어리를 가리켰다. 꽤 반듯한 사각형태와 내부를 메운 부품들이 보였다. 꾸부정하게 바닥에 놓인 기계는 비행체라기보다는 집에서 쓰는 전자기기에 가까운 모습이었으나 뼈대만 있었던 처음보다는 훨씬 나아져 있었다.

 

“뭐, 네. 그러네요.”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그것의 표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곧, 아마 이번 달 내로 마무리 될 거야. 그러니까 그때까지 조금만 더 수고해라.”

 

“네, 네. 근데…….”

 

“……?”

 

“왜 만드는 거예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돈까지 들여가면서 4년이나.”

 

전부터 궁금했던 것이 입 밖으로 나왔다. 별 생각 없이 튀어나온 것이 그에게는 당황스러운 것이었는지, 침묵이 돌았다. 나는 괜히 민망해져 스패너를 돌리는 손만 쳐다보았다.

 

“비밀.”

 

“네?”

 

한참 후에 나온 애매한 대답에 얼떨떨하게 눈만 깜박였다. 그는 나를 보며 작게 웃었다.

 

“비밀이라고. 나중에 말해주지. 내가 내킬 때.”

 

***

 

그의 창고에서 집까지는 그다지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불 꺼진 거리, 인적 없는 길바닥, 더 이상 쩔렁대지 않는 텅 빈 수레 같은 것들은 홀로 가는 시간을 계속 들여다보게 하였다. 입으로 숫자를 세고 걸음 수를 가늠하다, 10분전에 시작한 수가 몇 번이고 1로 되돌아가는 건 예사였다.

 

나는 한 손으로 수레를 질질 끌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오른쪽에는 방금 받은 지폐와 동전이 있고, 왼쪽에는 하수구에서 건져 올린 구 동전이 있었다. 왼쪽에 손을 넣었다. 크고 무거운 것이 손가락에 닿았다. 나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테두리는 손을 타 지나치게 매끄러웠고 녹슨 표면에서는 비린 쇠 냄새가 진동했다. 그럼에도 구동전에는 그것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누나는 그것을 '시간'이라고 말하곤 했다. 구동전은 십년이 넘는 시간을 여행해온 UFO와 같다고. 난폭해진 태양의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숨어든 인간과 다르게, 그 아래에서 살아 갈수 있음에도 인간을 따라 내려왔다고. 혼비백산 속에서 살아남은 동전은 그것을 증명하듯 여기저기 흠집투성이였다.

 

나는 동전을 한참 쥐고 걷다가 문득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멀리 보이는 집 쪽으로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었다. 미간이 굳었다. 머릿속 어떤 두려움의 스위치가 올라갔다. 바글대는 머릿수에 멈칫했던 것도 잠시, 나는 땀 찬 손바닥으로 수레를 움켜쥐고 내달렸다.

 

사람들이 가까워지고, 거대한 불빛이 켜졌다.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바닥에 떨어지는 수레의 쩔렁거림은 들리지 않았다. 목소리가 사방에서 웅웅댔다.

 

“축하드립니다!”

 

무엇을? 이라고 묻기도 전에 마이크가 들이밀어졌다. 커다란 은빛 반사판이 머리를 포위했다.

 

“김윤 씨 본인 맞으신가요?”

 

“네?”

 

“2062년 4월에 저희 프로그램 신청하지 않으셨나요?”

 

입이 벌어졌다. 나는 마이크를 들이민 여자와 카메라를 보았다. 커다란 렌즈가 집어삼킬 듯 집요하게 따라왔다. 여전히 시끄러운 주변의 낯익은 얼굴들과 침묵으로 기다리는 모르는 얼굴들이 뒤엉켰다. 내 발걸음이 뒤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 저는, 저, 아닙니다. 그런 거 신청한 적 없고, 김윤도 아닙니다.”

 

몇 걸음 딛자 발꿈치가 대문턱에 부딪쳤다. 나는 찌릿한 아픔은 접어두고 대문을 잡아당겼다. 거친 몸짓에 자물쇠가 흔들렸다. 황급히 자물쇠를 걸어 잠그자 바깥에서 요란하게 문을 두드려댔다.

 

“네? 잠시 만요. 아니 잠깐만요!”

 

못 들은 채 방 안으로 들어갔다. 철문이 계속 철컹대며 제 얘기를 들어달라고 울었다. 나는 방문을 닫아 잠그고 귀를 막았다. 막은 손가락을 걸러 들어오는 소리가 기이할 만치 멀어졌다. 나는 구석 모퉁이에 등을 대고 앉았다. 바닥에 닿은 엉덩이에 동전이 배겼다. 주머니에서 동전과 지폐 몇 장을 꺼냈다. 그리고 작은 책상 아래에서 유리병을 끌어냈다. 반팔만한 길이의 유리병은 이미 반 넘게 동전으로 채워져 있었다. 한동안 동전을 찾지 못해 손댈 일이 없었던 병은 먼지가 쌓여 뿌옜다. 스멀스멀 기어 나온 쇠 비린내는 친숙한 것이었지만, 내 손에 밴 것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손을 넣어 지금은 쓸 수 없는 옛 동전들을 움켜쥐었다. 양손에 가득 쥐어도 다 들 수 없어 손가락 틈으로 우수수 빠져나갔다.

 

“윤. 김윤.”

 

익숙한 이름이 당연한 절차처럼 튀어나왔다. 나보다 9살이 많은 이름. 방금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내 것인 것처럼 부른 이름. 나는 그 짧은 이름을 중얼거리며 동전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누나가 모은 동전들이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밤부터, 누나가 수집하기 시작한 것들이다. 지나가다 발견한 것을 줍는 것은 당연하며, 누가 구 동전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돈이라도 주고 사올 만큼 집요하게 그것들을 끌어 모았다.

 

나는 오늘 주운 동전을 유리병 안으로 떨어뜨렸다. 챙강, 소리와 함께 다른 것들과 뒤섞였다. 문 밖은 어느 틈엔지 조용해져 동전 소리만이 방 안을 울렸다.

 

 

 

[1. 없어도]

 

“저기, 잠시 만요. 얘기 좀 하고 가요!”

 

새벽녘 대문을 열자마자 나를 붙드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제 마이크를 들이댔던 여자가 대문 앞 계단에 앉아 있다가 황급히 일어섰다. 나는 한 걸음 주춤 물러서 그녀를 주시했다. 조용하기에 간줄 알았더니만, 남아서 자신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제 말씀드렸지만, 저 김윤 아닙니다.”

 

“알아요. 어제는 실례가 많았어요. 김윤 씨의 일은 저희도 어젯밤이 돼서야 알았어요. 정말 유감이에요. 저는 진행자를 맡고 있는 이지연이라고 해요. 저희는 방송국에서 나왔고, 이런 프로그램 찍는 팀이에요.”

 

지연은 싱긋 웃으며 명함을 건넸다.

 

‘LIVE IN LOST TIME’ 명함에 적힌 프로그램은 나도 몇 번인가 들어본 적 있는 것이었다. 13년 전 잃어버린 가족, 친구를 찾아 추적하는 프로그램이라고 들었다. 벌써 10년 넘게 방송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제보와 신청이 끊이지 않는다던가.

 

“저는 신청한 적 없습니다.”

 

“네, 그렇지요. 그렇지만 김윤 씨 동생 분 아니신가요? 김윤 씨가 뭘 찾고 싶어 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

 

“김윤 씨가 4년 전에 신청한 건 부모님의 행방을 찾아달라는 내용이었어요. 누나의 마지막 소원을 대신 들어주는 것도 동생으로서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요?”

 

나는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바닥만 쳐다보았다.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일자로 잘 펴져있어야 할 정신이 이리저리 꼬아져 매듭지어진 것 같다. 누나가 살아있었다면 단박에 결정되었을 일이지만, 내게는 그렇지 못했다.

 

누나가 바라던 일. 누나의 소원.

 

단칸방을 공유하면서도 누나는 어린 내게 자신을 섞으려 들지 않았다. 추억이든, 악몽이든, 그로부터 비롯된 감정이든 전부 홀로 가진 채, 내게는 다른 곳을 보라고 가르쳤다. 방구석에 쭈그린 누나를, 돌아보지 말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불가해한 표정으로 나를 등졌다. 마치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보았다는 듯 다급히, 그러나 어린 내가 애정을 느낄만큼 다정하게.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부모님을 찾으면 누나의 얼굴에 새겨져있던 감정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이라는 대답이 떨어짐과 동시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감독의 사인과 함께 카메라가 돌기 시작했다. 나는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눈만 깜박거렸다. 지연은 바로 앉으며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의 의미였다.

 

"그럼 시작해볼께요. 김찬 군, LIVE IN LOST TIME을 촬영하게 되었는데 지금 기분이 어떤가요? 무려 4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려 찾아온 기회인데요.”

 

“어, 저, 원래 누나가 신청했던 거라 저는 신청이 돼있는 지도 몰랐었는데 좀 얼떨떨해요.”

 

“그러시군요. 누나분인 김윤씨와는 생전에 어떤 사이였나요? 둘만 함께 살아오셨으니 각별하셨겠어요.”

 

"네, 아니, 글쎄요. 생각하시는 것 같은 각별함은 아니었을거예요."

 

우스울 정도로 쉽게 부정의 말이 나왔다. 생각하기도 전에 튀어나온 그 말의 진위를 나조차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럴듯한 표현으로 들렸다. 같은 집 안에서 같이 대화를 나누지만 본인의 이야기는 하지 않고, 따라서 여느 남매들처럼 싸우지도 않았다.

 

"누나는 바쁜 사람이었어요. 어쩌면 저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바빴어요. 일부러 시간을 남겨두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처럼. 그래, 그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왜 그랬을까요? 분명 하나뿐인 혈육인데 말이예요."

 

"모르겠어요.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으니까."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이유가 누나를 위해서, 가 아니었나요?"

 

"틀리진 않아요. 정확히 말하자면 미안함이 더 크고요. 누나가 바빴다면 전 무관심했으니까요. 너무 어렸지만, 이건 변명일뿐이죠."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어릴적 어떠했든 지금 찬군은 누나분을 여전히 추억하고 있잖아요."

 

"……."

 

"13년 전, ‘그 날’에 김찬 군은 4살 정도의 어린아이였을 텐데 부모님에 대해 기억나는 게 있나요?”

 

“어, 음…….”

 

“기억하기 힘든 게 당연해요. 혹시 집에 부모님을 떠올릴 수 있을만한 물건이 있을까요?”

 

“부모님보다는 누나가 떠오르는 물건이긴 하지만, 누나가 가장 아꼈던 거니까 부모님과 관련이 있을지도 몰라요. 여기, 이거…….”

 

나는 책상 밑의 유리병을 꺼냈다. 출렁대는 동전의 무게를 두 손으로 받쳐 책상 위에 올렸다. 어제보다는 덜 했지만 표면은 여전히 먼지로 가려져 있었다. 나는 카메라의 눈치를 보며 손으로 먼지를 훑어냈다.

 

“구동전, 그러니까 지하로 내려와서 화폐가 바뀌기 이전의 동전이에요. 지금은 돈으로써 가치는 없지만 누나가 열심히 모았던 거예요. 저도 이따금 주워 와서 보탰고요.”

 

"지금은 정말 찾아보기 힘든 물건인데 정말 많이 모으셨네요. 누나 분께서는 왜 이걸 모으셨을까요?"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누나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뱉을 수 있는 건 추측 뿐이었다.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떨궜다. 머리 위로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병 위에 손을 얹은 채 웅얼거렸다.

 

"…아마 그리워했던 게 아닐까요."

 

"무엇을요?"

 

누나의 모습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옛날 애니메이션을 상영하듯, 정지된 순간들이 겹쳐 기억으로 흘렀다. 조그만 손거울을 뚫어져라 보던 누나. 한 번 나가면 며칠씩 집에 없다가도 동전 하나 꼭 쥐고 와서 자랑하던 누나. 그 눈 밑에 늘어진 그림자를 품은 채 이따금 보여줬던 웃음과 그보다 더 짙었던 슬픔.

 

"부모님? 집에는 사진 한 장 제대로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랬던 것 같아요. 화장품 하나 없는데 수시로 거울을 들여다봤거든요. 왜, 그런 말 있잖아요. 나이가 들어갈 수록 부모님의 얼굴이 배어나온다고. 그 거울 안에서 부모님을 찾았는지도 모르죠. 동전도,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요. 이걸 판다는 소문이 들리면 며칠 밤을 걸어서라도 사왔어요. 몇 밤 새고 몇 끼 굶는 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그게 없이는 하루도 더 못 살 사람처럼."

 

"왜 하필이면 동전이었을까요? 그 정도 열의셨다면 다른 물건들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을텐데요."

 

"음, 태양이 동그래서?"

 

"태양이요?"

 

지연이 곧장 되물었다.

 

"네. 누나가 그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아요. 커다란 구동전이 태양과 닮았다고. 태양은 너무 밝아서 어두운 우리 눈으론 볼 수 없었는데 이제는 정말 못 보게 되었으니 이 동전 하나밖에 안남았다고요."

 

"부모님도, 부모님과 함께했던 지상도 많이 그리워하셨나봐요. 찬군은 위쪽에 대한 이야기 많이 들었겠어요."

 

"아니요. 제가 아는 건 그게 다예요. 태양이 전등 대신 밝아왔다는 거. 전부 혼자 생각하고 혼자 그리워했어요, 누나는."

 

"그래서, 누나분을 원망하시나요?"

 

"예?"

 

"원망하세요?"

 

"……."

 

아니, 라고 하려다 말문이 막혔다. 찬물을 끼얹은 듯 시야가 하얘졌다. 나는, 누나를 원망하나? 답을 구하듯 유리병을 내려다보았다. 뿌연 유리 위로 얼굴이 비쳤다. 아무리 뜯어봐도 누나와 닮은 건 눈동자의 색뿐인 얼굴이 좌우로 늘어난 채 비틀려있었다.

 

불현듯, 나는 누나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사라질 듯 멀어지는 왜소한 등과, 그 대문 앞에 홀로 선채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일 때까지도 깨닫지 못했던 누나의 죽음을.

 

나는 긍정도 부정도 못한 채, 누나를 원망하느냐고 물은 그 입만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3. 여기]

 

낯선 카메라 앞에서, 한 번도 꺼낸 적 없는 말들을 뱉은 지 벌써 일주일이었다.

 

첫 촬영이 끝난 뒤, 그들은 일단 제보를 기다려보고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면 재개하자며 떠났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되었지만, 이따금 전화를 흘깃대는 걸 제외하면 일상에 변화는 없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고철을 모으고, 그에게 전달하고, 이따금 골목을 들여다보고. 거창하게 결심한 것이 무안할 지경이었다.

 

창고의 남자는 이제 쇠붙이만 좀 더 있으면 될 것 같다고, 거의 막바지라고 말했다.

 

나는 축하한다고, 이제 4년의 결실을 볼 수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아마, 그럴 거라고 했다.

 

그러나 지어진 표정은 오히려 일그러졌다. 눈썹은 살짝 내려앉고 아랫입술은 추켜 올라갔다. 어쩌면 본인조차 모를 기류는 모호했고 나로서는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없었다. 서로의 존재를 알아온 것은 오래여도 사람 자체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얼굴에 벤 작은 습관들은 알아도 그 뜻은 몰랐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사람 사이에 오가는 모든 이야기는 교각으로 이어져있어 찾지 않아도 마주하고 찾으려 해도 만날 수 없는 것이다. 알게 될 일이라면, 교각이 이어져있다면, 어느 시점에서든 반드시 그 귀퉁이를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며칠이 지난 후에,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여느 날과 같이 바닥에 앉아 나사나 만지작거리던 중, 서두는 그저 흘리는 이야기처럼 던져졌다.

 

“해. 태양. 들어본 적 있냐.”

 

“글쎄요. 들어는 봤지만 역시 잘 모르죠? 본 적이 없으니까. 아저씨는 봤겠네요. 어땠어요, 그때는.”

 

“글쎄, 역시 나도 잘 모르겠다. 좋았나? 아니면 끔찍했나?”

 

“…….”

 

“아들이 하나 있었어. 그 당시에 딱 너만한 얘였지. 그 얘는 말야, 해를 좋아했어. 열 두어 살쯤인가 동네 뒷산에 올라가서 해를 보더니 눈 아픈 줄 모르고 계속 봐서 결국 내가 눈을 가려줘야 했어. 그리고 그 뒤로는 줄곧 천문학자가 되겠다며 산만 찾아다녔지. 살짝 베이기만 해도 눈물바다인 얘가 험한 산들을 전전하는 게 우스우면서도 대견해서 시간이 없어도 꼭 그 입구까지는 태워다주곤 했어.”

 

“…….”

 

“그 날, 그리고 그 날에도, 그 얘는 혼자 산에 있었어. 산꼭대기에, 태양과 가장 가까운 곳에. 그곳에서 그걸 바라보고 있었겠지. 그게 끔찍하게 타들어가는 걸. 그때, 그 얘가 그 아래에 있을 때, 나는 회사에 있었고 상황이 한참 진행되고 나서야 알았지.”

 

스패너를 쥐고 있던 손이 어느 샌가 비어있었다.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조차 멈춘 가운데 남은 것은 무엇인가에 가로막힌 숨소리뿐이었다.

 

“그래, 그래서, 내가 갔을 때는, 이미 그 꼭대기에 불이 붙어서. 불이, 붙어, 다 새빨간 색으로, 검은 연기로, 그것 밖에.”

 

그는 더듬거리며 문장을 끝내려고 애썼지만, 입 안에서 맴도는 숨만 뱉어냈다. 목울대를 크게 움직이며 침을 삼키고, 다시 단어를 뱉으려 입을 열고, 다시 침을 삼키고. 목 아래 그 깊숙한 곳에서 제지당한 듯한 말을 끄집어내려 몸부림쳤다. 그러다 결국 고개를 숙였다. 어깨를 들썩이고 두 손바닥을 바닥에 긁어내렸다.

 

나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아니, 무엇도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같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그렇게 한참 억눌린 울음을 울다가 나를 불렀다.

 

“찬아.”

 

“네.”

 

“난 태양을 볼 거야. 이걸 저 위 지상으로 날려서, 그 얘가 말했던 것처럼 여전히 태양이 상냥한지 봐야만 해.”

 

그래야만 해. 삼키듯 속삭이는 말이 귓가에 스쳤다.

 

 

 

[4. 살아가고 있어]

 

묻는 것에 익숙해졌다. 가족이든, 과거든, 아니면 자기 자신이든 상관없이 깊숙이 파묻고 시멘트를 덮었다. 누나를 비롯한 모두는 그렇게 요구받았고, 그래야만 함을 알았다. 그럼에도 파묻은 것을 잊지 못해 시멘트 조각을 매일 손톱으로 긁어내야했다.

 

나는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을 반쯤 덮은 가죽지갑이 보였다.

 

창고 속에 박혀있던 이야기를 꺼내들고, 집까지 지친 발로 돌아온 나를 기다리고 있던 물건이다.

 

대문 앞에 서 있던 지연은 이것이 부모님의 유품이라고 말했다. 지연이 가라앉은 얼굴로 대문 앞에 오도카니 서 있을 때 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전개였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받아들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부터 고민해야했다.

 

누나라면, 분명 하늘이 무너진듯 울었을테다.
그렇지만 나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 이것을 쥐어야할까.

 

나는 한 손에 그것을 쥐고, 다른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모호하게 일그러졌을 표정이 손바닥 안에 가리워졌다.

 

지연은 내게 몇 가지를 더 말해주었다.

 

아버지의 친구라는, 그 분은 이미 예전에 누나에게 이것을 전해주었었다는 것.

 

그리고 누나는 그것을 거절했다는 것.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라고 물으려는 입술을 깨물고 지갑을 내려다보았다. 가슴이 먹먹했다. 나는 항상,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비닐팩을 열고 다 닳은 가죽 표면에 손바닥을 얹었다. 부드럽고, 낡았다. 누나가 말하던 구동전처럼 이것도 아래까지 흘러들어와 내 앞에 와 있었다. 손 전체를 자극하는 시간은 제 몸을 펼쳐 내게 보였다.

 

어릴 적, 그 시간 속의 나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랬기에 누나는 내게 자신을 '보지 마'라고 했다. 내가 그 말뜻조차 모를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누나 말을 잘 듣는 아이는 고개를 돌렸다.

 

침묵으로 서로를 죽여가던 날들이 지나, 어느 밤 누나는 집에 일찍 돌아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나를 마주 앉혔다. 누나의 꾹 다물린 입술과 흐트러진 머리칼이 눈물과 함께 흘러내렸고, 나는 따라 울어재꼈다. 무엇이 그리 서러웠는지 눈이 탱탱 부어 감길 때까지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다. 말이든, 몸짓이든, 그 밖에 어떤 것이든, 무언가를 제대로 표현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그것을 알던 누나는 눈물 뿐이었고 나는 의미도 모른 채 같은 답을 꺼냈다.

 

그 밤이 누나가 이 지갑을 받았던 날인지 나는 모른다. 거절의 이유에 내가 있었는지도 확신 할 수 없다. 끝없이 앞으로 도는 테이프를 뒤로 힘껏 돌려보아도 들리는 것은 울음과 보지 말라는 한마디 뿐이다. 그렇지만 이제 그 안에서 누나의 아픔이 보인다.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죽어버린 신음과 너는 아프지 말라는 속삭임이 희미한 음영으로 옷자락을 붙잡는다.

 

"이제 제가 보관할께요."

 

지갑을 꼭 쥐고 말했다. 손바닥으로 누나의 시간을 끌어안은 듯 땀이 났다.

 

누나는, 아저씨는, 그리고 시멘트 바닥을 부수던 그 무수한 사람들은 잃어버린 것이 너무도 커서, 무엇으로도 그 빈자리를 메꿀 수 없어서, 어딘가 부품 하나 빠진 기계처럼 절뚝이며 살아왔다.

 

잃은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리 그 파편을 주워보아도 그것을 모아붙일 무언가가 결핍된 상태에서는 소용 없다. 평생 파편을 긁어모은 누나는 그것을 내 손에 물려주는 대신 땅 아래 파묻었다. 그럼에도 결국 내 손에는 누나의 조각이 쥐어졌다.

 

-보지 마.

 

누나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메아리쳤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이제 제 조각이에요.

 

입모양으로 속삭였다. 두 눈에 지갑과 구동전이 가득찬 유리병이 들어찼다. 누나와 내가 함께 쥐었던 조각들이다. 나는 유리병을 들고 벌떡 일어났다.

 

"어디가세요?"

 

"조각을 끼우러요!"

 

어안이 벙벙한 지연을 두고 집을 뛰쳐나왔다. 나는 동전으로 가득 찬 유리병을 안고 창고를 향해 달렸다. 화분 속 민들레와, 골목을 지나, 오르막길로 달음박질쳤다. 단숨에 도착한 창고에서는 그가 막 나서려하고 있었다. 나는 찰랑대는 유리병을 그의 두 손에 쥐어주었다.

 

"이걸로, 녹여서 만들어주세요. 누나가 새로운 태양을 볼 수 있도록."

 

그리고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돌아섰다. 동전의 무게가 덜어진 몸은 지칠 줄 몰랐다. 나는 달렸다. 계속, 기억하는 한의 평생을 살아온 익숙한 길목을 숨 한 번 몰아쉬지 않고 나아갔다. 그리고 나의 골목에 멈춰섰다. 어둠이 밀려온 공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나에게만은 훤히 보였다.

 

항상 앉던 자리에 옆으로 돌아누웠다. 아스팔트의 거친 감촉이 볼에 닿았다. 마치 바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듯 뉘인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안에 있을, 무수한 골목의 사람들이 말해온 과거의 잔재들은 이 순간에도 분명히 존재해있다. 나는 가로막힌 바닥을, 그리고 천장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네가 없어도, 여기, 살아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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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일 21 시 전
안녕하세요. 소설 잘 읽었어요. 감동적인 SF소설처럼 읽힙니다. 태양을 볼 수 없음에도 누나에 대한 그리움으로 만든 상냥한 태양을 보려는 소설이네요. 따뜻한 애니매이션처럼 읽힙니다. 고철을 주워다 파는 나, 오래된 동전들로 대표되는 누나와의 기억, 누나를 떠올리는 나, 인공위성을 만드려는 남자 등등의 캐릭터 또한 풍부한 서정적 질감을 환기하네요. 아쉬운 점은 소설을 끌고 가는 힘이 인물의 생각을 표현하는 문장들, 진술과 인물의 대화에 지나치게 의존한 까닭에 세계의 이미지가 다소 모호해요. 가상적 세계에서는 세계의 이미지, 상상력에 기반한 세계에 대한 구체적 묘사를 통해 공간의 분위기를 끝까지 잡아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누나-나의 에피소드를 제외한 방송이나 인공위성 남자에 대한 에피소드가 후반부에 정리되지 않고 급작스럽게 마무리된 느낌이 듭니다. 책임감 있게 소설 속의…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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