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쥬와 공주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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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젊은 세대 중심으로 활동이 활발한 sns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서 이른바 "난 곤쥬님인뎅?"이라는 밈(meme)이 유행하고 있다. 누군가를 태그로 지목하면서 특정 사진을 게시하는 것이다. 사실 이와같은 가벼운 자기애성 표현들은 과거에도 왕자병, 공주병 등의 이름으로 있어왔고, 어느정도 의미와 용도가 고정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 시점의 한국사회에서-청년실업과 고용불안 문제가 심각하여 청년층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 사회에서-갑작스럽게 이런 표현이 등장한 것은 부정적인 현실에 대응하는 반작용의 결과물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따라서 나는 여기에 내 나름의 해석을 사족처럼 덧붙여보려 한다.

곤쥬, 즉 공주란 무엇인가. 위키백과에 따르면 공주는 "한자 문화권 국가의 제왕(帝王)의 딸 혹은 가까운 친족 여성을 봉작한 작위 중 하나"이다. 신분이라는 개념이 남아있던 시절의 기준으로 공주는 상당히 높은 특수계급에 해당한다. 스스로의 노력이나 재능에 관계없이, 제왕적 권력자의 자녀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공주는 일반적인 평민이 일평생 피땀을 흘려도 결단코 가 닿지 못하는 위치에 도달한다. 출생 시점에서 이미 출발선이 다른 것이다. 이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이 당연하지만, 신분제가 폐지되고 국민들의 주권 의식이 높아진 오늘날에도 공주라는 이유만으로 얻게 되는 모든 혜택들, 호화로운 삶과 여유로운 여가 생활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다양한 매체에서 공주의 삶을 상당히 매력적으로 묘사한 탓이 클 것이다. 따라서 그 실상이 어떻든 간에, 공주라는 명칭은 오늘날에도 막연한 동경과 한없는 선망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지금 21세기를 살고 있다. 공주라는 호칭은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더이상 효력이 없다. 그 호칭이 가지는 권력과 함께, 그 호칭이 나타내는 지위와 함께 공주라는 단어 또한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 우리는 바야흐로 민주주의 공화국 대한민국에 살게 된 것이다. 그렇다,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며(헌법 제 11조 1항) 사회적 특수계급은 어떠한 이유로도 인정되지 않는(헌법 11조 2항) 그런 국가에,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고(헌법 34조 1항)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는(헌법 35조 1항), 참으로 좋은 국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정말 그런가? 뉴스를 틀면 나오는 것은 어느 재벌 총수의 범죄 혐의와 뒤따르는 솜방망이 처벌이다. 그 재벌 가의 자녀들은 본인들이 헌법이 인정하지 않는 특수 계급에 실제로 해당한다고 굳게 믿는 모양인지, 불쌍한 '을' 앞에서 '갑' 행세를 하기에 여념이 없다. 돈 있는 자는 죄 짓고도 법 앞에 당당한데, 돈 없는 자는 죄를 안 짓고도 자꾸만 움츠러든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드라마를 틀면 나오는 것은 훤칠한 '재벌 2세 남자'와 '보통 여자'의 눈물겨운 사랑 이야기이다. 누가 봐도(물론 배우의 외모가 일반인 평균 이상으로 매우 출중하지만) 평범한 여성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다 가진 완벽한 남성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극적으로 밑바닥에서 전전긍긍하던 여성이 남성에 의해-남성이 가진 부에 의해-구원받는 현대판 신데렐라 이야기에 대중은 열광한다. 한국땅에 특수계급이 없다는 말은 지나치게 순진하다. 그들은 이제 그 사실을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신은 자본 그 자체이며, 그런 점에서 대기업의 폭주를 제어할 제도적 장치가 부족한 한국사회의 재벌은 왕권신수설에 부합하는 명백한 제왕이다. 왕이 사라지지 않았으므로, 공주 또한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재벌 2세' '금수저' '갓수' 등으로 형태를 바꾸었을 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난 곤쥬님인뎅?"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들이 정말 그런 재력의 소유자들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그들 중 대다수는 10대에서 20대에 이르는 청소년/청년들이다. 어른들의 안일한 믿음, 또는 바램과 달리 그 누구보다 현실을(지나치게) 잘 파악하고 있는 계층이다. 그 현실이란 더이상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와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은 상처에 소금 뿌리는 역할 외에 써먹을 곳 없는 무용지물에 불과하다는 것 등등이다. 이 나라는 나 한사람의 인간다운 생활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 이들. 무기력과 절망이 학습된 이들. 휘발성 쾌락에 쉽게 중독되고 개인주의, 보신주의에 쉽게 동의하는 이들. 그들에게 어쩌면 '곤쥬'라는 단어는 평생 애써도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한없이 바라보게 되는, 전설 속의 이상향 엘도라도와 같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난 곤쥬님인뎅?" 이라는 귀여운 제스처와 말투 속에, 바뀌지 않는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현실의 짐을 조금이라도 털어내고자 하는 절박함이 있는 것은 아닐까. SNS에서 잠시나마 '곤쥬님'이 되었다가 다시 2교대 아르바이트를 하러 원룸 밖을 나서는 이 나라의 젊은이들에게, 기성 세대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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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은실

안녕하세요. 독 님.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 문제를 토대로 하여 주변에서 일어나는 어떤 유행(?) 내지는 문화 현상을 분석하는 글을 써주셨습니다. 비판적 문제의식이 장점인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특정한 문화 현상을 사회적인 맥락에서 풀어보고자 한 시도가 인상깊었습니다. 이 글에 대해서는 제가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방식으로 코멘트를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독 님이 무척 깊이있는 글을 써주신 바 몇 가지 의견을 드려보겠습니다. -먼저 자본주의 사회의 신은 정말로 자본일까 하는 점입니다. 어쩌면 자본주의의 신은 자본을 ‘소유한 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르크스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를 자본가로 보고 그들이 자본을 생산해내는 계층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관점을 빌려올 때, 현재의…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