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철없는 투정도 부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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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렇지 않았던 날들과 아무렇지 않으려고 노력한 날들이 있었다.

 아주 어릴 때는 나를 나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나를 부정한 적이 없었기 때문일까. 너는 이대로 괜찮아? , 나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악의 없는 질문에 상처받은 적이 없었다. 안경은 쓸 필요가 없었고 쓸 수 없었지만 아무렴 괜찮았다. 눈이 좋은 편은 아닌데, 드림 렌즈를 껴요. 밤에 잘 때만 하면 하루 종일 잘 보이니까.

 열한 살이 되자 안경을 낄 수 있게 되었다.

 열세 살이 되자 봄이 찾아왔다. 그 다음 날은 어버이날이었고 나는 베드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하루의 얼만큼을 잠든 채로 있어야 했는지 몰랐으므로 어버이날 편지는 미리 보내 놓았다. 새벽 여섯 시가 되자 나를 깨우는 손길에 눈을 뜨고 머리를 감고 자리를 옮겼다. 대기실은 추웠고 떨리지는 않았다. 이미 한번 해 본 건데 뭘!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 같다. 하얀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서 자꾸만 생각했다. 무엇이라도 생각해야 두렵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생각을 계속했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처음에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이상한 냄새 나는 가스로 마취를 안 하네. 이제 잠들어서 깨면 몇 시일까? 눈을 뜨자 오후였고 열 없이 마취가 풀렸다. 누구에게 가장 먼저 들었는지 모르겠다. 왼쪽 얼굴이 마비되었대. 신경을 건드려서. 처음으로 죽고 싶단 생각을 했지만 열세 살 어린애한테 그럴 깡은 없었다. 그래서 그때는 일부러라도 다른 곳에 마음을 두려고 애썼다. 처음으로 연예인을 좋아해 본 게 그즈음이다. 지금은 우스갯소리로 얘네가 없었으면 난 죽었어, 라고 말하지만 실은 진짜인지도 모른다. 무언가에 관심을 쏟지 않으면 내 안으로 파고들어 가 나를 다치게 했을 것 같다. 그런 날들이었다.

 살아 있다는 걸 알려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앞에 서는 걸 좋아했다. 초등학교 삼 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반장 선거가 있으면 나가지 않고는 못 배겼다. 초등학교 때는 방송부에도 들었다. 이유는 우습지만, 당시 유일한 상설 동아리였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는 도서부에,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학생회에 들었다. 엄만 그걸 권력욕이라고 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나를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를 갉아먹는 만큼 내가 괜찮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자기소개하는 전날 밤에는 수십 번을 연습하고야 잠이 들었다. 안녕, 나는 어렸을 때 수술이 잘못돼서 잘 못 웃어. 나랑 얘기하다가 비웃는 것처럼 웃어도 진짜로 즐거운 거니까 상처받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가끔 네 얘기를 못 들어도 그러려니 해 줘. 같이 걸을 땐 내가 왼쪽에 설게. 왼쪽에서 나는 소리를 잘 못 듣거든. 그날 밤엔 한참을 울다 잠들었고 자기소개를 할 땐 울지 않을 수 있었다. 참 이상하지, 내가 그렇게 부탁을 해 두었는데도 가끔 친구들이 얘길 하다 아, 하고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기면 때때로 숨이 막혀 온다. 그렇지만 내 얘기를 미리 해 둘 수 있다는 건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모른 척하는 걸 예의로 여기니까. 차라리 물어 주면 좋을 것을. 미세먼지가 매우 나쁨이거나 수학 문제를 푸는데 안경이 자꾸 떨어지거나 하면 하루종일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너는 마스크 왜 안 해? 그냥 일찍 죽어야지 뭐.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면 돌아오는 질문이 없어서 어깨만 으쓱하고 지나간다.

 언제부터인가 식사 기도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 신을 원망하는 건지 부정하는 건지 나조차도 알 수가 없게 되어 버려서 가끔 하는 기도 내용이 똑같아졌다. 그냥 없다고 믿게 해 주세요. 나는 원망할 곳이 필요해요. 기도를 끝내고 나면 이율배반적인 내용이란 걸 깨닫는다. 그렇지만 그 말 말고는 딱히 할 말도 없다. 지금 죽으면 지옥에 가겠지, 별 영양가 없는 생각만 하니 이것도 죄를 짓는 것일 테야. 믿음은 없지만 장학금을 받으려고 꼬박꼬박 교회는 나간다. 갈수록 죄명이 는다. 스물 몇 살 때 신앙심을 터뜨려 줄 사건이 하나 생겼으면 좋겠네. 천국에 갈 기회는 미래의 내가 만들어 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만 남기고 오늘은 죽지 말아야지 다짐만 한다. 이를테면 변명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내가 겪고 있는 일은 일종의 불행이니 어느 정도는 어긋나는 생각을 해도 되는 것 아닐까. 비논리적인 당위성을 부여하면 그제야 조금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다. 글을 쓰면 쓸수록 지옥문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조금 지웠다.

 동성을 대하는 걸 좋아한다고 하고 이성을 대하는 걸 사랑한다고 치자면 사랑하는 건 오래전에 그만뒀다.​ 제대로 웃을 수 없다는 걸 머리로 받아들이고 나서는 사 년 동안이나 했던 짝사랑도 접었다. 그 애는 너무 빛나서 동경한 것일 뿐이야, 앓았던 날이 길었던 것치고 접는 게 빨랐다. 친구들과 하는 대화랑은 달리 또래 이성이랑 하는 대화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감정을 소모하게 돼서 지금은 될 수 있으면 피한다. 여고에 진학했으니 잘됐다. 본인도 부둥켜안기 힘든 사람이 누굴 사랑해서 무엇 하겠어. 그렇지만 이렇게 살다가 정말로 메말라 버리는 건 아닐까 싶어서 줄리아하트의 <Plan B> 같은 노래는 숨겨 듣는다. 바보 같은 일이다.

 거울 앞에 서서 손가락 끝으로 왼쪽 입꼬리를 올렸다가 떼 본다. 이천육십일 하고도 이틀이 지났지만 마음이 덜 아물었는지 자꾸 아프다. 돌을 던져도 소리가 나지 않는 깊이를 가지려면 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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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현

안녕하세요? 송예님, 첫 만남 반갑습니다. 열세 살에 겪었던 수술 부작용으로 인해 지난 몇 년간 상처받고 살았던 삶의 고단함을 잘 표현해 주셨네요.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세부적인 묘사들을 글에 담아내 작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무렇지 않으려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지만, 정작 사랑하는 것과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는 망설이고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인 자신의 모습에 그동안 많이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글로 공유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글을 읽으며 아쉬움이 남았던 부분을 말씀드립니다. 어릴 때 왜 안경을 쓸 수 없었는지, 무엇 때문에 열한 살에야 안경을 낄 수 있게 된 건지 그리고 열세 살에 어떤 수술을 한 건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