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숙함에의 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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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2일, 잠실 롯데 콘서트홀에서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의 바이올린 독주회가 있었다. 나는 힘겨운 수험 생활에 지칠 때면 힐러리 한이 연주한 바흐의 샤콘느를 들었다. 단정한 음색과 안정된 기교가 전달하는 질서정연한 슬픔이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나름의 역경 속에서 갖게 된 애정 탓인지, 바이올린의 거장을 그리는 마음이 깊어져 결국 연주회의 티켓을 구매했다. 빈곤한 지갑 사정으로 인해 만족스러운 좌석에 앉지는 못했고, 2시간의 연주회 내내 그의 등만 보고 있어야 했다. 그래도 만족했다. 항상 이어폰 너머로 접하던 이를 직접 보고, 그 소리를 직접 듣는다는 사실에 마음이 들떴기 때문이다.

이날 연주회는 내게 두 가지의 감정을 선사했다. 첫 번째 감정은 경이였다. 힐러리 한에 대한 나의 애정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모양이었다. 입장하는 순간 비치던 그의 옆모습을 보고 가슴 속에서 뜨거운 응어리가 울컥 올라왔다. 미소 띤 얼굴로 넓은 무대로 당당히 걸어 들어오는 그 모습이 참 단단해 보였다. 나는 그가 첫 소리를 내는 순간까지 울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야 했다.

두 번째 감정은 괴로움이었다. 사실 이 감정이야말로 지금의 내가 이 글을 쓰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내 수험 생활을 지탱해주었다는 개인적인 서사에서 비롯되는 감동은 힐러리 한이 첫 음을 내는 순간까지만 지속되었다. 나는 힐러리 한의 연주에서 아무런 감상을 느낄 수 없었다. 내 가슴에서 오롯하게 우러나오는 생각을 갖고서 그의 음악에 임하지 못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유투브에 연주회의 곡목을 검색해서 들어보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나는 두 시간 동안의 공연 내내 왼쪽에 앉은 관객의 외투 스침소리에 괴로워야 했고, 오른쪽에 앉은 관객의 코먹는 소리에 고단해야 했다. 연주회가 끝나고서 8호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 마음에는 망연자실함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토록 그리던 힐러리 한의 연주를 두 귀로 직접 들었는데도 머리에는 박힌 게 없었다. 각종 클래식 커뮤니티에 감상을 검색해보았다. 콘서트를 갔다 온 모든 사람들이 힐러리 한의 연주를 두고 길이 남을 거장이라며 기립박수를 쳤다. 왜 나는 그의 음악에서 감동을 느낄 수 없었을까? 나는 뭐가 부족했을까? 음악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채 회장에 들어갈까, 그런 걱정에 티켓을 구입하자마자 프로그램에 올라와 있는 곡목을 공부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바흐의 파르티타를 들었고, 그 비평을 찾아보았다. 그 무엇도 내 감상에 도움이 되질 않았다는 생각에 강남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내내 허망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내 것이 아닌 감상을 마치 내게서 비롯된 오롯한 사유인 양 그렇게 떠들었다. 힐러리 한이 스타일을 바꾼 느낌이었어요. 왜, 그 사람은 되게 기계적인 연주의 정석이잖아요. 정경화랑은 대조적으로요. 그래서 그 질서정연한 맛이 좋아서 평소에 그분의 연주를 선호했는데, 특히 바흐 말이에요, 이제는 스타일을 바꾸려고 하시는 것 같아요. 포르테가 대담해지고 주제의 강조가 극적으로 이루어졌어요. 일정한 경지에 오른 이들일수록 자신이 여태껏 추구해온 방향을 틀기는 어려운 법인데 그 분이 그렇게 변화하는 모습을 목도한 제가 행운아네요. 되게 문학적인 모멘트, 음 에피파니? 를 목격한 거나 다름없잖아요.

고리타분한 표현. 지켜지지 않는 문법. 성긴 구성. 허술한 내용.

내 빈곤한 언어를 저주한다. 내 얄팍한 이해를 증오한다. 내 가난한 안목을 혐오한다. 그날 밤, 눈을 들어 내가 가진 궁핍한 자산들을 끌어 모아 보았다. 맥락의 수긍 없이 단순하게 반복하는 지식, 치밀한 논증이 없는 결론, 책들이 바스러지는 서재, 어릿광대처럼 허풍 섞어 늘여놓던 내 모습까지. 무지의 선율을 노래하는 혓바닥을 잡아 챈 다음 손가락 끝으로 혀뿌리를 더듬고 어두운 목구멍 안을 헤집어보면 검은 기름때가 낀 오물을 끄집어 낼 것 같다. 형체가 되다 못한 부스러기들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 그것들은 자석이 고장나버린 나침반과 같아서, 내가 황량한 길을 헤쳐 나가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없을 것 같다. 애초에 나침반을 망가뜨린 건 나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두려움이 빠른 물살처럼 밀려들어온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그대로 눈을 감아버리고만 싶다.

방의 서재에 꽂혀 있던 민음사의 햄릿. 그 책등에 박제된 셰익스피어의 눈이 나를 향했다. 죽느냐, 사느냐를 고민하던 햄릿. 그 선택지 앞에서 구차한 시간을 이어나가는 나를 본다. 햄릿은 제 죽음을 완성했는데, 나는 여기서 무얼 하고 있지? 셰익스피어의 시선이 계속 따라온다. 우울감이 나를 진득한 늪으로 끌어내린다. 오욕에 찬 생을 어떻게든 변제하고자 하는 추악한 탐심은 혀를 날름거리며 내가 명예의 명패를 갖도록 닦달한다. 이 욕심이 불순한 동기임을 잘 알고 있기에 다시 내 자신에게 혐오스러운 감정을 느끼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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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현

안녕하세요. 김한세님. 힐러리 한의 바이올린 독주회를 접하며 느낀 감정들을 소재로 글을 올려주셨네요. 이번 글에서도 다양한 비유와 묘사가 담긴 문장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원숙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는 묘사들이 무척이나 신중하고 정확하게 잘 사용됐다는 생각입니다. 글을 참 잘 쓰시네요. 다만, 이야기가 두 가지로 분리된 듯했습니다. 독주회 감상에 대한 이야기와 원숙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요. 글의 서두에 독주회에 대한 작자의 기대가 크게 드러났던 만큼 그러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서 독자의 궁금증이 컸는데요, 그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추상적인 내용의 이야기들이 진행되어 글 전체가 유기적으로 하나되지 못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원숙하지 못하다고 해서 연주회에서 감동을 못 느낀 거라고 하기에는 다소 이유가 약해 보입니다. 고리타분한 표현, 지켜지지 않는 문법 등의…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