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수감생활 ─ 미나토 가나에, 『고백』, 비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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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수감생활

─미나토 가나에, 『고백』, 비채, 2007

 

 

 

 

우주의 탄생

 

저는 두 사람 우유에 오늘 아침에 갓 채취한 혈액을 섞어두었어요.(58p)

빅뱅(Big Bang)이란 어쩌면 이런 것을 뜻할지도 모른다. 또 하나의 우주가 탄생하는 순간. 1학년 B반의 선생님을 맡았던 모리구치 유코의 고백이 시작되는 순간. 모든 시간은 정지한 것만 같았고, 모두가 공포에 질렸던 순간. 유코의 딸, 마나미의 아버지가 HIV 감염자라는 사실을 유코 스스로 밝혔을 때, 학생들이 뒤늦게나마 HIV에 감염될 수 있는 경로를 차단하려고 숨을 멈췄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자신의 딸을 죽인 두 소년 A와 B에게 직접적으로 HIV 감염을 조장했다는 유코의 고백은 반 전체가 도망치려고 할 정도로 충격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유코는 끝까지 덤덤하고 잔인하다. 학급 교체는 없을 것이라는, 일종의 사형 선고를 내리면서 연쇄적인 폭발을 일으킨다. 공포와 두려움, 경악만이 뒤섞였던 초기 우주에서 교실 전반을 감돌던 에너지는 급격하게 팽창하며 눈에 띄는 행동으로 이어지기 시작한다.

“여러분도 유익한 봄방학을 보내세요.”(59p) 말을 끝맺은 순간 유코는 우주의 반을 성공적으로 탄생시킨 셈이었다.

 

유코는 의도적으로 우주를 전부 생성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기껏 엔딩 화면에 나오는 몇 학년 몇 반 학생들이라는 자막이 고작인, 그 외 수많은 학생들의 입장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15p) 나머지 절반을 만들어내는 건 이듬해, 2학년 B반이 된 학생들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B반은 착실하게 그 역할을 이행해간다.

폐쇄적인 반은 정보 공유가 빠르다. 누구도 소년 A와 B의 이름을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으나, 모두가 소년 A가 와타나베 슈야이고 소년 B가 나오키 시모무라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 둘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의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학교에 나와 따돌림을 감내하거나, 등교를 거부하거나. 전자를 택한 슈야가 새 학기 첫 날 학교에 나옴으로서 입자들 사이에 반입자가 생성되었고, 우주를 만들 충분한 조건이 갖추어진 것이었다.

입자들이 결합하면서, 교실에는 기묘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 분위기는 점점 주류가 되고, 동참하지 않는 자는 가차 없이 배제해 슈야와 함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사회적 소멸과도 같은 일이었다. 등교를 하지 않는 나오키에게 보낸 평범한 롤링페이퍼가 사실은 죽음을 강요하는 메시지였다는 걸 고백하던, B반의 반장 미즈키가 했던 말처럼. 다들 비정상적인 공기를 즐기기 시작했던 겁니다.”(81p)

 

 

 

블랙홀: 자그마한 거품이 하나, 톡 터지는 소리가 났다(232p)

 

그러나 모리구치 유코는 가해자가 아니다. 오히려 원시 우주의 중심을 차지하는 블랙홀 안에 갇힌 가장 큰 피해자이며, 그 블랙홀은 소년 A와 B, 즉 슈야와 나오키로부터 만들어졌다.

“살의는 있었지만 직접 죽이지는 않은 A. 살의는 없었지만 직접 죽이게 된 B.”(57p)

블랙홀은 어떤 천체의 내부 압력이 천체의 자체 중력을 상쇄시킬 수 없을 때 발생한다. 결혼을 약속한 상대가 HIV에 걸려, 아이를 위해서라도 결혼하지 말자는 통보를 받은 모리구치 유코에게 삶을 버텨나가게 하는 힘은 딸인 모리구치 마나미뿐이었다. 유코에게 마나미는 어떻게든 지켜야 할 대상이었고 동시에 모든 삶이었다. 그것이 허무하게 파괴되었을 때, 유코라는 하나의 별은 중력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것은 불가항력이었다.

그렇게 유코는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내부에 감금되었다. 어떤 물리법칙도 통용되지 않는, 지평선으로 가까워질수록 시간은 무한히 느려져 결국에는 멈춘 것 같이 보이는 공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코는 살아있었다.

일 초가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질 때 유코는 슬픔에 온전히 빠져 있지 못했다. 주위의 환경이 유코의 나약함을 비난했다. “역시 엄중히 주의를 주지 못했던 교사가 나쁜 걸까요?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했어야 했나요?”(35p)

분명히 사건을 실행에 옮긴 것은 학생인데도 오히려 관리 소홀로 징계를 받는 동료 교사와, 제대로 수사하지도 않고 지역 신문에 실린 마나미의 수영장 추락사 사인과, 마나미가 밥을 주러 다니던 개집에서 발견된, 개조된 솜토끼 지갑 따위의 것들은 유코에게 마음껏 슬퍼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책임은 자신의 아이 관리에 소홀했던 유코에게 돌아갔다. 범인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코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시간선을 공유하지 못했다. 의지하거나 기댈 사람도 없이 홀로 감내해야 했던 그 영원의 시간 동안 유코는 마나미의 살인사건을 끊임없이 본인에게 상기시켰다. 고통에 무뎌진다는 건 통점이 죽어버리는 게 아니라 단지 익숙해질 뿐이었겠지만, 자신의 딸을 살해한 두 소년에게 복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첫걸음이었기 때문이다.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괴물이 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끝내,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유코는 덤덤하게 말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사직하는가? 마나미는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우리 반 학생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입니다.”(28p)

 

유코의 이야기는 지면에 담긴 것보다 지면에 담기지 않은 부분이 훨씬 많다. 유코가 끝없이 자신을 좀먹으며 마나미의 죽음을 목격하고, 사고사가 아닌 것을 확인하고, 모든 이야기를 신난 범인에게 생생하게 듣고, 마나미를 살해한 소년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2학년 B반의 교사 요시키 데라다와 만나고, 마나미의 아버지이자 전 결혼 상대인 마사요시 사쿠라노미야의 혈액을 채취하고, 그 혈액을 우유에 주사하면서, 그 모든 과정 동안 마나미의 죽음을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이야기들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어쩌면 너무 큰 고통이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작가 미나토 가나에는 그것을 의도했고, 감정이 실리지 않은 유코의 간단한 고백으로, 강단에 선 단단한 유코의 뒷모습에 담긴 엄청난 공허와 슬픔을 독자의 온몸으로 느끼게 유도한다.

유코는 목소리가 떨리는 일도 없이, 주저하지도 않고 덤덤히, 자신의 딸을 살해한 사람은 본인의 반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털어놓는다. 마사요시 사쿠라노미야나 자신의 죽은 딸에 대한 도를 넘어선 질문이 들어와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다. “눈을 뜰 때마다 이제 아무리 손을 뻗어도 그 보드라운 뺨이나 솜털 같은 머리카락을 만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같은 답을 하면서도, 다음 이야기를 미루지도 않고 요연하게 진행한다. 마나미와 함께 본인의 감정마저도 살해당한 것처럼.

 

그래서 유코의 이야기에는 쓸데없는 사족이 없다. 물론 고백의 첫머리는 산만하고 장황하지만, 결국 하나의 주제로 모두 귀결되어 연결된다는 점에서 세밀하고 정교하다. 그건 자신 주위의 모든 것을 없애버리는 블랙홀과도 닮아있다. 주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면서, 본인은 타격을 입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더하여 유코의 이야기는 청자를 제한한다. 상대와 눈을 맞추며 대면하거나 목소리를 들려주는 직접적인 화법은 유코의 반 아이들이 그러했듯,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29p)를 비롯하여 숱한 질문과 의심을 동반하며, 손을 들고 반박당할 수 있는 위치이므로 보다 치밀하고 논리적이어야 하며, 유코는 그것을 기꺼이 감내했다.

그러나 나머지 네 챕터의 인물들은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별들처럼 요동친다. 고백을 하는 내내 끊임없이 고민하고, 의심하고, 주저하고, 불안해한다. 자기 회고적인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망설임과 함께 드러나는 감정들의 대부분은 적나라하고 날것이다. 물론 열다섯 아이의 미숙함을 탓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전체적으로 마치 채 정리하지 못한 본인의 마음을 표현하며 억지로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과정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고백의 수단 또한 인물들의 불확정성을 내보이는 데 일조했다.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인 화법을 내세운 유코와는 다르게, 살인에 직접 참여한 슈야와 나오키는 각각 개인 홈페이지와 해리성 회고를,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소년들과 함께 무너지는 나오키의 어머니와 미즈키는 각각 일기와 문예지에 제출하는 원고를 매개로 택한다.

이 매개의 방식들은 타인에게 본인을 다각도로 조명할 기회를 줌과 동시에 직접적인 비난을 받지 않는다. 자신이 흔들리는 것을 무의식적이고 자기방어적으로 인지하기 때문에, 소극적이고 간접적인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본인이 완벽하게 객관적이며 논리적이라고 믿고 있는 슈야 역시도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 있었으니. 이들은 더더욱 무너지기 직전처럼 굴었고, 실제로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꼭 별이 펑, 하고 터지려는 것처럼.

별의 폭발, 즉 초신성이 생성되는 경로는 두 가지다. Ia형 초신성은 에너지를 한계 이상으로 받아들였을 때 생성된다. 전자 축퇴합(electron degeneracy pressure)으로 중력붕괴를 이겨내는 백색왜성이 찬드라세카르 한계─유체 정역학 평형에 있는 백색왜성의 최대 질량─에 도달하면, 별은 더 이상 플라스마 대부분을 유지할 수 없어 붕괴하기 시작한다. Ia형 초신성이 아닌 초신성은 질량이 큰 항성이 어느 순간 핵융합이 불가능해져 자체 중력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중심핵이 붕괴하면서 만들어진다. 물론 중심핵 붕괴 현상은 서로 다른 기작을 통하여 일어날 수 있지만, 중요하지 않다.

주목해야 할 것은 차차 유코의 우주가 타인의 우주에 간섭하여 어떻게든 그들의 별이 무너지도록 설계했다는 점이다. 소중한 것이 사라지는 소리. 슈야가 어머니에게 버림받을 때 들었다던 소리. 이는 곧 별이 폭발하는 소리다. 자신이 폭발하는 소리다. 아무것도 견디지 못하고 더 이상 나아갈 힘이 없을 때 들리는 소리. 아마 모든 인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무너지고, 스스로를 더 이상 용서하지 못할 때 들리는 소리.

모두가 각자의 고백을 할 때, 어디에서나, “물거품이 투두둑 터지는 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267p)

 

유코의 고백이 유언 같은 고백이라면, 다른 이들의 고백은 자기정리의 수단에 불과할까. 잔인하고 안타깝지만, 유코의 고백의 서늘한 명료함과 대비되는 고백은 그렇게 보인다.

 

 

 

별의 일생: 네게 나를 벌할 권리가 있어?(91p)

 

블랙홀을 관측할 수는 있지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는 없다. 우주는 원래 그렇다. 눈앞에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말 그대로 불가사의하고 믿기 어렵다. 여러 물리공식들과 관측되는 현상들을 적절히 조합하여 일궈낸 블랙홀에 대한 추측은 무수하나, 아무도 가까이 가 본 적이 없으며 가까이 간다고 할지라도 관측에 앞서 모든 통신장비가 블랙홀이 방출하는 에너지들로 인해 고장날 테고, 누구나 알다시피 현재의 기술력으로 블랙홀에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은 0에 수렴하기 때문에 추측이 옳은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측정 불가, 누구도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

그렇기 때문에 블랙홀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도 상당하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살인 사건에 무게를 두고 이야기를 안정적으로 전개했을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중학생이 담임교사의 딸을 살해했다는 매력적인 소재라면 더더욱. “이건 지금까지 별로 유례가 없는 유형이다”(245p)는 슈야의 말대로, 블랙홀처럼 흥미롭고 신선하며,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를 끌어갈 힘도, 가능성 또한 넘쳐나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나토 가나에는 블랙홀 자체에 집중하는 시간의 지분을 줄였다. 대신 유코의 우주가 간섭하여 결국 부서지고야 만, 다른 우주들의 일부와 별들에게 집중했다.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가 경험하지 않은 세계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빅뱅 이전의 우주를 떠올리기 위해서는 여러 가설들이 동원된다. 개중 타 물리학 현상들의 허점을 보완하는 유력한 이론은 다중 우주론(multiverse)이다.

매우 작지만 0이 아닌 길이를 지니며 10차원에서 정의된 끈이 진동함에 따라 만물을 구성하는 끈이론(string theory)과 끈이론을 11차원까지 확장시켜 다양한 막─근원적 끈들이 서로 강하게 상호작용할 때는 한 차원 높은 단계에 도달했다는 판단 하에 더 이상 끈이 아닌 막으로 불린다─을 도입해낸 M이론(M-theory)이 다중우주론을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엮어낸다. 이 M이론이 적용된 선대폭발이론에 따라, 마나미의 죽음에 의해 발생한 블랙홀은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냈다.

 

유코가 블랙홀 발생 초기부터 그 안에 갇힐 운명이었다고 해도, 블랙홀이 집어삼킨 것은 적지 않았다. 이미 존재하고 있던 다른 우주와 충돌한 탓에, 자신의 붕괴를 감수하면서까지 다른 우주를 함께 붕괴시켰다. 유코의 치밀한 설계가 아니었더라도 소년 A와 B가 각자의 방식으로 무너지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이유에서이다.

필연적으로 유코의 우주는 나오키와 슈야의 우주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테였고, 소년들은 앞으로 평범한 삶과는 먼 삶을 살게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재능을 인정받고 싶어 하던 슈야는 본인의 위대함에 도취되어 높이 날다가 그것을 부정당하는 순간 자멸했을 테고, 뭐 하나도 잘 하는 게 없어 실패작이라고 불리기를 두려워하는 나오키는 타인이 수시로 당기는 트리거에 본인은 살인자라는 내면화가 겹쳐져 버티지 못했을 테였다.

그러나 그것은 간접적인 나비효과이다. 마치 북반구에서 날아다니는 나비의 날갯짓 한 번이 남반구에 태풍을 일으키듯. 태양이 뿜어내는 플레어가 지구에 잠시간 통신장애를 비롯한 불편함을 일으키듯. 게다가 나오키와 슈야는 특정 성격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기에 그나마 파멸을 예견할 수라도 있는 것이지, 소설 밖으로 나와 보면, 죄의 경중에 상관없이 어깨를 펴고 다니는 가해자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 않은가. 솜방망이 처벌도 비일비재한 현대사회에서, 심지어 범죄자가 소년법에 의해 보호받는 어린아이라면 소설 속의 청소년 존속살인범, 루나시처럼 “아동 자립 지원 시설 같은 곳에서 작문이나 깨작거리다가, 몇 년 후 뻔뻔한 얼굴로 사회에 복귀할 게 뻔했다.”(33p)

이것이 유코가 다른 우주를 부수기로 결심한 이유이다.

 

그러나 다시, 유코는 가해자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나토 가나에는 부서진 우주 자체를 조명하기보다는 붕괴되기 전의 우주와 그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타인이 아닌 타인을 서술자로 내세워 잔인함을 더했다. 맹목적인 믿음에서 파생되는 파멸은 필연적이다.

미즈키의 고백은 본격적인 소년들의 고백에 앞서, 정말 슈야와 나오키만이 나쁜지를 묻는다. 미즈키는 소년 A가 아닌 슈야를 알았고 소년 B가 아닌 나오키를 알았으며, 그것이 그들의 진짜 모습이라고 믿었다. 등교거부를 하는 나오키에게 원거리 언어폭력을 가하는 아이들과, 등교를 한 슈야에게 직접적인 따돌림이 가해지는 광경과, 그 따돌림에 동참하지 않는 자신에게까지 가해진 제제, 본인을 베르테르라고 지칭하며 오히려 나오키를 지옥으로 밀어넣는 B반의 담임교사 데라다까지. 그 모든 것이 이상하고 기괴했으며 자신 나름의 신념과는 정확히 반대를 가리켰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이 유코가 설계해 둔 우주의 일부인지도 모르고.

유코 선생님, 나오키와 슈야가 살인자라면, 여기 있는 아이들은 무엇입니까?”(92p)

미즈키는 물었다. 거기 있는 아이들이 유코의 체스말인지도 모르고.

 

물론 마나미를 살해한 소년들에게는 각자의 우주가 존재했다.

와타나베 슈야에게는 뛰어난 어머니가 있었다. 슈야를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으나, 슈야를 낳기로 한 결정 때문에 뛰어난 연구자였던 본인의 커리어를 모두 버려야만 했고, 억압된 감정과 욕망을 잘못된 방식으로 슈야에게 풀곤 했던 어머니.

““너만 없었더라면.”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매일같이 손찌검을 하기 시작했다. 계기는 뭐든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저 내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용서할 수 없었을 뿐.“(227p)

그러나 슈야는 어머니의 앞길을 가로막은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무의식에 뿌리 깊은 죄책감을 심어두었다. “어떻게 미워할 수 있을까”(227p), 하고 합리화를 하면서. 어머니가 아동학대 때문에 접근금지 처분을 당했어도, 더 이상 보지 못해도, 어머니가 원하던 대로 우수한 인재로 자라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슈야는 굉장히 머리가 좋은 아이야. 엄마가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뤄줄 사람은 슈야뿐이란다.”(226p)

다만 그 꿈은 굉장히 한정적이고 제한적인 것이어서, 슈야는 기술적으로는 뛰어나지만 온통 뒤틀린 마음을 지녀도 상관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유년의 사랑이라고 믿었던 비틀린 감정이 슈야의 내면세계를 장악했고, 결국 어머니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재앙이 되었다. 무엇이든 태워 목숨을 연명하는 항성같이.

시모무라 나오키는 백색왜성을 닮은 소년이다. 내세울 것 없는 세간의 실패자. 애당초 가지고 태어난 능력도 중간을 웃돌지 못했으며, 어떻게 발버둥을 쳐 봐도 테니스부에서는 라켓을 한 번도 잡지 못했고, 어머니마저 다른 칭찬할 거리를 발견하지 못해 ‘착하다’라는 말로 얼버무리는.

칭찬할 점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착하다는 말로 둘러대는 것이다.”(167p)

나오키는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체감했으나 죽어도 그렇게 되기는 싫었다. 다른 아이들과 자신이 어쩌다 비교될 때마다 비참했다. 특히 자신을 과보호하는 어머니가 그럴 때마다 더더욱. 나오키는 수시로 땅바닥에 처박힌 것 같은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빠졌다. 그래서 마치 동족혐오를 하듯, 나오키는 자신을 이용하려고 들었던 슈야의 실패를 조롱하며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멍청하긴. 사실은 실패했는데.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189p)

인정받고 싶다.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실패작이 되고 싶지 않다. 쌓여만 가는 욕구들은 나오키의 안에서 몸집을 불려갔고, 그 욕망을 풀어낼 적절한 공간 또한 없었다. 그것이 나오키를 곪게 만들었다.

그만해! 나는 실패작이 아니야! 실패작이 아니야!”(215p)

 

각각의 우주들은 잘 짜인 개연성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왜곡된 인정 욕구, 다른 하나는 실패자가 되지 않기 위한 발버둥. 살인 동기 또한 이토록 명징하다. 독자를 소설 안으로 끌어와 살인에 대한 충분한 설득력과 어쩌면 일말의 동정심을 부여한다.

소년들은 꼭 본인의 상황을 이해하고 괜찮다고 말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은 독백을 이어간다. 합리화와 정당화가 한데 뒤섞인 고백을. 나는 이렇게 힘들었으니, 살인쯤은 저질러도 괜찮잖아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살인을 저질렀지만 사실 이래서였는걸요. 끝끝내 무너지면서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만 같다. 소년들의 사고방식과 영악함은 이미 열다섯을 넘어섰으나, 가끔씩 목소리에 비명처럼 배어 나오는 것 같은 두려움은 그 나이 또래의 생각처럼 보여 더더욱 이질적이면서도 안쓰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나토 가나에는 이 둘의 상황에 이입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자칫하면 미화될 수 있는 소재를 외려 그들에게 과하게 이입된 두 명의 다른 인물─미즈키와 나오키의 어머니─을 등장시킴으로서 거부감을 들게 만듦과 동시에 계속해서 독자에게 경고 메시지를 날린다.

소년 A와 B를 동정하고 옹호한다면 너는 소년 C가 되는 것이라고.

혹은 소년 A와 B의 손에 끝내 죽을 수밖에 없었던 미즈키나 나오키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라고.

반대로, 유코는 소설이 전개되는 내내 유코 본인을 가해자로 타자화한다. 학생들에게 던지는 말을 맥락을 제하고 본다면 한없이 따뜻하고 정의로우나, 자신이 저지른, 그리고 앞으로 저지를 일들을 스스럼없이 나열하고서 뱉어낸 말은 오히려 반어법으로 들릴 정도로 섬뜩하고 공포스럽다.

“내용물이 보이지 않는 종이팩에 든 우유라 가능했던 일이지만, 저는 두 사람 우유에 오늘 아침에 갓 채취한 혈액을 섞어놓았어요. 제 피가 아닙니다.

[…]

두 사람이 자기가 저지른 죄의 무게를 깨닫고, 마나미에게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반성하고 사죄하기를 절실히 바랍니다. 그리고 학급 교체는 없으니 모두 결코 두사람을 몰아내지 말고 따스한 눈길로 지켜봐주세요.”(58p)

“K대학 이공학부 전자공학과 건물 제3연구실. 그곳이 폭탄을 세로 설치한 장소입니다. 폭탄을 제작한 것도, 스위치를 누른 것도 와타나베 군 본인입니다.

어떤가요, 와타나베 군. 이것이 진정한 복수이자, 와타나베 군의 갱생을 향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286p)

유코는 결코 본인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효과가 없으면?’ 그렇군요, 부디 교통사고를 조심하라고 말해두지요.”(58p) 유코에게서는 감추지 않는 살기를 느낄 수 있다. 자신이 갱생이라는 명목으로 저지르는 일들이 악행임을 인지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파멸시키는 것만이 삶의 목적인 것처럼 행동한다. 블랙홀로 소년들의 우주가 찢긴 채 빨려 들어오는 순간 가장 먼저 웃을 사람은 본인인 것처럼.

아이러닉하게도, 분명 학생들에게 제제라는 명목을 쥔 가해자는 유코이다. 그러나 이유 있는 당당함, 나쁘게 말하면 목표를 설정한 광기는 유코를 소설의 도입부터 끝까지 피해자의 자리를 지키게 만든다. 같은 복수극인 『상처투성이의 악마』(2017, 야마기시 산타)의 원 피해자, 후지츠카 유리아가 이전의 피해를 빌미로 가해를 무리하게 정당화하던 것이 불쾌함과 함께 눈에 띄던 것과는 반대다. 오히려 미나코 가나에의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 잔혹할지언정 훨씬 깔끔하고 덜 폭력적이다.

 

 

 

종말과 종말 사이

 

아마 모든 우주는 언젠가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언젠가는 터지거나 쪼그라들 것이고, 그러기 전에 블랙홀로 여러 성운들과 별들은 흡수될 것이다. 한때 존재했던 우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게 다른 우주는 빅뱅을 맞이해 팽창할 것이고, 다시금 그 안에서는 누군가의 블랙홀이 생겨날 것이다. 그것이 크든 작든, 모두는 서서히 무너질 것이고, 그건 『고백』의 인물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만일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 중 한 명만 웃을 수 있다면, 그것은 블랙홀에 갇혀 버린 모리구치 유코이기를 바란다. 『고백』이 초반부터 꾸준히 시사하듯, 유코의 복수는 사실 유코의 몫이 아니다. 응당한 처벌은 사회와 법이 결정할 일이지만, 연일 가십거리 그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보지 않는 사회라면,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악의에 상관없이 거의 없다시피 한 형을 선고하는 법이라면, 과연 마나미는 누구에게 보호받아야 했는가. 유코는 누구에게 정의를 바라야 했고,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는가.

유코의 블랙홀은 아직도 다른 우주에 간섭하면서 부여받은 임무를 거센 중력으로 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아마 자신이 증발해 우주와 함께 사라지기 전까지는. 혹여나 자신이 사라진다고 한들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사라지는 순간까지 무엇 하나라도 더 앗아가려고 들 테다. 이미 모든 것을 각오하고 시작한 복수는 이토록 잔인하고 아프다.

그러니 이왕 엉망으로 망쳐 버릴 거라면, 온전히 폐허로 만들어 버리기를 바란다. 그것만이 방법이라면. 나오키도, 슈야도, 유코에게 제제며 갱생을 강요한 이 세계도, 전부. 어차피 지금 당장 유코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지원군은 어디든 있어도 없으며, 사건의 지평선 외부에서는 유코에게 타격을 줄 수 없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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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은실

윤별 님 안녕하세요? 추운 겨울 잘 보내고 계신가요. 먼저 윤별 님의 글은 분명히 이 작품이 도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그러한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한편 글에 대한 글쓴이의 주장이 얼마나 잘 표현되고 있는가 하는 점은 별도로 살펴보아야 하겠다 싶기도 해요. 그래서 오늘은 비평 기술의 방법(?)과 관련하여 몇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작품의 인용은 인트로로 쓰이기도 하지만 비평 안에서의 인용의 큰 역할은 글쓴이가 이 작품을 읽어낸 것에 대한 적절한 ‘근거’입니다. 때문에 소설의 경우는 앞뒤 맥락이 함께 나타나야 하고, 그러한 탓에 글이 길어지기도 합니다. 또 글쓴이의 입장에서는 이 내용을 다 설명해줘야 하나 싶기도 하겠으나 소설의 일부를 설명해주거나 소설…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