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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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문학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단순한 취미, 꼭 이루고 싶은 꿈, 반드시 행해야하는 의무, 상금을 타기 위한 수단, 시간 날 때마다 대충 끼적이는, 멍하니 누워서 무의식적으로 손목을 휘적휘적 돌리며 그리는 낙서 같은 심심풀이 놀잇감?

나는 몇 년간 문학이라는 굴레에 얽매여, 가리개에 가려진 채 항상 앞을 흐릿하게 보고 산 것 같다는 생각을 수십 번이나 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좋아하는 것이 여러 개라면 여러 개를 한꺼번에 할 수는 없는 걸까. 욕심이 과한가. 진로 찾기는 이 세상 모든 청소년의 공통적인 여정이다. 나는 사랑하는 가족과 이래저래 지내면서 영화 문학 음악 미술 등 관심 있는 ‘꿈’이 무수히 생겼는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그저 자퇴만 고민하고 있다는 또래 청소년들을 마주하면 안타까울 뿐이다. 아니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해 같은 십대로써 연대의식이 흐려진다고 해야 하나. 고민은 스스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영화를 사랑해왔다. 그런데 진정 사랑했다면 혼자서 단편영화도 만들어보고 열심히 준비해서 영화감독을 꿈꿨을 텐데, 왜 굳이 앉아서 글 쓰는, 어떻게 보면 지루하고 따분할 일을 몇 년 동안 이어온 걸까. 나는 야외로 나가서 활동하는 일을 즐기는데 말이다.

글은 곧 그 사람이다. 어느 분야의 글이든 글은 그 글을 쓴 이가 어떤 사람인지 활자 속에서 내밀하게 보여준다.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몇 년간 나는 이 명백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며칠간 내가 쓰고 고친 다양한 장르의 글들을 눈여겨 훑어봤다. 투박하고 절제되어있지 않고 미숙하며 어설프다. 그리고 솔직하지 못하다. 소설은 그렇다쳐도 수필은 글쓴이의 감정과 내면을 가장 세밀하고 적나라하게 나타내는 장르다. 글쓴이가 마음속에 품어둔, 평소 가지고 있는 신념과 사고방식은 글을 쓰면서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은연중에 문장 깊숙한 가장자리에서 돋보이기 마련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영화도 영화지만 나는 특별히 애니메이션에 정감이 갔다. 그래서 한때 찰흙애니메이션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각도니 카메라 기술이니 편집 프로그램이니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화면에 잡힌 찰흙 인형이 너무 못생겨 보여, 아무리 찍고 찍어도 내가 상상한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포기했다. 모르면 배우면 되는데, 곁에 있는 가족의 도움을 받아 책 읽고 애니메이션 공부하고 그림도 열정적으로 그리면 되는데 나는 왜 중도에 인내심 없이 그만두었을까. 후회되면 지금이라도 당장 실행하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또 그만큼 애니메이션에 애착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나는 영화를 제작하는 일보다 감상하는 일을 더 즐기는지도 모른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솔직하지 못하다. 영화를 찍고 싶다는 열정은 언제나 가슴속에 이글거리고 있으니까. 다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문학과 영화는 매우 밀접해있다. 영화의 토대는 대본이고 대본은 글쓰기며 글쓰기는 문학이다. 영화는 문학에서 탄생한다. 그러므로 글을 열심히 배워두면 멋진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감독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꿈을 나는 항상 가지고 있다(글을 쓰는 가운데에도 횡설수설하며 혼란스러워하는 필자를 독자 여러분은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그런데 2년 전부터 서서히 나를 사로잡은 달콤하고 매혹적인,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가 있었으니 바로 록 음악이다. MBC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 우리 동네 음악대장이라는 가수를 접했다. 지구가 뒤엎일 정도의 충격이었다. 살면서 그런 장르의 노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클래식을 좋아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잔잔하고 웅장한 선율의 클래식을 듣고 팝송이나 가요도 많이 들어봤지만 이런 종류의 강렬한 록은 가히 내 삶을 뒤집었다고 할 만큼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록을 들어본 적은 있어도 상상 초월한 듯한 청아하고 맑고/거칠고 시원시원한 목청의, 한마디로 최고의 실력을 가진 보컬은 처음 봤다. 이렇게 잘 부르는 가수가 이 세상에 존재했나. 외국인들의 음악은 내 정서에 맞지 않았고 클래식도 너무 들었더니 지겹고 공장에서 찍어내는 아이돌 음악은 얼핏 들어도 구역질이 나오는데 음악대장의 노래는 달랐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전통 록부터 랩, 발라드, 아이돌 음악, 트로트까지 모든 장르를 소화해내는 그의 끝도 없는 저력이 나를 압도하고 전율시켰다. 2년 전 음악대장이 등장해 노래 부른 그 순간부터 나는 국카스텐과 자우림, 김경호 같은 한국 록 음악에 흠뻑 빠졌고 기타와 보컬을 열광적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문학은 점점 잊혔다.

언제부터 내게 문학이라는 분야가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에서 부진하고 지겨운 일로 변질되었을까. 곰곰 생각해보면 지난 2016년부터, 공모전에 소설이나 독후감을 응모해야한다는 부담감에서 출발한 것 같다. 그 소소한 부담감을 별것 아닌 일로 가볍게 여기면 되는데 어쩌면 나는 마감일을 핑계로 스스로를 불필요하게 압박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이제 문학이 지겹다거나 싫다는 것은 아니다. 예전만큼의 열정이 감소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열심히 노력해야하는 건지 환경 안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자신의 한계를 돌파해야하는 것인지 아직 나는 모른다. 갈 길은 한참 남았고 나는 언제든 다른 갈래로 뻗어갈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만화가를 노린 적도 있었고 동생과 함께 곤충에 빠진 적도 있었고 마술에 심취한 적도 있었고 더 어렸을 때는 로봇과 공룡에 호기심을 보였고… 정말, 그러고 보니, 18년이라는 시간을 타며 많은 것을 건드려봤다.

몇 년간 글에 정성을 쏟은 것은 앉아서 공책에 문서에 쓰기만 하면 되니까, 백지에 활자만 입력하면, 잘만 쓰면 공모전에 입상해 상금이 척척 들어와서, 그 재미로, 흥미를 점점 잃어 문학을 향한 관심이 퇴색했는데도 근근이 이어온 것이 아닐까. 이렇게 말하면 내가 더 이상 글쓰기를 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로 들릴 수 있는데 절대 그렇지는 않다. 나는 문학을 좋아한다. 하지만 문학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내게 소중한 것은 너무나도 많고 나는 그것들을 놓칠 수 없다. 나는 책이 좋고 글이 좋고 언젠가 책 한권 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으며, 영화가 좋고 연출이 좋고 언젠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한편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으며, 음악이 좋고 록이 좋고 언젠가 록밴드를 만들어 기타와 보컬로 활동하고 싶다는 원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이 꿈들은 누가 뭐래도 버릴 수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 ‘언젠가’들은 결코 멀지 않은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최근 들어 책을 다시 많이 읽기 시작했다. 그동안 적게 읽었냐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라 답하겠지만 일주일에 한 권은 내게 적은 편이다. 요즘은 일주일에 두세 권 정도로 불어난 것 같다. 글도 자주 쓴다. 글은 쓰지 않으면 퇴색한다. 무엇이든 꾸준히 하면 실력이 늘기 마련이다. 놀랍게도 열아홉 살을 앞둔 지금 다시 글쓰기에 조금씩 재미를 느낀다. 오랜만에 맛보는 감정이다. 이 감정이 설사 상금을 얻은 기쁨에서 기인한 것이라 해도 괜찮다. 내 진정한 행복은 ‘수상할 수 있을까’가 아닌 ‘이 책 진짜 재미있다’에서 온다. 한 시집의 독서 감상문을 열렬히 작성하고 있는데 쓰면서 읽고 또 읽어보니 이전에 보이지 않던 부분이 눈에 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재미를 발견한다.

그동안 나는 소설책만 파헤치고 있었다. 장르적 재미만 느끼려, 허구가 주는 쾌감만 얻으러 한국소설 외국소설 휘저으며 헤매고 있었다. 편향된 독서를 한 것이다. 내년의 목표는 지금까지와 정반대이다. 무조건 다독하는 것보다 양서를 깊이 있게 읽고 곱씹는 것이다. 소설도 좋지만 소설뿐 아니라 인문/사회/과학/언어/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섭렵할 계획이다. 머릿속에 교양과 지식을 두고두고 쌓아두면 사용할 날이 반드시 온다.

 

2018년이 저물고 2019년 새해가 온다. 몇 년 전부터 새해엔 항상 새롭게, 열심히 살겠다고 포부를 밝혔는데 그 반대로 해가 거듭될수록 내 정신과 마음은 퇴보했던 것 같다. 한 해간 내가 스스로에게 자랑스럽게 살았는지 자신할 수도 없다. 이제 그러기는 싫다. 내 삶과 시간을 더 유익하고 아름답게 보내고 싶다. 철없는 청소년, 예의와 무례를 구분 못하고 함부로 떠들던 어린아이는 지우려 노력하겠다. 앞으로 끝없는 방황과 고뇌의 시간이 어김없이 닥쳐오겠지만 꿋꿋이 견뎌내고 굳건히 일어서련다. 나와 우리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개척해나가고 싶다.

이기심과 오만으로 범벅되어있던 한 사람이 열아홉 살을 맞는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

 

 

-이천십구년 새해를 앞둔 어느 겨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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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꼴

수필 잘 읽었습니다. 요즘 글을 의무감으로 쓰고 있지 않나, 하는 고민이 들던 차이기에 여기 저기 많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문학에 대한 고민, 문학에 가려진 모로 님이 ‘사랑하는 것들’인 영화와 음악, 문학도 결국 그 ‘사랑하는 것들’에 포함된다는 이야기가 재밌게 읽혔습니다. 재미를 의도한 글은 아닌 것 같은데 문체가 시원시원해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개인적인 감상을 더 덧붙이자면, ‘글은 곧 사람이다~’ 문단과 ‘언제부터 내게 문학이란~’ 문단이 전체적인 흐름에서 조금 벗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은 곧 사람이다~’ 바로 앞 문장인 ‘왜 굳이 앉아서 글 쓰는~’ 문장과 ‘언제부터 내게 문학이란~’ 바로 앞 문장인 ‘그러면서 문학은 점점 잊혔다’ 문장 때문에 뒷 문단들이 난데없지는 않지만 큰 덩어리로 묶었을 때… Read more »

전성현

안녕하세요. 모로님. 2018년을 마무리하며 지난 일 년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셨군요. 지난 3월 '책에 미쳐서'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주어서 책을 강박적으로 읽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했었습니다. 이제 일주일에 세 권이면 분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당한 것 같습니다. 글도 전보다 편안해진 느낌입니다. 지난번 올려준 '교회와 나' 글처럼 이번에도 모로님이 관심을 갖는 분야들을 편안하게 담아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왕이면 주제를 가지고 일목요연하게 이야기를 풀어주시면 좋습니다. 어떻게 이야기를 전달해야 효율적일지 내용을 구성하고 글을 쓰는 게 좋습니다. (전 글에서도 그 이야기를 하려다 못했네요.) 전체 내용에 맞으려면 글의 서두가 ‘문학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보다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로 시작되는 게 더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