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통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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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통조림을 참 좋아했다. 바깥에 나가기만 하면 20l 짜리 쓰레기 봉투에 통조림을 한가득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매일 데일밴드가 덕지덕지 붙어있던 손가락은 언젠가부터 언니의 특징이 되었다. 한 번은 언니가 부엌에서 괴성을 질렀다. 소리를 들은 내가 방문을 열기도 전에 언니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엄지 손가락을 너무 깊게 베여서 인대가 끊어질 뻔 했대, 의사 선생님이."

병원을 다녀온 후에 참치캔을 뜯으며 언니가 말했다.  큰 소란을 낸 것 치고는 너무나 덤덤한 어투였다.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언니를 보며,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런 기억 때문일까. 나는 무덤에만 오면 항상 통조림들을 늘어놓고는 했다. 좋아하는 것을 더이상 먹지 못하게 된 언니가 안타까워서.

그 날도  언니는 언제나처럼  20l짜리 쓰레기 봉투에 통조림을 가득 담아, '띵'하고 열리는 네모난 깡통에 올라탔다. 하지만 그 날이 '언제나'는 아니었다. 4층 버튼을 누를 때까지만 해도 뒤에서 전화를 하고 있던 남자가 갑자기 언니를 쓰러뜨렸던 것이다. 언니는 떨리는 손으로 묵직한 봉투를 꽉 붙잡고 남자의 머리를 후려치려고 했지만, 남자의 날카로운 식칼은 언니의 통조림보다 더 빨랐다. 언니의 비닐봉투는 너덜너덜하게 찢겨져 엘리베이터라는 커다란 깡통 안에 작은 통조림들이 굴러다니게 됐다. 몇 십번이 넘도록 날카롭게 베인 몸은 깡통에 베인 엄지손가락 보다 더 많은 인대를 잃었다. 엘리베이터에는 새빨간 피가 흘렀다.

"나는 이왕이면 관이 좋아. 도자기는 뭔가 답답할 것 같지 않아?"

언니는 도자기 대신 관에 묻혔다. 내가 보기엔 도자기나 관이나 답답한 건 똑같을 것 같았지만, 언니가 원한다니 들어주는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언니의 무덤에 앉아 새 골뱅이 통조림을 땄다. 아, 검지 손가락에서 붉은 피가 흘렀다. 심하게 베인 것이 아니었음에도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인대가 끊어진 것처럼.

 

 

– Enaul, 언니는 통조림

2019.1.7 낮 9시 52분

(소재: 깡통, 무덤, 엘리베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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