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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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공간은 색종이처럼 평면이었다. 구석을 접고 접어 겨우 기댈 정도의 벽을 만들고 쉴 틈없이 숨 쉬어야하는 하루가 고통이었고. 하루는 아무도 없는 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소름끼쳐서 흰 물감을 쏟아부었다. 검은 색은 지워지지 않고 흰 물감을 삼켜버리고 있었다. 어지럽게 쌓여가는 빨래들이 징그러워서 창 밖으로 내던졌지만 얼마 후 호통소리와 함께 다시 나에게 찾아와버렸다. 그날 생긴 상처가 배 아래에 남아있다. 따끔거렸거든, 하고 누구에게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멀어지라는 말은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단어에 항상 세뇌되어있었다. 먼지는 자라나고 머리 속에 뿌리를 내려 벗어나지 않았다. 쥐어뜯고싶은 것은 벽지뿐만이 아니었는데 나는 이 방 자체를 없애버리고 싶었다. 방 안에있는 모든것을 끌어안고 갈 수는 없으니까 라이터를 쥐었다. 태울 거라고는 담배밖에 없었다. 담배가 아니었으니 망정이지 담배였다면 나는 여기 없었다. 엄마는 엄마 아래 누구를 부를건지 나에게 물었는데 이해할 수가 없어서 관뒀다. 아마 앞의 말은 못들은 것 같다. 어쩌면 이 방이 내 처음이자 마지막 공간, 내 삶의 촛불은 담배 대신 종이. 밤이면 밤마다 찾아오는 좋은 구경거리가 여기 또 없지, 그렇지 아저씨.

 

"내 삶은 연기처럼 날아가버릴 것만 같지만, 마냥 그러기는 싫어서 연기()하는 중이야, 쉿, 연기(演技) 중인거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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