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로 이루어진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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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희곡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써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쓴 것이라 미숙하지만 올려봅니다 🙂

 

하얀 벽지로 둘러진 깔끔한 방 안, 둥근 원목 테이블 하나가  가운데에 있고 벽 한 쪽에는 전문 서적들로 가득하다.

그  옆에는 금테가 둘러진 성인 남성만한 큰 전신거울이 있다.

푹신해 보이는 하얀 가죽 소파 2개가 책꽂이 앞에 있고  원목 테이블에 두 남자가 마주 보고 앉아 있다. 하얀 가운을 입은 날카로운 눈매의 남자 하나와 그 앞에 앉은 불안한 표정의 다부진 남자

남자:선생님,저의 입에서는 돈이 나옵니다

의사: 돈이요?

남자:거짓말,거짓말을 하면 돈이 쏟아져 나온다구요.

이 입이, 돈을 만드는 입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어요! (머리를 잡고 소리를 지른다)

의사: (남자의 손을 감싼다) 진정하세요, 무슨 일인지 이야기해 보세요.

남자: 어릴 때부터 저는 밥 먹듯이 거짓말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무렵, 딱지 하나로 시작해서 집 크기까지 불어난 거짓말을

저는 하루종일 입에 달고 다녔죠.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든 겁니다. '아 거짓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 돈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룻밤 자고 나니 그 뒤로부터 거짓을 말하는 입에서는 돈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의사:하지만 사람 입에서 돈이 나오다니요, 무엇을 착각하신 게 아닌지?

남자:(큰 소리로 화를 내며) 아니요! 이 입에서 나오는 돈! 돈 때문에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니까요! (목소리를 다시 가다듬고) 정 그러시다면야 제가 보여 드리죠.

 

의사를 뚫어져라 보는 남자,잠시 후 가벼운 거짓말 하나를 하고는 입 밑에 손을 둥글게 모아 돈을 받을 준비를 한다.

그런 그를 아무 말 없이 지켜보는 의사.  가볍게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남자:보셨죠? 사실이라니까요. 큰 거짓말을 할 수록 액수가 커집니다. 뭐 그래서 더 많은 돈을 얻으려고 이 지경이 되어버렸지만요.

의사:아아 그러시군요 유용하게 쓸 수 있는 특기 같은데 어쩌다가 저를 보게 되셨나요? (미묘한 웃음을 짓는다)

남자:처음에는 행복했죠. 거짓을 말하면 좋은 게 많거든요.

말 한 마디로 나를 바꿀 수 있다는 건 정말 편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어지간한 거짓말로는 더는 성에 차지 않더군요

사람들은 거짓인 나를 사랑하는데 점점 더 큰 거짓말을 했고 그만큼 더 많은 돈도 나왔습니다.

의사:어떤 거짓말을 하셨나요?

남자: 첫 번째로는 가볍게 처음 사람들을 만날 때 단순히 재미로 이름을 알려 주거나 학력을 꾸몄죠.

그러자 나오는 돈을 보았습니다. 좋더군요. 저는 점점 더 큰 거짓을 말했습니다.

불어나고 불어나고 또 불어나고 … (말끝을 흐린다)

의사:불어난 것은 터지기 마련이죠 언젠간. 풍선도 거짓말도. (남자의 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남자:맞습니다. 결국 친구 중 하나가 제 거짓말을 눈치챘고, 즐거운 놀이이자 특기였던 제 입은 거짓말쟁이의 증거가 되어버렸습니다. 다 들켰음에도 저는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죠. 그거 빼면 시체였고 습관이 되었으니까요. (마른세수를 하며 목소리를 떤다)

의사: 그 다음은요? (손을 깍지 끼고 남자를 본다)

남자:결국 다 떠나가 버렸죠. 사실 저는 이름도 나이도 학력도 속이고 살았거든요. 모두 욕을 퍼 붓고는 날 떠나갔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돈 때문이요.

의사: 그래서 저를 찾아오시게 된 겁니까?

남자:아니요,아닙니다. 그들은 어찌되어도 좋았어요.

딱 소중한 하나, 내 연인마저 날 떠났습니다. 거짓을 말하면 돈이 나온다는 걸 알게 된 연인은 쉴 새 없이 돈이  쏟아지는 제 입을 보고 경멸을 숨기지 못하더군요. 매일같이 진실을 말하라고 추궁했고 마지막에는 나를 사랑하는게 맞냐고 물었습니다.

의사:그래서 대답은 어떻게 하셨죠?

남자:(한숨을 쉬며)물론 저는 그녀를 사랑합니다. 암 사랑하고 말고요. 하지만 몇 년이 흐르니 익숙해지고 매일같이 사람을 들들 볶다 보니 원… 솔직히 그 순간은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입은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했죠.

그리고 그 순간 저의 입에서는 지폐 한 다발이 떨어졌습니다.

네 그녀는 떠나갔죠 이게 제가 선생님을 보러 오게 된 이유입니다.

의사: 잘 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남자: 물어 뭐합니까, 이 돈을 뱉는 입 때문이죠. 아! 이 입만 아니었다면 …

의사:환자분,방금 동전이 떨어진 바닥을 보십시오.

남자:(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네 여기 동전이 있지 않습니까?

의사:(남자의 손을 잡고) 더, 더 자세히 보십시오.

 

남자의 시야에서 동전이 흐릿해지더니 마침내 사라진다.

남자는 괴성을 지르며 넘어진다.

 

남자:동전이,동전이 사라졌어요! 분명 있었단 말입니다!

의사:진정하세요. 우리가 보이는 것에만 집중해 봅시다. 사실을 다시 보자구요 왜곡된 것이 아닌 그 자체로.

(전신 거울을 질질 끌고 온다) 거울 앞에 서 보세요.

 

남자:(거울을 보고 얼굴이 일그러진다) 이건 누구죠? 대체 저한테 뭘 하신 거죠? 이건, 이건 제가 아닙니다!

저는 어디 있나요? 이 입,눈,코 다 저의 것이 아닙니다 저는 어디에 있나요?

의사: 거울 속에 이미 있지 않습니까.

남자:저는 처음에 누구였지요? 거짓말을 하기의 저는 누구였나요? (의사의 바지를 잡고 흐느끼며)

의사:이제 저의 바지를 잡고 울고 있군요.

 

눈을 부비며 무릎을 꿇은 채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남자, 다시 눈을 들어 보니 자신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자의 손목에 있던 비싼 시계도,외제차 키도,돈 다발과 지갑도, 몇 십분 전에 뱉어낸 동전 역시도 .

날것의 그가 거울을 보고 있었다.

 

의사:당신의 거짓됨이 날아가고 있습니다, 눈에 낀 것이 녹아 나왔군요.

남자:(눈물을 흘리며) 저는 누구인가요? 진실된 저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대체.. 어떤…

의사:허상으로 인한 괴로움이란 것을 깨달았으니 이제 환자분이 아시겠지요. (남자를 일으켜 세우며)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돈 때문이 아니지요 당신이 뱉은 거짓의 추악한 냄새를 맡고 떠난 것입니다.

남자:그럼 내 돈, 돈들은 대체?

의사:마음의 값이죠. 진실을 죽이고 양심을 조각내 팔아 바꾼 허상.

남자:(비틀거리며 거울 앞에 선 남자 , 거울을 응시한다)

저는 누구인가요, 진실,진실은 무엇이죠?

이제 , 더는 …

 

거울을 보던 남자의 몸이 서서히 흘러내린다.

피부표면부터 내장기관까지 형체를 잃고 흐트러져 남자가 서 있던 자리에는 시꺼먼 검정색 덩어리만이 남았다.

 

의사:자신조차도 속아 형체를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니(혀를 차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의 끝은 사라질 뿐이야

거짓과 허영으로 치장한 것들이 무너졌어. 껍데기뿐인 삶은 무슨 의미일까?

 

의사 하나와 덩어리만 덩그러니 남은 진료실 안

의사는 검정색 덩어리를 줍는다. 시꺼멓다. 거친 거짓의 감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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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현

안녕하세요. 문곰님. 반갑습니다. 이번에는 희곡을 올려주셨네요. 매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이 생겨도 거짓말과 위선을 가진 사람과는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희곡을 통해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인물과 대사, 지문- 인물은 의상이나 분장으로도 특징을 보여줄 수 있지만 말투나 대사로도 특징이 드러나야 합니다. 극 초반 의사의 대사가 좀 더 전문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의학용어가 몇 마디 정도 나온다거나 남자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대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초반에 남자가 온 이유도 잘 알지 못하다가 남자가 사라진 뒤에 모든 걸 통찰하는 듯한 대사가 나오면 관객의 신뢰를 얻기 힘듭니다. 남자가 의사에게 가벼운 거짓말 하나를 하는 장면이 지문으로만 처리되었는데요. 그 부분에서는 거짓말과 관련된 대사도 직접 써주셔야…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