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베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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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내가 두 발로 선 순간 환하게 웃던 엄마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그 후 엄마는 바로 나에게 발레의 기본 발동작 두 가지를 가르쳐주었다. 포인. 발등을 쭉 펴서 발끝으로 서는 동작. 플렉스. 발끝을 몸쪽으로 젖히고 발근육에 힘을 주어 무릎 방향으로 당기는 동작. 돌이켜보면 내 모든 날들은 포인과 플렉스의 반복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가끔씩 발에 긴장을 풀고 싶고, 구부정하게 앉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상했다. 숨 쉬듯 익숙했던 것들이 나를 억압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 내 발을 꽁꽁 가두는 토슈즈와 나를 비추는 사면의 거울들이 지겹게 느껴지는 것이.

내가 하고 있는 이 생각이 마치 큰 법을 위배하고 있는 것처럼 심장에 무거운 돌 하나가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어느 봄날이었다. 붉은 노을이 산 너머로 져가고 있었다. 검은 그림자는 충실하고 우울하게 나를 따라왔다. 그때 마을버스 하나가 느리게 정거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나뭇가지들이 창문을 쓸고 동시에 벚꽃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버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타기 시작했다.

내 발치에 나타난 큰 날개의 그림자. 날개를 펴고 비행하는 새의 형상이었다. 견고하고 우아하게 날개를 펄럭이는 게 분명 어딘가에서 날고 있는 듯 했다. 마치 까마귀처럼. 저 날갯짓이 자유로워 보여. 어째서인지 눈물이 차올랐다. 평생 발레를 하면서 새처럼 나는 연기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실제처럼 연기를 하게 된대도, 진짜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새가 되고 싶었다. 새가 돼서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었다. 허물을 내려놓고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새의 비행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우연히 버스를 바라보았다.

창가 자리에 누군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평범한 손이 아니었다. 군데군데 기형적으로 긴 손가락들이 춤추듯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손가락들이 새의 비행을 연출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손이 아닌 것 같아……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가던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한창미. 남들보다 손가락이 1.5배는 더 길었을까. 열 살 때, 소풍을 가서 짝꿍이었던 창미의 긴 손가락과 닿아야 했을 때 나는 구겨진 종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창미의 엄지와 검지는 길이가 같았다. 친구들은 창미한테 온갖 별명을 붙여 놀렸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게 개구리였다. 창미가 학교 근처의 개구리가 살던 연못을 지나갈 때면 남자아이들은 개구리 흉내를 내며 깝죽거렸다. 나는 창미의 징그러운 손이 싫어 아무런 연루도 되고 싶지 않았다. 울음 대신 무표정으로 대하던 창미는 아이답지 않게 책을 끼고 다녔다.

눈이 마주쳤을까? 여전히 검고 투명한 눈이 창미가 확실하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단풍이 붉게 물든 지금까지 이 장면은 아직도 잊지 못하는 선명한 장면으로 남아있다. 자유롭게 날던 새와, 긴 손가락과, 눈이 마주쳐 투명하고 꼿꼿하게 얼어붙었던 나.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더운 땀에 젖어 줄기 같은 머리칼이 얼굴에 달라붙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클래식은 공기 중에서 물 타듯 흐르고 있다. 차가운 물을 들이켜고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발레, 하늘을 갈망하는 새처럼 최대한 다리를 곧게 위로 뻗어 추는 춤이다. 누가 더 깃털처럼, 가볍게 날개 달린 새처럼 아름답게 춤추는가? 발레리나…… 발레리나. 입이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완성되는 예쁜 이름이다.

태몽부터 백조였던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발레를 추기로 운명 지어졌다. 엄마는 발레를 잘 하려면 사람보다는 새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6살에 발레를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발레단에서 가장 잘 하는 건 나였다. 나를 경쟁자로 인식한 몇몇 친구들은 나를 싫어했다. 항상 앞에 서서 백조처럼, 항상 독무를 가졌던 나를 질투했다. 어떤 아이는 내가 맨 옆이나 뒤에 서는 기분을 모를 것이라며 나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엄마도. 어디에 껴있어도 발레만큼은 가장 잘 했다고 말했다. 외국 무용단에서 잠깐 활동했을 때도 돋보이는 건 엄마였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가 누릴 수 있었던 발레리나로서의 수명은 금방 끝나버렸다. 다리 부상과 겹쳐온 슬럼프 때문이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더 이상 백조를 연기할 수 없어 백스테이지로 뒤돌아서야 했던 것이었다.

학교에서 실기 1등을 해도, 대단하다는 대회에서 대상을 타와도, 한 번도 엄마는 나를 칭찬해주지 않았던 것 같다. 당연하다는 듯. 아직 부족하다는 듯. 무대 위 똑같은 연기와 춤을 춰도 누구는 백조고 누구는 백조 흉내를 낸 오리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하얗다고 다 같지는 않다. 그냥 봐도 확실한 실력 차이가 느껴지기 때문에 오리에서 머무르고 싶지 않는다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서라도 백조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엄마는 백조 중 가장 돋보이는 백조가 되는 길을 닦아주었다. 살면서 그 길만을 걸어왔고 한 번도 눈 돌린 적이 없었다.

백조라는 이름으로 양계장의 닭처럼 길러진 내가 무슨 결정이라는 걸 할 수 있겠는가?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나는 하얀 칠을 한 닭이라는 것을. 비좁은 우리에서 제 시간에 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존재 이유인 알을 기계적으로 생산해내고…….

나는 집에 와서까지 방을 개조해 사면이 거울인 연습실에서 몸 닳도록 연습하는데, 이게 몇 년 째인데, 한 번도 불평 한 마디 한 적 없었다. 음악이 흐르고 있다.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다. 엄마가 끄기 전에는 음악도 춤도 끊을 수 없다.

아라베스크. 기교는 없지만 완벽한 균형을 요구하는, 기초이자 고난이도 동작이다. 그때 거울에 비친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아라베스크를 성공해낼지 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몸은 기우뚱했고 토슈즈 안에 갇혀있던 발가락이 접혔는지 그만 중심을 잃고 말았다. 흔들의자에 앉아 연습을 지켜보던 엄마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엄마는 왼쪽 눈썹은 아래로 구부리고 오른쪽 입꼬리는 추켜올렸다. 엄마가 무언가 아주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짓는 엄마 특유의 표정이다. 반사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벌거벗은 기분이 들었다. 필사적으로 피하려고 노력했던 순간이 닥쳐온 것이었다. 엄마는 반쯤 벗겨진 내 토슈즈를 움켜잡았다.

“백연화, 너는 균형을 못 잡아. 항상 그 상태에 머물러있으면 너는 낙오자야.”

한심하긴, 하고 엄마는 유유히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사방의 거대한 거울들이 덩그러니 남아있는 나만을 보여줬다. 우수에 찬 얼굴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한 시간을 연습하고 터덜터덜 침실에 들어갔다. 창가에 강보처럼 하얀 달이 달무리에 기댄 채 둥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달을 향해 크고 검은 까마귀가 힘차게 날아가고 있었다. 창미가 만들었던 그림자 새가 생명을 가졌다면 비슷한 모습일까.

 

검은 새가 나오는 꿈을 꿨다. 새는 산 건너편에서부터 날아와 내 머리 위를 끊임없이 맴돌았다. 나는 새가 날갯짓할 때마다 일으키는 바람소리와 바람결을 따라 춤을 췄다. 발레가 아니라 질서 없이 몸을 흔드는 막춤이었다. 그리고 이부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덮쳐오는 미묘함에 화들짝 놀라버렸다.

오늘 나는 국어 선생님의 권유로 근처 도서관에서 문학치료라는 것을 받게 된다. 내가 문학에 깊은 관심이 있는 것 같고, 분명 문학치료가 잘 맞을 것 같다고 하셨다. 또래 아이들도 많이 신청하고 있다고. 엄마한테 걸릴까봐 신청을 미뤄두고 있었는데, 계속 생각나고 끌렸다. 뭔가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밤새 돌이켜보니 나는 수 년 동안 바쁘게 달려왔다. 작년 6월과 7월, 친구와 함께 학교에 딸린 상담센터에서 진행한 문학치료에서 새롭게 만난 문학이 나를 침체 상태에서 꺼내주었다. 후끈거리던 그 여름에 엄마 몰래 새벽 넘도록 책을 읽던 밤들을 기억하고 있다. 점심시간이 되면 과자를 먹으며 선생님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예비종이 울리면 15분 동안 마음의 소리들을 글로 쏟아냈다. 깊은 생각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구절들이 얼마나 나를 버티게 해주었는지. 언제부턴가 나는 깊은 곳에서 발레에 지쳤다는 소심한 소리를 들었고, 그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그보다 나는 오늘 오전에 도서관에서 하는 그룹 문학치료에 엄마 몰래 신청했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가 진정되지 않고 있다. 아직 아침인데 벌써부터 두근거린다. 저질러버리다니, 들키면 어쩌려고? 하지만 오랜만의 문학치료인데다가, 소수만 뽑는 거라 안 갈 수 없다. 여름방학에 전근 간 선생님께 말하지 못한 고민이 있다.

‘저는 발레에 지쳤고 방향을 못 잡고 있어요. 이건 잘못된 거죠?’

 

네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른으로 보였다. 초면인지 어색하게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구석진 뒷자리에 앉았다. 초조하게 있는데 창문 밖 나무에 까마귀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까마귀는 몸집만큼 큰 날개를 활짝 펼치더니 창문을 따라 직선으로 비행했다. 까마귀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아가다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기다란 손가락이었다. 손가락의 주인은 역시 창미였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나를 보면 어떡하지? 뭐라고 말하지? 보지 말아줘. 근데 이대로 어물쩡하다가 한 마디도 못하고 헤어지면 어떡해? 그러면 후회할 거야. 하지만 창미는, 날 못 알아보고 있었다. 하긴 몇 년 전인데……청바지를 입은 중년의 선생님이 들어와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원탁에 앉아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다. 그리고 손에 집힌 시를 골라 읽었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레바논의 시인 칼릴 지브란은 이런 시를 남겼다. 종이에 눈물방울이 떨어져 쭈글쭈글해졌다. 그동안 엄마가 한 흉기 같은 말들, 익숙하게 넘기려고 했지만 잘 빠지지 않는 날카로운 날이 가슴에 꽂혀있다. 그때 창미와 눈이 마주쳤다.

 

“혹시 안화초 다녔던 백연화?”

나는 맞다고 했다. 창미는 얼굴 가득 반가운 미소를 띄었고, 나 역시 미소로 화답했다. 지겹도록 벚꽃이 만발하던 그 봄날에, 그림자 새를 만들어 보여줬던 창미다. 비록 어렸을 때는 친구들과 손가락이 징그럽다고 놀렸지만 말이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나는 그림자 새를 타고 일출을 가르는 상상을 했다. 창미가 내 옆에 앉아있다니.

우리는 읽은 시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글을 쓰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열여섯 살 백연화이다로 시작한 글을 멈추지 않고 써내려갔다. 발레, 백조, 닭, 아무리 노력해도 날 인정해주지 않는 엄마와 폭언, 어쩌면 평생 꼭두각시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근원 모를 억울함…….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다른 내가 눈을 떴다.

호기심에 곁눈질로 창미의 글을 봤다. 창미는 아직도 오랫동안 자기를 괴롭혀왔던 개구리라는 별명을 기억하고 있었다. 항상 내려다보는 눈으로 아이들의 말에 상대하지 않길래 당당한 줄 알았는데. 창미도 참고 있었던 것이다. 몰래 울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손을 향한 무수히 많은 평범한 손들의 손가락질을.

우리는 발을 맞춰 걸으며 문학치료에 대한 대화를 했다. 창미는 예전에 접했던 문학치료를 계기로 문학에 관심이 생겼었다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을 한 편 쯤은 써보고 싶다고 했다. 그 순간, 창미의 긴 머리를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버스 정류장까진 금방이었다. 함께 한 시간들이 짧아 아쉬워 우리는 번호를 교환했다. 이 버스 정류장에서 나는 창미와 그림자 새를 봤었다.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와 같이, 창미는 창가에 앉았다. 그리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집에 오고 나서도, 시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가 잊혀지지 않았다. 엄마의 안전한 그늘에 있는 게 맞을까? 기약 없는 시간을 기다리고만 있어야 할까? 언제쯤 당당하게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그때 거실 구석 서랍장에 먼지가 앉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더러운 걸 싫어하는 엄마의 앙칼진 소리가 듣기 싫어 나는 물티슈를 가지고 서랍장으로 갔다. 서랍 안에는 앨범들이 빼곡이 줄 서 있었다. 나는 앨범들을 꺼내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았다. 어렸을 때의 나는 몰라볼 정도로 통통했다. 내가 어딜 가서 뭘 할 때마다 엄마는 사진을 찍어 앨범에 모아뒀었는데, 언제부턴가 그것도 하지 않았다. 재미있게 앨범을 다 보고 넣으려는데 밑바닥에 깔린 낡은 앨범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오래돼 끝부분이 낡아 쪼그라든 앨범이었다. 그것의 사진들은 어딘가 이상했다. 내가 아닌 엄마의 사진들이었다.

이십 여 년 전의 엄마는 발레단에서 제일 예뻤다. 하지만 표정은 소름끼치도록 어두웠다. 중심이 아닌 맨 뒤의 맨 끝에 있었다. 프랑스의 어느 발레단에서 활동한 적 있다고 했지만 그런 사진은 없었다. 딱 봐도 엄마의 아라베스크는 어색하고 힘들어 보였다. 외국은커녕 우리나라 발레단에서도 받아주고 싶지 않아할 것 같은 수준 이하의 자세였다. 사진 속 아마추어 같은 엄마의 발레 동작들을 몰라볼 내가 아니었다. 하지만 사진 속의 여자는 분명 엄마였다. 내 롤모델이자 한 번도 따라잡을 수 없었던 발레리나.

그간 나와 엄마를 비교하며 스스로 채찍질해왔는데.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엄마가 발레 하는 모습이나 영상을 본 적이 없다. 항상 잘 했다고만 말했다. 허무했다. 정말 사실이라면 그동안의 시간이 허무했다. 안쓰러운 마음에 앞서 존재하지 않던 사람에게 열등의식을 느끼던 내가 불쌍했다. 나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바를 잡고 있는 쓸쓸한 사진 한 장을 들고 안방으로 뛰어갔다. 더 이상 엄마는 변명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나는 엄마한테 사진을 냅다 내밀었다.

“왜 날 속였어요?”

엄마는 갑자기 번개를 맞은 사람처럼 눈을 떴다. 그러고는 왼쪽 눈썹을 아래로 구부리고 오른쪽 입술을 위로 추켜올렸다. 엄마는 시끄럽다며 그저 연습하러 가라는 말만 반복했다. 내가 움직이지 않자 결국엔 의자에 있던 가방을 냅다 던졌다. 가방은 내 뺨에 정확히 던져졌다. 그때 갑자기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눈물이 주룩주룩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콧물이 눈물과 섞이고 목이 텁텁하게 말라갔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말로 하고 싶었는데, 웅얼거리는 발음 때문에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도 하려는 말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렸다.

“꼭 너처럼 잘하는 애들은 몰라. 못 하는 아이들의 설움도, 존재감도. 너나 관객들은 몰라. 난 네가 영원히 모르길 바랐어. 그 뿐이야.”

처음으로 엄마가 나를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진실 되지 못할까, 궁금했다. 엄마의 부르짖음을 뒤로 하고 집을 뛰쳐나와 나는 창미의 집 주소를 찾아갔다. 의지할 곳이 없었다.

 

창미는 토끼 눈을 떴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눈물로 범벅된 내 얼굴은 아직도 허무함으로 가득 찼다. 알록달록한 창미의 집엔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려서 낯선 손님을 조용히 주시하고 있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진들, 왕년에 잘 나갔다는 엄마의 목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나는 소음에 시달렸다.

어렸을 때 큰 대회에서 상을 타고 발레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온 날, 평소처럼 자려고 누웠다. 엄마는 흥얼거리며 거실에서 자줏빛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곧 내 방에 들어왔고, 나는 자는 척을 했다. 취침 시간을 어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 이마에 다정하게 뽀뽀를 하고 속삭였다.

‘우리 연화, 너라도 잘 해서 기뻐. 엄마로서 너를 더 잘 키울게.’

엄마는 취했을 때 잠들어있는 내게 가끔씩 내가 축복이라고 말했다. 내가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정말 뛰어난 발레리나가 될 거라며 웃었다. 하지만 엄마가 맨 정신일 때, 내가 깨어있을 때 그런 칭찬은 한 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엄마가 와인을 꺼내는가 싶으면 저녁에도 방으로 뛰어가 이불을 덮고 엄마가 취하기만을 기다렸다. 기분 좋아서 하는 말임을 알면서도 다정한 목소리와 손길이 좋았으니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엄마는 오래 전부터 내 실력을 인정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혼자 엄마한테 지나치게 열등의식을 느낀 건 나였을지도 모른다. 중심의 꽃을 꾸며주기 위해 장식된 안개꽃처럼 군무만 춘다는 것은 무용가로서 얼마나 큰 서러움일까. 나는 그런 슬픔을 잘 몰라 예상이 되지 않는다. 그저 정말 서러울 거라고……내 발레단의 탈의실에서 매일 우는 아이가 그렇게 슬플 거라고……그 정도로 엄마가 말했던 ‘못하는 아이들’의 설움을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 엄마는 뭘 하고 있을까. 가만히 앉아 책을 읽던 창미에게 다시 만나자고 하고 나왔다. 닫히는 문 틈 사이로 창미의 따뜻한 미소가 나를 더 빨리 달리게 만들었다. 너무 빨리 달리는 바람에 삐끗하더니 철퍽 주저앉아버렸다. 주저앉은 채로 수풀 사이 버스정류장 의자가 보였고, 익숙한 슬리퍼가 보였다. 엄마였다.

 

의자에 앉아있는 엄마 앞에 섰다. 엄마는 늘 그렇듯 감정을 감춘 표정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껴안으며 사과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엄마는 아주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조금 피폐해 보이는 엄마를 일으켜 집 방향으로 같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떨어진 단풍잎 하나를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조용히 걸었다. 오랜만에 보는 높은 하늘이 나를 눈물 흘리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적막이 흐르는 집이었다. 엄마는 연습을 하라고도 하지 않았고 간단한 밥을 차려준 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방에서 책을 읽으려 했지만 도무지 글자가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결국 방에서 나와 넓은 집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엄마 방 앞에 다다랐을 때, 조금 열린 문틈 사이로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엄마가 보였다. 한쪽 눈으로 본 주황색 스탠드 빛을 받은 엄마의 얼굴은 고뇌에 차보였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몸을 웅크렸다. 나도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다가 돌아서 방으로 갔다. 오늘은 그냥 일찍 자려고.

 

아침 열한 시가 지나도 엄마는 잠에서 깨지 않았다. 나는 도서관에 다녀오겠다는 짤막한 쪽지만 남기고 집을 나왔다. 집에서 할 게 없었고, 무력하게 자고 있는 엄마를 계속 보고 싶지 않았다.

시험기간이 끝난 도서관은 한적했다. 읽을 소설을 고르려는데 건너편 책장에 유독 긴 손가락이 책을 꺼내는 것이 보였다. 창미인가?

 

우리는 자판기 음료수를 하나씩 뽑아 벤치에 앉았다. 창미는 주말이면 도서관에서 여유를 즐긴다고 했다. 직원들과도 인사하는 사이라고. 그리고 창미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어제 도서관에서 그랬듯, 가을바람이 또 불어왔다. 꽤 오랫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앉아있었다. 손이 시려와 무의식적으로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바스락거리는 무언가가 잡혔다. 어제 주운 단풍잎이었다. 단풍잎의 잎맥이 마치 두꺼운 화장 뒤에 가려진 엄마의 옅은 주름 같았다. 어제 엄마는 단풍잎을 주울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더럽다고 했을 텐데. 단풍색 같은 스탠드 빛을 받으며 생각하고 있을 엄마의 옆얼굴이 떠올랐다. 얇은 토슈즈를 그대로 신은 채 수많은 단풍잎을 밟으며 길을 걷는 어린 엄마를 떠올리자 마음 한켠이 시큰해져왔다.

그리고 나는 창미에게 전부 털어놓았다. 엄마가 내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없는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과 그게 나를 얼마나 힘들게 했었는지. 창미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별로 싫은 기색은 없었다. 다 말하고 보니 남의 암울한 가정사를 말해서 괜히 분위기마저 가라앉아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후회됐다. 하지만 슬픔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삭여야 하는 이 상황이 외로워 말하고 싶었다. 그런 후 창미는 톡톡 내 등을 다독여주었다.

 

도서관에서 창미와 좋아하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창미와 헤어졌을 때에는 초저녁이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야광별을 세는데 똑똑 하고 누군가 노크를 했다. 엄마였다. 엄마는 말없이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고 나는 한 번 숨을 고르고 뒤를 따라갔다. 엄마의 방에서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엄마는 앨범들을 하나씩 꺼내서 보여주기 시작했다. 몇 살 때, 뭘 해서 뭘 찍었는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잊어버렸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사진 속 나는 대부분 발레복을 입고 있었고 여러 대회에서 수상해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있기도 했다. 내가 열두 살이 된 시점부터 엄마는 사진 모으기를 멈췄다. 왜냐면 내가 자신이 닦아준 길을 걸으며 발레를 계속 하리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엄마는 사진 한 장 한 장을 설명해주다가 끝에 앨범을 덮었다. 그리고 이불 아래에 얼굴을 빼꼼 내민 종이가 보였다. 문학치료 시간에 쓰고 방에 아무렇게 던져두었던 글이었다. 엄마는 나의 속내를 읽었다.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리고 지금, 엄마가 입을 열었다. 눈을 마주친 채로 조용히 앉아서.

“내가 누리지 못한 것을 너는 누리길 바랐어. 그래서 모든 것을 쏟아 부었어. 이제야 알아. 재능과 명성을 누린다고 네가 행복한 건 아니었어.”

순간 나는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꾹 참았다. 내가 울면 엄마도 울 것 같아서. 희미하지만 분명한 엄마의 미소를 계속 보고 싶어서.

 

창미는 큰 대회에서 소설을 쓰고 상을 탔다. 나도 발레 단원들과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 모녀는 얼마나 여유 없이 살아왔는지. 종종 같은 책을 읽고 엄마와 느낀 점을 나눴다. 침대 아래에 숨어있던 책들은 당당하게 책장에 꽂히게 되었다.

이제야 엄마에게 엄마의 발레는 어떤 것인지 들을 수 있었다. 발레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엄마는 주인공 백조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자신에게는 조금의 재능도 허락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창미가 그랬듯 엄마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그동안 엄마를 향해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려고 해도 강한 힘이 나를 밀어내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우리는 누구보다 가까운 모녀 사이가 되었다.

나는 이제 좁은 양계장을 벗어나 날개를 펼치고 광활한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행복할 수 있는 곳으로 날아가고 있다. 땅이 가르쳐준 하늘의 결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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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유린

발레, 조사하고 고증 맞추시는데 고생 좀 하셨겠어요. 그런 수고에 비해 '왜 발레인가?'는 작품 내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구요. 왜 많고 많은 예술 중에 무용인가, 왜 무용 중에서도 발레인가, 설명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충분하지는 않은 느낌이에요. 발레와 소설, 둘의 접합이 유기적이지 않은 느낌? 어떤 이유로 발레를 소재로 삼으셨는지는 알겠어요. 다만 이왕 발레를 소재로 고르셨으니 발레 고유의 동작이나 발레 마임들을 작품 내에서 풍부하게 활용해보는 편이 더 완성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쪽으로 분량을 더 할애해서요. 지금 몇 개 있는 걸로는 부족해 보입니다. '춤으로써의 발레'가 아닌 '종합 예술으로써의 발레'는 기승전결과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는 흔치 않은 무용이니까 이것 또한 소설을 쓸 때… Read more »

선형

안녕하세요, 최이수안 님. 반갑습니다. 발레로 인해 갈등을 겪는 어머니와의 공감과 화해를 다루고 있는 소설입니다.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이나 발레에 지친 나의 내면 서술, 그리고 '재능'을 매개로 한 화해의 서사가 다소 도식적이고 평이합니다. 내가 어머니에 대해 알게 되는 사진이나, 어머니가 나를 이해하는 계기인 글도 쉬운 장치를 택한 느낌이에요. 화해의 결말 또한 갈등이 간단하고 갑작스레 완화되는 인상을 줍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의 장점은 "새"의 이미지를 시적으로 환치하는 손가락에 관한 이미지나 창미에 대한 감정, 친구에게 내면을 고백할 때의 진솔함 같은 부분이에요. 인물의 내면성이 서정적이고 차분하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우정이나 인물이 가진 상처에 대한 세부를 포착하고 그것을 문장으로 옮기는 솜씨가 일상적이기도 하면서 구체적이기도 해요. 그래서 자연스레 독자를…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