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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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은 부유한 자들의 특권, 또다른 이명은 신이 내려주신 선물. 회색 벽 너머의 세상을 아이는 늘 동경했다. 회색의 하늘, 회색의 흙바닥, 회색의 친구들. 아이는 한 줌의 색이라도 가져보길 원했지만, 아주 조금의 색도 아이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아이가 가난한 탓이었다. 색은 신이 내려주셨다며, 그 신은 부유한 자들의 신인걸까. 아이에게 신은 없었다. 신은 존재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색을 샀다며 아이의 친구가 아이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 아직은 눈동자만 색이 있지만 곧 회색 벽 너머의 세상에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그렇게 기뻐하는 친구의 눈을 아이는 결코 마주볼 수 없었다. 하늘색, 그 이름에 걸맞는 청명한 하늘의 색. 눈동자 색을 설명하는 친구에게 아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하늘색은 회색이야?

 

아이는 색을 동경했지만 색을 볼 수 없었다. 원래 신은 부유한 자들의 것이라지만, 아이는 색을 보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 이후 신을 믿지 않게 되었다. 신이 있다면 그건 부유한 자들의 환상 아닐까, 하고. 하늘색이라는 회색 눈을 빛내는 친구를 보며 아이는 중얼거렸다.

 

여름의 끝자락, 나뭇잎들이 하나 둘 옷을 갈아입기 시작할 때. 똑똑,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아이는 깨어나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여전히 회색인, 남들에게는 색깔일 친구가 서있었다. 친구의 손가락은 회색 벽 너머를 가리켰고. 너도 함께 갈래? 라며 다른 손은 아이를 향해있었다. 아이는 웃으며 말했다. 안녕, 하는 영원한 작별인사.

 

어째서 색을 동경했던가, 결코 느껴질리 없는 색깔을 마주한 채 아이는 중얼거렸다. 회색 벽은 언제나 그렇듯 두꺼웠다. 회색 벽 너머를 동경하는 어린이들, 어린 자신이 저 벽 너머는 뭐가 있냐며 아이에게 말을 걸어왔지만. 아이는 대답하지 못한 채 그저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사람들이 동경하는 모든 것, 그렇지만 나는 결코 볼 수 없는.

 

후에 친구가 보낸 편지로 알게된 사실이지만, 모든 사람을 색을 가지고 있단다.

 

조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는 회색의 짐들을 가방에 쑤셔넣고 무작정 집을 나왔다. 회색의 흙, 회색의 풀, 회색의 나무. 결국은 흑과 백의 공존일 세상에. 어째서 부유하다는 이유만으로 색을 추가할 수 있는 걸까. 알 수 없는 의문들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실타래처럼 남아있었다. 그것들을 정리할 아주 잠깐의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회색 길을 한참 걷다가. 아이는 어느 산을 맞닥뜨렸다. 등산로는 반대쪽인지 회색 표지판이 다른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조금 고민하다가 아이는 산을 올랐다. 그저 발이 닿는 곳이 길이었다. 나뭇가지들을 꺾으면서 올라간 것이 약 1시간. 어두워지는 하늘에 돌아가려고 발을 돌린 아이의 눈에 동굴 하나가 들어왔다. 당연히 지나쳤을 그 동굴은 어딘가 모르게 빛나보였고. 희미한 것이 작게 반짝이고 있었다. 홀린 듯 아이는 동굴로 발을 옮겼고. 동굴에 들어가자마자 그 빛의 정체를 알아챘다.

 

오래전 보았던 친구의 눈동자처럼. 동굴 안은 온통 색깔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그것이 무슨 색인지 몰랐다. 그저 어렴풋이 색이구나, 하고 느낄 뿐이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낸 아이는 배낭의 짐들을 모두 버리고. 색깔들을 채워 마을로 돌아갔다. 가득 찬 배낭에서 한 방울씩 흐르는 색깔들이 바닥에 닿자. 하나씩, 하나씩. 세상은 색깔을 되찾아갔다.

 

어째서 색깔이 이곳에 있었는지, 그런 의문은 마을이 가까워질 수록 해답이 명확해져갔다. 색깔은 ‘특권’이라 하지 않았는가, 부유한 자들의. 아무리 감춰봤자 색들은 결국 제 주인을 찾아가는 법이다. 아이는 마을에 다다르자마자 가방을 벗고, 지퍼를 열어 뒤집었다. 쏟아진 색깔들은 하늘, 흙, 풀, 또는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자리를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바닥에 주저앉아 나뭇가지로 뭔갈 끄적이던 소녀가 벌떡 일어서 아이에게 물었다. 혹시 자신이 지금 보는 게 색이냐며. 여전히 회색인 세상을 보며 아이는 끄덕였다. 이것이 바로 색이라고, 누군가의 특권이 아닌. 모두의 것인 색이라며.

 

회색 벽 너머의 사람들은 모두 문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왔다. 벽은 어느새 균열이 생겨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색이 더이상 특권이 아니란 걸 알고 울부짖었지만. 대부분은 당황스런 표정으로 색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저 멀리, 아이는 익숙한 색, 회색의 반짝임을 보았다.

 

여전히 색이 없구나, 하고 친구는 아이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이는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쉿, 조용히 하고 눈을 감아 봐.”

 

친구는 아이의 눈 위에 손을 올렸다. 됐어, 이제 눈을 뜨면.

 

아이는 처음 본 색에 마음을 빼앗겼다. 청명한 하늘, 푸른 들판, 그리고 다채로운 사람들. 친구는 회색 눈을 반짝이며 웃었다. 사실 내 눈동자는 원래부터 회‘색’이었을거야. 누군가의 색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이제야 색은 모두에게 돌아갔으니. 아이는 청명한 하늘색 눈동자로 세상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회색 벽은 무너져있었다.

 

“아아, 겨울이구나.”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가을이 지나갔음이 그제야 느껴졌다. 색을 보면서, 아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나무에 기대었다. 태어나서 이토록 기쁜 적이 있었을까.

 

그 날 색깔은 모두 제 주인에게, 그리고 제자리를 찾아갔고. 아이는 색을 보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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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진수

저는 중학교때 뭘 했던 걸까요 ㅠㅜ. 대단합니다.
잘 봤습니다.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선형

안녕하세요, 멜론소다 님. 재밌지만 여러가지 생각들을 품고 있는 우화에요. 소설보다는 동화에 어울리는 순수한 인물의 환상적 체험이 빛나는 작품입니다. 색은 부유한 자들의 독점할 수 있는 특권이 아닌 모두의 것이라는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도, 나의 눈동자 빛깔이 회'색'이라는 것을 깨닫는 부분도 완성도가 높고 적절한 생각의 반전과 귀결입니다. 퇴고하실 때는 앞 부분의 관념적(신에 관한 이야기)인 서술을 줄이고 아이의 시점에 비친 잿빛 세상-색의 세상의 모습과 그 변화를 보다 다채롭게 표현해 보세요. 언제나 기다릴게요.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