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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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자화상 밑그림을 작은 글씨로 그려보자. 앞머리를 가다듬으니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보인다. 아픈 상처를 가리려 검게 염색을 했지만 이내 색이 바래버렸다. 조금 이르게 애늙은이가 되었다 생각하자. 넘긴 앞머리로 진한 눈썹이 그려져 있다. 삼신할매가 나를 점지해줄 때 붓질을 조금 힘 있게 하였나 보다. 강하게 그어진 선이 굵게 스며든다. 눈동자에는 가을이 물들어있다. 그래서 시선 끝에 쓸쓸함이 묻어나온다. 눈 옆에는 서로 만나지 못하는 두 개의 별이 떠 있다. 빛나지도 못하고, 서로 만나지도 못하는 두 검은 별이다. 별들 아래엔 울리지 않는 종 하나가 달려 있다. 흥얼거리지 못하는, 그런 종 하나가 매달려 있다. 종 밑에는 매일 같이 다듬어주어도 질기도록 올라오는 잔디가 자라 있고, 말하는 법을 잃어버린 진홍빛 입술이 있다. 그런데 내 자화상을 그려 가는데 자꾸 다른 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내가 펜을 잘못 놀린 걸까. 왼손으로 내 얼굴을 천천히 더듬어가니.

 아, 내 얼굴에 아버지가 물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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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현

성 현님. 작자 스스로의 얼굴을 그리다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했다는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우선을 ‘글씨로 밑그림을 그린다.’는 이야기가 잘 이해가 안 되네요. 글로 묘사를 한다는 의미인가요?

바랜 머리카락은 이르게 애늙은이가 된 것으로 생각하고 진한 눈썹은 삼신 할매의 붓질로 묘사되었는요, 눈동자와 코, 수염 등은 비교적 단순한 묘사를 사용하였네요. 이야기 전체가 아버지의 이야기로 마무리되려면 얼굴 각 부위의 묘사가 아버지의 삶을 비유할 수 있는 내용이면 더 좋을 듯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