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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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함구증이 있었다.

 

 

가장 익숙해야 할 곳이 낯설었던 적이 있다. 매일 밤, 습관처럼 눈물을 삼키고 내일을 생각했다. 침대 위에서는 시간을 잡을 수 없었다. 내가 웅크릴수록 멀어지는 새벽이었다.

 

 

피곤한 등교는 없었다. 항상 긴장하면서, 경직된 시간을 걸었다. 어디서든 사람 많은 곳은 피하는 내가 산만한 교실에 앉아있는 게 어지러웠다. 학교는 작은 사회다. 사람과의 교류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외침이 표출되지 않았다. 토를 할 것 같았다. 사람들이 말을 걸면 그저 몸짓으로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행동을 기이하게 여겼다. 그리고 멀어졌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고립되었고, 침묵은 고질적으로 변했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못하는 문제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사람을 멀리했다. 주말에는 침대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으며 창문을 열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는 속앓이를 했다.

 

 

2학년이 되자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과묵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었으니 발표를 시키는 선생님은 없었다. 하루의 절반 이상의 말이 오가는 쉬는 시간이 문제였다. 모두가 대화로 관계의 끈을 이어갈 때, 엎드려 있는 게 편했지만 내가 만든 암흑이 비참해졌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소설이었다.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상상할 수 있는 세계가 곧 나의 세계였다. 어정쩡하게 말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과묵해지는 게 편했다. 책으로 벽을 쌓자 버틸 힘이 생겼다. 웬만하면 울지 않았다.

 

 

시간은 여전히 더디게 흘렀지만 3학년이 되었다. 과묵한 책벌레가 되었다. 침묵을 지키면서 울지 않는 법을 배웠고, 어색했던 내가 나를 적응했다. 다행히도 나를 이해해주는 교실이 있었다. 아주 가끔 말을 했지만 답답해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습관적인 긴장을 하지 않았다. 나는 벽을 허물었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창문을 열었다. 그렇게 살아도 괜찮을 느낌이었다. 그러자 하루하루가 빨라졌다. 교실에서의 시간과 침대의 시간이 비슷해졌다. 하지만 금세 졸업이었다. 입학식의 감정과 졸업식의 감정은 동일했다. 똑같이 슬펐지만 각각의 이유가 있었다.

 

 

나는 여전히 과묵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제 두렵거나 슬프지 않다. 도망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던 책으로 다시 도망갈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나를 바라볼 수 있고, 더 이상 질책하지 않는다. 현실은 그런대로 살만한 곳이고, 나는 아프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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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현

안녕하세요. 길섶님. 첫 만남 반갑습니다. 함구증으로 인해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글로 담아주셨네요. 솔직하면서도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간결하게 이야기를 풀어주어 안타까운 사연이었지만 힘들지 않게 읽었습니다. 첫 문장이 ‘선택적 함구증이 있었다.’로 시작하네요. ‘있었다.’는 의미는 지금은 함구증으로부터 벗어났다는 혹은 벗어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아니면 이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생각해도 될까요? ‘입학식의 감정과 졸업식의 감정을 동일했지만 각각의 이유가 있었다.’는 내용이 있는데요 졸업식 때 느꼈던 슬픔에 대한 이유가 지금의 내용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의미를 명확히 해주면 어떨까요? 마지막 문단에 나온 앞으로의 삶에 대한 희망적인 결론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함구증으로 인한 어려움을 책으로 이겨냈다는 작자의 경험담이 같은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