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희생과 고립

장병기 감독의 단편 영화 “맥북이면 다 되지요(https://tv.kakao.com/channel/2841683/cliplink/378291396)”는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 가족을 제재로 한다. 주인공인 어머니는 의사로부터 조기 폐경을 진단받는데, 이를 계기로 자신의 스트레스(소통되지 않는 가족)을 깨닫게 된다. 그러던 중, 아들은 값비싼 맥북을 사고 싶다는 욕망을 부모에게 내비치는데 가족의 가난한 처지에서는 늙은 소만이 맥북 구매를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재원이다. 결국 가족은 소를 팔고 맥북을 들이게 된다.

소통의 단절은 영화 속 주인공인 어머니의 고립감을 심화시킨다. 조기 폐경을 진단받은 어머니는 생식 능력을 잃은 소에게 감정적으로 깊이 이입한다. 이는 그의 고독을 보여주는 주된 요소이다. 가족이 안정적인 소통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었더라면, 어머니는 다른 가족 구성원과 열린 대화를 함으로써 심리적 평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등한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지 않은 짐승인 소를 상대로 한 어머니의 정서적 교류 활동은 일방적인 방향에 불과하며, 직접 단절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형태이다. 그러므로 어머니 자신 또한 가족의 소통 단절 현상에 일정 부분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어머니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양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먼저, 어머니가 집안의 공간에서 점유하고 있는 위치를 통해 그의 고립성을 파악할 수 있다. 집의 내부에서 어머니가 두드러지게 위치하는 공간을 파악할 수 있는 장면은 두 개다. 하나는 가족 구성원들이 모두 모여 저녁밥을 먹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딸과 아버지가 방에 누워 있는 장면이다. 두 개 장면에서 어머니는 안채 바깥의 처마 밑 냉장고와 기둥 사이의 공간에 위치한다. 이 공간은 매우 어둡고 좁지만,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밝은 안쪽의 공간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러한 대비는 어머니와 다른 가족 구성원 사이를 가로지르는 비가시적인 선을 보여준다. 어머니가 바깥의 공간을 점했다고 하는 것은 곧 그가 자신을 가족들로부터 분리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머니는 그곳에서 홀로 바느질을 하거나, 돌아서 누워 있는 모습을 보인다. 전자의 경우 어머니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공동의 행동을 하고 있을 때 의도적으로 다른 일을 수행하고 있다. 어머니는 스스로를 예외로 만들게 된다.

가족들이 생활하는 집은 마당이 딸린 전통가옥 형태이다. 일반적으로 전통가옥의 마당은 가장 개방적인 공간으로,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기능을 갖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조의 집에서 생활하는 인물들은 상호 간에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가족은 서로 간에 소통이 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은 후자의 장면이다. 딸과 아버지는 안쪽의 공간을 함께 차지하고 있지만, 딸은 스마트폰을 하고 아버지는 TV를 보며 안방에 누워 있어 두 인물 간에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석하기 어렵다. 아들의 존재는 아예 화면에 잡히지 않는다. 가족 구성원들이 각각 분리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머니는 바깥에 누워 자신이 진단받은 조기 폐경을 곱씹는다. 그는 늙어가는 것들이 천대받는 세태에 울분을 토해내지만, 외침은 다른 가족들에게 닿지 않는다. 어머니의 감정 표출은 기본적으로 다른 가족들과 분리된 공간과 정서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한 이미 가족들은 단절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족들은 홀로 좁은 바깥에 누워있는 어머니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

어머니가 대화하는 방식 또한 그의 고립성이 드러나는 주된 요소이다.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 대화하는 양상을 관찰해보면 어머니가 구사하는 소통이 상당히 독선적이라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어머니는 기본적으로 다른 이들과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다. 그가 눈을 마주치는 때는 한정적이다. 등굣길에 자식들에게 잔소리를 하며 어른의 직위에 충실할 때, 아버지가 다방아가씨를 집에 데려와 크게 분노하거나 소의 가격을 듣고 당황했을 때 등이다. 이러한 상황을 정서적 소통의 대화라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어머니가 타인에게 일방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정보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상황에 가깝다. 따라서 어머니가 다른 사람들의 눈을 마주하며 정서적으로 교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머니가 구사하는 문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은 그가 아들의 방문을 열어젖히고 윽박지르듯 맥북의 필요성을 묻는 장면이다. 이때 맥북이면 다 되느냐는 그의 말은 아들이 기존에 제공했던 불분명한 정보에 기초한다. 그 정보는 구매의 당위성을 논리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는 내용이다. 맥북의 구매를 빠르게 성취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늘어놓은 궤변에 가깝다. 그러나 어머니는 맥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인물이고, 맥북에게서 희망을 품는다. 어머니의 물음에는 무지에 기반 하는 일종의 신앙이 깃들어 있다. 그 신앙은 우울한 상황을 맥북으로 타개하고 싶은 욕구이다. 이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싶이, 다소 거칠게 표현되었다. 당시의 아들은 불을 끄고 누워 있는데 어머니가 갑작스레 들이닥친다. 대화의 물꼬는 다분히 급박하게 트였고, 아들은 어머니의 물음에 황급히 머리를 끄덕인다. 어머니의 무지와 감정을 이용하여 그렇게 맥북의 구매를 확정한 것이다. 이는 어머니의 고압적인 화법이 초래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어머니는 맥북을 사들고 온다. 맥북 구매에 드는 금전적 비용은 어머니의 조기 폐경 치료비용과 동일하므로, 그는 자신의 건강을 희생했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자신이 일구었던 고립이 비이성적인 결론을 초래한 것이다. 어머니는 맥북이 모든 걸 해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맥북을 사들고 왔지만, 자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는 이상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는 스스로를 고립으로 이끌던 폐쇄성을 우선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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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은실

김한세님 안녕하세요? 처음 글로 뵙는 것 같아요^^ 재미있는 콘텐츠를 선정하셨다고 생각했어요. 영상은 텍스트와는 또 달라서 어떤 장면을 어떻게 의미화하느냐에 대해 좀더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그렇기도 했는데요, 가령 김한세 님이 분석해주신 바와 같이 영상에서의 공간의 활용 같은 것이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영상 매체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그러한 플랫폼의 표현 방식을 분석해보고자 시도한 글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읽으면서 제가 궁금했거나 달리 의견을 덧붙이고 싶었던 것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를 전해볼까 해요. -먼저 '소'(집안의 생계)와 맥북의 교환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에 대해 글쓴이는 무엇이라고 판단하고 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가령 '소'는 재산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