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 하이틴!

‘눈 깜짝할 새’라는 표현일까요? 입학식을 맞았을 때 친구들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지루한 교장선생님의 첫 훈화 말씀을 듣는 와중에도 저는 이 훈화 말씀이 마지막이 되는 순간을 미리 상상하고 있었고, 그 순간이 어느새 바로 앞에 다가와 있었습니다.

음악시간이면 괜히 피아노 앞에 앉아 알지도 못하는 건반을 두드리고, 점심시간에는 식당 의자에 둘러앉아 어제 했던 게임에서 자신의 활약을 이야기하고, 수업시간에 괜히 지루하면 공책에 우리 반 베스트 일레븐을 그려 보는 등, 그날로부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간 듯하면서도, 문득 돌이켜보면 그 자리에서 하나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체육시간 운동장에 대열을 맞춘 채 서 있으면 볼 수 있었던 한 줄로 쫙 뻗은 비행운, 그 비행운에 괜히 감성을 이입하며 멍하니 바라보던 한 고삐리는 입학 직후 한 달간 해야 했던 강제야자마저도 새로웠고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보충 학습을 도망가고 기분 내키는 대로 청소를 땡땡이치며, 무료하게 핸드폰만 쳐다본 채 종례를 기다리는 제가 보였습니다. 어쩌면 그런 새롭고 행복한 순간들에 적응된 채, 다른 무언가를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분기마다 한 번씩 교실에 오는 순서대로 자리를 정했던 우리 반의 특성상 저는 아침 일찍 도착해 교실 뒤쪽 창가 자리에 앉고는 했습니다. 가끔 수업 시간 도중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으니까요. 푸른 하늘과 사각거리는 샤프 소리는 잠들기 딱 좋은 배경을 만들어줬지만, 그 각도에서 바라보던 하늘도 이젠 없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동시에 다가오는 또 한 가지는, 그 하늘이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은, 지날 거 같지 않았던 10대의 끝이라는 사실이었죠.

교실 개편으로 인해 3학년 교실들이 4층에서 2층으로 내려오면서, 3학년을 생활하게 된 반은 공교롭게도 제가 1학년 때 생활했던 교실이었습니다. 여전히 교실 뒤편 오른쪽에는 누가 발라놓았는지 모를 먹물이 묻어 있었고, 아무도 쓰지 않는 39번 사물함에는 바람 빠진 초록색 축구공이 들어 있었죠. 일반적인 대한민국의 남자고등학교라면 어디든 존재하는 사물함 위의 실내화 가방 혹은 땀에 찌든 체육복, 그리고 이름 쓰여 있지 않은 교과서. 그런 것들만으로도 우리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졸업식 날, 3년을 함께 보내온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작별 인사를 하는 동시에, 제가 작별을 건네고 있었던 것은 제 학창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그리 모범생처럼 반듯하게 보낸 것도, 날라리마냥 불량스럽게 보낸 것도 아닌, 하고 싶은 것 다 해봤고 즐길 만큼 즐겼던 학창시절. 처음 뺑뺑이로 이 학교에 배정되었을 때 느꼈던 오묘한 감정들은 이젠 ‘그리움’이라는 하나의 감정에 종속되어 마음 속 응어리로 남겨질 것만 같은 아이러니.

시간이 지나며 세상에선 대통령이 바뀌었고, 월드컵과 올림픽이 개최됐으며, 우리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게 되었고, 부모님이 주시는 술잔을 당당하게 받아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적과 대학, 혹은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목매이던 시간이었지만, 그 외에 다른 가치들이 더 밝게 우리를 비춰주었기에 그리 힘들기만 한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황량해 보이는 운동장의 모래바닥일지라도, 점심시간이 되면 그렇게 활기차보이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요.

결국 사람이란 게 자기가 좋았던 시간만 기억하려 하지, 굳이 모든 순간을 다 가져가려고 하진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떤 명분이더라도 언젠가 다시 돌아와 학교를 바라볼 때 떠올리는 건 좋았던 기억이고 싶으니까. 아마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 제 머릿속에는 좋았던 기억만이 가득하니까. ‘10대’, 그리고 ‘청춘’이라는 이름하에 웃고 떠들었던 영광의 시절. “요즘 젊은 것들은…….”이라며 무시 받는다 해도, ‘하이틴’이라는 파릇파릇하던 ‘지금의 나’를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이겠죠.

글쓰기에 한창 빠져있던 제가 새벽 감성으로 블로그에 적어두었던 글귀가 있습니다.

″우린 모두 ‘삶’이라는 병에 걸려 있다. 치사율은 100퍼센트.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무슨 수를 써도 나을 수 없고, 누가 이렇게 정해놓은 건지 절망적이지만. 투병 과정만은, 누군가가 정해놓지 않은 것 같다.″

‘작별’이라는 병에 ‘추억’이라는 약을 투여하며 행복을 만들어내는, 따지고 보면 이런 것들이 모여서 ‘성장’이란 걸 만들어내나 봅니다. 누구나가 자신의 청춘을 아름답게 추억하기 마련입니다. 『슬램덩크』나 『세일러문』과 함께 풍요로운 시절을 보낸 부모님 세대와는 또 다르게, 우리는 우리만의 황금기를 보냈습니다. 다시 눈 깜짝할 새가 되면 나한테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지 하며 이런 이야기를 안주 삼아 친구들과 술 한 잔 따라 마시는, 지금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으로 앉아 있겠지만 말입니다.

글을 쓰는 내내 아련한 미소를 띠고 있던 것 같습니다. 쓰는 것보다 다시 읽는 순간에 푹 빠져서, 중학교 때 처음 글쓰기에 흥미를 느낀 제가 잘 쓰지도 못한 글을 읽고 또 읽던 기억입니다. 이제는 다시 볼 수도,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는 사실과, 그 푸른 시절을 지내온 우리들의 지나간 10대 이야기.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제게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갓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저의 건방진 이야기를 귀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벚꽃이 흐드러진 계절을 다시 만나는 순간, 모든 하이틴들의 이 순간에 저와 같은 행복을 줄 수 있기를, 또 모든 분들의 하이틴 시절에 저와 같은 행복이 함께 했기를 바라며…….

 

 

 

(이전에 한 번 올렸던 글인데 수정 후 한 번 더 올려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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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현정소랍 Recent comment authors
정소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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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랍

저도 고등학교를 다닐 땐 별 생각 없고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졸업 때 문득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이었다고 느껴서 공감이 되었습니다.

'아마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일지 모르겠다' 문장이 다른 문장들이랑 말투가 다른 것 같아요. '목매이던'도 목매이다란 표현이 옳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담담한 문체가 편안하게 감정을 전달하는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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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현

안녕하세요, 토모야님. 오랜만에 닉네임을 보고 반가웠습니다. 전에 썼던 글을 수정해 올려주셨네요. 글의 서두를 잘 정리해 주셔서 내용이 더 일목요연해졌다는 생각입니다. 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경험에서 우러난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들이 흥미로웠습니다. 3년 동안의 학창시절이 ‘눈 깜짝할 새’로 느껴짐에도 세상에서는 많은 일이 있었다는 걸 상기시켜주어 시간의 흐름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문장의 어미를 ‘습니다’ 체로 바꾸고 개인적인 소감으로 결말 부분을 정리하니 학창시절을 힘들게 보내고 있는 후배들에게 전하기 위한 글 혹은 하이틴 시절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보내는 축사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글의 서두에 내 글을 전달하고자 하는 대상이 제시 됐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