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 기념식-더 많은 용기를 희망하며

방학 중 공모전 사이트를 뒤적이다가 우연히 일본군 '위안부' 기념식에 관한 공지를 봤다. 정확히 뭘 하는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기념식 날짜가 학교 다닐 시기라서 추첨이 돼도 갈지 말지 확실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도 평소에 관심 있던 주제여서 신청을 했다.

신청을 한 걸 잊었을 때쯤 언니가 내 앞으로 우편이 왔다며 초대장을 건네주었다. 초대장까지 와서 되게 놀랐고 서둘러서 담임 선생님께 연락했다. 다행히도 결재가 나서 참석 여부를 이메일로 전했다.

월요일, 화요일 학교에 가니 몸이 너무 피곤했던 참에 학교에 안 가게 돼서 타이밍이 적절하다고 느꼈다. 기념식 당일이 왔고 넉넉히 여유를 잡고 집에서 나섰다. 효창공원앞역 근처 셔틀버스 정류장에 어르신분들이 대부분이라서 의외였다. 백범 김구 기념관 앞에 엄청나게 큰 방송국 차며, 입구에서부터 붐비는 사람들, 기념관 안에 설치된 카메라 수를 보고 결코 작은 행사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유치원생~초등학교 저학년으로 구성된 합창단의 무대를 시작으로 기념식이 진행되었다. 대략 10시 30분이 넘어서 시작했는데 11시에 딱 맞춰갔으면 앞부분을 놓칠 뻔했다. 개회식을 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 세 분이 자리에 들어오셨다. 그전까지만 해도 별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실제 피해자 할머님들을 뵈니 마음에 확 와닿았다.

국민 의례, 묵념 등을 차례로 진행하고 배우 한지민의 편지낭독이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딸이 쓴 편지를 낭독하셨는데 참으려고 했지만 결국 눈물이 나왔다. 사고 회로가 정지될 만큼 편지 내용이 주는 피해의 아픔이 크게 다가왔다.

기념 공연 중 무용이 있었다. 평소에 춤에 관심이 없고 봐도 뭘 몰라서 큰 기대 않고 관람했다. 오늘따라 왜 이리 엇나가는지 게 많은지 편지낭독 때보다 더 많이 울었다. 강제 징용되고, 고문당하는 걸 있는 그대로 표현해서였는지 정말 치가 떨렸다.

합창단의 무대를 마지막으로 기념식은 끝났다. 합창단원들이 만든 부채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들께 전달하는 모습을 마저 보고 기념관을 나왔다. 현장 체험 학습 보고서에 첨부할 사진을 찍기 위해 입구에서 기웃거리다가 사진을 찍고서야 비로소 지하철로 갈 수 있었다. 아쉬움이 남아서 기념식이 끝나고 꽤 많은 시간을 서성였다.

왜정이 끝난 뒤에도 피해자분들이 힘겹게 피해 사실을 알려도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그런 상황속에서 1991년 8월 14일, 故 김학순 할머님께서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리셨다. 하루빨리 일본이 진심 어린 사과를 하기 바란다. 그리고 큰 용기를 내신 전세계 각지에 계신 할머님들이 앞으로 꽃길만 걷길 기구한다.

집에 오는 길에 과연 나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무엇을 알고, 무엇을 했는지 생각을 하였다. 평소에 관심을 가진다고 자부할 수 있었는데 내가 이바지한 일이 없음에 떳떳하지 못하고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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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은실

이라온 님 안녕하세요. 이 게시판에서는 처음 뵙는 것 같아요. 방학은 잘 보내셨나요? 사진이 들어있으니 뭔가 게시물이 생기있게 느껴져서 스스로도 좀 놀랍고 좋았어요. 위안부 기림의 날 기념식에 다녀온 리뷰를 남겨주셨네요. 행사 참여 동기, 식순, 그리고 그때 본 것들에 대한 인상이 깔끔하게 적힌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글을 읽으면서 가장 남는 문장은 “오늘따라 왜이리 엇나가지는 게 많은지”하는 부분이었어요. ‘엇나가지는 일’이라는 게 글쓴이에게도 또 타인의 삶에도 자주 벌어지는 것 같아요. 그건 때로 이라온 님이 행사 신청을 잊었을 무렵 갑자기 이 행사 한 가운데 데려다놓는 것처럼, 어떤 엇나간 문제를 조금씩 밀어 제자리에 돌려놓는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왜 관심을…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