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형

아픈 형 대신 학교에 왔어
나보다 몇 초 먼저 태어난 형은, 그것도 형이라며
자퇴한 나를 비웃고 학교에 남았지

네가 하루만 대신 가달라고!
지독한 감기, 마스크 밖으로 새어나오는 병균
싫어, 싫다고! 니 일은 니가 알아서해,
그렇게 말하려했는데 말보다 먼저 튀어나온 기침에 별 수 없이 학교에 갔어
그런데, 그런데 열아홉은 다 그런 거야?

자리를 찾지 못해서 뒷자리에 섰어
키높이 책상, 더러운 이름, 서서 공부하래 자지 말래
꾸벅꾸벅 고개가 떨어지는 몇몇 녀석들,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똑같은 뒷모습들이 크기만 달라
조는 녀석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녀석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라

너 잠 깼으면 비켜줄래?
교과서를 가지고 연필을 쥐고
전쟁터에 나간 군인처럼 굳센 얼굴을 하고
근데 미안, 난 내 자리를 몰라서 여기 계속 서 있어야해 망할 형이 자리를 안 알려줬거든
그랬더니 녀석은 팔을 책상처럼 만들어서 뒷자리에서 공부를 하더라

뒷모습들, 참 안쓰러운데 똑같이 생긴 게 또 웃겼어
오랜만에 학교 밥을 먹고 나는 집으로 도망쳤어 그랬더니
너 학교는 어쩌고 집에 왔어?
형이 울더라 열아홉은 불안해서 울어야만 한대
금방이라도 쓰러질 거 같은 몸을 이끌고 형은 학교에 갔어
이 나쁜 자식아!

나쁜 나는 집에서 영화를 보고 글을 쓰다가
야자까지 마치고 온 형을 보고 놀렸지
형, 형 뒷모습 좀 보자, 형도 다른 열아홉이랑 똑같은 뒷모습을 가졌어?

나는 거울을 들고 와서 내 뒷모습을 봤어
쌍둥이니까 혹시, 나도 같은 뒷모습일까 싶은 불안한 열아홉,
그래, 불안한 열아홉 살에

감기 낫지 않은 형은 내일도 학교에 간대,
가야만 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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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국

안녕하세요, 파판님! 저 이 시 읽고 살짝 감탄했어요! 재미있고 흥미로웠거든요. 내용이 참 와 닿기도 했고요. 그런데 자꾸 곱씹을수록 늘 그렇듯이(그건 누구의 어떤 시를 읽더라도 마찬가지죠, 제 자신을 포함해서요) 아쉬움이 생기네요. 화자가 깨달음의 지점, 즉 독자에게 생각의 반전을 주는 부분에서 너무 성급하게 마무리되고 있다는, 다시 말해 수습을 잘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남기네요. 전 화자가 급하게 돌아왔고 형도 너무 쉽게 학교로 돌아가버린 부분이 그랬습니다. 일종의 시적 반전을 주어 독자의 뒤통수를 딱 때릴 수 있는 지점이 거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일반적인 인식, 혹은 동일시로 마무리되고 있다고 보였어요. 조금 더 붙잡고 서사를 이어나갔으면 어떨까해요. 주제를 어떻게 해야 좀 더 흥미롭게 전달할 수 있을지…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