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만난 손님

우리는 각자 인생이라는 지하철을 타고 간다. 다음 역에 대한 안내방송이 나오면 내려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거나, 계속 타고 가면서 시간을 죽인다. 그렇게 종착역은 죽음이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지하철을 멈추고 내린 역에서만, 지하철 안에는 그 누구도 난입할 수 없다. 인생은 결국 자신이 결정해야 하는 것과도 같은 원리이다. 내가 향하는 다음 역은 어디지? 내가 내리려고 선택한 다음 역이 대학교인지, 직장인지, 죽음인지는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역과 역 사이의 간격은 고정되어 있지만 반대로 말해서 나에게 선택지가 없는 사항은 오직 그것뿐이다. 만약 자신의 지하철에 누군가가 난입해 온다면 그것은 아주 기이한 일일 것이며, 한 번쯤 꿈이라고 의심해 보아도 될 법한 일이다.

고등학교라는 역에서 잠시 멈춰 섰던 저 지하철은 다시 출발한다. 불청객이 하나 있다. 역에서 내렸던 것은 한 명이지만 다시 올라타는 것은 두 명이다. 지하철의 주인으로 보이는 여학생 한 명과 그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무감정한 표정의 여학생 한 명이었다. 사실 주인이 아닌 쪽의 사람은 학생인지 아닌지조차 애매했다.

지하철의 주인인 여자는 제 앞에 보이는 바깥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조금은 설렌 듯했으며, 조금은 지친 듯했다. 아마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모두가 거의 비슷할 것이었다.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설렘 반, 두려움 반. 어쩌면 그동안 해 왔던 노력의 결과를 보며 지치는 것 반. 여자가 제 옆에 앉아있는 불청객을 알아채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다행인 것이 있었다면 여자는 다음 역에 대한 안내방송이 나오기 전에 불청객의 존재를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여자는 불청객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고, 불청객 역시 입을 열지 않은 채 여자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깜빡, 깜빡. 느릿하게 감았다 뜨는 두 눈동자는 마치 늦춰진 시간의 흐름을 말하는 듯했다.

기다리다가 지친 것인지, 여자가 마침내 먼저 입을 열었다. 용건은 없었다. “야.” 단순하고도 짧은, 어쩌면 날카로운 그 한 마디가 전부였다. 불청객의 눈동자는 그 한 마디에 더욱더 깊어져만 갔다. 여전히 둘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바뀐 것이라고는 다시 몇십, 몇백 미터는 깊어진 것 같은 불청객의 눈동자뿐이었다. 불청객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어쩐지 조금 슬퍼 보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여자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여자는 다시 한번 말을 걸었다. 아까와 같은 내용이었다. “야.”

불청객은 그 부름에 답하지 않았다. 하기야, 애초에 순순히 답할 것이었다면 남의 지하철에 난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생은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원리원칙을 당당히도 깨트릴 것만 같은 태도였다. 이 사람을 불청객이라고 정의하지 않는다면 과연 누구를 불청객이라고 정의할 수 있지?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러한 불청객을 아주 많이 만난다. 지하철 안에까지 난입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스크린도어까지 쫓아오면서 훈수를 두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 그 불청객들이 지하철에 난입하려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렇게 살면 안 되니까, 부모니까, 걱정되니까, 나는 못했지만 너는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 각자 다른 이유에 공통점이 있다면 지하철 주인의 목소리는 싹 무시한다는 것이다. 이 불청객은 어떤 이유를 내보일까, 역시 이번에도 주인의 목소리는 무시할까?

“결혼할 거예요?”

상당히 맥락 없는 질문이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에게 느닷없이 결혼 얘기라니 적잖이 당황할 법도 했다. 그러나 여자는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아직 거기에 대해서는 자세히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정답이 정해져 있는 뻔한 질문이어서 질문의 가치를 못 느끼는 것일까? 어느 쪽이었든, 불청객은 대답을 기다리는 듯 여자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대답을 듣기 전까지는 시선을 돌리지 않을 것 같았다. 만약 여자가 대답한다면 그때 불청객의 표정은 어떻게 바뀔까. 아무도 궁금증을 가지지 않지만 묻는다면 상당히 궁금할 법한 질문이었다. 바뀌긴 할까? 누군가는 그렇게 되물을지도 모른다.

여자는 웃음을 멈추고는 잠시 고민했다. 여자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꽤 낭만적이었다. 조금 과장을 하자면 마치 동화가 세상의 전부인 어린 아이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렇게 해서 확신이 들 때.” 그러고는 불청객의 표정이 바뀐다. 천천히, 느릿하게 눈동자를 깜박이던 것보다 더 천천히, 무표정함에서 일그러짐으로 바뀌어 간다. 분명히 말하지만, 여자는 이 불청객과 모르는 사이였다. 그럼에도 불청객은 마치 여자를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어쩌면 불청객은 질문에 대한 답을 정해놓고 물음을 던진 것인지도 모른다. 불청객은 슬퍼 보이기도 했고, 화나 보이기도 했다. 여자의 대답이 지나치게 낭만적이라서 그랬던 것일까? 어차피 현실에서 낭만을 좇는 것이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우니까? 불청객이 난입한 이 지하철은 정녕 누구를 위한 인생이지?

불청객은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 수많은 말 중 그 무엇 하나도 바깥으로 튀어나와 문장이 되지는 못하였다. 불청객의 일그러지는 표정 속에서 문장들은 빛을 보지도 못한 채 갈기갈기 찢겨 나간다. 그 모습은 누군가의 마음을 형상시켰다. 마음이 찢겨나간다면 필히 그런 모습일 테다. 처음 하고 싶었던 말들은 모두 담아놓은 채 불청객은 새 문장을 만들어 꺼내었다. 억지로 밖으로 나온 그 문장은 처절하게도 울부짖었다.

“행복할 거예요?” 아니. 아닐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누가? 불청객이, 아니면 여자가? 무엇을 근거로? 불청객은 계속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여자는 계속 어긋난 답을 돌려준다. 불청객은 영원히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할 것이었다. 그렇게 쉽게 답을 들을 수 있었다면 불청객은 애초에 불청객이 되기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뻔하디뻔한, 어떻게 보면 진부하기까지 한 이야기였다. 불청객은 발버둥 친다. 이 정해진 이야기의 끝에 작게라도 행복이라는 단어를 더하기 위해서였다. 역시나 그 끝은 허무이다.

여자의 침묵은 불청객의 질문에 대한 답을 대신했다. 제 미래의 행복을 저 역시 확신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실 알고 있어요,” 불청객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처음으로 여자와 눈을 마주하지 않았다. 불청객의 시선은 지진을 일으킬 정도로 흔들리고 있었으나, 그 끝에 결코 물이 맺히지는 않았다. 애초에 재앙이 났는데 왜 울고 있지? 다들 살길 찾아 도망치느라 바쁠 텐데. 불청객은 울고 싶지 않아서 울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처음부터 ‘울음’이라는 선택지가 없었을 뿐이었다. 행복해질 길을 찾기 바빠서, 너무 정신없어서. 상상 속에서라도 결혼은 하지 마세요. 불청객은 여자를 쳐다보지 않은 채 뚜렷하게 말하였다. 여자는 그 말에 왜라는 질문을 덧붙이지 않았다. 어쩌면 여자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결혼하면 어떻게 될 것인지, 사람은 가끔이지만, 자신의 불행을 기막히게 감지한다.

“다음 역은 ××대학교, ××대학교 역입니다. 내리실 분은 오른쪽 문을…”

불청객의 말에 무어라 대답하려던 여자는 지하철의 정차에 대한 안내방송이 나오자 입을 다물었다. “나, 다음 역에서 내려.” 불청객은 역시 그 말에도 똑같이 대답했다. “알아요.”

불청객은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곧바로 취업에 뛰어든 사람을 여럿 보았다. 대학이 벼슬은 아니지만, 대학을 나와 잘 사는 사람 또한 여럿 보았다. 그렇다면 여자도 ‘대학을 나와 잘 사는 사람’에 해당하는가? 불청객의 존재가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이었고 증명이었다. 만약 불청객이 이 여자가 대학을 갈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여자가 괜찮게 사는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을 알아서,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예외여서. 불청객의 표정이 그토록 서글퍼 보이는 이유도 어쩌면 당연했다. 만약 이 역에서 내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그 생각을 수없이 많이 했을 것이 틀림없기에.

지하철이 멈추고, 문이 열린다. 여자는 지하철에서 내리기 전 뒤를 돌아서 불청객을 한 번 바라보았다. 불청객은 희미하였지만 어쨌든 웃음이라고 불리는 것을 지어 보였다. “다녀와요.” 그 말인즉슨 불청객은 계속해서 이 자리에 불청객으로 존재한다는 이야기였다. 여자가 역에서 온갖 일들을 겪은 후 다시 올라타도, 어쩌면 그다음 역, 그다음 역까지도. 불청객은 눈을 감았고 지하철의 내부는 불이 꺼졌다. 역에서 간섭하는 사람은 동시에 지하철 안에서까지 간섭할 수 없다. 그것은 다시 말해 불청객은 역에서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쯤에서 의문이 들 법도 하다. 사람들은 모두 각기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불청객의 지하철은 어디에 있는가? 왜 그것을 타지 않고 남의 지하철로 넘어왔는가? 불청객은 실은 망인이었던가? 마지막 물음에만 답을 하자면 우선 답은 ‘아니다.’였다. 불청객은 이곳으로 오기 위해 저의 지하철 안에서는 곤히 잠드는 것을 선택하였다. 다음 역에 대한 안내방송도 듣지 못하고, 여자의 지하철에서 떠날 때까지 계속해서 잠들어 있다. 불청객이 자리해 있는 이곳은 어쩌면 정의되지 않은 또 다른 역일지도 모른다. …역에 대한 안내방송을 듣지 못한다면, 자칫하면 종착역까지 잠든 채 갈 수도 있다는 것인가? 그러나 불청객은 분명 상관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불청객은 자신이 잠들어 있는 동안 지하철이 종착역까지 도착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도착할 수 없기를 바랐다. 사실 불청객은 자신의 지하철이 출발하는 순간부터 지하철을 싫어했다. 불청객은 자신의 지하철을 마주할 때마다 헛구역질하였으며, 때로는 달리는 지하철의 문을 억지로 열고 모든 것을 내던지려고도 했다. 그것은 인생무상으로는 설명될 수 없었다. 정확하게 그것은 혐오에 가까웠다. 물론 겉으로는 자신의 지하철을 누구보다도 애지중지하는 척 연기를 하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불청객의 지하철 속 공간은 지저분했다.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것은 기본이었으며 의자를 감싸는 천은 낡아 색이 바랬을뿐더러 걸레처럼 너덜너덜하기까지 했다. 남이 바라보는 불청객의 지하철은 누군가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을 정도로 고급스러웠지만, 안으로 한 발자국 내딛는 순간 누구라도 숨이 막혀 그 자리에서 질식사할 것이었다. 불청객이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묻지 않는 것이 좋았다. 만약 불청객의 지하철의 겉과 속이 일치하였다면 불청객은 그렇게 깊은 잠에 빠져있지도 않을 것이었으며 지금쯤 제가 내릴 역을 고르는 데 정신없을 것이다.

불청객은 자신이 불청객으로 끝나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아주 먼 훗날, 여자는 자신의 자식에게 이 불청객을 만난 얘기를 해 줄 것이었다. 아마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만나는 것을 선택했다고. 아름답고, 눈물 나는, 낭만적인 이야기였다.

아아, 불청객은 소리 없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것은 참으로도 재앙이었으며 잔혹한 동화였다. 상자에 무엇이 들었는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판도라는 마침내 상자를 열었으며, 그 안에서는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튀어나와 인간 세상을 물들였다고 한다. 놀란 판도라가 뒤늦게 상자를 닫았을 때는 마지막 ‘희망’만이 남아있었다고 전해진다. 인간들은 희망만을 가지고 이 재앙으로 뒤덮인 세계에서 힘겹게 살아간다. 사실은 다른 무엇도 아닌 판도라라는 인간이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내린 벌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여자는 ‘결혼’이라는 상자를 열 것이다. 잠깐 고민해보아도 좋았다. 여자의 자식은 상자 밖으로 나간 재앙에 해당하는가, 상자 안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희망에 해당하는가? 불청객은 떨리는 손을 붙잡고, 손끝에 애써 힘을 주어 재앙에 100%를 걸었다. 불청객은 그 재앙이 진정 상자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기를 바랐다.

 

역을 벗어나 지하철 안으로 다시 돌아온 여자는 퍽 지쳐 보였다. 여자는 돈을 아끼기 위해 자신이 머무는 곳에서 학교까지 걸어 다니고 있다고 웅얼거렸다. 여자의 집은 썩 잘 사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발버둥 치며 살아야 할 정도로 가난하지도 않았다. 평범한 중상류층 정도라고 보면 되는 정도였다. 그래, 어쨌든 여자가 이렇게 살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요?” 불청객은 듣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듯 나직이 말했다. 많은 정거장이 지나갔고 여자는 내리고, 다시 올라타는 것을 반복했지만 불청객은 첫 번째 만남 이후로는 특별히 간섭하지 않았다. 여자와 시선을 마주하는 시간도 짧아졌다. 여자가 마주할 행복이 무엇일지는 잘 모르지만, 여자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음을 알고 있었던 탓일 테다.

여전히 결혼할 생각이 있어요? 응, 아마도, 언제나 그래 왔듯이. 불청객은 자신의 존재 의의를 점차 잃어간다. 불청객이 누구였느냐고 묻는다면 여자의 미래를 바꾸려고 온 사람, 다만 불청객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에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이 없을 뿐이었다. 여자는 아마도 아주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 누군가의 어머니가 된 후로부터 십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면서 대학 시절의 일을 추억할 테였다. 여자가 되감아 보여줄 상대를 감히 불청객이 마음대로 바꿔도 되는가?

이쯤 되니 불청객은 솔직히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여자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불청객은 여자가 결혼해서 낳을 첫째가 행복하지 않을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왜냐고? 그것이 불청객이었으니까. 불청객은 태어난 이후로부터 쭉 행복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오히려 불안에 떨며 살던 시간이 많았다. 은연중에 집을 싫어하게 되었으며 무의식중에 숨을 멈추는 일이 잦았다. 깨닫고 난 후 숨을 내쉬면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누군가가 한참을 목을 조르다가 놓아준 듯 가쁜 숨을 내쉬고는 했다.

“그 사람이랑 결혼할 거예요?”

“누구랑?”

“알잖아요, 누구인지.”

쉼 없이 빠른 대화가 단 셋 오갔다. 분명 그 질문은 대답을 구하고 있었으나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여자는 얼굴에 어떤 표정도 드러내 보이지 않았고, 불청객은 굳이 그런 여자를 독촉하지 않았다. 이것은 누구를 위한 일인가, 불청객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여자를 위한 것인지, 자신을 위한 것인지조차 명확히 정의하지 못한 채 불청객은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다. 어떠한 변명도 통할 수 없는, 바야흐로 완벽한 불청객이었다. 자신이 던지는 질문에조차 답할 수 없는 불청객은 감히 여자를 재촉할 자격이 없었다. 여자의 선택을 강요할 자격도, 여자의 선택을 바꿀 자격도 없었다. 오만했던 불청객은 자신의 욕망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불청객은 이 끝나지 않는 불행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봐 왔다. 숨 막혀 죽을 것만 같은 위압감 다음에는 귀가 찢어지는 소음이 찾아왔으며, 그 후로 끊이지 않는 홍수가 이어졌다. 간신히 홍수에서 빠져나와 정신을 차리고 나면 다시 숨 막히는 위압감이 찾아들어 온다. 조금의 쉴 틈도 주지 않은 채. 이것을 마냥 불청객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 있는가? 누구나 정신없을 것이다. 그래, 불청객이 아주 잠시 동안, 아주 잠시라는 이름의 아주 긴 시간 동안 착각했다고 하면 될 것이었다. 그러면 모든 것은 흠 없이 완벽하다.

하지만 불청객은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이 여태껏 이 모든 것을 속여 왔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으며 이해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남의 이름을 내건 저를 향한 동정이 팔뚝에 벌레가 기어가듯 소름 끼쳤다. 착한 척. 그래. 이것은 착한 척과 가식, 위선의 총집합이었다. 태어나는 자식이 불행해했다고 말하기에는 자신도, 여자도 불쌍하지 않으냐는 이유를 등 뒤에 업고 거짓말로 치장하였다. 아…… 불청객은 이리도 불쌍한 자신을 견딜 수가 없었다. 진실을 뚜렷하게 마주할수록 남는 것은 죽음에 대한 갈망뿐이었다. 이렇게 살며 모두에게 고통을 줄 바에야 차라리 이만 매듭짓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여자는 자신보다 높은 불청객의 어깨에 몸을 기대었다. 불청객은 목석과도 같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내 자식에게 좋은 부모였을까?” 여자가 문득 물어왔다. 불청객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역에서 만나서 이런 인사를 나누었다면 불청객은 분명히 답을 했을 테지만, 그는 지금 ‘여자의 불청객’이었다. 느닷없이 인생에 나타나서 훼방을 놓고 망하는 길로 이끄는 불청객이다. 모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불청객도, 여자도, 그러면 무척이나 행복한 이야기가 되었을 텐데.

이대로 함께 종착역까지 간다면, 여자의 자식은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지 않을까, 그런 해서는 안 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지독히도 이기적인 사람. 만약 태어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절대로 지하철에 자리 잡지 않았을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네가 여기까지 와 준 것을 보면 나는 좋은 부모가 되어줬을 것 같아.”

불청객은 아주, 아주 긴 침묵 끝에 대답했다. “……나야 모르죠.”

사람을 어떻게 칼로 베듯 좋고 싫음을 나눌 수 있을까? 그래도 구태여 한쪽을 고르자면 불청객은 전자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프로이트의 원인론을 믿지만, 불청객은 아돌러의 목적론을 지지한다. 어쩌면 그것이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사이가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모순된, 말로 전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품으면서도 무한한 증오는 없었던 것이라고 불청객은 생각했다. 그래서 대답은 날이 서 있지 않았다. 믿고 싶은 데로 믿으라는, 잘못된 사실이 있더라도 구태여 정정하지 않는 태도는 어떻게 본다면 긍정일 수도 있었다. 허용의 긍정이었다.

“그렇구나, 잘 알았어.” 여자 역시 불청객의 의미를 모두 알아들은 듯했다. 그래, 불청객이 정말로 혼자 구원받기를 원했더라면 일찍 죽음을 맞이해도 되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번거롭게 불청객은 여자의 지하철에 올라탔다. 키워준 부모를 버리고 앞장서지 않고 뒤돌아 돌아왔다. 지난 시간을 온전히 마주할 수 없어서 그보다 더 오래전의, 태어나기도 전의 과거로 끌고 왔지만 그럼에도 불청객은 혼자 가지 않았다. 그것은 선택이었다. 어쩌면 좋은 부모였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다른 쪽은 모르지만, 적어도 여자는.

“나는 남자가 죽어버리기를 매일, 매 순간 바라왔는데 애석하게도 신은 그런 소원 따위 들어주지 않죠. 아, 물론 무교예요. 하여튼 그렇게 몇 번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니까 나라도 이뤄지게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무슨 생각 해요, 끔찍하다는 생각? 만약 그렇다면 하지 말아요. 남 얘기 아니니까. 나만 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많은 사람이 이렇게 죽어가죠. 나는 살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태어나서는 안 되고.”

진부해진 소설의 클리셰 같다고 불청객은 문득 생각했다. 흔히 다뤄지는 소재에 사람들은 슬슬 둔감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감정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자신들은 절대 발 들일 리 없는 ‘불행한 나라’의 ‘다른’ 사람들 이야기니까. 사실 태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행복하게 살며 다른 사람의 불행을 소설처럼 취급하는 세상이 너무 역겨워서였다. 겪지도 않은 사람은 말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불청객의 고통은 매일 다른 사람으로부터 다른 이야기의 소재로 다뤄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의 모두가 죽어버리기를 빌 수는 없으니 당장의 눈앞의 원인제공부터 치워지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 소망은 참혹하고도 간절했다. 참담하고도 진실했다. 조금의 감정도 거짓도 없이 오로지 사실만을 나열하는 밋밋한, 건조한 문장이었기에 더욱 가슴을 찔러 들어오는 소망이다.

요약하자면 혼자 떠날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으니 얘기 좀 들어달라, 라는 말이었을까? 불청객은 자신을 동정했고 더하여 여자까지도 동정했다. 불청객이 여자의 몫까지 동정해서였을까, 여자는 불청객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도 변한 것이 없었다. 불청객은 그 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 여자에게는 제 이야기가 그저 먼 세상의 잔혹동화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 모습이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었던가? 자신과는 아무런 유대감도 가지지 않기를 원해서 걸음을 디딘 것이 아닌가?

우리는 남이었고, 앞으로도 남일 것이었다. 우리가 모녀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엮일 일은 절대 없을 것이었다.

불청객은 다시 한번 물었다. “결혼할 거예요?” 그리고 여자는 웃었다. “안 알려주려고.” 이번에는 불청객이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여자가 제게 대답해줘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당연히 대답해줄 것이라는 전제를 끌고 여기까지 왔다. 불청객은 여자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주도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기억해냈다. 여자가 누군가의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가는 것도, 그 이름에서 탈피하지 않는 것도 누군가가 강요해서가 아니었다. 적어도 불청객은 그것을 여자에게 강요한 적이 없었다.

아니, …아니. 아닐지도 모른다. 적어도 마지막 문장을 불청객은 부정할 수 있었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강요였을지도 모른다. 만약 불청객이 없었다면 그리고 불청객 이후로도 아무도 없었다면, 그렇게 되어서야 불청객은 자신이 강요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강요하지 않기 위해 왔잖아, 불청객은 앙칼지게 답했다. 강요하지 않기 위해 왔다는 이유로 너는 또다시 강요하고 있지. 불청객은 행복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강요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느 옛날 옛적, 불청객은 자신의 ‘어머니’라는 사람에게 그 이름을 버려도 된다고 허락해 준 적이 있었다. 물론 제발 떠나버리기를 바라고 한 말이었다. 그리하여 자신을 잊을 때쯤, 콱 죽어버리려고. 불청객이 여자한테 결혼하지 않는 것을 강요하지 않는 것은 여자가 ‘어머니’라는 이름을 버리지 않았던 것, 불청객이 여자가 보는 곳에서 죽어버리지 않는 것,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여기까지 온 것의 연장선이었다. 불청객은 당시 제 어머니에게 왜 떠나지 않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없으면 자식들이, 네가, 이렇게 악착같이 살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불청객은 당시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이제야 이해했다.

있는 힘껏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이 관계를 끊을 수 없음을 이제야 납득했다.

우리는 때로 편리한 지름길을 눈앞에 두고서도 어렵사리 빙 둘러서 가는 것을 선택하고는 한다. 그 모를 남들이 본다면 비난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내린다. 그것이 어리석음을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바보 같은 짓을 한다.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 귀찮은 관계를 맺어버렸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더러 이 관계를 버릴 수 없도록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수많은 질척거리는 이유가 붙지만 결국 모든 것은 너를 위해서라는 문장으로 귀결된다. 결국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마 불청객이 존재하기 전, 미래의 불청객이 이렇게 찾아와 또 얘기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전에 또, 또 그 전에 또. 이 모든 사실이 비참하고도 한심하고도 안타까워 불청객은 울음을 터트렸다. 아니. 울음을 터트리고 싶어졌다. 불청객이 살아온 수많은 시간은 불청객을 울음이 어색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울 듯하면서도 절대로 울지 않았다. 여자는 불청객이 지나온 시간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미래의 여자의 몫이었다. 그마저도 짊어지는 것이 아닌, 짊어지고 가는 불청객을 보는 것이었다.

불청객은 결국 질문을 바꿨다. 다음 정거장에 대한 안내가 나왔고, 불청객은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 것이었다. 여자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는 모른다. 다만 그는 내릴 것이었다. 불청객은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꿈이 뭐예요?”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물음을 던졌다.

“내릴 거야?”

“네.”

여자에게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불청객은 곧 열릴 문 앞에 섰다. 분명 곧 지하철은 멈추겠지만, 멈춘 이후로도 문이 열리기까지는 또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불청객이 마지막 말을 위해서 입을 엶과 동시에 여자도 입을 열었다.

“경찰이었어.”
과거형이었다. 불청객은 그 사실을 알아차린 듯 눈썹이 꿈틀거렸으나, 별다른 지적은 하지 않았다. 노선을 틀 시간은 없었다. 불청객은 자신이 선택한 길을 계속 걸을 것이었다. 종착점은 바뀌었으나, 길이 바뀌지는 않았다. 이상한 현상이었다.

“그래요, 기억하세요. 당신의 꿈은 경찰이에요. 내가 아니라.”

제멋대로 현재형으로 바꿔버렸다. 여자는 화를 내지 않았지만, 다른 말도 하지 않았다. 알겠다는 긍정도, 싫다는 부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불청객은 언제나 그래왔듯 여자에게 모든 선택권을 넘겼다. 그가 지나왔던 삶에서 항상 그랬으며, 이번에도 그럴 것이었다. 다시 일상은 평범하게 돌아가겠지. 평범하고도 잔인한 날들로 돌아가겠지. 하지만 이건, 그래, 이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불청객이 여자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바꿀 수는 없는 현실이었다. 원망하려거든 여자의 결혼 상대를 원망해야지.

이렇게 태어나서 여자를 만나게 해 준 것은……

지하철의 문이 열리고 생각이 끊겼다. 잘된 일이었다.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불청객이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았는지는 영원히 불청객만이 알 것이었다. 불청객은 이제 불청객이 아니게 될 것이었으니 그 대답은 세상의 누구도 모를 것이었다. 곧 불청객이 아니게 될 불청객조차 말이다. 여자는 불청객을 배웅하지 않고,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불청객 역시 뒤를 돌아보지 않고 역으로 발을 내디뎠다.

여자가 물었다. 마지막이었다. 충동적인 마지막이었다.

“너는 누구야?”

사실 여자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자는 질문했다. 정답이 궁금한 것이 아니었다. 불청객의 대답이 궁금한 것이었다. 불청객은 웃음을 터트렸다. 매일 보여 왔던, 익숙하디익숙한 웃음이었다. 때로는 영원한 비밀이 사람을 숨 쉬게 한다. 그런 논리를 담은 웃음이었다. 불청객이 고백하고 싶었던 것은 많았지만 그중 단 하나도 불청객은 고백하지 않았다. 여자에게 여자의 선택이 있었듯 불청객에게도 불청객의 선택이 있었다. 불청객은 단지 선택했을 뿐이었다.

“당신의 부모님 다음으로 당신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이죠.”

문이 닫혔다. 지하철에는 다시 여자 혼자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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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형

안녕하세요, 율오 님. 반갑습니다. 첫 문단처럼 삶을 상징하는 공간인 지하철에서 불청객과 여자의 대화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에요. 불청객은 여자의 아이였던 것 같고, 훗날 어머니의 삶, 혹은 자신과의 관계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것 같은 환상적인 전개와 구체적인 내면/의식의 묘사들이 풍부해서 좋았어요. 그러나 메시지나 내면 표현과 사유에 비해 불청객과 여자가 공유하는 내러티브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단지 "결혼", "행복", "불행" 같은 추상적이고 다소 범주가 넓어 막연한 상황만을 진술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웠어요. 퇴고할 때 내러티브를 보충해 보셨음 좋겠습니다. 잘 읽었어요. 다음 소설도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