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 사이

  1. 올리비아

올리비아는 이 극이 희극임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희극은 생각보다 별 거 없다. 권선징악을 밑바탕에 깔고 행복해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극의 막을 내리면서 보여주면 된다. 아아, 시시해. 올리비아는 눈을 감고서도 자신이 퇴장해야 할 시기를 정확하게 맞출 수 있었다. 자신이 언제, 어떻게 사라져야 관객이 막혀 참았던 숨을 내쉬고 등을 의자 등받이에 기댈 수 있는지 올리비아는 알고 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인생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이니 쉽게 포기하지 말라는 말은 정말 수많은 사람을 기만하는 것이다. 올리비아는 잘 살아오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잘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 삶에 만족해서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닌 다만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있어 살아갈 뿐이었다. 올리비아는 행복한가? 죽는 순간 행복해질 예정이다. 왜냐하면 권선징악을 성공시켜 내는 주축이 올리비아니까.

너는 나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자. 올리비아는 아버지를 끌고 지옥으로 가는 성냥팔이소녀이다. 성냥을 팔지 못하면 집에 돌아갈 수도 없다, 그렇다면 성냥을 팔지 않고 성냥을 팔아야 할 이유도 없앨 것이다. 올리비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디 가, 돌아갈 집도 없는 주제에. 올리비아는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며 그런 소리를 중얼거릴 것이다. 올리비아가 나쁜 것인가? 그건 모른다. 다만 올리비아는 성냥팔이소녀처럼 순하지는 않았다.

올리비아가 이 극이 희극임을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설령 비극이더라도 자신이 바꿔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올리비아는 그렇기에 권선징악의 주축이다. 올리비아가 곧 신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주변의 악을 징벌할 수 있는 희생정신은 가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냐면, 죽음도 불사할 수 있을 정도.

올리비아는 신을 믿지 않는다. 신을 향한 믿음은 괘씸하게도 믿음의 배나 되는 배반감이 되어 되돌아올 뿐이다. 그래서 올리비아는 매일 밤 달에게, 하늘에게, 신에게 비는 대신 자신에게 속삭였다. 죽어도 죽이고 죽자, 절대 혼자 가지 않게 하자, 마지막으로 평생 하나 못 주었던 선물은 줘야 하지 않겠어?

올리비아는 잔인하지 않다. 단지 간절할 뿐이었다. 더 이상의 비극을 두고 볼 수 없는 여린 마음에 스스로 희극으로 만들어버리기로 선택한 것뿐이었다. 악을 징벌하는 것은 당연하잖아? 올리비아가 징벌하는 악은 절대적으로 악이다. 적어도 올리비아에게는 그랬다. 성냥팔이소녀의 아버지 같은 사람을 누가 아버지라고 부르지? 누가 좋아하지? 그러니 올리비아는 잔인하지 않다.

올리비아는 인간이다. 그러니 구원자의 자리를 넘보는 괘씸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감히 신의 권위에 도전하느냐. 올리비아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올리비아는 이 지긋지긋한 비극에 질려버린 참이니까. 이 비극을 끝맺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희생해야만 한다. 올리비아는 누군가라는 선택을 하였다.

올리비아는 좋아하는 사람이 딱 하나 있었다. 그래서 꽃밭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꽃밭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의 꽃밭이었다. 잔인한 올리비아, 어떻게 꽃밭 하나를 만들려고 죽음을 선택하니? 심지어 너는 그 사람을 좋아하는데.

올리비아는 감정보다 꽃밭에 더욱 무게를 두었다. 평생 지낼 꽃밭이잖아.

 

  1. 희극 망치기

올리비아는 딱 한 번, 이 희극을 망쳐버리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클로이의 대사도, 자신의 대사도 전부 정해져 있는 것임을 알면서도.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 있어. 정해진 대사 하나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해 버린 것을 올리비아는 한탄했다.

이상하게도 클로이는 올리비아에게 비수를 꽂는 말들을 잘했다. 이것 역시 클로이의 정해진 역할인가? 어쩌면 클로이가 말했기에 비수처럼 꽂혔는지도 모르겠다. 올리비아는 언젠가 클로이의 곁에 존재하지 않게 될 사람이니까. 올리비아가 어느 누구의 곁에도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은 결국은 클로이를 위해서라고 이름을 붙였으니까.

올리비아는 이 희생정신에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신이 만약 원하는 것을 묻는다면 아무것도 빌지 않을 올리비아도 아니다. 올리비아는 소원을 하나 품고 있었고, 그 소원만을 본다면 정말로 잔인한 것이 맞았다. 올리비아는 클로이에게 자신의 죽음을 축하받고 싶었다. 그래서 네가 겨우 내 죽음에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 극이 너무 재미없어지니까.

잔인하구나, 올리비아. 신이 무심히 내뱉는다. 잔인하게 살았으니 잔인하게 죽어야지. 올리비아는 여상하게 대답했다.

올리비아는 잔인한 사람이 아니었으나, 클로이에게만은 잔인하게 굴었다. 그것은 다시 올리비아가 방치를 자처하는 이유로 이어진다. 다시 올리비아가 살아가는 이유로, 올리비아의 죽음으로, 올리비아의 사랑으로 끝을 맺는다. 여기서 더 신경 쓰지 않으면 방치라는 클로이의 말에도 괜찮아, 올리비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어. 다만 그 말은 클로이를 위해 손 가득 움켜쥐어 없애버렸다.

재미없어, 신님. 나는 언제 퇴장할까? 올리비아의 물음에 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클로이를 향한 미련을 놓을 수 있을 때, 사실 나도 알아, 신님. 올리비아는 정답을 알고 있었으나 그것이 썩 좋은 대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평범한 희극이었다.

사랑해. 작고 식상한 클리셰 하나조차 들어가 있지 않은 지루한 단어였다. 클로이는 올리비아에게 종종 그 단어를 내뱉고는 했다. 올리비아는 단 한 번도 응답하지 않았다. 올리비아는 클로이를 좋아했다. 하지만 사랑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최대한 사랑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올리비아가 클로이를 좋아하는 이유였다.

그런 단어는 한순간에 희극을 비극으로 내리꽂기 십상이다. 이를테면, 지금처럼. 올리비아는 클로이의 말을 들으면서 이것이 차라리 정해진 비극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올리비아가 클로이를 좋아할 일도, 클로이에게 죄책감을 느낄 일도, 이렇게 죽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야기는 클로이에게는 비극일지 몰라도 올리비아에게는 희극이다. 자신을 옭아매던 밧줄을 끊고 훨훨 자유롭게 나아가는 올리비아라는 새의 이야기.

그렇다면 올리비아라는 새는 어디까지 올라갈 예정이지? 올리비아는 드높은 하늘을 탐했다가 뜨거운 태양의 열기에 밀랍이 녹아버려 추락한 이카루스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올리비아는 욕심이 많아서 높은 하늘을 탐내지 않는다. 최대한의 욕심을 충족시키려면 적당히 높게, 적당히 잘 사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그렇게 적당히 살 바에야 감동적인 희생을 치르는 것이 훨씬 가치 있지 않겠어? 올리비아는 계산적인 사람이어서 자신의 가치마저도 계산할 줄 알았다. 올리비아가 세상에 보일 수 있는 힘은 딱 한 사람의 비극을 희극으로 바꿀 만큼, 그것이 전부였다. 똑똑한 올리비아. 너는 대가를 치르고 파멸을 사 올 사람이지. 사랑스러운 필멸자, 메마른 올리비아여.

 

  1. 신을 경멸하는 자

신님은 바보구나? 올리비아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메마른 올리비아라니, 클로이가 안다면 코웃음 칠만한 대사였다. 신님의 전지전능한 위치가 피조물에 대한 관심을 식혀버렸을까. 신님, 진실을 말하자면,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네가 나를 만나주지 않을 테잖아. 나를 믿지 않는다더니 나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모순적인 나의 올리비아.

세계의 신은 올리비아가 느끼기에는 턱없이 무능한 존재였다. 비극을 하사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것으로 보아 이미 끝없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신을 무능하다고 평가하는 올리비아는 유능한가? 그것은 아니다. 올리비아는 여러 인간들과, 세상의 모든 무수한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무능했다. 올리비아는 단지 신이라는 명사 앞에 ‘한낱’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었을 뿐이었다.

신님도 주제를 알아야 내가 기어오르는 것을 마뜩찮게 보지 않겠지. 올리비아는 한낱 신 따위가, 등의 말을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아마 되도 않는 주제에 클로이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꽂은 것이냐는 말일 것이었다. 신은 대답했다, 잘난 나의 올리비아.

신의 비웃음을 올리비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어차피 네가 바꿀 것이었으니 조금은 비극으로 만들었어도 괜찮다? 신은 종종 올리비아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신의 사랑을 받는 인간, 올리비아. 그러나 올리비아는 어떠한 신도 섬기지 않는 무교이다. 우스운 일이었다.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믿지 않는 것으로 남았을 것이 사랑함으로써 순식간에 경멸이라는 단어로 변해버렸다.

신은 올리비아를 사랑하였기에 조금의 권리 침범을 허용키로 하였다. 사실 누군가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해오는 것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조금 나빠진 기분에 피를 흘릴 수는 없으니까 기왕이면 자신이 사랑하는 인간이. 그리고 똑똑한 올리비아는 이 모든 것을 이해해냈다. 참으로 무능하여 경멸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신이었다.

신의 사랑을 받는 올리비아는 한 명의 인간에게도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것이 과연 절대적인가? 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올리비아는 참으로 헌신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신님에게 결국 사랑이라는 단어는 허울 좋은 껍데기일 뿐이지. 올리비아가 유일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면 신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신은 어찌나 사랑하였던지, 올리비아의 밤하늘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득 띄워놓았다. 이리 돌려도 사랑, 저리 돌려도 사랑. 올리비아는 사랑을 싫어한다. 그러니 사랑한다는 이유로 이토록 많은 사랑을 띄워놓은 신은 멍청하기 그지없는 자였다.

저 사랑은 하루, 저 사랑은 두 달, 저 사랑은……. 올리비아는 눈동자를 움찔움찔 움직이며 사랑의 남은 수명을 세어보았다. 자, 이토록 짧은 수명의 사랑들 중에서 신님의 사랑은 어느 것이야? 신은 친절히 대답하였으며 올리비아는 그 목소리를 무시했다.

올리비아가 그 질문을 한 이유는 단순했다. 만약 신님의 사랑이 여기 있다면 가장 먼저 땅으로 처박아버리게. 신님은 평생도록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질문을 하기 전부터 올리비아는 정답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신의 목소리를 들어줄 필요는 없었다.

올리비아는 팔을 뻗어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를 낚아채더니, 땅으로 냅다 던져버렸다. 사랑이 있던 자리에는 못을 박았다. 빛을 받아 못이 반짝반짝 빛났다. 전혀 아름답지 않은 별이었다.

 

  1. 바벨탑의 냉정과 열정

사랑해. 클로이의 말에 올리비아는 그것이 무슨 뜻이냐는 듯,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올리비아는 바보가 아니다. 단지 너무 똑똑해서 문제였다. 자신이 내뱉는 고백이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가지는지 잘 알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클로이에게 갖는 무게는 올리비아가 짐작할 수 없고, 짐작해서도 안 된다고 하지만, 세상이 느끼는 무게는 또 다른 맥락이다. 올리비아는 짐작이 아닌 정답을 알고 있다.

올리비아의 ‘사랑해.’는 세상을 짓눌러 장기를 파열시킬 수 있는 무게. 더 나아가서 세상이 치료받기 위해 바닥을 기어가는 것도 잡아 막을 수 있는 무게.

왜냐하면 올리비아는 바벨탑의 설계자니까. 실제로 그 명성에 걸맞게 신의 자리를 넘보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올리비아가 단순히 희극만을 위하여 신의 자리를 넘본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중대한 착각이었다. 올리비아는 마치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사람이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이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말하고 싶은 것은 올리비아가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이다.

올리비아의 인생은 오직 클로이만을 위하여 이루어져 있다. 그것이 올리비아가 바벨탑을 쌓는 두 번째, 또한 근본적이면서도 보조적인 이유였다. 클로이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것이 올리비아가 클로이를 위하여 신이 되려는 이유였다. 나의 존재조차 의심하게 되기를 바라며. 잔인한 올리비아. 나는 너에게만, 너를 위하여 잔인한 거야, 클로이.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던 것에는 약간의 미안함을 표하지.

올리비아는 바벨탑이 완성되는 날 탑 꼭대기까지 올라가 뛰어내릴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땅을 향한 자살, 누군가는 그것을 신을 향한 항쟁이라고 표현할 것이다. 올리비아는 그것을 신을 향한 유일한 믿음이라고 표현했다. 산산조각나기 직전에 신님은 필히 나를 쥐어 채가지 않고서는 못 베길 테니까.

사실 신은 올리비아가 클로이에게 보이는 애정에 퍽 흥미로워 하고 있었다. 클로이의 사랑은 누구에게나 볼 수 있을 법한 악착, 벼랑에 내몰려 표하는 인애였다. 반면 올리비아는 스스로 벼랑 끝으로 저를 내몰더니 마찬가지로 인애를 표한다. 클로이에게 너무하지 않나, 신은 잠시 생각하더니 곧 그 이유를 찾았다. 올리비아는 잔인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올리비아는 클로이에게 제 죽음을 축하해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 올리비아는 내심 사랑했던 사람의 발목을 붙잡는 원혼이 될 생각은 없었다. 클로이를 방해하는 세상의 발목을 붙잡고 뒤로 끌어서라도 클로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 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올리비아는 멍청하지 않았고, 심지어 계산적인 사람이기까지 했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은 클로이가 처음에 올리비아에게 베풀었음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올리비아, 나는 그것을 대가를 바라고 베푼 것은 아니었지. 애초에 베풀었다는 단어도 어울리지 않아. 너는 끝까지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해 주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구나.

그것은 다시 말하여 올리비아가 신이 되고자 하는 이유였다. 자신의 클로이의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하는 올리비아는 클로이의 삶에 자신에 대한 것은 무엇 하나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의심하고 의심하다가 덧없음에 곧 잊어버려야 해, 클로이. 올리비아는 클로이를 사랑했기에 클로이의 삶에서 없어지고 싶었다.

중화가 끝난 바벨탑은 천천히 온도가 내려가기 시작한다. 올리비아는 클로이를 좋아했다.

 

  1. 사랑해

올리비아는 바벨탑을 발로 차 무너뜨렸지만 신은 자신의 전지전능함을 이용하여 다시 일으켜 세웠다. 올리비아가 뒤에서 아무리 반항을 해도 소용없었다. 신은 조용히 대답했다. 사랑하니까.

차라리 이 극이 비극이었으면 좋겠다고 때때로 바라지 않았니. 맞아, 신님. 그러니까 부디 내 희극을 망치지 말아줘. 하지만 신은 올리비아를 사랑했고 그 아이가 정말로 바라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바벨탑은 무너지지 않았다. 이 극은 클로이에게도 비극, 올리비아에게도 비극이 될 테였다. 모순적이게도 그럼으로써 올리비아에게는 이 극이 완전한 비극이 되지 않았다. 클로이는 바벨탑에서 올리비아를 기억한다.

너를 잊고 살 수 있을 것 같니, 애원하듯 묻는 클로이에게 올리비아는 잔인하게 대답했었다. 잊고 살아야지. 올리비아가 생각하는 클로이의 희극은 올리비아가 없는 것이었다. 올리비아는 자신이 들어섬으로써 클로이라는 극이 희극이 될 수 있을 기회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올리비아가 없어지는 것은 클로이에 대한 일종의 속죄일 것이다.

그러나 클로이에게 희극이란 무엇인가? 올리비아는 단 한 번도 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올리비아는 항상 신더러 멍청하다고 하였지만, 정말로 멍청했던 것은 올리비아였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사랑하는 것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고 멍청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올리비아는 중얼거렸다. 결국은 사랑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올리비아는 자신의 앞에 있는 신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신이 될 거야. 신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든지.

하지만 올리비아는 신이 될 수 없다. 하늘에 매달려 있던 사랑을 모두 떼어버리고 못을 박은 것이 첫 번째 이유였으며, 하늘에 사랑이 매달려 있는 이유를 모르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신은 올리비아의 말대로 사랑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하늘에 사랑을 달아놓는 이유는 알고 있었다. 사람이었다.

올리비아는 시기적절하게 퇴장하기 위해, 있는 정 없는 정 모두 바닥에 내팽개친 사람이었다. 그것은 희극을 향한 집착이었으며 자신을 향한 혐오였다. 사랑하는 올리비아, 그러나 사랑할 수 없는 올리비아. 신은 올리비아에게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는 말을 믿느냐고 물었다. 올리비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알아도 모르는 척, 있어도 없는 척, 스러지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올리비아야.

올리비아는 잔인하지. 신은 중얼거렸다. 네가 바닥으로 내팽개쳐버린 것이 사랑만이라고 생각한 걸까. 사실 신을 만난 이후로 올리비아는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하늘에 매달린 사랑은 망자가 생자에게 보내는 답장. 사람이 별이 되는 것은 생자를 위한 망자의 영원한 선물. 하지만 올리비아는 오로지 클로이만을 위한 신이 될 것이니 그런 것들은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비극이지, 올리비아. 전지전능한 신은 묻지도 않은 질문에 답하였다. 올리비아는 조용히, 다시 한 번 땅을 향해 팔을 벌렸다.

 

  1. 올리비아여 다시 한 번

올리비아는 발악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리하여 비극을 맛본 올리비아는 괴성을 터트렸다. 그 발악의 특이성은 신조차 당황하게 함으로써 인정받을 수 있었으나, 역으로 올리비아에 대한 이해라는 항목에서 발목을 잡혔다. 날아가기 위해 발목에 족쇄를 채운 올리비아는 태양에 녹아버리는 밀랍과 함께한 이카루스와 퍽 닮아 있었다.

올리비아는 이카루스가 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래. 너희는 상당히 욕심꾸러기여서 종말의 너머까지 넘보았지. 나는 그것이 좋았고. 아마 종발의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너희가 깨닫고, 더 나아가 그것을 가졌더라도 이 마음은 변치 않았을 테지.

잔인하지만 똑똑한, 희극을 꿈꾸며 바벨탑을 쌓아올렸던 올리비아는 그 무엇도 되지 못하였다. 한 인간의 끝은 무능한 만큼이나 지독히도 허무했다. 무너져 내리는 허무에 종점을 찍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올리비아 자신이었다. 신은 올리비아를 사랑했으나 끝까지 그런 올리비아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느리게 낙하하는 올리비아를 신은 낚아채지 않았다. 대신 그 시간동안 자신이 아는 올리비아를 떠올려보았다. 아는 것이라고는 없었다. 올리비아는 클로이를 좋아했다, 단 하나의 명제가 성립함만을 알 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평생도록 사랑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던 것도. 그래서 이제 신은 올리비아에게 질문하러 간다. 그렇다면 사랑이 무엇이니? 올리비아가 그토록 아꼈던 클로이를, 신은 이제 올리비아를 대신하여 위하기로 했다.

클로이는 여전히도 올리비아를 향해 느릿한 편지를 보내고 있었다. 한 번에 한 장씩, 한 번에 한 단어씩 보내기에는 목애 매이고 숨이 막혀 차마 불가능했다. 클로이의 글자는 목에 박힌 가시를 콜록거리며 뱉어내듯 하루에 한 글자씩 올리비아를 향해 날아 들어온다. 그러나 이 편지에는 송신인만 있고, 수신인은 없다. 슬픈 일이다. 하지만 클로이는 그 사실을 모른 채 몇만 년이고 살아가며 마침내 편지를 완성해낼 것이다. 클로이가, 라고 마침표를 찍으며.

어떻게 하면 이미 없는 사람이 몇만 년이고 살아 편지를 전부 받아볼 수 있을까? 사람이 별이 되는 조건은 단 하나였다, 잊혀서는 안 되는 사람일 때. 물론 올리비아는 원하지 않을 것이 뻔했으나 신은 클로이를 위하기로 약속했다. 신은 올리비아를 하늘에 박으며 소망을 하나 함께 달았다. 고혹한 올리비아, 수명 다해 없어질 때조차 가장 화려하게 터져 끝을 내렴. 클로이에게 너는 가장 화려한 사람이었으니까.

신의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올리비아를 박아놓은 하늘은 다른 무엇보다도 시끄러웠다. 올리비아 주변의 별들은 연신 악을 써 대며 사랑해, 만을 외치고 있었다. 정작 당사자인 올리비아는 조용한데 말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동안 햇볕 안 드는 곳에 처박아놓고 외면해 왔던 올리비아의 마음이 발효된 것일 테다. 그 냄새를 맡은 다른 수다쟁이 별들이 대신 외쳐주는 것이겠지.

어쩌면 그것은 다른 것들의 목소리를 빌린 올리비아의 말인지도 모른다. 사랑을 고백해본 것은 옛날 옛적의 일이어서 이제는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조차 잊은 것이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사랑해.’뿐이고, 지을 수 있는 표정은 무덤덤함뿐이고. 그러니 어쩌면 이것은 부족함을 보이고 싶지 않은 올리비아의 마지막 자존심일 테다.

밤하늘은 이미 올리비아의 썩은 냄새가 퍼져 베인지 오래였다. 올리비아가 그토록 벽을 세우며 지키던 마지막은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똑똑한 올리비아의 유일한 소원일 터. 하지만 신마저 올리비아를 위해 등 돌린 상황에서 그것이 전부 무슨 소용이지?

그러니 썩어문드러진 올리비아여, 다시 한 번. 잔인한 말이다.

 

  1. 희극에 대한 고찰

신은 클로이에게 올리비아가 약속했던 희극을 줄 수는 없었다. 애초에 올리비아의 희극이 정말로 희극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신은 최소한의 희극을 보장함으로써 클로이를 위한다는 말을 지켜냈다. 어째서 외면했던 것이니, 올리비아. 올리비아는 클로이를 좋아했으며, 클로이의 최소한의 희극은 올리비아였다.

분명 올리비아는 신이 자신을 위해 클로이를 위해줄 것임을 알고 있었을 테다. 그러나 정확하게 무엇을 약속할지까지는 예측할 수 없었다. 올리비아는 희극이라는 이름의 밧줄로 목을 맨 인간. 올리비아는 가엾은 희생양인가, 비관하는 자살인가? 그 전에 우리는 희극이 무엇인지부터 다시금 물어야만 한다. 올리비아가 희극을 만들었는가, 올리비아가 희극이었나? 그 이름 하여 희극에 대한 고찰.

올리비아는 클로이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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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형

안녕하세요, 율오 님. 또 뵙네요. 반갑습니다. 어제 다른 소설을 읽었는데 오늘 소설은 이전 소설보다도 훨씬 정교하게 직조된 소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클로이를 사랑하는 올리비아의 다소 위악적인 내면성과 비극과 희극을 오가는 사유, 그리고 올리비아를 지켜보는 신의 시점이 함께 가득 담겨 있는, 현실의 에피소드를 담은 소설이라기 보단 알레고리적이며 신화적인 소설이었다는 생각이에요. 읽으면서 복합적인 역설적 테마들, 그리고 아이러니를 생산하는 사유의 겹들이 풍부했어요. 개인적으로는 재밌었고, 관념적인 문장들이 추상화된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어떤 비애감을 같이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기 위한 바벨탑이나 자살, 인간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신, 신과 불화하는 올리비아, 그리고 클로이에 대한 사랑과 올리비아의 자살이 등치되는 이 정황들이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았지만 문장이…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