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가득한 별에는 우주가 있고 우주의 심연에는 절망과 유혹이 존재한다.

 여기 한 아이가 있다. 순백의 옷을 입은 하얀 아이다. 그 아이는 별을 쫓는 희망이라 불린다. 그 아이는 별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온통 하얀 세상에서, 아이마저 하얘서, 분간이 안된다. 아이의 검은 눈동자만이 조용하게 빛난다. 별을 찾았다. 아이의 위에 별이 떠있다. 하늘마저 하얘서, 얼마만큼 높이 떠있는지는 모른다. 아이의 옆에 있던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른다.- 개구리가 아이에게 말을 걸어온다. "아이야, 아이야, 너는 왜 저 별을 가지고 싶어?" 개구리가 요란스럽게 개굴거리며 물었다. 아이는 인상을 조금 쓴 채 개구리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대답한다. "저 별을 가지면 내가 이 세상을 전부 가지게 될 것 같아서." 개구리는 개굴개굴 하며 웃는다. 비웃음이었다.  "그건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잖아." 깔깔, 개굴개굴, 거리며 웃는 개구리를 아이가 쏘아본다. "뭐? 날 무시하는 거야?" 아이는 개구리를 손가락으로 집어 저 멀리 던져버렸다. 그 새에 별은 다른 곳으로 달아나버렸다. 아이는 아, 하는 탄식을 내뱉으며 다시 별을 좇는다.

 여기 한 아이가 있다. 우주처럼 검은 암흑의 옷을 입은 검은 아이다. 그 아이는 희망을 회피하는 별이라 불린다. 그 아이는 희망을 피해 발걸음을 옮겼다. 온통 하얀 세상에서, 아이는 검었다. 아이의 하얀 눈동자만이, 조용하게 빛난다. 희망이 날 붙잡았다. 아이의 아래에 희망이 서있다. 땅마저 하얘서, 아이가 어디있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희망이 개구리를 멀리 던져버렸다. 아이는 개구리를 찾아 뛰었다. 희망의 탄식이 들린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개구리를 발견했다. "괜찮아?" 아이는 개구리에게 말을 걸어본다. "…." 개구리는 말이 없다. 마치 죽은 것 같다. 하지만 아직 온기가 있다. "나는 그 아이가 아니야." 개구리가 움찔 거린다. 역시 살아있었구나. "그럼 너는 누구야?" 개구리가 물었다. 그제서야 아이는 미소를 띄우며 대답한다. "나는 별이야. 개구리야. 아프지 않았니?" 개구리는 개굴 거리다가 고개를 젓고는 깔깔 웃는다. "뭐? 그렇게 검으면서 별? 별은 노란색이야, 그리고 밝지! 넌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아이의 눈망울이 슬프게 변했다. 그걸 본 개구리는 겅충거리며 달아나버렸다.

 여기 두 아이가 있다. 하나는 흑백이며, 하나는 목소리만이 존재한다. 흑백의 아이는 절망이라고 불리며, 목소리의 아이는 유혹이라고 불린다. 흑백의 아이와 목소리의 아이가 아무말 없이 길을 걸어간다. 하얀 길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잘도 길을 찾아간다. 흑백의 아이가, 부엉이를 발견했다. 이 곳은 낮인지, 밤인지도 분간이 되지 않는다. 그만큼 하얘서 눈이 아플지경이다. 부엉이는 다리를 다쳤는지, 아프다고 울고 있다. 분명 아프다고 우는 것이라, 아이는 장담했다. "부엉이야, 왜 울어." 흑백의 아이가 부엉이에게 말을 건다. 부엉이는 부엉부엉 운다. "울기는 누가. 나는 기뻐서 부엉거리고 있었어." 아이는 의아해하며 다시 묻는다. "그렇지만 너, 다리를 다쳤잖아." 부엉이는 코웃음을 친다. "그러니까 좋아했던 거야. 이 쓸모 없는 다리가 부러져 버렸으니까!" 부엉이는 그렇게 절뚝거리며 날아가버렸다. 그와중, 목소리의 아이는 작은 개미를 발견했다. 목소리의 아이는 개미에게 속삭인다. "개미야, 무겁지 않아? 그런 것 쯤은 혼자 그냥 다 먹어버려." 개미는 벌벌 떨며 목소리의 형태를 찾으려 두리번 거렸다. "누구야. 누군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아. 나에게는 먹여살릴 여왕님이 있다구!" 목소리의 아이는 혀를 한 번 차더니 다시 말한다. "여왕이라는 사람 말야, 자신이 하지도 않으면서 먹기만 하는 것이 괘심하지 않니?" 개미는 우물쭈물하다가 말한다. "하지만, 여왕님은 내가 모셔야할 개미야. 너 따위가 그렇게 말할 자격따위 없어." 개미는 그렇게 느릿느릿하게 가버렸다.

 별과 희망은 아주 오래 전, 우주를 찾아 떠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발견했을 때, 우주는 죽어있었고, 그 범인은 희망인 것으로 밝혀졌다. 우주를 남몰래 사랑하던 별은 희망에게 실망하며 등을 돌렸다. 희망은 아니라고 다급하게 소리치며 별을 찾았지만, 별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우주가 죽은 후, 이 세계는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하늘도, 땅도 하얗게, 하얗게, 결국 희망마저 그 슬픔에 하얘졌다. 별은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는데, 우주가 남긴 것인지 자신의 몸이 새카맣게 변해있었다. 별은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우주를 그리워하다가, 마침내 잊었다. 사람의 기억력에는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 잊고 싶지 않아도 잊는 법이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슬퍼할 이유는 없다.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 인간이 언제까지고 기억하면 책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별은 다짐한다. 잊어버린 그 존재를 위해 반드시 살아남아 행복하게 살겠다고. 하지만 행복은 그렇게 다짐한다고 해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행복이란 멀리 있지만 가까이 있는 존재였다. 어떤 한 철학자에 의하면 행복은 궁극적인 인간의 목표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진실되게 행복해 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행복은, 살아있을 때 찾을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을 암암리에 꿈꾸는 것이고, 불완벽한 존재기에 완벽한 것을 꿈꾼다. 그건 본능이다. 본능은 숨길 수 없으니까.

 목소리만 있는 그 아이는, 인어공주에게 몸을 잃어 목소리만 남게 되었다. 흑백의 그 아이는, 자신의 손으로 소중한 것을 죽여서, 그 피눈물이 몸에서 굳어 흑백이 되어버린 아이이다. 불쌍한 아이들이 아닌가. 그 아이들을 구원해줄 구원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구원자를 원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저 그 나락의 구렁텅이에서 나뒹굴 수 밖에 없지. 절망은 유혹에게 말했다. 만약 이 곳에 노숙자가 있다면 자신이 도움을 주어야 할까? 하고. 유혹은 "그 노숙자가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일어날 기미가 보인다면 1원을. 그 노숙자가 그 돈을 모아 자신의 욕망에 따르려고 한다면 2원을. 그 노숙자가 그 돈을 주는 나를 죽이려 한다면 3원을 주는게 맞는 거야." 절망은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째서 그렇게 나뉘는가에 대해서. 그런 우문에 유혹은 현답을 내놓는다. "그야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욕구를 따르니까. 이 세계에서 성실히 사는게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마치 체셔 고양이처럼. 불길한 웃음 소리를 남기며 사라졌다. 절망이 자신의 소중한 것을 죽였다고 말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절망의 오해일 뿐이었다. 그 인형은 그저 낡아서 찢어진 것 뿐이었다. 사람의 기억력에는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 왜곡하고 싶지 않아도 왜곡하는 법이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슬퍼할 이유는 없다.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 인간이 언제까지고 왜곡하지 않는다면 책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희망은 살아갈 의지를 잃었다. 자신이 정녕 우주를 죽인 것인가. 인간의 기억력에는 언제까지나 한계가 있다. 희망은 자신이 우주를 죽였다고 자신 스스로 몰아가고 있었다. 입을 서서히 닫아가고 있었다. 세뇌가 이렇게 무섭다. 세상은 우리를 세뇌한다. 그 세뇌에 당하면 그저 로봇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로봇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도 없을 것이다. 사람은 고결하지 않다. 인간은 고결하다. 무슨 차이냐 하면, 설명할 수 없다. 가볍게 말하자면 성악설과 성천설의 차이일까. 희망은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다. 이곳에 존재하는 인간 중에는, 유혹이 가장 사람다웠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동물이 인간성을 가지면 유사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인간보다는 인격체가 되라는 말이 떠올랐다. 희망은 사람을 죽인 시점에서 이미 인격체가 되지 못한 것이다. 희망은 그것을 부정했다. 자신이 죽인 것이 아니라면서. 제가 죽인 것이 아니에요. 라고 소리쳐보았자, 아무도 듣지 않았다. 희망의 말은 묵살되고 말았다. 희망은 억울했다. 우주는 자신이 죽인 것이 아니라, 자살한 것이었다. 희망은 그 장면을 목격한 목격자였다. 우주는 희망의 손에 칼을 쥐어주고는 말했다. "이제부터, 네가 범인이야. 알겠지…? 난 너가 죽인거야…." 희망은 얼떨결에 칼을 받아든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 칼을 든 모습을 유혹이 보았고, 범인은 희망으로 지목되었다. 희망은 나름대로 억울한 면이 있었다. 자신이 죽인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지금의 희망은, 모두의 말에 세뇌되어 살아갈 의지를 잃은 채, 우주가 자기 자신을 찌른 그 칼을, 들고 서있었다. 딱히 죽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모두가 죽으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은 운명이었다, 바꿀 수 없는 운명이었을 것이다. 희망은 칼로 자신의 다리를 찔러보았다.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그냥 '아프다'의 느낌 뿐이었다. 하얀색 바닥에 붉은 피가 묻어 물들어간다. 작게 웃음을 터뜨린다. 식은땀이 머리에서 줄줄 센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저 '아프다'의 느낌일 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희망은 그 칼을 자신의 다리에서 뽑아내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심장 쪽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가차없이 찔렀다. 푹 들어간다. 뜨겁다는 느낌이 든다. 어째서 피는 뜨거운 것일까. 살인자의 피도 결국엔 뜨겁다. 붉지 않은 피는 없다. 모두 똑같은 인간이기에, 피도 모두 똑같이 붉고, 뜨거운 것이다. 하지만 인간과 인격체, 그리고 사람은 각각 다른 존재이다. 그 세 생명이 모두 붉은 피를 가지고 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붉다. 하얀 공간에서 유일하게 색이 있는 것은 그들의 피 뿐이었다. 그 피로 이 공간을 물들이면 어떨까. 나쁘지 않은 생각인데?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는.

 희망이 죽었다. 모두가 애도를 표하지 않았다. 흰색의 바닥에 희망의 피가 물들어있다. 그곳을 다들 꺼려하였다. 왜나면, 희망은 살인자이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것을 뺴면 그것이 정말 말이 안되는 것이라도 진실이 분명하다. 희망은, 우주를 죽인 살인자가 분명하다. 그렇기에 희망은 인격체가 될 수 없었다. 희망은 내세를 믿지 않았다. 그러면 어디로 갈까. 내세를 믿지 않는 희망은 죽었다. 유혹만이 그를 위해 조금의 눈물을 흘려주었다.

 유혹의 이야기를 해보자. 유혹은 어디까지나 사람이었다. 인격체는 아니었다. 마치, 이상한 나라에 나오는 체셔 고양이마냥…. 목소리 뿐인 그 아이는, 인어공주에게 돈을 주고 자신의 몸을 팔았다. 유혹은 돈을 중요시 했다. 보수가 적으면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어째서 희망이 죽었을 때 눈물을 흘렸을까. 사람들은 생각한다. 돈을 받았을 거라면서. 하지만 돈을 받은게 아니었다. 유혹은, 그래도 인간적이었다. 인간적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각자 다 생각이 다르기에 서술하지 않는다. 눈물도, 웃음도, 이 곳에 있는 사람들과는 달랐다. 제일 사람다웠다. 유혹이 생각하는 그들은 그저, 인형일 뿐이었다. 유혹은 그런 사람들을 제일 싫어했다. 인형은 좋아했지만, 인형같은 사람들을 싫어했다. 그저 사람들의 지시에 따르는 그런, 그런….수동적인 인간들, 인형 같은 인간들, 어리석은 인간들. 그런 인간들을 유혹은 싫어했다. 어디까지나 유혹은 능동적인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유혹은, 인형 같은 사람들을 재창조하고 싶어했다. 우주는 그것을 알고, 유혹을 멀리했었다. 유혹은 그런 우주가 싫었다. 그렇지만 그 뿐이었다. '싫어함.' 그 뿐이었다. 우주는 수동적인 인간이었다. 삶 조차도 누군가가 하라는대로 살아왔다. 그런 우주에게 선택의 기회를 준 것은 유혹이었다. 살건지, 죽을건지. 유혹은 우주에게 선택하라고 강요했고, 그것이 거북하고 무섭고 껄끄럽고 당황스러웠던 우주는 그만 자살하고 말았다. 유혹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희망을 속이고, 희망에게 세뇌를 불어넣었다. 우주는 네가 죽인 거야. 너는 못된 아이야. 라고. 희망은 그것에 보기 좋게 걸려든 것 뿐이다. 희망은, 그랬다. 그래서 희망은… 그런 선택을 한 것이었다. 희망에게 있어 최선의 선택이었다. 모두가 애도를 표하지 않았다. 희망은 살인자이기 떄문이다. 희망은, 우주를 죽인 살인자가 아니다. 유혹만이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척 하며 비웃었다.

 모두가 살려달라고 아우성 치지만 어째서인지 쥐죽은 듯이 조용하다. 역설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어하지만 친해지고 싶어하지 않아 한다. 고슴도치 딜레마를 아는가. 사람은 결코 선할 수 없다. 선한 일을 하며 대가를 바라는 것이 사람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사라지면 이 세상은 건강을 되찾을 것이라 생각한다. 토끼마냥 귀는 커다래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잘 엿듣지만, 자신의 이야기는 정작 하려고 하지도 않는 그런 사람들은 사라지는 것이 더 낫다. 호흡을 손으로 가려서 멈추고…. 예쁘지? 아이가 깔깔 웃는 것을 보아라. 선량한 악마이다.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 재앙이다. 그런 사람은 과연 살 가치가 있는가. 정의란 무엇인가. 약자의 정의와 강자의 정의는 다르다. 무조건 빼앗는 것만이 정의는 아니다. 정의는, 나의 기분에 따라서 변질되면 안된다. 정의는 그런 것이다. 무수히 많은 철학자들이 정의를 논했지만, 그것 중에 맞는 정의는 없다. 틀린 정의도 없다. 사람이기에 생각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생각이 다르니까 정의도 다른 것이다. 선의 이상과 악의 이상이 다른 것처럼. 사람의 생각이 모두 같다면 이 세계는 이미 오래전에 멸망했을 것이다. 안 그런가? 세계가 멸망하는 것은 보기 좋겠지만 내 손으로 하는 것이 아닌 이상 의미가 없다. 유혹이 웃는다. 깔깔 거리며 웃는다. 사랑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결코 사랑스러운 웃음이 아니다. 아픔을 이겨내려는 웃음도 아니다. 께름칙한 웃음이다. 어둡고 차가운 웃음이다. 비가 추적추적 의연하게 내린다. 하나의 동선일까. 유혹이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유혹은 인어공주에게 몸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유혹이 어렸을 시절, 그러니까 인어공주를 만나기 전. 유혹은 그 마을에서 제일로 사랑스럽고 귀엽고 어여쁜 아이였다. 유혹은 나비와 놀고, 꽃을 머리에 꽂으며 놀았다. 바닷가의 산호를 주워서 모래성을 쌓기도 했다. 조개를 주워 귀에 가져가대며 깔깔 웃었다. 그랬던 그 아이가, 바닷가에서 발견한 것은 비늘이었다. 반짝 거리는 아름다운 비늘. 아이는 그 비늘을 줍기 위해 바다 안으로 들어갔고, 영악한 인어공주에게 잡혀 몸을 잃게 된 것이었다. 인어공주는 애써 상냥하게 웃으며 말한다. "아이야, 아이야, 사랑스러운 아이야. 나에게 그 몸을 주면,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주마." 아이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웃었다. "멍청한 인어야. 나는 필요없어. 모두가 날 사랑하는걸. 꽥꽥 거리는 그 목소리는 너가 가지는 것이 좋겠어!" 인어공주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오만한 그 아이를 애써 달래었다. "그러지 말고, 아이야. 이 목소리를 너에게 줄게. 그 몸을 나에게 며칠만 빌려주렴. 아이야. 응?" 오만한 아이는, 인어공주를 뿌리쳤다. 그리고 하는 말이 참 가관이다. "인어공주야, 널 회 떠서 먹어버리기 전에 닥치고 있는게 좋을 거야!" 인어공주가 단단히 화가 났다. 물 속에서는 인어가 더 유리하다. 인어공주는 그 오만하고 귀여운 아이를 먹어버렸다. 유혹은, 그렇게 목소리만 남게 되었다. 꾀꼬리처럼 아름다운 그 목소리만. 이 얼마나 웃기고 사랑스러운 이야기인가.

 안녕하세요, 저는 제 죄를 고백하려고 합니다. 저는 인간이 아닙니다. 염세주의자라는 말은 아닙니다. 인간이 아닌 제가 감히 인간을 이해하려 따라했습니다. 저는 인간을 죽였습니다. 살을 먹고 뼈를 갈아 마셨습니다. 홍차에 타먹으니 아주 맛있더군요. 그래요, 나는 살인자입니다. 어서 날 감옥에 가두는 것이 좋을 겁니다. 제가 죽기 전에 말이에요. 저는 괴로운 것을 참지 못합니다. 그렇게 괴로움에도 제가 살았었던 이유는,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잔인함과 추악함의 끝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이요. 하지만 저는 결국 인간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난해한 존재를 뽑으라면 인간일 것입니다. 어떻게 생겨먹는지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글러먹은 생명체인가 봅니다. 자신과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멍청이에 불과한가 봅니다. 어쩌다가 평범한 사람에서 사람을 죽인 범인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일은 제가 인간이길 포기하고 인간의 평범한 사고를 포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건 평범한 사고事故에 불과했습니다. 제가 사람을 죽인 것은 처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는 지금까지 계속 사람을 죽여왔습니다. 연쇄살인마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마음 속으로 죽임으로서 그 사람을 사람이라 보지 않았던 겁니다. 그것도 살인이라 부른다면 저는 연쇄살인마가 맞습니다. 저는 그저 인간이 되고 싶었던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던 겁니다. 제 고뇌를 당신이 알기나 한답니까? 제 몸부림을 알기나 한답니까? 인간이 되고 싶었던 하나의 몸짓을 기억하신답니까? 저라는 생명체는 도대체 뭘까요? 동물 이상 사람 이하인 이 미묘복잡한 생명체를 뭐라고 말해야할까요? 아아, 선생님. 그래서 인류는 도대체 무엇이죠? 도대체 그들은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며, 무엇 때문에 죽음을 꿈꾸며, 어째서 자신이 살아있다 자부하는 것인가요?  사실은, 자신이 책의 등장인물 중 하나일지도 모르는데, 인생의 주인공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어째서 그리 자부하는 것이지요? 아아, 나는 정말 그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몸이라는 것은 자신의 절망을 담아놓은 유리병에 불과하다고. 유리병을 깨뜨려 절망을 풀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먹겠지요. 단물이 흐르는 살, 그리고 오도독 씹으면 달달해지는 사탕과도 같은 뼈를. 저는 그저 인간을 모방하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합니다. 아, 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아니! 저는 사람이라는 것이 싫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사람을 따라한 이유는 말이죠. 그들을 죽이고, 죽고, 먹고, 먹히는 그런 아주 환상적인! 그런 것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굳이 제가 그러지 않더라도 이미 그러고 있더군요. 이렇게 우리의 목소리는 사라지게 되는 건가요? 비성충의 아름다움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니 슬프지 아니한가요. 그들의 세계는 어머니의 품 속처럼 아늑했지만 반대로 버림받은 아기 새에겐 끝도 없는 멸시와 조롱, 고통을 주는 모순적인 곳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곳에서 버림 받았습니다. 조롱에 고통, 그리고 비인간적인 행동. 그것이 저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더럽혀져 더이상 사람이 아니게 된 것입니다. 아훔이라는 발음을 아십니까. 시작과 끝을 상징하는 발음이랍니다. 저는 아, 하고 탄식을 내뱉으며 태어나 훔, 하며 입이 다물어져 죽게 되겠지요. 제 이야기를 들어주신 것부터 우리는 한 배를 탄 사람입니다.

 아아, 무슨 말을 해야할까요? 담소나 나누어 봅시다. 저는 사람을 쉽게 생각했고, 그들이 하등하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부러웠고 무서웠으며 가장 고귀한 것은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래서 자살을 꿈꾼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고귀한 죽음! 저에게는 과분한 죽음이지만 저는 아름답고도 고귀한 죽음을 꿈꾸었습니다. 다시 태어나 사람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그 미지의 생명체는 알 수 없었기에 무섭고 하찮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거울 보기도 꺼렸습니다. 사람인 척 하는 제가 거울 속에서 절 노려보는 것이 무서워서 피한 겁니다. 실제론 사람도 뭣도 아닌 것이 사람 흉내를 내다니, 이것 참, 옛날 이야기의 구미호 같군요. 그래서 전 거울이 싫습니다. 제가 다 드러나기도 하니까요. 이 세계는 거짓말입니다. 거짓말로 가득찬 세계입니다. 그런 세계에서 저는 진실을 찾고자 했고, 그래서 버림 받았습니다. 저는, 저는 살아갈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과연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 것일까요? 그 해 13월의 겨울은 너무나 아득해서 제가 죽을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13월이 없습니다. 악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죽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귀를 틀어막아도 들리는 그 소리도 이제는 없습니다. 나는, 나는 삶을 포기하고 싶습니다. 이 가련한 생명을 죽게 내버려 두실건가요?  … 유혹은 구술사를 시켜 글을 쓰게 한 후, 그 글을 읽어보았다. 유혹은 사실 이 세계를 사랑하지도, 사랑할 마음도 없었다. 유혹은 사실 남 몰래 자살을 꿈꾸며 누군가의 죽음에 축복을 보냈다. 그런 가련한 아이가, 이렇게 된 것에는 무슨 이유에서일까. 사람들은 유혹이 미쳤다고 말한다. 몸이 없으니 목소리로 사람을 꼬셔서 불순한 짓을 하게 한다고 믿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유혹은 그런 존재가 맞으니까. 하지만 유혹은, 자신이 그런 존재라는 것이 무척이나 싫었다. 조금 더 완벽하고, 능동적이고, 아름다운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저 그런 하나의 몸짓이었을 뿐이며, 유혹은 사랑하는 존재에 대해 무감각했다. 사랑이라는 감정도 모른채 그저 그렇게 살아간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마음이 매말랐다는 증거이며, 누군가를 좋아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녀석은 사랑하는 존재에 대해 무감각했다. 자신이 사랑하는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그렇게 대하는 그녀석은. 잘 모르겠다. 우리는 그런 상실, 결여를 '애한愛寒증후군'이라 부른다. 차가운 사랑이라는 뜻으로, 사랑이 식어버린, 얼어버린 사랑. 그런 뜻으로 통하는 듯 싶다. 그래, 유혹은 애한증후군이었다. 사랑의 뜻을 모르는 가여운 아이. 받기만 하고 주는 법을 모르는 가여운 아이. 그 아이를 우리는 모른다. 손으로 귀를 막아버린 탓이겠지. 유혹은 목소리 뿐이었으니까. 불쌍한 그 아이는 그저 목소리 뿐이고, 인어공주는 그 아이의 몸으로 살아간다. 그 아이는 목소리가 참으로 매혹적이라 다들 그 아이를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목소리에 한번 빠지면 나올 길이 없어. 그 목소리에 빠지지 않게 조심해. 다들 그렇게 말한다. 그 목소리에 빠진 인간은 죽는 것이 분명해. 그렇게 다들 말한다. 하지만 그건 거짓이 분명했다. 아마도. 거짓이어야 한다. 유혹은 누군가를 죽을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런 그 아이가, 우주를 방관했다. 방관이라는 것은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죽은 그 아이는 행복할까? 방관자는 발 뻗고 잘 수 있을까? 아마도. 잠 자는 것에 지장은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잠의 바다는 유한하고 넓으니까. 한 번 빠지면 잘 나올 수 없을 만큼. 그러니까 악이라 불린다. 잠을 자는 것은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죄인인 셈이다. 나는 하나의 결점도 없는 생명체가 되고 싶다. 하지만 살아있는 생명체는 그럴 수 없다. 모두가 하나씩은 죄를 저지르고 결점을 만든다. 그것이 인간이고, 우리들이다. 어째서, 어째서라고 물어도…그것이 인생인걸. 어쩔 수 없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어리석은 것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삶이다. 사랑해. 거짓말을 읊어보고. 흐르지 않는 눈물도 흘려보고. 그러면서도 밝게 웃는것이. 우리들이다. 방관자가 나쁜 건 아니지. 유혹은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했다. 자기합리화란 정말로 훌륭한 것이었다. 뭐든지 자기자신에게 맞추어 생각하는 것이 옳았다. 타인에게 초점을 맞추면 자신은 망가지게 되어있으니까. 망가지는 것보단 다른 사람들에게 뒷말을 듣는 것이 나았다. 어쨌든 그걸로 죽지는 않으니까. 가시처럼 아팠지만, 죽지는 않으니까. 어쨌든 죽지 않으니까다. 죽지 않으면 장땡. 이라는 말도 있듯이, 구태여 자신을 갉아먹으면서까지 착한 아이가 되기는 그 아이가 너무 비뚤어졌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비뚤어져서 제대로 된 사고도 못하고 그래서 그래서 그 아이는 그래서 그랬던 거다. 인과응보는 없고 새옹지마일 뿐. 오늘 하루 어땠어? 라는 진부한 질문과 함께 춤추는 피날레.

 그러다가 망가져서 죽어버려. 같잖은 걱정은 필요 없어. 미안해, 내가 너무 꼬아져서 베베. 베베 꼬여서 그렇게밖에 듣지 못하는 나를 용서해. 유혹은 사실 그렇다. 유혹은 사실 그냥 살아가는 센스가 없는 것 뿐이다. 아부하는 법을 억지로 배워서 길바닥의 싸구리 사탕처럼 달콤하게 써먹는 것 뿐이다. 부끄럼 많은 생을 살았다든가, 거짓말을 한다든가, 유혹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별은 상냥하고, 희망은 밝은 척 한다. 절망은 어딘가 불안해 보이고, 우주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베베 꼬인 듯 보인다. 그래서 유혹은 우주를 좋아하면서도 싫어했던 것 같다. 우주와 있으면 자신이 죄인이 된 것 같았다. 우주는 사람을 필요에 의해 쓰는 경향이 있다. 정작 유혹이 필요할 때는 거부했다. 그런 우주를 이해한다. 그렇지만 힘들다. 말하고 싶지만 우주는 상처를 잘 받는다. 그래서 말할 수 없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유혹은 한 발짝 물러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많이 지치는 것도 아니고, 분명 자신이 잘못한 것도 있으니 윈윈인 관계…아니, 루스루스의 관계였다. 서로 지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별은 사실 상냥하지 않았다고 우주가 그랬다. 겁이 많고 경계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사람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니 중간과정은 아무래도 상관 없다. 희망은, 희망은 좀 더 자신을 들어낼 필요가 있다. 우울한 자신도 좋아해주는 사람은 어디에든 있을텐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라고 묻고 싶다. 그러면 분명 웃어 넘어가겠지. 별은 어딘가 불안해보인다. 항상. 늘 사랑에 굶주린 듯 보였다. 그렇지만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건 그 아이가 제일로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나는 네가 모두에게 사랑받길 원한다. 우주는, 우주는 내가 죽인게 아니다. 우주를 싫어하지 않는다. 사실 마음 한 켠으로는 싫어하고 싶어도 내가 잘못한게 더 많다. 항상 미안한 마음인데, 아픈 건 어쩔 수 없다. 그냥 살아가는 센스가 없어서 그런 것 뿐이겠거니, 하고 넘긴다. 사람은 어째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버림 받는 것을 두려워 하면서 막 대하는가. 유혹이 그런 부류였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어째서인지 막 대하게 되었다. 왜인지는 모른다. 베베 꼬인 사람의 특징인가보다. 요즘 기침이 심해졌다. 기침 하다가 피가 나왔으면 좋겠다. 선홍색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따위의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다. 아니, 나쁜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보다, 유혹은. 이렇게 나쁜 사람도 없다. 그러니 유혹은 죄였다. 존재 자체가 죄였다. 사람들이나 홀리고 다니는 유혹은 사실 죄였던 것이다. 지은 죄는 태어난 것. 그냥 사람들이 그렇게 단정 지은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반박하지 않는다. 그렇게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게 되겠지. 어쩔 수 없다. 다수의 선택이 옳은 것이니까. 팔이 잘리고 다리가 잘려도 그들은 잘못한게 없다. 다수가 옳은 것이니까. 그렇게 해서 생긴 파열음 조차도 유혹의 죄가 되었다. 그러니 아프다 울면 안됐다. 울음은 최후의 수단이다. 어린 아이의 울음에는 사람들이 옴짝달싹도 못하니까 그것은 최후의 수단이다. 커터칼은 괜찮다. 유혹아, 너 스스로 죽이는 것은 괜찮다. 사람들은 오히려 기뻐할테니까. 자해는 괜찮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어차피 너의 아픔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자살은 괜찮다는 말이다. 사실 솔직함이 필요한 희망이 아니라 유혹 자신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유혹은 자신을 생각하는 법을 몰랐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데 그딴 걸 어떻게 안담. 안 그런가? 사람은 누군가가 알려줘야 배우는 생명체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가끔 알려주지도 않고 스스로 깨우치라고 한다. 그래놓고 하지 못하면 마구 타박하곤 한다.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유혹에게 생사를 알려주지 않았다. 아무도 그 아이에게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숨만 쉬면 사람인가요? 라는 질문에도 아직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요. 죽는 법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어쩌라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사람인가요. 라는 질문에는 '그러면 네가 사람이지 무엇이겠어?' 라는 조롱만 안겨주었다.

 유혹은 우울증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살아갈 수 없는 것 뿐이다. 방법을 모르는데 어떻게 살아가는가. 아무도 살아가는 방법을 몰라서 유혹에게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유혹은 가르침을 원했다. 유혹이 죽고 싶은 이유는 자신이 죽인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 죄를 자신의 생명으로 속죄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자기망상일 지도 모른다. 유혹이 죽인 사람은 사실 없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밤에 자다가 자신의 목을 제 손으로 졸라본 적이 있는가. 무의식적인 그 행동은 자신의 죄악감에서 나왔다. 유혹은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다. 방법도 모르고, 이젠 너무 지쳤다. 그러나 유혹은 죽는 방법도 모른다. 그래서, 그래서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한 채로 어중간하게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죽는 방법은 대충 배웠다. 뉴스와 신문, 그리고 각종 매체에서 항상 다루는 것이 죽음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사람들은 시작을 다루지 않고 끝을 다루는 것일까. 시작이 더 중요한 것 아니었나? 이래서 사람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알 방도가 없다. 그래서 포기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도 알 수는 없을테니. 뉴스나 봐야지. 오늘도 사람이 죽었다. 그것을 눈에 담는다. 그리고 배운다. 사람이 떨어질 때의 각도와 몸선, 그리고 높이와 무게를 배운다. 사람이 입수할 때의 물 수질과 깊이, 무게와 사람의 유무를 배운다. 그렇지만 사는 것은 이렇게 쉽게 배울 수 없다.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더 쉬운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째서인지는 유혹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시작보다는 끝이 더 쉬운 법이다. 게임의 회원가입보다 탈퇴가 더 쉽듯이. 그냥 그런 것이다. 유혹은 자신이 배운 것을 써먹기를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죽는 방법도 써먹었다. 빈번히 실패했지만 그 아이에게는 좋은 실험이었다. 죽으려 할 때마다 사람들은 유혹에게 왜 죽으려고 하냐며 묻는다. 그러면 말문이 막힌다. 어차피 이 사람들은 내가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할텐데, 어떻게 말을 해야하지. 그렇지만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되기는 싫어. 아아아아아. 그렇게 머리가 복잡하다보니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웃으며 어물쩡 넘기고는 한다.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배제 당하면 기분이 나쁘다고들 한다. 그런데 그 사람, 자신의 행실은 생각하고 말하는 걸까? 웃긴 이야기다. 어째서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지 않고 말하고, 행동하며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어차피 혼자라면 모르지만 사람은 절대 혼자일 수 없다. 살아있다고 우는 사람도 있고 살아있다며 기뻐하는 사람도 있는데, 서로를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저 그는 그인 것이다.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그냥 겉에서 맴도는 관계를 유지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사람들은 하지 못할까. 유혹은 생각한다. 아마도, 인류애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유혹은 결론 내렸다. 쉽고도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각자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그들은 살아가는 것일까? 물어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살아가는 이유가 없다고? 이유가 없는 삶은 완벽하지 못하다. 아, 그래서 사람은 불완전하다고 하는구나. 불완전은 완전을 따라할 수 없다. 그렇기에 더욱 완벽하려고 한다. 바보같아. 그냥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생각해보아라, 자신의 처지를 모른채 아등바등 거리는 모습, 이 얼마나 바보같은가. 자신의 처지를 알고 납득하고 수용하면 알마나 편할까. 안 그런가? 유혹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수다소리, 그리고 담배냄새 -그 아이가 어떻게 담배 냄새를 맡을 수 있는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 를 맡았다. 흥미롭구나. 웃으며 사라진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마치 체셔 고양이 마냥.

 희망이 죽은지 하루가 지났다. 세게는 평화롭게 돌아간다. 이제 아무도 죽지 않을 거라면서 다들 안심하고 있다. 살인자가 사라졌으니 이제 아무도 죽지 않을거야. 우리는 영생을 살아갈 거야. 그렇게 모두가 안심하고 있다. 별은 피할 상대가 사라졌고, 절망과 유혹은 죽음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화기애애하고 있을 때, 유혹은 사라졌다. 사라진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그 아이는 목소리 뿐이었으니 사라져도 모르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는 존재다. …. 좋은 것일까? 유혹은 떠난 게 확실하다고, 그의 단짝 절망이 말했다. 별은 믿지 않았다. 우주와 희망,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유혹까지. 셋이 사라졌다. 우연일까 운명일까. 후자에 가깝다고 본다. 어차피 모두가 같이 행복할 수는 없는 법이다. 다같이 살아갈 수도 없는 법이다. 인연이 있으면 이별이 오는게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눈물은 아껴둔다. 나중에 모두가 모였을 때, 울 수 있도록, 모아둔다, 아껴둔다. 미련한 이야기지만, 별은 희망이 죽은 직후 매우 후회했다. 조금 더 잘 지냈으면, 하는 자괴감에 빠져지냈었다. 절망은 모습을 잘 보이지 않는다. 단짝인 유혹이 어디론가 사라졌기 때문일까. 별은 위로도 아닌 위로를 절망에게 해준다. "유혹은, 자신의 몸을 찾으러 갔을 거야." 그리고는 등을 두드려주었다. 절망이 히끅 거리며 되묻는다. "어째서일까? 난 목소리 뿐인 유혹도 정말 좋은데." 별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하던지 간에 자신은 절망을 위로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이 너무나 아파서,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다. 누군가는 후회하고, 누군가는 울면서 떠나간 이를 찾는 것이 현실이다. 정작 떠나간 이는 아무 생각도 없을지 몰라도, 남겨진 이는 매우 슬프고, 두려워한다. 이제 누가 내 곁을 떠날까? 라는 생각에 빠져서는 몹시 괴로워하며, 민감해진다. 떠난 이의 생사도 모르면서 살아있길 원하는 바보같은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학자들은 아름답다고 한다. 유혹은 학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정작 아름다운 것은 지나치면서 하찮은 것에만 아름답다고 칭호를 붙여준다. 그래서 붙여진 칭호가 사람인가보다. 사람은 어째서 아름다울까. 불완전해서일까. 불완벽의 아름다움이 있는걸까. 유혹은 잘 모른다. 그야, 몸이 없으니 느끼지 못한다.

 여기는 어디지? 아, 심연이구나. 나는 지금. 내가 없어서 다들 행복할까? 그렇겠지. 나는 살인자야. 그를 죽인 나는 살인자야. 그 상냥한 아이를 내가 죽였어. 하하, 나는 정말 악질이구나. "그걸 지금 알았니?"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분명 심연의 끝일텐데. 누군가가 있는걸까? "걱정 마.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아." 또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나는 그 목소리에 홀리면 안 돼. 안되는 거야. 그러니까…저리 가. 제발. 나는 살인자야. 괜찮아.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 목소리, 목소리. 홀려도 되는걸까. 라고 생각할 때는 이미 늦었다. 나는 그걸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 걸려든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상관 없지 않은가. 희망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유혹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그 아이는 그 목소리를 따라 더욱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희망은 그렇게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정신마저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렇게 될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프다. 아픈게 당연하지. 그건 그 아이의 업보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유혹은 그런 면에서 잔혹했다. 한 치의 죄악감도 없는 것일까. 그건 그 아이만이 알고 있지. 우리 우매한 사람들은 알 수 없다.

 "엄마, 이게 끝이에요?"

"끝이란다. 아가야,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까?"

"엄마, 유혹은 자신의 몸을 찾으러 갔는데, 그 뒷 이야기가 궁금해요."

"그건…유혹은 몸을 찾지 못했어. 왜인지는 맞춰보렴."

"아, 엄마 너무해!"

"그렇지만 다 알려주면 재미가 없잖니?"

 유혹은, 사실 몸이 없다. 그저 헛도는 소문일 뿐이었으니. 그러니 그 아이가 몸을 찾으러 갔다는 이야기는 그저 희망고문일 뿐이다. 몸이 없는 아이는 몸을 찾을 수 없다. 태생부터 없었는데 어떻게 찾을 수 있으랴. 그러니 멍청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하지만 유혹은, 몸이 없는 대신 우리 주변에 존재하기도 한다. 죽음의 유혹. 자살의 행복에 저항하는 민중들의 행복. 그 행복에 섞여 자살을 유도한다. 유혹은 그런 아이니까. 유혹이 나쁜 아이인 것만은 아니지만, 조심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 죽기 싫다면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 자살이라는 단어를 품고 살고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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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형

안녕하세요, 김이름 님. 반갑습니다. 이 소설은 다소 긴 제목의 단어들, 희망과 유혹, 우주, 심연이라는 단어들을 의인화해 제목의 내막을 풀이하는 소설로 읽었습니다. 제가 느끼는 매력적이었던 부분은 이 소설의 이미지들, 인어나 부엉이, 개구리가 등장해 인물과 독특하고 재밌는 대화를 나누는 지점들이었어요. 동화적이기도 하면서 시적인 정서 또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쉬웠던 부분을 찾자면 이 소설의 사유들,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 수 없는 서술자의 사유가 다소 자의적으로 서술되고 있었어요.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진술이 빽빽하고 비현실적이며 극단적인, 또한 관념적인 생각들을 나열하고 있는데 어떤 부분은 공감하거나 매력적인 긴장감을 전해주었지만 그렇지 않은, 논리적으로 설득되지 않거나 감정이 과잉된 부분이 다소 무분별하게 뒤섞여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희망과 유혹이 서로 다른…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