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 른글

 그 누가 작가는 높은 에너지를 무겁게 쓰는 사람이라 했던가. 그래서인지 남들이 슬플 때면 힙합을 춘다며 농담을 주고받을 때 나는 방 안에 어두컴컴히 앉아서 글을 썼다. 꼭 낮이면 글이 안 써졌다. 에너지가 배로 가야 할 것이 폐로 간 것처럼 둥실 뜨기만 했다. 참 글은 쓰고 싶을 때 안 써졌다. 써야 할 때도 안 써졌다. 대신 기분이 축 처질 때 눈물 대신 흘렀다. 바로 지금처럼. 눈물 대신 흐른 글이 내 감정을 충분히 적시고 나면 글은 끝났다.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그 무언가도 남기지 않은 채로 보여줄 수 없는 글이 되어 노트 귀퉁이에 남았다. 내가 이때까지 봐 온 다른 눈물들은 공감과 위로를 불러왔었는데. 이별을 당한 눈물은 내 위로를 이끌었고 책임감에 휩싸여 고통 받는 눈물은 다른 이들에게 에워싸졌는데. 내 눈물은 보여지지도 못하는 상태로 항상 흘렀다. 아직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이 문제가 해결 나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래서 주구장창 같은 서론들만 다른 문장들로 흐르는 것일까. 완성되지 않은 눈물도 읽게 할 방법은 없을까. 이 질문들이 글쟁이로 살아가고자 했던 내 인생의 숙명 같은 것인가. 잠시 동안 글을 내팽개치려 했던 나에 대한 벌인가.
 초등학교 때부터 난 글을 사랑했지만 그를 다른 사람들에게 내비치지는 않았다. 왜 꼭 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내향적이고 무거운 분위기를 가졌다고들 생각하지 않는가. 되려 억울하기도 했다. 내향적이고 무거우면 친구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글을 좋아하는 것이 조금은 부끄려워질 때도 있었다. 차라리 남처럼 운동을 좋아했으면, 남처럼 춤을 좋아했으면. 작가는 엉덩이가 무거워야 하는 직업이라는데 난 행동하며 살고 싶었다. 밝은 글을 쓰려면 높은 에너지를 가볍게 써야 하지 않나? 자문자답하며 설득하며 살았다. 그래도 그때는. 세상을 느끼던 나는 만지는 것이 글감이고 보는 것이 글이었다. 흐르는 것이 아닌 보는 것이 글로 가득 찬 세상은 참 행복했다. 높은 에너지를 밝게도 쓸 수 있었고 흐르지 않는 결론 있는 글을 썼다. 중학교 초창기에도 나름 그랬다. 당당하게 글을 지을 시간이 주어질 때면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한 능력을 인정받았다. 무슨 문장이 어떻게 왜, 잘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저 기분이 좋았고 상장을 떠나 누군가가 내 글을 읽는 것이 좋았다.
 문제는 이사였다. 주변인이 되는 일은 끔찍했다. 내 모든 것을 바뀌게 했다. 특히 많은 글을 흐르게 만들고, 흐르는 글 이외의 글을 쓰는 법을 잊게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무렵에는 글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엉켜버린 비관들 사이에서 내가 무조건 읽어내야만 하는 글이 생겼다. 시간 안에 읽어야 하는 글이 생기고, 안 읽히는 글이 생겼다. 무섭다는 생각은 한 번 든 순간부터 쭉 나를 옭아매었다. 숨이 막히게 했다. 작가가 되기 위해 싫은 글을 해야 했고 그 싫은 글은 역으로 나를 옭아매었다. 순간 등골이 서늘했다. 작가가 되었을 때도 내 쓰고 싶은 글이 아닌 싫은 글을 계속해야 하는 순간이 생긴다면, 내가 글에 질려버려 질식하게 된다면 나를 심장 뛰게 하는 일이 없어지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이르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 무렵 내게 원숭이 한 마리가 다가왔다. 네가 쓰고 싶은 글만을 쓸 수 있는 직업은 네가 세상을 느낄 여유를 주지 않아. 그 여유를 위해 나는 글을 배우는 것을 포기했고 다른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되 글을 취미로 가지는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잘하고 좋아하던 것을 주로 삼던 내가, 못하고 흥미 없는 것을 주로 삼는 것은 큰 어려움이 함께 했다. 글을 잃을까 했던 선택이 나를 잃게 했다.
 한참을 방황할 때, 학원에서 싫은 글들을 꾸역꾸역 먹고 있을 때 한 글이 왈칵 내 고개를 붙잡았다. 지금은 제목조차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지만 싫고 무서운, 배워야만 했던 글들 사이에서 머리 아닌 가슴으로 들어온 그 글. 문장은 안 남더라도 이야기를 가슴이 기억하는. 꼭 글이 아니더라도 가슴으로 와닿는 그 이야기가 좋았다. 글이 아닌 이야기로 생각이 미치니 세상이 모두 이야기로 보였다. 이야기를 꿈꾼다면 어찌 여유도 챙기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날로 나는 이야기를 꿈꾸기 시작했다. 따라서 우선 꿈을 꾸기 위해 다시 꾸역꾸역 글을 먹기 시작했고 먹은 글들을 마침내 풀어놓았다.
 그 후 나는 다시 길을 잃었다. 지금처럼 여전히 눈물만 쓰고 있다. 꾸역꾸역 먹은 탓에 탈이 나버린 것인지 글이 흐르기만 한다. 사람들이 읽어줬으면 하는 글들이 주체 없이 흐르는데 끝까지 흐르지는 못한다. 나도 글도 서로 끝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글에 꼭 정해진 끝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아니 사실 없어도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이유 없이 헤어 나오지 못해서. 질문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답을 아직도 찾으려 헤매고 있다. 그래서 이 혼란을 흘린다. 글에 대한 내 모든 것을 복잡하게 얽힌 채로. 흐른 글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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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원포님. 첫 만남 반갑습니다. 글쟁이로 살아가기를 꿈꾸고 계시군요. 앞으로 수필 게시판에서 자주 뵙기를 바라겠습니다. 제목을 ‘흐 른글’로 쓰셨는데요, 띄어쓰기를 의도하신 것이 아니라면 수정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데 어려운 점들을 적어주셨네요. 글쟁이로 살기를 꿈꾸는 분들이라면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우선은 ‘흐르는 글’에 대한 내용이 좀 더 명확하게 묘사되면 좋겠습니다. 작자의 감정을 여과 없이 그대로 쏟아낸 글이라고 이해는 됩니다만 ‘참 글’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싶습니다. ‘시간 안에 읽어야 하는 글’, ‘안 읽히는 글’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지요? 꿈을 꾸기 위해 꾸역꾸역 글을 먹은 것을 마침내 풀어 놓았지만 그 후 다시 길을 잃은 이유는 무엇인지요? 내게 다가온 원숭이는 무엇을…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