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으로 보내는

저승사자님 보셨나요 삼신할미가 저에게 죽음을 죽이고 태어나라고 하셨어요

 

아이가 태어나서 울음을 터트리는 까닭은

손에

낯선 피를 묻히고 와서일 거예요

 

저승사자님 나도 죽으면 무덤이 만들어지는데 없어져버린 죽음의 무덤 좀 만들어주세요 불쌍하잖아요

 

그 말, 세상에 찔려 몸부림치게 될

나를

미리 보고 와서 한 말인가요 가장 불쌍한 것은 나이지요

 

사람은 가운데를 축으로 한 데칼코마니가 아니라고 하는데

내 어깨에

곧 맞이할 삶의 죽음과 내가 없애버린 죽음의 시체가 양쪽으로 놓인 탓인가요

 

저승사자님 내 어깨에 왜 무덤을 만들었나요 갓난아기 시절의 살인을 나는 감당할 수 없어요

죽음을 원하는 사람은 삶의 죽음이 놓인 쪽으로 삶을 원하는 사람은 죽음의 시체가 놓인 쪽으로 몸이 기울어진다는데 내 몸은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나요 이럴 줄 알았다면

죽이지도 않고 태어나지도 않았을 거예요

 

저승사자님 이것이 정말로 살인을 저질러야 할 만큼 가치 있는 삶인가요 나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어느 날 삶의 무덤을 토닥거리며 만들어주고 있는 나를 본다면

저승사자님

내가 비뚤어지지 않게 두 무덤을 모두 내려주세요

 

왜냐하면 슬프게도 오늘은 삶을 죽이는 것에 실패했거든요

 

필요 이상으로 낭만을 좋아하시는

삼신할미께

세상은 두 번의 살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도 전해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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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경

율오님 안녕하세요. 다시 만납니다. 시가 몰라보게 달라졌네요. 방향성이 좋습니다. ‘죽음’이나 ‘삶’ 같은 추상적인 단어가 등장하는데도 전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느껴지거든요. 아주 인상 깊었어요. 다만 ‘삶의 죽음’, ‘죽음의 시체’란 명제가 아직 더 구체적일 필요는 있어요. 저승사자나 삼신할미에게 말하는 방식이 유효했으니 군데군데 추상어 대신 더 구체적인 현실의 상황을 묘사해보겠어요? 화자가 말하고 있는 ‘공간’ 혹은 ‘배경’에 대해서도 한 번 고민해보시고요. 여러모로 기대되는 바입니다. 그럼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