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멍하다.
글자들을 뽑아내어
하나의 소설로 자아내던 머리는 몽롱하다.
잡힐 듯 말 듯 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의 끝자락을 쫓아
손을 뻗는다.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빈 종이가
공허하게 펄럭인다.
아직도 갈피를 알지 못하는 펜은
그저 흔들릴 뿐이다.

흔들린다.
흔들리며 피지 않는 꽃 어디 있으랴 지만
뿌리 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내 글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뿌리가 깊게 내려가 영양분을 충분히 빨아들일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저 내 머리 위에 뿌리내린 이 글은
새싹 정도 겨우 뻗어낸다.
광야에 피는 꽃처럼
금방이라도 모랫바람 타고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상상력들과
한 줌 아니 한 방울의 시상들이 햇빛에 증발해버린다.
그러다가 내 머릿속은 허허벌판에, 삭막한 모래사막이 된다.

모래사막.
그 건조하고도 차가운 땅의 고향.
모래성 마냥 무너지는 나의 소설들이
이곳에서 마음 놓고 부서진다.
한 줌의 흙으로 되돌아간다.
지나가는 바람에 실려
멀리멀리 날아갈 수 있을까.
그러다가 저 멀리 생명의 땅에
소중한 강물에 몸을 담그고
생명을 품어볼 수 있을까.
한 생명.
그저 온 마음으로 품고 길러내어
이 세상에 내보낼 때
커다란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인생의 내리쬐는 햇볕 막아주는 그늘이 되어줄 수 있을까.

그늘이 된다.
쉼터가 된다.
쉼 그 자체가 된다.
누구라도 올 수 있지만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위로와 평안으로
그들을 품어주자.
하루에 자신을 지탱해 주는 것이라고는
지하철의 흔들리는 손잡이뿐인 그들에게
그들을 붙드는 커다란 팔이 되자.
삭막한 보고서들을 먹고 자라나는 그들에게
그들을 적시는 시원한 빗방울이 되자.
이제 그들 위에 내리자.
그들을 적시자.
그들이 숨 쉴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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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국

안녕하세요, 별하루라님. 처음 뵙네요, 반가워요. 한꺼번에 많은 시를 올리셨네요. 연말 결산인가요? 한 해 풍성하게 보내셨는지 모르겠네요. 편편히 댓글을 달고 싶지만 그러기엔 여유가 좀 부족해 묶어 다는 방식으로 하겠습니다. ‘그냥’ – 부사어를 덜어내어 감정을 좀 뺐으면 좋겠습니다. 멍하다, 몽롱하다, 흔들린다 등 술어로 표현하지 말고 이를 그려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인용된 부분도 빼고요. 비유도 안일하게 쓰인 느낌입니다. 좀 더 팽팽한 긴장감이 생길 수 있도록 표현을 신경 썼으면 해요. ‘짓다’ – 너의 온기, 너의 진심, 너의 사랑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흑백사진’ – 흑백사진의 내용을 알 수 없네요. 그러니 보랏빛 추억에 공감하기 어려워요. ‘한숨’ – 재밌는 상황이 될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적었으면 합니다. “그대와의 추억”이란…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