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량화 작업 (수정)

점호가 끝났습니다 공부할 사람은 스터디룸으로 이동하세요 습관처럼 나오는 새벽 자습에 대한 투정 말은 무게를 갖지 않는다

오늘의 나는 열두 시 땡 치며 이미 죽었어
이후에 공부하러 나가는 것은 썩은 내 나는 육신
비척거리며 마치고 돌아와서는 영혼 위에 공부한 것들을 덧씌운다
하루에 하나씩 만들어지고 폐기되는 일회용 영혼들

새벽 공부는 중요하지 않아 낮에 공부하고 밤에 자야지 그러면 대답한다 바꾸지 못하는 것은 몸뚱어리뿐인 걸요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부정인가 아니다 방부제로도 막아지지 않는 악취 때문에

샤프를 들고 어제의 뇌를 사각사각 떼어내어
지금의 나에게 오늘의 영혼에게 유일하고 그대로인 손에게 뿌린다 먹인다 단
소화하지는 말 것 입에 한가득 물고 있다가 시기적절하게
뱉어낼 것

시험 답안은 쓰는 것이 아니라
토해내는 것이지요
오늘을 전부 잊고 가벼워진 채 공복에 또 다시 시작한다면
내일은 어쩌면 더 많이

시험 중인 오전 작성해 낸 서술형 답안에서는 구토 냄새가 났다
그날 오후 지식을 씹지 않고 삼키는 입 속에서 썩은 살점이 함께 떨어져 삼켜지는 걸 느끼고
방부제 탈탈 영양제 탈탈 시험지까지 악취를 풍기면 안 되니까

요즘 애들은 학學만 알고 습習을 몰라 어느 날 교수님이 전하신 말씀이었다 그거 방부제 때문이에요 몸이 썩지 않는 대신 소화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스터디룸으로 이동하세요 오늘 자습은―
당연히도 새벽 3시까지겠지 다들 아는 사실
말은 무게를 갖지 않지만

양손 가득 무거운 책을 들고 방을 나서는데
정체 불명 무언가의 무게에 질식할 것 같아 켁켁거렸더니 공부한 것이 툭
튀어나와 버렸다

수월하게 책 몇 권을 들고 복도를 돌아다닌다 어떤 것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도 그런 게 우리는 가벼워지는 법만을 배웠잖아


*https://teen.munjang.or.kr/archives/111707 수정 이전의 글입니다. 할 일에 짓눌려 언제 숨을 돌리는 것이 좋을지도 잘 모르겠는 나날들이에요. 날씨가 많이 춥고, 독감도 유행인 듯 한데 건강 잘 챙기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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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국

안녕하세요, 율오님. 처음 뵙네요. 반가워요. 수업시간만큼 긴 자습시간에 짓눌려 있던 어느 시기가 떠오르면서 저도 모르게 휘청했네요. 그런 점에서 시 잘 읽었습니다. 권민경 멘토님이 남긴 말도 읽어서 그런가 여전히 ‘영혼’이라는 시어가 눈에 밟히네요. 영혼과 육신이 갖는 의미가 제한적이어서 이런 시어는 시를 재미없게 해요. 적확한 위치에 한 번 혹은 두 번 정도만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쨌든 구체적인 상황과 시적 전개가 흥미로웠습니다. 후각적 이미지가 주로 사용되는 한편에서 시각, 청각, 미각, 촉각 등의 이미지도 잘 느껴지고요. 아쉬운 점은 그 이미지가 반복되면서 구체적인 상황을 분산시키는 것이었어요. 그 덕분에 시 속에서 재현되는 시간의 혼란이 감춰지는 부분이 있기도 하네요. 회상이 삽입된 것이겠지만 이미지의 과잉으로 혼란을…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