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사壞死

만약 너를 사랑하는 것이 그른 일이라면

난 옳고 싶지 않을 거야

 

네게 오디오테이프를 보내고 싶어 기꺼이 수취인불명의 소포를 반송받겠어

난잡하게 뒤엉킨 선은 내 손 안에서 끊어질 거야

도장이 찍힌 날 아침에는 감전사한 까치의 시체를 껴안고 울어 줄 수도 있어

필요하다면 불나방이 달라붙는 가로등 아래에서 천추만세를 기다릴게

나는 네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기 전에 정사를 제안하는 편지를 써

짚으로 만든 인형은 너를 더 간지럽혀 저주를 받고자 하게 만들어

긴 다리를 뻗고 앉은 네 위에서는 의미 없는 접속사만 늘어놓거든

그래서 내가 죽고 싶은 날에는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내가 살고 싶은 날에는 네가 살았으면 좋겠어

하면서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는 어디까지 서로를 부여잡을 수 있을까?

네 세포는 이미 깊이까지 내가 되었어 주사기를 찔러넣으면 내가 흘러나오고

소포는 돌아오겠지만 내 DNA들은 돌아오지 않아 혹시 오늘도 살아가고 싶니?

 

만약 너를 혐오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면

나는 네 주변 모든 곳에서 죽고자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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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국

안녕하세요, 펜타닐님. 처음 뵙네요, 반가워요. 시 잘 읽었습니다. 감각적인 장면들이 나열되면서 의미를 만들어 나가는 것 같아서 인상적으로 읽었어요. 그런데 그 장면들이 강하다보니 의미있게 다가오진 않네요. 1연과 3연은 진부한 표현이거든요. 만화책 같은 곳에서 자주 보는 표현이었어요. (제가 요새 만화방에 빠져있다보니…) 2연의 장면들은 어떨까요? 명확한 이미지는 잡히지만 그것이 “우리는 어디까지 서로를 부여잡을 수 있을까?”라는 구절로 모이고 있는 걸까요? 의문이 듭니다. 아마도 시적 대상에 대한 화자의 인식이 이미 고정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어요. “소포를 반송받겠어”와 “소포는 돌아오겠지만”의 인식 사이에 놓인 너에 대한 판단이 고정된 채로 시가 전개되고 있어요. 그건 대상에 대한 화자의 판단이 이미 정해진 채 시 구절들이 멋진 것처럼 보이는 표현들로 포장된…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