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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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와서 사는 나는 동생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몰랐다 드문드문 떠오르는 어린 기억들 커서 뭐가 되려고 저렇게 열심히 할까 그래 발명가가 되어서 새로운 것 많이 만들어야지 떠올려 본 동생은 언제나 행복했고 대신 그 안에 나는 없었다 조용하고 일찍 철이 든 아이 부모 속을 썩이지 않는 아이 포장지를 거칠게 뜯어보면 칙칙한 무관심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집은 아주 어릴 적부터 나오고 싶었고 차선의 선택으로 학원을 다니기로 했다 집은 잠만 자는 공간 엄마 나 피아노 학원 보내줘

아무 의심 없이 무엇도 질문 받지 않고 집을 벗어날 수 있었다

 

2

나는 학원을 다녔지만 잘 치는 편은 아니었고 악보를 읽으면서 온전한 다섯 대신 네 손가락만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했다 네 번째 손가락은 혼자서 떳떳하게 들리지 못했다 세 번째 혹은 다섯 번째에 이끌려 다니기만 하는 모습 조정하는 것에 시간을 들이는 행위는 초보자가 아니고서야 하지 않을 실수이다 손가락 하나가 투명해졌으나 아무도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제 우회할 때도 됐지 나는 더 나아가기 위해 현명한 선택을 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3

사용하지 않는 네 번째 손가락에 동생은 굵은 볼펜으로 X를 그렸다 왜 사용하지 않느냐는 물음 못하겠으니까 나의 대답 그날 이후부터 시작한 장난이었다 동생은 손가락 X를 억지로 움직이게 하며 기묘한 느낌을 만들었다 이것 봐 움직이네 할 수 있잖아 이상한 느낌은 동생의 말을 전부 덮어버려서 그런 말을 했던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마침내 완전히 집을 나갈 때 동생은 내 손가락에 X 표시를 하면서

누나 이거 나야 오랜만의 동생의 친근한 행동에 웃었다

 

그 애, 물에 빠져 죽었대

동생이 가장 좋아했던 곡은 은파*였다 손가락 X와 동생이 동치임을 이해하고 나서는 피아노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나 이거 네 개의 손가락으로는 도저히 못 치겠어 그 말에 동생은 손가락의 X를 지워주었다 그 애의 사인이 추락사가 아닌 익사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너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라는 자만일 뿐인가

 

5

사람에게는 누구나 아픈 손가락이 있다고 하는데 엄마는 종종 동생이 그렇다고 내게 고백했었다 열 손가락 깨물면 아픈 건 다 똑같을 텐데 굳이 아픈 손가락을 짚는다면 그것을 깨물었다는 말이겠지 싶었지만 이런 의미가 아닌 건 알고 있었다 왜 깨물었는지 나 없는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묻지 않았다 아는 것이라고는 동생이 동경했던 것이 아픈 손가락도 X도 없어야만 칠 수 있는 은파라는 곡 뿐

피아노를 접자 손가락 X는 다시 네 번째 손가락으로 돌아왔다 X는 내게 아픈 손가락이었나 늦어버린 생각을 했다

 

 

*에디슨 와이먼이 작곡한 「은파(Silvery Waves)」는 은빛 물결이 흔들리는 정경을 묘사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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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경

율오님 안녕하세요. 늘 반갑습니다. 시 잘 보았어요. 제목도 좋았는데요, 다만 X라는 단어가 좀 많은 편이긴 합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론 리듬감이 부족한 게 아쉬웠습니다. 시의 구조상 어쩔 수 없지만, 행갈이를 두서 군데만 늘려보던가, 문장을 조금 변형해보세요. 그러니까 어미 ‘~다’로 정확히 끝나는 문장이 대부분인데, 단어로 끝나는 문장을 더 늘려보는 거죠. ‘드문드문 떠오르는 어린 기억들’이 한 예시겠네요. 아니면 대사를 늘리는 것도 방법이긴 한데, 그것보단 위의 방법들이 나을 것 같네요. 선택해서 고쳐보시는 거나 이런저런 방식을 도모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럼 다시 만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