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설

  지하철이 만원이다. 노인부터 어린이, 남성과 여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하루종일 눈이 내렸다. 하얗고 맑은 눈이.

  추운 날씨 탓인지 사람들은 모두 옷을 껴입었다. 목도리를 매고, 장갑을 끼는 등.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오는구나.’

 

  노약자석에 앉은 노인들은 자리에서 큰 소리로 신세를 한탄했다. 요식업 종사자인 것 같았다. 

 

  내가 서 있는 곳 바로 앞 자리에는 여고생이 앉았다.

  그들은 셀카를 찍고, sns를 보며 웃고 있었다.

 

  덩치가 큰 남자들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그들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 지하철을 타는건 처음이다. 모든 사람이 시끄럽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모종의 긴장감을 가지고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도 금방 친해져 서로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 하거나, 상황이 개선된 이후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일부의 사람들은 가방에서 삶은 계란과 같은 먹거리를 꺼내어 나눠주기도 하였다.

 

  나는 그저 집에 가고 있을 뿐이었다. 이 지하철의 사람과, 그 수십배의 사람이 모이는 집회와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모두 각자 이야기에 집중하던 사이, 지하철은 목적지에 가까워졌다.

  한 사람이 일어나 크게 외쳤다.

 

  “여러분! 제 말을 들어주세요! 오늘은 새로운 역사가 생기는 날 입니다. 우리는 한명한명 다른 사람들이고,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곳에 있는 우리, 곧 내리게 될 광장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우리들은 모두 같은 목표를, 같은 목적을 공유하며 이 자리에 나온 것 입니다. 우리는 모두 역사 속 주인공이 될 것 입니다.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갈 대한민국의 동포 여러분,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루종일 눈이 내리는 이런 추운 날씨에 먼 곳 까지 오시느라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역사를, 대한민국의 새 국면을 맞이하러 갑니다. 이 자리에 서 있는 우리가, 바로 우리가 이제부터 역사를 써내려간다는, 그런 자부심을 가집시다.”

 

  목적지에 도착한 지하철의 문이 열렸다.

 

  “대한민국의 동포여러분! 갑시다! 새로운 역사를,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러!”

 

  그 말을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흥분을 참지 못하고 달리는 사람,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순간에도 입에 담배를 꺼내물고 불을 붙이는 사람.

  한편으론 신기하기도 했다. 이렇게나 다양한, 여러 종류의 사람을 한 곳에 모이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니.

 

  밖으로 나가니 집회가 한창이었다. 나무 판을 쌓아 만든 간이 무대 위에서 지하철의 그 사람이 말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지하철에서와 다르게 작았다. 아니, 주변의 소리가 너무 컸다.

  지하철에 있던 사람의 수백, 수천배는 되는 듯 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집회가 대한민국의 중앙,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니까 여러분!…..떻게….몰락하고…”

 

  누군가 앰프와 마이크를 가져와 그에게 건냈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동포여러분.”

 

  수백명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우리가 오늘 모인 것은 후대 수십, 수백년에 걸쳐 전해질 것입니다. 이렇게 의미있는 자리에서 말 할 수 있어 너무나도 큰 영광입니다.”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어째선지 그 연설에 매료되어 집에 가는 것도 잊은 채 듣고만 있었다.

 

  “나는 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땅에 1953년에 태어났습니다. 내가 태어난 시기에 우리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을 마치고, 피해를 미처 수복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하루 한 끼를 먹기도 어려웠고, 팔 다리가 멀쩡하게 움직일 만큼 성장한 뒤 바로 일을 해야했습니다. 그렇게 힘든 시기를 버텨 제가 청년이 되었을 무렵,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힘든 시기가 찾아옵니다. 나는 그 시기도 잘 견뎌냈습니다. 외국으로 나가 일을 하고, 그러던 도중에 왼손 손가락이 두개 사라졌습니다만, 어떻게든 버텨냈습니다.”

 

  그는 말을 하던 도중 눈물을 훔쳤다.

 

  “어쩌면 나는 가장 힘든 시기를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 무너지기 직전일 때 태어나 대한민국이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까지의 모든 과정을 눈으로 보았고, 귀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걱정어린 눈빛으로. 혹은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하늘을 바라봤다. 그는 아예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경찰들은 그저 주변에 서 있을 뿐이었다. 방패를 들고 서 있는 경찰의 뒤로 제복을 입은 채 담배를 피며 상황을 보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덩치 큰 남자가 모여들었다. 지하철에서 본 가방을 든 남자들이었다.

 

  “더 이상은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던 제 인생에서,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더 적은 제 인생에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날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를 위해 일한다는 거짓말로 가면을 만들고, 그런 가면 뒤에 숨은 무능한 권력자들이 판을 치는 광경을 가만히 보고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들이 이 모든 일의 가해자라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습니다.”

 

  덩치 큰 남자들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고, 무대 위에 서 있는 그는 울부짖기 시작했다.

  나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고, 경찰들은 그의 이야기가 절정에 향하자 담배를 끄고 방패를 세웠다.

  

  계속되는 눈과 추위. 이제 모든 시민들은 그의 목소리에 집중하며, 긴장하고 있다.

  모두가 긴장하자 그는 울어 걸걸해진 목소리로, 하지만 누구보다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이제 시작입니다… 새로운 역사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여러분들이. 바로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 역사의 주인이고, 이 나라의 미래입니다. 잠깐동안만, 딱 하나만. 이기적인 부탁을 하겠습니다. 내 나라, 대한민국을 돌려주십시오…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나 옳은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살아 숨 쉬는 동안 제 나라, 대한민국을 다시 마주하고 싶습니다.”

 

  일제히 흩어지는 눈송이들. 그동안 내린 눈은 가득히 쌓여 마치 표백제를 뿌린 듯 하얗게, 새하얗게 대한민국을 물들이고 있었다.

 

  “저는 애초부터 이렇게 될 운명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땅에 내리고 있는 하늘의 은총처럼, 녹고 스며들어 인간이 사라지더라도 어딘가에 존재할 눈송이 처럼 대한민국, 이 땅에 뼈 묻을 각오로. 여기 있는 모든 분에게 말 하고 싶습니다.”

 

  덩치 큰 남자들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경찰들은 주변을 경계하며 이 집회의 클라이막스를 맞이할 준비 중이다.

 

  목도리를 조여매고, 따뜻한 온기를 느끼는 사람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인 이 곳에서, 지금 역사가 쓰여지고 있었다.

 

  “새로운 역사를! 새로운 대한민국을!”

  손가락이 3개 뿐인 왼손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그것을 신호 삼아 여기저기서 불이 피어오르고, 비명이 들려왔다.

 

  몰려있는 사람들 탓에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다. 시야가 가려져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내가 볼 수 있는건 경찰들이 방패를 세우고 우리들에게 다가온다는 것.

  

  그는 노래하기 시작했다. 어딘가 정겨운 멜로디,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한 가사. 그가 노래를 부르는 중에도 비명소리는 점점 커졌다.

  누군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무대위로 올라가, 노래 부르는 그의 옆에서 춤을 춘다.

 

  나도 무언가에 홀린 듯, 춤을 추기 시작했다.

 

  흥분하는 경찰들과 춤을 추는 시민들. 그 위에 얹어지는 비명소리와 노래소리. 살며시 내려앉은 눈.

 

  그 기괴한 조화에 전율 했다. 그를 바라보는 경외감 어린 시선. 나는 어째서 이 집회에 참석하지 않으려 한 것인지 후회했다. 그리고 나를 사로잡아준 그에게, 그의 목소리에 감사했다.

 

  무대 위로 올라갔다. 춤을 추며, 전율하여 떨고있는 사람들을 제대로 보기 위해. 내가 들은 비명소리는 비명이 아닌, 완벽한 새 시대를 축복하는 축포의 소리였음을 확인하기 위해.

 

  무대 위에 올라간 순간, 시야가 넓어지면서 하늘이 하얘졌다. 섬광으로 밝혀진 하늘은 깨끗했다.

  눈 먼 사람들이 휘두르는 주먹, 그리고 그 주먹을 막는 경찰의 방패들. 경찰은 그들을 하나하나 제압하며 천천히 압박하고 있었다. 하늘은 눈을 퍼부으며 감동하고 있다.

 

  눈을 깜빡한 그 사이. 경제는 몰락했으며,

  눈을 깜빡한 그 사이. 눈은 엄청나게 쌓였다.

  눈을 깜빡한 그 사이. 너무나도 새하얗던 우리는 전율했고, 세상은 변하고 있었다.

 

  피가 터지며 빨갛게 변해가는 눈. 묵직한 경찰봉에 맞는 허벅지.

 

  “제설을 해야겠지…”

 

  대한민국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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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형

안녕하세요, 정훈 님. 반갑습니다.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대한민국, 그 집회의 긴박감이 전해져 오는 소설이 아닐까 싶어요. "제설을 해야겠지"라는 대사도 좋습니다. 그 긴박감이 전해져 오는데 비해 그 변화를 다소 피상적으로 스케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이 집회의 목적이나 원인, 그리고 그 집회로 말미암아 상상할 수 있는 변화하는 대한민국의 구체적인 형상이 소설적으로 드러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집회에 참석한 개별 인물들의 욕망이나 염원 같은 것도 동시에 구현되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다음 소설도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