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초상

김희운을 알게 된 건 열여덟의 어느 여름. 이유도 모른 채 시골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야 했던 나는 꽤 긴 투쟁을 벌였고, 전학 사유가 아버지의 사업 실패 때문임을 알았을 때는 입 닥치고 시골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탈 수밖에 없었다. 의현아, 작은이모네 집에 잠깐 있을 수 있지? 곧 데리러 올게.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에서 나는 이것이 만남을 알 수 없는 헤어짐임을 진즉 눈치챘고, 일부러 씩씩하게 행동했다. 알겠으니까 그만 말해. 내가 어린 애도 아니고, 한 번만 말해도 알아들어.

그렇게 도착한 친척 집에서 도무지 정을 붙일 수 없던 나는 생에 처음으로 가출이란 걸 했다. 의현아 어디 가? 아, 저 잠깐 외출이요. 가출인 것 치고는 외출 인사까지 잘 끝마치긴 했다. 사람 하나 없는 시골길을 걸으며 의미 없는 케이팝을 흥얼거리면 시원한 여름 바람이 불어왔다.

 

“…….”

“…….”

 

그때 처음 본 거다. 김희운을. 초롱한 눈과 동글한 코, 얇은 입술과 진한 눈썹까지. 반바지를 입고 커다랗게 ‘SUMMER’이라 적힌 흰 티를 입고 있던 김희운은 너무 예뻤다. 불어오는 바람에 자유롭게 흩날리던 머리칼이 그렇게 비현실적일 수가 없어 몇 번이고 눈을 끔뻑여야만 했다.

 

“…, 안녕.”

“……. 응.”

 

어색하게 인사했다. 조그만 체구가 척 보기에도 나보다 어렸기 때문에 자연스레 반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내가 건넨 인사가 당황스러웠는지 몇 번이고 주위를 둘러보던 김희운은 곧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이내 커다란 느티나무 밑으로 뛰어갔다. 예쁘다. 여름을 의인화하면 김희운이리라 생각했다. 여름이 무엇이냐 물으면 김희운이라 답하려고 했다. 김희운이 너무 예뻐서 그날 가출은 실패했다. 당차게 밖으로 나갔던 이유가 잠들기 전에야 겨우 떠올랐다. 아, 맞다. 나 가출하려고 했는데.

 

김희운을 두 번째로 본 건 학교에서였다. 학년 당 한 반밖에 없던 터라 나는 자연스레 김희운과 같은 반이 되었고 그 말인즉슨 김희운과 나는 동갑이라는 거다. 2학년 1반. 선생님의 뒤를 따라 작은 교실에 들어갔다. 열 손가락으로도 셀 수 있을 법한 학생 수에 먼저 놀랐다. 김희운이 그 교실에 있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알았다.

 

“의현이는 저기 앉자. 희운이 옆자리.”

 

당사자인 나는 아무렇지 않았으나, 그 말에 과할 정도로 반응하는 건 다른 아이들이었다. 우우우. 헐, 어떡해. 불쌍하다.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 교실에 상황을 정리하려는 듯 교탁을 두어 번 내리친 건 담임이었고, 그 소리에 헛구역질하며 교실을 뛰쳐나간 건 김희운이었다.

 

“아침부터 지랄이네.”

“전학생 불쌍해서 어떡하냐. 저 미친놈이랑 앞으로 몇 달은 더 보내야 할 텐데.”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큰 소리만 들리면 미친놈처럼 반응하는 병신. 김희운 앞에 붙는 수식은 너무 길었다.

 

한참 뒤에야 교실로 돌아온 김희운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으나 실은 그게 아니란 걸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방음이라고는 뭣도 안되는 교실에서 바로 옆에 붙은 화장실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리 없었다. 몇 번이고 들려오던 구역질 소리에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드르륵, 눈물이라도 흘렸는지 벌겋게 충혈된 눈을 한 채 교실로 들어오던 김희운의 얼굴을 도저히 지워낼 수가 없다. 한여름의 초상 같던 김희운에게는 깊은 구렁텅이가 있었고 나는 다가갈 자신이 없었다.

 

“강의현, 너 축구 잘하냐?”

“…….”

“강의현?”

“아, 아. 나는 농구.”

“그래? 야, 농구 할 사람 모여.”

“…….”

“너는 안 갈 거냐?”

“응? 아. 갈게, 가자.”

 

온종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고작 엎드려 있는 것뿐인데 걱정이 되어 참을 수 없었다. 왜 엎드려 있지, 아까 말이라도 걸어볼걸. 남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정신이 없었다. 모든 관심이 김희운에게 향했다. 김희운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너무 예뻐서가 아니라, 너무 안타까워서.

 

김희운은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었다. 다른 애들도 이렇게 말했다. 쟤는 하루도 멀쩡한 날이 없어. 몇 주가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김희운의 행동에 대응하는 법을 알아내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커다란 소리가 나면 김희운의 몸이 반응했다. 잘게 몸을 떠는 것부터 시작해서 기절하는 것까지. 심할 때는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그럴 때 김희운을 업고 보건실을 데려가는 건 온전히 내 몫이었다. 이런 김희운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장에 지금도 그렇듯이.

기말고사가 끝났다며 영화를 틀어준 체육이 문제였다. 기괴한 좀비 영화를 틀어 놓고서는 잠에 빠진 체육과 잔인한 장면이 등장할 때마다 온갖 비속어 섞어가며 비명을 지르던 아이들. 과한 반응을 보이는 건 이 학교 학생 특징인 듯했다. 좀비와 손만 스쳐도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나조차도 그 주둥이들을 막아버리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뒤로 이어진 김희운의 행동 때문에 내 머릿속은 온통 하얗게 변했지만. 악을 쓰며 자리에 주저앉은 김희운은 분명 울고 있었다. 아, 진짜. 왜 자꾸 지랄이야? 그 상황에서 김희운을 걱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저렇게 둬도 돼?”

“어. 저러다 말걸.”

 

목이 쉴 정도로 소리를 지르던 김희운이 걱정되어 반장에게 물었다. 돌아오는 건 탐탁지 않은 대답이었지만. 하나같이 인상을 찌푸리며 김희운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희운아, 괜찮아? 그 모습들이 이상하게 꼴 보기 싫어 겁도 없이 김희운에게 손을 뻗었다. 툭. 내 손길이 닿자 그대로 기절해버린 김희운을 업고 보건실로 향한 건 또 나였다.

 

김희운과 처음으로 대화를 나눴던 건 여름방학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거세게 쏟아지는 빗방울에 단축을 결정한 학교는 점심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우리를 집으로 보냈다. 단축해서 지금 갈게요. 이모와 통화를 마치고 가방을 챙겼다. 김희운은 여전히 책상에 앉아 있었다. 초점 없는 눈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 텅 빈 모습에서 나는 무엇을 느꼈던 걸까. 하복을 입고 단정하게 머리를 내린 김희운에게서 낯선 감정을 느꼈다.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무엇에 홀린 듯 그렇게 말하는 김희운을 넋 놓고 바라봤다.

 

“차라리 잠겨서 죽어버리고 싶어.”

“…….”

“차라리 머리끝까지 잠겨버려서 아무런 소리도 내뱉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 공허한 눈이 나를 바라봤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동정이었을까 동경이었을까.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당긴 김희운의 표정은 오묘했다. 웃는 것 같았는데 우는 것 같았다. 희운아. 낮게 제 이름을 부르니 천천히 김희운의 입이 열렸다.

 

“의현아.”

“응.”

“나 좀 숨겨줄래?”

 

사냥꾼의 눈을 피해 사슴을 숨겨준 나무꾼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김희운은 사슴을 닮았다. 그것도 예쁘장하게 생긴 꽃사슴. 나는 김희운을 안았다. 품에 안긴 김희운은 울지 않았다. 창밖으로는 비가 내렸고 핸드폰에는 이모에게서 온 전화가 울렸다.

그날 우리는 우산을 쓰지 않았다. 그칠 줄 모르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동네를 돌았다. 오가는 대화라고는 그 나잇대의 남학생 둘이 할 만한 천진한 대화가 끝이었다.

 

“우리 혼나겠다.”

“왜?”

“비를 엄청 많이 맞았으니까.”

 

그 누구도 우산을 써야 한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흠뻑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긴 김희운은 웃었다. 그 모습이 장마가 시작된 여름의 어느 날 같아서 나는 다시 김희운을 여름이라 부르기로 했다. 여름아. 그 말에 김희운은 더 활짝 웃었는데 그 모습은 언뜻 보기에 우는 것 같기도 했다. 비가 내리는 시골에서는 자연의 냄새가 배가 되었다. 풀과 흙의 냄새를 맡으며 우리는 한참이나 쏟아지는 비를 맞았다.

 

“의현아, 너는 집에 안 가도 돼?”

“응. 안 가도 돼.”

“왜?”

“진짜 우리 집이 아니니까.”

 

김희운은 더 묻지 않았고, 나도 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비가 언제 그칠까. 글쎄. 영영 그치지 않으면 좋겠어. 그렇게 말하며 김희운은 눈을 감았다. 긴 속눈썹을 타고 빗방울이 떨어졌다.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김희운과 나는 자정이 넘은 뒤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김희운과 내 사이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김희운은 여전히 큰 소리를 무서워했고 나는 그런 그의 귀를 막아주었다. 대화는 오가지도 않았다. 김희운이 몸을 떨면 걱정을 했고, 기절하면 보건실로 데려갔으며, 속을 게워낼 때면 등을 두드려줬다. 그게 끝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방학식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너희도 이제 수능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담임의 말에 아이들은 야유했고 김희운은 울었다. 급하게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뛰쳐나가는 김희운은 여전했다. 분위기 진짜 깬다. 반 아이들의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김희운이 걱정되어 미칠 것 같았다. 빈 옆자리를 한참 바라보다, 결국 자리서 일어났다.

 

“희운아, 괜찮아?”

 

말을 건네는 건 그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나오는 거라곤 위액뿐이면서 억지로 속을 게워내는 꼴이 안타까웠다. 아프지 않게 등을 두드려 주며 말을 건넸다. 돌아올 대답 따위는 기대하지 않았다. 김희운은 몇 번 더 헛구역질을 해대더니 곧 내가 건넨 휴지를 받아들고 입가를 닦아냈다.

 

“의현아.”

“…응.”

“나랑 느티나무 밑으로 가자.”

 

떨리는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고, 김희운은 눈을 감았다. 무단 조퇴였다.

느티나무 밑에서 김희운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모든 걸 들을 수 있었다. 침묵이 곧 김희운이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이었으므로.

 

“가끔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어.”

 

한참 뒤에 입을 연 김희운은 별안간 이런 말을 했다. 김희운의 얼굴을 바라봤다. 또다시 공허한 눈빛이다. 희운아. 그렇게 내뱉는 목소리가 낯설었다. 18년간 들어온 내 목소리임에도. 김희운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불필요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한여름의 바람은 더웠다. 그러나 그것도 바람이긴 한지 희운의 머리가 흩날렸다. 저 모습에 반했는데. 비현실적인 네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제멋대로 여름의 초상을 너로 정했는데. 김희운은 초점 없는 눈으로 웃었다. 일렁이는 목울대가 말해주고 있었다.

 

“울어도 되는데.”

 

애써 울음을 삼켜내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여름이잖아.”

“…….”

“울면 안 돼.”

 

단정히 차려입은 하복이 잘 어울렸다. 노란 명찰에 쓰인 김희운 석 자가 이상하게 익숙했다. 김희운은 여전히 웃고 있었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게 무슨 핑계냐고 말하고 싶었으나 하지 않았다. 김희운은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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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형

안녕하세요, "의현"과 "희운"의 아름다운 여름을 옮겨놓은 소설인 듯합니다. 아름다운 희운의 이미지와 느티나무 밑의 무성한 여름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져 오는 소설입니다. "가끔 숨이 막히는 기분"을 느끼는 희운과 그를 사랑하는 의현의 심상이 서정적으로 스케치되어 있네요. 희운을 향한 의현의 애틋한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희운은 자주 발작과 구역질을 일으키는 섬약한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네요. 어떤 아름다운 장면의 이미지는 잘 구현되어 있는 것 같지만 희운과 의현 사이의 갈등관계가 명확하지 않았고, 희운이 왜 숨이 막힐 것 같은 기분을 종종 느끼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원인이나 내러티브가 있어야 보다 소설적인 형태를 갖추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희운의 섬약함이 그러한 감정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지만, 보다…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