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 사이¹ (퇴고)

세상에 존재하는 성냥팔이 소녀는 모두 몇 명일까. 우스꽝스러운 질문과 함께 극은 시작했다. 맞추는 사람에게는 상품을 주겠다. 흔히 이목을 끌기 위해 사용되는 방법이었다. 올리비아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진행자가 의도하지 않은 답을 중얼거렸다. 숫자는 모르지만 누구인지는 알지. 하지만 사실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불행한 나라로 밀어 넣어진 성냥팔이 소녀들의 손에는 당장 주변을 밝힐 수 있는 성냥조차 쥐어져 있지 않다. 그들은 다른 세계의 사람. 눈먼 사람이 된 듯 기어 더듬으며 여기까지 찾아올 수는 있나. 그렇다면 그들의 성냥은 누가 뺏었나. 다만 안타깝게도 올리비아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정답을 맞힐 수 있는 사람은 성냥팔이 소녀뿐. 올리비아는 반쪽짜리 정답을 내놓으면서 상품을 자신이 고를 것을 요구했다. 반드시 희극이어야만 해. 진행자는 올리비아를 무대 위로 불러들였다. 희극은 극의 결말에 있는 선지가 아니었다. 그러니 올리비아. 올리비아는 무대 뒤편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관객들 앞에서 주장하거나 그들을 설득시킬 필요는 없다. 올리비아에게 이 극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희극이었다.

사람들은 대게 희극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는 한다. 하지만 희극은 생각보다 별 거 없다. 권선징악을 밑바탕에 까는 것은 기본, 행복해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극의 막을 내리면서 보여주기. 답을 맞힌 올리비아는 연출자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권리도, 다시 질문을 할 권리도 있다. 첫 번째 권리에 대한 대답은 희극을 만들 것. 두 번째 권리에 대한 대답은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는 비극일까?” 사실 올리비아는 정답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수많은 비유 중 성냥팔이 소녀를 언급한 것은 이 극이 비극임을 암시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성냥팔이 소녀가 없어진다면 괜찮아지겠지, 시시한 이야기였다.

누군가가 손에 성냥을 쥐어준 덕에 이 세계로 올라온 성냥팔이 소녀의 이름은 올리비아. 그 끝이 결국 얼어 죽는 것임을 관객들은 알고 있기에 성냥팔이 소녀의 등장부터 숨을 삼킨 채로 굳어버린다. 너희의 성냥팔이 소녀로 나를 출연시켜. 올리비아는 눈을 감고서도 자신이 퇴장해야 할 시기를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언제, 어떻게 사라져야 관객이 마비를 풀어내고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댈 수 있는지 올리비아는 알고 있다. 올리비아는 자신이 요구한 모든 것을 직접 실현시킬 수 있는 사람. 그러니 진행자가 할 것은 그저 올리비아를 출연시키기만 하면 된다.

성냥팔이 소녀를 보며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던 하나가 있었다. 소녀는 어째서 아버지에게 순종하였는가. 성냥을 다 팔지 못하면 집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여, 어떻게든 제 소유에서 전부 없애버리기 위해 추운 날 오들오들 떨며 나온 성냥팔이 소녀. 현실의 성냥팔이 소녀들은 성냥조차 쥐어져 있지 않으며, 쥐는 순간 이 밝은 세상으로 뛰쳐나온다. 소리 지른다. 나 이렇게 살아 있다고. 올리비아는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눈을 감고 상상했다.

성냥을 팔지 않으면 집에 갈 수 없다. 그렇다면 성냥을 팔지 않고 성냥을 팔아야 할 이유도 없앨 것이다. 아버지가 시켰다면 아버지를, 할아버지가 시켰다면 할아버지를 없앨 것이다. 어디 가, 돌아갈 집도 없는 주제에. 지옥으로, 끝의 끝까지 끌고 가며 이곳에는 너를 위한 집이 없다는 사실을 비웃는다.

올리비아가 성냥을 손에 쥐고 세상에 나올 수 있던 것은 그래서였다. 성냥팔이 소녀라고 불리는 것이 올리비아가 원작의 소녀처럼 순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올리비아는 나쁜 것인가? 판단의 자격은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올리비아는 잘 살아오지 못한 사람이었다. 앞으로도 잘 살아가지 못할 것임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사랑의 이름도 믿지 않는 올리비아는 세상을 처음 마주한 날 구역질을 시작했다.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희망의 이름들을 견딜 수가 없었고, 그것들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었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이므로 출연을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말. 얄팍한 동정으로 수많은 사람을 기만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방법이라고 올리비아는 생각했다. 이렇게 사는 것은 이 삶이 만족스럽기 때문이 아닌, 단지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올리비아의 희극에 대한 요구는 사실 선전포고였다.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설령 비극이더라도 자신이 바꿔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올리비아는 권선징악의 주축. 악을 징벌하는 데 대가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자신이 치를 테였다. 신이 될 수는 없지만 악을 무찌르는 영웅이 언제나 신인 것은 아니었다. 뭣도 모르던 어린 날에야 자신을 신으로 만들어달라는 소원을 빌었겠지만.

“산타 할아버지, 제가 신이 되게 해 주세요. 다른 선물은 필요하지 않아요.”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 산타를 믿는다는 사실은 왜 우습게 다가올까. 올리비아는 그 아이의 소원을 짓밟으려다가 말았다. 결국은 돌고 돌아와 아무도 믿지 않게 되었으니 이미 부서져 있는 마음을 구태여 더 망가뜨릴 이유는 없었다. 올리비아가 믿어야 할 사람은 오직 올리비아 자신. 달에, 하늘에, 신에게 소원을 비는 대신 자신에게 속삭일 뿐이다. 성냥팔이 소녀의 아버지를 죽이고 대가로 내 목숨을 내어주자. 홀로 걷는 저승길은 외로울 테니 길동무가 되어주자. 나를 나락의 나락까지 떨어뜨려도 좋으니 소녀의 아버지 내 선물은 받아야죠.

올리비아는 단 한 번도 이 모든 것이 잔인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비극은 잔인하나 올리비아로 인해 그것은 존재할 수 없고, 죽음은 잔인하나 올리비아에게는 악을 징벌하는 행위에 불과할 뿐이었다. 성냥팔이 소녀의 아버지 같은 사람을 누가 아버지라고 부르지? 누가 좋아하지? 올리비아는 노래하며 춤추는 무희들 사이 정중앙에서 웃음을 터트릴 것이다. 모든 것이 올리비아가 잔인하지 않음을 가리키고 있다. 비극을 두고 볼 수 없던 여린 마음의 올리비아. 손에 쥐여진 유일한 성냥에 입을 맞추며 관객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한다.

이것은 전부 불행한 나라의 다른 사람들 이야기. 불행은 하나의 소재 마냥 가볍게 소비되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울고 웃고 한다, 마치 지금처럼. 인간인 올리비아가 무엇을 해낼 수 있지? “괘씸해질 수 있지.” 올리비아는 관객들의 환호성에 답하듯 있지도 않은 대사를 내뱉었다. 이야기를 고치자. 올리비아는 구원자의 자리를 넘보는 괘씸한 인간이다. 신의 권위에 도전하느냐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것이고 미련 없이 희생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감히, 고작 인간이. 분노의 표현은 형체를 갖출 시간도 받지 못한 채 덧없이 무너진다. 비극을 끝맺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희생해야만 한다고 한다. 올리비아는 누군가라는 선택을 하였다. 자신의 또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어째서 신의 분노는 올리비아 앞에서 맥도 추리지 못한 것이지? 대체 왜? 올리비아는 이 비극에 지긋지긋해져버린 참이었으나 그것이 분노와 맞닿아 있었나? 올리비아는 성냥에 불을 붙였으나 불꽃은 맥없이 꺼져 버렸다. 눈물이 흐르지 않았으니 산소가 차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올리비아가 미처 내뱉지 못한 울음이라고 표현되어도 좋았다.

올리비아에게 성냥을 건네주고 불행한 나라 밖으로 내쫓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올리비아가 좋아하는 유일한 사람, 성냥개비는 그 사람의 유일한 선물. 사랑은 올리비아를 불행 한가운데로 내세우는 도구였는데 그 올리비아가 그런 감정을 가질지 누가 어떻게 알았을까? 올리비아는 웃었다. 흔히들 꽃길만 걸으라고 표현하던가? 나는 꽃밭을 만들어 줄 테야. 올리비아는 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평생 지낼 꽃밭이잖아.

죽음을 대가로 만들어지는 꽃밭은 상당히 잔인했지만 올리비아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행복하다면 나도 좋아. 사랑해본 적 없는 올리비아다웠다.

 

클로이는 올리비아를 좋아했다.² 올리비아는 책의 어느 한 구석에 놓였을 문장에 머물러 있었다. 저곳의 올리비아가 그렇듯 이곳의 올리비아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름도 모두 클로이. 사이의 공통점이라고는 겹치는 이름이 전부여야만 한다고 올리비아는 다짐했다. 올리비아의 역할은 저 문장을 거짓으로 만드는 것이다. 클로이는 올리비아를 향한 마음이 없으며, 올리비아 역시 클로이에게 흔들리지 않는다.

올리비아는 클로이의 연극이 어떻게 비극으로 치닫게 될지 예상할 수 있었다. 올리비아의 곁을 묵묵히 지키는 ‘클로이들’은 하나같이 전부 망가져 있었다. 그것이 처음부터인지 올리비아로 인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올리비아는 자신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내가 매일 밤 무엇을 느끼는지 알아? 너를 이 비극의 주인공으로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이야. 올리비아는 모진 말을 내뱉는 것을 잘했다. 무언가가 바뀔 수만 있다면 올리비아는 그보다 더한 것도 해낼 수 있었다. 하나의 희생으로 비극을 희극으로 바꿔버릴 올리비아.

올리비아는 자신을 좋아하는 클로이에게 관심 없는 듯 굴었지만 사실은 클로이에 관해서라면 무엇을 묻든 대답할 수 있었다. 성냥팔이 소녀의 수를 물었듯 클로이의 수를 묻는다면 올리비아는 모른다고 대답할 테였다. 하지만 모든 클로이의 이름을 올리비아는 정확하게 댈 수 있다. 그렇다면 올리비아의 희생은 특정되지 않은 많은 클로이 중에서 누구를 위한? 올리비아는 입술을 짓씹으며 대답한다. 내가 없었다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 클로이를 위한 희극이다.

클로이는 동화 같은 것을 믿을 나이는 지나지 않았냐고 말했지만, 올리비아가 보기에 클로이는 동화의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었다. 특히 모든 동화의 결말인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에서 클로이는 공주와 왕자의 1인 2역을 자처하며 문장을 독점했을 것이다. 동화를 두 번이나 빼앗긴 불쌍한 클로이. 처음의 동화는 클로이가 사랑했던 상대에게 빼앗겼으며 동화를 되찾아올 능력은 올리비아에게 빼앗겼다. 그럼에도 여전히 클로이는 올리비아를 사랑한다. 올리비아는 그 사실이 지긋지긋했다.

올리비아는 클로이에게 종종 고백했다. 내가 성냥팔이 소녀였다면 그 아버지를 죽이고 살인자로서 법정에 섰을 텐데. 그럴 때마다 클로이는 웃으면서 좋은 생각이라고 동의해주었다. 그로부터 올리비아는 모든 것을 읽었다. 클로이는 자신에게서 동화를 빼앗은 사람을 좋아할 정도로 마음이 넓은 사람이 아니다. 하늘에서 자비를 베풀기 위해 내려온 천사도, 아낌 없이 주는 나무도 아니다. 당연한 분노로 탓해야 할 사람을 탓하는 인간이고 클로이였을 뿐이다. 그 원망의 대상에 어째서 자신은 들어가지 않았는지에 대해 올리비아는 사고할 수 있을 나이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십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올리비아는 여전히 정답을 알지 못했다.

올리비아의 어머니는 성냥팔이 소녀였다. 그것이 연애 중일 때부터였는지, 결혼하고 나서부터였는지는 존재하지 않던 올리비아는 알 수 없었다. 올리비아의 어머니는 양지에서 음지로 걸어 들어간 사람. 그러한 가정에서 자란 올리비아가 성냥팔이 소녀가 되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올리비아는 성냥팔이 소녀들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손에 성냥을 쥔 사람.

불을 밝혀 양지로 올라왔을 때 올리비아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성냥팔이 소녀들이 음지에 머무는 것은 양지로 올라오는 법을 몰라서가 아닌, 올라와서 누구를 찾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였다. 실제로 그에 대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임을 올리비아는 햇빛을 처음 만난 날 깨달았다. 그렇기에 세상에 존재하는 성냥팔이 소녀의 수를 묻는 질문은 우리를 향한 기만. 올리비아의 어머니는 올리비아가 정답을 창조해 낼 것을 믿고 성냥을 쥐여 올려 보냈을 테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그의 어머니가 바랐던 것은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올리비아의 어머니는 올리비아를 사랑했다. 그것이 성냥팔이 소녀 간의 유대감인지, 성냥팔이 소녀가 되어 자식을 낳은 것에 대한 사과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올리비아의 어머니는 음지를 탈출하여 살아갈 능력 또한 갖추고 있었다. 올리비아는 모든 성냥팔이 소녀를 살릴 방법은 찾지 못했지만, 그 중 단 한 명을 살릴 가능성은 맛보았다. 올리비아는 그날로 호칭을 떼버리고 클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차피 음지에서의 이름은 아무에게도 불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올리비아는 클로이라는 새 이름을 통해 그 사람을 다시 이름을 가진 하나의 인간으로 만들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올리비아로 인해 클로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올리비아가 모든 클로이를 구하려는 희망을 가진 것도 잠깐, 곧 그 목표는 단 한 명의 클로이로 바뀌게 되었다. 스스로 성냥팔이 소녀를 자처한, 제가 아는 클로이 중에서는 유일한 사람. 올리비아는 진행자를 만나 새 각본을 짜기 시작했다. 올리비아가 버려지면 클로이는 버린다. 올리비아는 클로이를 위한 희극이라고 임시로 제목을 붙였다.

그러니까 올리비아가 클로이의 대사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올리비아가 정한 각본대로 흘러간다. 여전히 올리비아를 걱정하고 이것저것 챙겨주는 클로이에게, “진짜 괜찮아. 혼자 잘할 수 있으니까 신경 안 써도 돼.” 올리비아가 무심하게 대답하면 클로이가 대답한다.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 있어. 여기서 더 신경을 안 쓰면 방임이야.” 그리고 올리비아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에 실패하였다. 클로이는 언제나 올리비아의 최우선에 있었고 올리비아가 클로이로 인해 감정조절을 못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올리비아, 나는 네가 희생을 앞둔 상태에서는 선을 그을 수 있을 줄 알았지.

이상하게도 클로이는 올리비아에게 비수를 꽂는 말들을 잘했다. 올리비아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사실은 어쩌면 클로이의 위치 때문인지도 모른다. 올리비아는 양지의 남들이 평범하게 가지는 부모의 사랑을 거절했다. 언젠가는 클로이의 곁에 존재하지 않게 될 사람이니까, 올리비아는 그렇게 선택을 합리화시켰다. 자신이 어느 누구의 곁에도 존재하지 않게 되는 미래도 클로이를 위해서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런 올리비아가 딱 한 번, 희극을 망치고자 했다. 클로이의 대사에 너무 많은 감정을 담아버린 탓이다.

클로이는 종종 올리비아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했다. 그것도 전부 대본에 작성되어 있는 것인가? 올리비아는 구태여 대본을 들춰 확인하려고 하지 않았다. 클로이의 사과에는 침묵으로, 대신 더 잘 살아가는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었다. 인간은 부모의 품을 떠나기까지의 시간이 가장 긴 종족이라고 한다. 그리고 클로이의 존재로 미루어보아 올리비아는 채 성년도 되지 않은 나이. 올리비아가 성냥팔이 소녀임을 감안하다고 해도 희생을 바탕으로 한 희극을 선택한 것은 어울리지 않았다.

안데르센의 동화에서 성냥팔이 소녀의 어머니는 등장하지 않았다. 올리비아는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남겠냐면서 무심하게 말하였다. 올리비아는 당시 클로이의 의견도 물었었다. 아마도 그때가 처음으로 이것을 희극으로 바꿔버리겠다고 다짐한 날이 아니었을지, 올리비아는 멋대로 회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클로이는 올리비아 옆에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올리비아가 바라보는 클로이는 스스로 빛을 낼 줄 알 뿐만 아니라, 그 빛을 세상에 퍼뜨리는 방법도 아는 사람이었다. “성냥팔이 소녀의 어머니는 끝까지 소녀를 지켰을 거야, 그것이 눈에 보이는 방법이 아닐 뿐이었겠지.” 그리고 당시 클로이의 대답이었다.

사실 올리비아는 자신이 클로이에게 사과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존심 강한 올리비아는 사과하는 방법을 몰랐고, 대신 이 극의 주인공에게 클로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올리비아는 이 희생정신에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이것은 클로이에게 건네어야 하는 모든 사죄를 더한 값이었으므로, 정확하게는 클로이의 값 치르기만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지. 올리비아는 빠르게 생각을 정정했다.

보고 있어, 신님? 이루어줬으면 하는 소원이 하나 있어. 자신이 신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알고 있는 올리비아. 다만 사실까지 다다르기 위해 택한 경로는 퍽 아름답지 못했다. 올리비아가 이 극을 희극으로 바꾸겠다고 결심한 것이 이번 한 번뿐일까? 결말 교체에는 반드시 한 사람의 희생이 들어가야 하고, 그 희생은 반드시 주연급이어야 한다. 올리비아는 극의 관객으로 시작하여 난동자로 위치를 변경하였다. 번거롭게 굽어 돌아가야만 하는 길을 선택한 것은 그렇지 않고서야 예정된 실패가 놓임을 알고 있어서였다. 몇 년의 낭비를 거쳐 올리비아는 신의 존재, 신에게서의 자신의 위치까지 알아내었다. 비극을 보러 온 관객들에게 미안함을 표한다고 올리비아는 이제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클로이에게 내 죽음을 축하받고 싶어.” 그래서 네가 겨우 내 죽음에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올리비아의 소원을 들은 신은 잔인하구나, 올리비아. 무심하게도 중얼거릴 테고, 그 말을 들은 올리비아는 잔인하게 살았으니 잔인하게 죽어야지. 여상히 대답할 테다. 올리비아가 내뱉는 모든 말들은 하나같이 클로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니 올리비아는 신이 감탄한 잔인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클로이에게만은.

 

배우들의 퇴장 시기를 정확한 시각으로 지시하는 연극은 없다. 올리비아의 퇴장 역시 그 선상에 놓여 있었다. “재미없어, 신님. 나는 언제 퇴장할까?” 올리비아가 묻더라도 신이 해 줄 수 있는 대답은 없다. 극에 지시된 상황을 살펴보자면 ‘올리비아가 클로이를 향한 미련을 놓을 수 있을 때’라고 적혀 있다. 올리비아도 어떤 답변이 돌아올지는 알고 있었다. 단지 그것이 썩 좋은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뿐이었다.

이 극은 온갖 추상과 관념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클로이가 올리비아를 위해 몸 바쳐 만든 보호막만이 유일하게 존재하며 잡을 수 있는 ‘무언가’였다. 잊지 말 것, 올리비아는 술에 미친 사람을 아버지로 둔 성냥팔이 소녀이다. 올리비아는 술병으로 인해 생긴 클로이의 상처를 먹고 살아남았다. 사람들은 올리비아를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욕했지만 그것이 사실이었다면 이 극이 희극이 될 일은 영영 없었을 테다. 올리비아는 잔인하지만 이기적이지는 않은 사람. 하지만 올리비아는 차라리 이기적이었으면, 하고 종종 바라고는 했다.

그랬다면 많은 것이 바뀌었을 테라고, 올리비아는 이미 알고 있다. 정말로 올리비아가 주변이 말하는 그런 사람이었다면 클로이를 좋아하지도 않았을 테고, 클로이에게 죄책감을 갖지도, 이렇게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올리비아는 문득 어디에선가 본 글을 떠올렸다. 근거도 없고, 정확한 기억인지조차 알 수 없는 주제에 위로가 되어주는 이상한 문장. 남성은 화목한 가부장제 가정에서 자란 경우 성공할 확률이 높지만, 여성은 이혼을 한 어머니와 함께 살아갈 경우 성공할 확률이 높다. 부모라는 이름을 단 맹목적인 희생에 목이 막히는 것은 올리비아뿐만이 아니다. 올리비아의 자리에 다른 어떤 사람을 데려다놓더라도 결국은 같은 선택을 할 테다. 선택은 올리비아가 착하기 때문에 내릴 수 있던 것이 아니다.

절대적인 희생으로 올리비아가 피해를 보는 점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올리비아는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짓밟고 뛰어올라 더 높이 다다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등에 날개가 없던 대부분의 사람은 모두 같은 꿈을 꾼다. 떨어진 새의 깃털을 악착같이 모아 밀랍으로 연결하고, 억지로 한 쌍의 날개를 만들어 등에 붙인다. 날개를 붙이는 대신 등을 내어줄 누군가가 있다면 그들을 도움닫기 삼아 뛰어올라 날개를 펼친다. 처음부터 날아다닐 방법이 있던 이들이 그러하듯이 그들도, 태양을 향해, 힘껏.

너는 왜 그리 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올리비아는 이카루스의 이야기를 잊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세상은 날개 없는 다수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속삭이지만 그들은 결국 이카루스의 후손일 뿐이다. 가져서는 안 될 하늘을 탐낸다면 태양은 깃털을 연결할 밀랍을 녹일 뿐이다. 저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례가 또 하나 탄생한다. 쌓이고, 쌓여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다. 날아올라 탈출하려던 이카루스는 어디 갔지? 없다. 현실과 타협하여 생존하는 이들만이 남았을 뿐이다.

올리비아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어서 자신이 날아오르면 무조건 죽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날개를 받은 사람이 어떻게 고작 하늘에 만족할 수 있나. 대가가 목숨이라면 죽더라도 태양을 만져봐야지. 올리비아는 클로이에게 어중간한 이혼서류를 만들어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욕심 많은 사람. 올리비아가 죽지 않으면 이 극은 절대로 희극이 될 수 없다. 성냥팔이 소녀가 자녀를 낳는 것은 소녀의 발목을 묶을 뿐이다. 동일하게 대가를 죽음으로 치러야 한다면 이카루스가 되는 쪽보다는 이카루스를 만드는 쪽을 선택하겠다. 올리비아는 클로이를 묶고 있는 밧줄을 끊어주러 간다. 제약이 없어진 클로이가 날아오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올리비아가 이카루스가 된다면 죽음을 향해 달릴 뿐이지만, 클로이라면.

똑똑한 올리비아. 우리는 올리비아의 계산에 가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매 순간 계산하여 해답을 내어왔던 그 아이는 자신의 가치마저도 계산하는 길을 선택하였다. 절대 넘치지 않게, 대신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녹여 없애버려서. 올리비아가 세상에 보일 수 있는 힘은 딱 한 사람의 비극을 희극으로 바꿀 만큼이 전부였다. 하지만 한 명의 클로이가 희극을 맞이한다면 다른 모든 클로이도 조금씩이나마 그 길을 따를 테다. 그들이 잡아 스스로 묶고 있던 올리비아라는 밧줄이 풀렸으니 각자의 희극을 찾아 나서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필멸자 올리비아는 대가를 치르고 파멸을 사 올 사람이다. 받아온 멸망을 품 안에 한가득 끌어안는 올리비아의 표정은 덤덤했다. 사랑해. 그런 올리비아에게 클로이는 종종 진부한 사랑을 고백하고 가고는 했다.

 

사랑고백 한 번에 올리비아는 잔인함을 조금 삼키고. 사랑고백 두 번에 올리비아는 잔인함을 조금 더 삼키고. 수십, 수백 번 반복되어 만들어진 못돼먹은 올리비아. 그것은 클로이의 상처 가득한 힐난에도 변하지 않았다.

 

신은 오만하고 인간은 멍청하다. 성냥팔이 소녀의 세계에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사용되는 말이었다. 올리비아는 매일같이 그 문장을 들으며 순서가 바뀌지 않았냐고 종종 생각하고는 했다. 신은 멍청하고 인간은 오만하다. 사실 두 수식어는 순서에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는 같은 선상에 서 있었다. 무엇이 먼저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오만’과 ‘멍청’이라는 단 두 개의 결론. 올리비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무능’이라는 단어 또한 덧붙이기로 하였다. 이 극 뒤에는 신이 존재하고, 당신은 비극을 하사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것으로 보아 끝없이 부족한 존재.

신을 무능하다고 평가하는 올리비아 역시 유능한 사람은 아니다. 결말을 바꾸려면 한 사람이 없어져야 한다는 해답만을 내놓는데, 이 모습을 어떻게 유능하다고 평가할 수 있지? 그 ‘한 사람’이라는 역할을 맡을 정도로 대담한 올리비아가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올리비아는 신을 자신과 같은 위치로 끌어내리고, 신이라는 명사 앞에 ‘한낱’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만약 올리비아가 신을 만났더라면. 신은 올리비아를 만나주었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네가 나를 만나주지 않을 테잖아. 신을 믿지 않는 주제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우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신의 존재에 대한 불신보다, 그 자리를 가지는 것이 더욱 간절했다. 존재한다면 빼앗을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다면 만들 것이었다.

그러니 신에게 ‘한낱’ 따위의 말도 안 되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주제를 알고 저를 마뜩찮게 보지 말라는 경고. 올리비아가 기어 올라와 도전장을 내민다고 하더라도, 두 존재가 비슷하거나 동등하다면 그것은 반란도, 혁명도 되지 못한다.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평범한 경쟁에 불과할 뿐이다. 올리비아가 상상할 수도 없는 자리까지 올라간 이유는 오직 클로이로 인하여. 되도 않은 주제에 클로이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꽂았냐고 따질 예정이었을 테다. 신은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올리비아가 입을 열 기회를 삼켜버렸다. 제 앞의 올리비아의 등장으로 인해 터져 나오려는 웃음 또한 삼키며, 잘난 나의 올리비아.

신은 종종 올리비아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했었다. 올리비아가 신의 존재를 깨닫기 전의 세월부터 시작하여, 죽음을 불사하고 이 모든 것이 비극임을 눈치 채기 전의 시간까지 포함하여. 오랫동안 신의 사랑을 받아온 인간, 올리비아. 그것이 단 한 번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올리비아 역시 클로이에게 매여 있었기 때문이다. “오만하고 멍청한 신님은 당연히도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올리비아는 무교이면서도 신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모순적인 인간이었다. 신이 그런 올리비아를 어째서 사랑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믿지 않는 것으로 남았을 것이 사랑함으로써 순식간에 경멸이라는 단어로 변해버렸다는 사실만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 주제에 신의 사랑을 거절하지는 않는구나. 고민할 시간이 필요 없는 질문이었다. 클로이를 희극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이용해야지. 사실 이 모든 것은 전부 신이 올리비아를 사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면 신은 누군가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해오는 것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기분이 나빠서는 안 된다. 넘보아서는 안 될 자리에 도전하고서는 살아남기를 바라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고작 하나의 이유만으로 피를 흘리는 것 역시 우스운 일이다. 결국 허용되는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인간뿐이다. 한낱 인간이 이것을 전부 간파하기까지 한다면 재미있는 일이겠지.

올리비아가 사랑받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가? 사랑하여 여기까지 오게 하였는가? 여기까지 올 것이었기에 사랑하였는가? 올리비아는 이 모든 가능성을 띄우는 것까지 마치고는 신을 경멸하기 시작했다. 정답은 올리비아의 관심 밖. 무능한 신이 자신에게 보이는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고 올리비아는 판단했다.

올리비아는 한 명의 인간에게도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하여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한 손에는 클로이의 사랑을, 다른 쪽 손에는 신의 사랑을 들고는 올리비아는 끝없이 비교했다. 클로이의 것이 과연 절대적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참으로도 헌신적인 사랑이었다는 것이다. 클로이는 성냥팔이 소녀의 세계에 머무르는 것을 자처하면서까지 올리비아를 사랑했다. 결국 신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는 허울 좋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만일 신이 여전히도 이것이 사랑이라고 주장한다면, 올리비아가 평생 유일하게 이해하지 못한 개념은 신의 사랑이 될 테다.

신은 올리비아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득 띄워놓은 밤하늘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올리비아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랑을 말해주고자 했다. 밤하늘 아래에서는 고개를 이리 돌려도 사랑, 저리 돌려도 사랑. 사랑을 싫어하는 올리비아에게 우습기 그지없는 장소였다. 이곳은 신이 여태껏 봐 온 모든 사랑을 기록해놓은 곳. 이 많은 것이 전부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냐고 신은 물었다. 올리비아는 냉정하게 사랑의 남은 수명을 세어 말해주었다. 저 사랑은 하루, 저 사랑은 두 달, 저 사랑은……. 그러고는 묻는다. “자, 이토록 짧은 수명의 사랑들 중에서 신님의 사랑은 어느 것이야?” 신은 친절히 대답했지만 아쉽게도 올리비아는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정답은 처음부터 뻔했다.

올리비아가 그 질문을 한 이유는 단순했다. 하나는 신님의 사랑이 얼마나 얄팍한지 직접 알아차렸으면 해서, 또 다른 하나는 만약 신님의 사랑이 여기 있다면 가장 먼저 땅으로 처박아버릴 생각으로. 올리비아는 신이 지목하였던 사랑을 정확하게 낚아채 수명을 알려주었다. 클로이, 이 신님은 평생도록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할 거야. 올리비아는 손에 쥔 사랑을 땅으로 냅다 던져버렸다.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는 별들이 누군가 못을 박았던 흔적³이라 하였다. 사랑이 추락하여 텅 빈 자리에 올리비아는 못을 박아 넣었다. 빛을 받아 못은 반짝반짝 빛나는데, 전혀 아름답지 않은 별이라고 올리비아는 생각했다.

“저게 신님의 사랑이야.” 올리비아는 빛나는 못을 가리키며 말했다.

 

신은 묻지도 않은 정답을 고백했다. 정확하게는 질문의 요지에서 조금 빗겨나간 답안이었지만, 올리비아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올리비아가 클로이에게 보이는 애정은 신의 흥미를 충분히 유발시킬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

신이 한평생 지켜봐 오는 동안, 클로이는 올리비아에게 수없이도 많이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였다. 반면 올리비아는 단 한 번도 대답을 돌려주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좋아해, 혹은 사랑해를 돌려주지 않는다면 거절을 돌려주고는 했었다. 그것은 신이 영겁의 세월을 살아오며 터득한 일종의 인간 세계의 규칙이었다. 그러나 클로이의 말에 올리비아는 그것이 무슨 뜻이냐는 듯,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올리비아는 바보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지나치게 똑똑해서 문제였다. 신은 올리비아의 의미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올리비아는 자신이 내뱉는 고백이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가지는지 잘 알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자신의 말이 클로이에게 갖는 무게는 올리비아가 짐작할 수 없고, 감히 짐작해서도 안 된다. 다만 세상이 느끼는 무게는 또 다른 맥락이었을 뿐이다. 현명한 올리비아는 짐작이 아닌 정답을 알고 있다. 올리비아는 이 세상에 오직 한 명이지만, 올리비아에게 엮인 클로이는 세상 곳곳에 퍼져 있다. 그들은 세상을 구성한다. 그렇다면 올리비아의 ‘사랑해.’는 세상을 짓눌러 장기를 파열시킬 수 있는 무게. 더 나아가서 세상이 치료받기 위해 바닥을 기어가는 것도 잡아 막을 수 있는 무게.

올리비아의 고백은 희극을 포기한다는 것과 동치인 명제이다. 가장 처음 클로이로 명명했던 사람의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뒤를 수많은 다른 클로이가 뒤따를 테다. 한 명의 구원은 다른 한 명을 구원하지만 한 명의 절망은 나머지 모두의 절망으로 이어진다. 올리비아가 구원자이기를 포기했다. 세상의 여러 클로이는 누가 꺼내주어야 하지? 성냥팔이 소녀가 아닌 사람들에게 불행은 그저 진부한 클리셰의 일부. 모두가 비극을 외면한다면 올리비아는 가장 가까운 사람만이라도 구해내어야만 했다.

올리비아는 바벨탑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신에게 다가가려고 했다고 한다. 그것의 이유가 존경이었는지, 도전이었는지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올리비아는 제멋대로 도전에 좀 더 의미를 두었다. 바벨탑의 설계자 올리비아는 신의 자리를 넘본다. 올리비아는 바벨탑과 함께 몇 가지 규칙을 세워놓았다. 탑의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규칙은 제대로 지켜진다면 하늘까지 닿도록 할 것이었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신의 분노를 받아 중간에서 추락할 것이다.

올리비아는 사랑한다는 말에 긍정을 해 주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규칙임이 옳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대답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있지는 않았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신은 올리비아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다. 대답하지 않은 것은 온전히 올리비아의 이기심이었다. 차마 클로이를 버릴 수는 없어서 차라리 버려졌으면 하는 올리비아. 신이 올리비아를 사랑하는 것에 이유는 필요하지 않았다.

올리비아의 인생은 오직 클로이만을 위하여 이루어져 있다. 신은 올리비아를 사랑했고 그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이것이 비극임을 깨달았을 때부터. 그럼에도 신은 여전히 파멸을 걷어낼 생각이 없었다. 바벨탑의 규칙 두 번째, 얻게 된 신의 권한은 오로지 극의 결말만을 바꾸기 위해서만 사용해야 한다. 더, 더 간절해져서 언젠가 자신의 자리를 쟁취하러 오길. 신은 올리비아를 몰아붙였다. 그러니 올리비아가 신을 경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올리비아가 신이 되려는 이유를 신은 이해할 수 없었다. 단순히 희극을 위해서냐고 묻자 올리비아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신님은 무엇이야?” 질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신은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올리비아는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정답이야. 그리고 클로이는 신을 믿지 않지. 신은 올리비아의 사랑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신을 믿지 않는 클로이를 위하여 올리비아는 신이 된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클로이에게 마음이 있는데?

모순으로 가득 찬 올리비아는 유독 클로이에게 잔인한 사람이었다. 올리비아는 그것을 ‘나는 너에게만, 너를 위하여’라고 표현하였다. 클로이는 커피숍에 가면 항상 아메리카노를 레귤러 사이즈로 주문한다. 아르바이트생 올리비아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라고 대답하며 주문한 음료를 건네준다. 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지 않았는데요? 클로이가 이의를 제기하자 올리비아는 웃는다. 상관없지 않나요? 어쨌든 따뜻하잖아요. 올리비아의 말도 안 되는 사랑은 언제나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놓는 것으로 끝난다. 우리는 이것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것이 무엇인지는 이해할 수 있다. 이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신뿐, 그러니 그는 평생도록 사랑이 무엇인지 모를 수밖에 없다.

올리비아는 신이 되어 클로이가 자신의 존재를 잊기를 바랐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다가 부질없음을 깨닫고 마침내 잊어야만 한다. 올리비아는 클로이에게 종종 입버릇처럼 자신을 너무 신경 쓰지는 말라고 말하고는 했다. 우리는 클로이가 여기서 더 방치하면 방임이라고 주장하며 물러서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올리비아는 클로이가 방치하는 부모가 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올리비아는 언젠가 클로이의 곁을 떠날 사람이고, 그러니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올리비아가 클로이에게 보이는 애정을 신은 오류라고 표현했다. 클로이의 사랑은 평범했다. 성냥팔이 소녀의 세계로 걸어들어갔다고는 하지만 그 전부터 지금까지, 클로이는 벼랑에 내몰려 있는 상태였다. 올리비아와 자신의 생명 중 무엇 하나 포기하지 않는 상태. 클로이는 저를 향해 다가오는 누군가에게 악에 차 소리를 내지르고 있다. 올리비아를 놓는다면 제 한 몸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지만 올리비아라는 욕심을 부리며 끝끝내 머물고 있다. 처음부터 이 세계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되었을 텐데. 그럼에도 클로이가 벼랑 끝에 몰려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올리비아는 클로이의 희생으로 인해 벼랑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접근해오고 있는 사람은 클로이에게 정신이 팔려 올리비아를 눈치 채지 못할 것이고, 올리비아는 숨을 죽이고 숨는다면 살 수 있을 테였다. 아마도 그 누군가는 성냥팔이 소녀의 아버지. 어린 소녀를 성냥을 팔아 돈을 벌어오라고 거리로 쫓아낸 사람. 올리비아는 뛰쳐나가 클로이의 희생이 무가치해지도록 만들었다. 벼랑의 끝과 더욱 가까운 것은 클로이보다 올리비아 쪽. 스스로 저를 내몰고서는 마찬가지로 클로이를 향한 애정을 표했다. 올리비아는 그곳에서 지금 극의 결말을 바꾸려고 애쓰고 있다.

클로이에게 너무한 선택이 아닌가. 신은 고민했으나 사실 정답은 간단했다. 올리비아는 잔인한 사람이었다. 올리비아는 분명 클로이가 자신에게 베푼 사랑만큼 갚을 생각이었을 테다. 하지만 올리비아, 나는 그것을 대가를 바라고 베푼 것은 아니었지. 애초에 베풀었다는 단어도 어울리지 않아. 너는 끝까지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해 주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구나. 그것은 클로이의 이름이 클로이인 이유였다.

올리비아가 클로이에게 다른 호칭을 붙이지 않듯, 클로이도 올리비아에게 다른 호칭을 붙여서는 안 된다. 멋대로 관계를 정의한 올리비아는 이제 클로이에게 제 죽음을 축하해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모든 죽음은 주위 사람의 발목을 붙잡는다. 그러나 올리비아가 죽는 이유는 그것과는 완전한 반대 방향에 자리해 있다. 올리비아는 클로이를 방해하는 세상의 발목을 붙잡고 뒤로 끌어서라도 클로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 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클로이가…….

올리비아는 자신이 클로이를 너무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다고 했다. 클로이가 성냥팔이 소녀의 세계에서 버틴지 20년이 넘었다. 멀쩡한 사람이 정신을 놓고 미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올리비아는 이제 그만 클로이가 빛 아래에서 살아가기를 바랐다. 그러니 그것이 바로 올리비아가 신이 되고자 하는 진짜 이유.

올리비아는 클로이를 좋아했다. 사랑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대한 사랑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올리비아가 클로이를 좋아하는 이유였다. 그래서 올리비아는 클로이의 삶에서 없어지고 싶었다.

 

올리비아는 바벨탑이 완성되는 날에 탑 꼭대기까지 올라가 뛰어내린다. 자신의 이후로는 아무도 신이 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폭파시킨다. 자연스럽게 올리비아는 추락할 테다. 희극을 위하여 몸을 내던지는 것은 자신 이후로 아무도 없어야만 한다. 두 명의 올리비아는 존재할 수 없다. 세상에 남는 것은 오로지 클로이만이어야 한다. 올리비아가 구원자를 자처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불살라 기적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기적을 향해 걸어온 길마저도 불사르는 것은 필수. 올리비아의 선택에 대하여 누군가는 땅을 향한 자살, 또 누군가는 신을 향한 항쟁이라고 표현하였다.

둘 다 틀렸어. 이것은 신을 향한 유일한 믿음이야. 산산조각나기 직전에 신님은 필히 나를 쥐어 채가지 않고서는 못 베길 테니까. 올리비아는 한 번의 자살 시도로는 죽지 않는다. 올리비아는 자신을 향한 신의 감정을 믿었다.

신은 계산대로 올리비아를 죽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올리비아를 전부 이해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올리비아의 사랑을 해부해본다면 분명 모순이 전부겠지. 그리고 이러한 모순의 연쇄 작용은 대게 비극으로 끝이 났더라고 신은 기억을 하고 있었다. 희극이 무엇이지. 신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지만 올리비아의 희극이 완전하지 않은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올리비아는 차라리 이 극이 비극이었으면 좋겠다고 때로는 바랐고, 아마 그것은 희극의 불완전함에서 나왔겠지, 신은 추측했다.

올리비아가 생각하는 클로이의 희극은 올리비아가 없는 것이다. 올리비아는 자신이 들어섬으로써 클로이라는 극이 희극이 될 수 있을 기회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올리비아가 없어지는 것은 클로이에 대한 일종의 속죄일 것이다. 올리비아는 바벨탑에 오르기 전, 클로이에게 마지막으로 전하였다. “이곳에서 도망쳐도 괜찮아. 어릴 때는 그렇게나 원망스러웠는데,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세계에 발들인지 몇 년 안 된 클로이는 올리비아를 두고 떠나려고 했었다. 당시 치기어린 나날의 올리비아가 그런 클로이를 잡았으니, 이제는 올리비아가 등 떠밀 차례였다.

“너를 잊고 살 수 있을 것 같니.” 클로이의 말에 올리비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잊고 살아야지. 그것이 올리비아가 짠 각본이었다.

신은 고민하더니 올리비아가 무너뜨렸던 바벨탑을 다시 일으켰다. 올리비아의 반항은 소용없었다. 신이 자신의 사랑을 고백했을 때처럼, 올리비아의 발악은 신에게 닿지 않았다. 신은 조용히 대답했다. 사랑하니까.

신님, 부디 내 희극을 망치지 말아줘. 신은 올리비아의 가장 깊은 욕망을 이해해버린 탓에 표면적인 것들의 이해에 실패해버렸다. 올리비아를 사랑한 신은 그 아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바벨탑은 무너지지 않음으로써 올리비아에게도, 클로이에게도 비극이 되었다. 하지만 올리비아, “너는 어째서 클로이의 희극은 네 관점에서의 비극임을 말하지 않았지?” 신은 올리비아의 희극을 망쳤다. 클로이는 바벨탑에서 올리비아를 기억한다.

신으로 인하여 올리비아에게는 이 극이 완전한 비극이 되지 않았다. 어중간한 구원은 모두를 망친다. 그 사실은 올리비아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올리비아는 자신의 앞에 있는 신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신이 될 거야.” 신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든지.

감독, 연출 및 출연, 올리비아. 올리비아가 완성도 높은 연극 하나를 탄생시켰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올리비아를 신으로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올리비아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버린 탓에 신은 올리비아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고, 그리하여 신으로도 만들어줄 수 없었다.

올리비아, 그 애? 있는 정 없는 정 모두 바닥에 내팽개친 인간이지. 이유가 있었는데시기적절하게 퇴장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었나? 하여튼 말도 안 되는 이유였어. 그런 인간이 사랑을 한다고? 불가능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사랑해도 된다, 안 된다를 떠나서 사랑할 수 없어. 신은 그것이 희극을 향한 집착임과 동시에 자신을 향한 혐오임을 알고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사랑하는 사람의 발목을 잡아버린 자신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나?

올리비아가 신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하늘에 매달려 있던 사랑을 모두 떼어버리고 못을 박았기 때문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하늘에 사랑이 매달려 있는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신은 올리비아에게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는 말을 믿느냐고 물었다. 그것은 다시 하늘에 사랑을 매달아놓은 이유와 연결된다. 알아도 모르는 척, 있어도 없는 척. 사라지는 것에 익숙해진 올리비아는 무엇도 대답하지 못했다. 어쩌면 올리비아는 은연중에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올리비아가 바닥으로 내팽개쳐버린 것이 사랑만은 아니었다.

우리는 여기까지 오며, 단 하나의 질문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우리가 잊었던 사실 단 하나는, 극의 주인공은 올리비아가 아닌 클로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클로이에게 희극이란 무엇인가? 올리비아는 단 한 번도 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떤 의문도 가지지 않았다. 클로이의 희극이 올리비아가 생각했던 것과 정말로 동일한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사랑하면 멍청해진다는 말에 올리비아는 사랑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 비극은 올리비아가 혼자 책임져야만 했다. 올리비아는 항상 신더러 멍청하다고 하였지만, 정말로 멍청했던 것은 올리비아였는지도 모른다.

 

비극이지, 올리비아. 언제나 그래 왔듯이, 신은 묻지도 않은 질문에 답하였다. 잔인하지만 똑똑한, 희극을 꿈꾸며 바벨탑을 쌓아올렸던 올리비아는 그 무엇도 되지 못하였다. 올리비아는 조용히, 다시 한 번 땅을 향해 팔을 벌렸다. 한 인간의 끝은 무능한 만큼이나 지독히도 허무했다. 무너져 내리는 허무에 종점을 찍도록 한 것은 신도, 클로이도 아닌 올리비아 자신이었다. 무엇이 올리비아로 하여금 낙하하도록 한 것이지. 신은 끝없이 고민하였지만 정답을 찾지는 못하였다.

신의 자리를 올리비아 이해의 영역으로 평가한다면 신은 분명히 자격 박탈일 테다. 하지만 그런 신조차 올리비아의 두 번의 자살시도가 모두 계산된 것이라는 사실쯤은 알 수 있었다. 올리비아의 느릿한 낙하는 신에게 주어진, 올리비아에 대한 마지막 고민의 시간. 신은 올리비아에 대하여 무엇을 알고 있는가? 올리비아는 클로이를 좋아했다. 이 하나의 명제가 성립함을 알 뿐이었다. 올리비아의 자살은 신을 향한 마지막 도전장이었다. 정말로 나를 사랑한다면, 어디 한 번 이해해 봐. 한낱 신 주제에, 올리비아의 말버릇이 함께 따라붙는 것은 예정된 일이었다.

신은 올리비아의 마지막 과제를 풀기 위하여, 올리비아에게 질문하러 간다. ‘그렇다면 사랑이 무엇이니?’ 올리비아가 그토록 아꼈던 클로이. 본디 클로이가 아니었던 사람에게 클로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 신은 올리비아를 대신하여 클로이를 위하기로 하였다. 사랑과 희극과 클로이와… 올리비아가 신에게 남긴 과제는 많았다.

클로이는 바벨탑 꼭대기에서 올리비아를 향해 느릿한 편지를 보내고 있었다. 아마 다음 신을 지정한다면 그 대상은 올리비아가 아닌 클로이가 될 테다. 한 번에 한 장씩, 들어있는 내용은 오직 한 글자. 한 단어, 한 문장씩 이루어 보내는 것은 목이 메고 숨이 막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 편지에는 송신인만 있고, 수신인은 없다. 올리비아를 향해 보내는 편지는 신이 대신 받아 읽어본다. 모든 문장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몇 십, 몇 백 년이 넘는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신은 기다리며 클로이를 챙긴다. 클로이가, 라고 마침표를 찍는 그날까지.

올리비아는 클로이에게 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맹목적이었다. 신은 올리비아가 아니기에 클로이에게 거대한 꽃밭을 만들어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신 하루에 한 송이씩 꽃을 보내어, 클로이가 스스로 꽃밭을 가꾸도록 하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 이것은 처음 올리비아가 클로이에게 약속한 희극은 아니다. 그러나 애초에 올리비아의 희극은 정말로 희극이었는가? 신은 클로이의 편지를 열어 확인해보는 것은 관둘 때가 왔음을 느꼈다.

신은 올리비아를 하늘의 별로 매달기로 하였다. 그것은 언젠가 올리비아에게 던졌던 질문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는 이야기. 모든 사람이 별이 되는 것도 아니었으며 무엇보다 올리비아가 원하지 않을 것이 훤했다. 그러나 신은 클로이를 위하기로 하였다. 그것은 다시 올리비아를 위한, 다시 자신을 위한 것으로 돌아올 테다. 여전히 신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제가 올리비아를 사랑했던 것만은 분명히도 말할 수 있다.

올리비아는 클로이만을 위한 신이 될 것이었지만 클로이는 모두를 위한 신이 될 테였다. 올리비아가 클로이를 구원하기로 선택한 것 역시 그래서였다. 모두를 구원하는 역할은 처음부터 올리비아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올리비아가 땅으로 던져버린, 하늘에 매달린 사랑은 무엇이었는가? 올리비아가 클로이에게, 떠나버린 사람이 남은 사람에게 보내는 답장. 반대로 별을 박는 것은 남은 사람을 위한, 떠난 측이 보내는 선물.

이제 우리는 단 하나의 사실을 만날 권리를 얻었다. 올리비아는 클로이를 좋아했으며, 클로이의 최소한의 희극은 올리비아였다.

올리비아는 희극이라는 이름의 밧줄로 목을 맨 인간. 올리비아의 죽음에 대해서 평론가들은 다양한 입장을 내놓았다. 왜곡된 희극의 가엾은 희생양, 혹은 비관에 빠진 허무한 죽음. 사실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 없다. 올리비아가 죽은 후로 신은 어떤 방식으로 클로이를 위하였는가. 클로이는 올리비아의 사랑을 사실은 알고 있었는가. 신의 클로이를 위한 선택까지 올리비아는 내다보았는가. 이 모든 것은 단 하나의 질문을 함의하고 있다. 희극이 무엇인지 다시금 묻는 것이야말로 관객이 해야 할 일. 올리비아가 희극을 만들었는가, 올리비아가 희극이었나? 그 이름 하여 희극에 대한 고찰.

올리비아는 클로이를 사랑했다.

 

¹에쿠니 가오리의 동명의 소설 제목 인용

²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이미애 역, 민음사, 125p 인용

³류시화, <별에 못을 박다>

 


*성냥팔이 소녀는 빈곤함의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닌, 폭력에 노출된 사람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냥을 팔러 다니는 소녀의 모습보다는 성냥을 팔지 못하면 집에 돌어갈 수도 없게 한 아버지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는데… 좋은 비유였는지, 제대로 다가왔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클로이는 다수이며, 클로이는 올리비아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붙인 이름입니다. 한 명의 올리비아와 여러 명의 클로이…, 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물론 집중적으로 묘사된 것은 한 명이었습니다만, 가끔 다수에 대한 묘사가 나오기도 했어요.

*초고부터 묘사된 클로이는 언제나 올리비아의 어머니였어요. 어머니가 어머니라는 역할에 갇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어머니 대신 클로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이 올리비아의 의도예요.

*초반의 목적은 모든 올리비아와 모든 클로이, 이들 간의 숨막히는 맹목적인 사랑을 표현해보고 싶었는데 애매한 구석들이 있다 보니까 다소 어려움을 느끼고 경로를 틀었어요. 그대로 밀고 나가는 쪽이 좋았을지는… 이것도 잘 모르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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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형

안녕하세요, 율오 님. 퇴고한 버전이죠? 잘 읽었어요. 이번 소설은 지난 소설에서 말씀드린 장점들과 함께 '성냥팔이 소녀'에 대한 이야기가 추가되어 있어요. 스스로를 성냥팔이 소녀라고 생각하는 올리비아의 자의식이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뒷부분에서 신과의 대화를 나누는 부분에서 여전한 긴장감이 느껴졌던 것 같아요. 다만 이번 소설의 경우 성냥팔이 소녀라는 인식 혹은 장치가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는지에는 의문이 남는데, '성냥팔이 소녀'라는 단어와 이 단어에 자신을 투사하는 올리비아의 모습이 다소 인물이 가진 허기나 두려움을 다소 피상적이고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희극과 비극을 언급하는 부분들이 다소 상징적으로 모호하고 자의적으로 쓰이고 있는데(올리비아는 클로이에게 '희극'을 선물해? 주고자 하는 것 같은데, 이 희극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성냥팔이 소녀에 대한 부분이…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