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클 세븐틴

언니, 나는 열일곱이 되면요, 모두 언니처럼 빛나는 줄 알았어요.

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 내 나이가 열넷, 언니가 열일곱이었습니다. 언니와 어떻게 친해질 수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관계가 어땠는지에 대해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언니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많은 사실들을 기억 중인데, 이상한 일입니다. 사실 딱 하나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다. 이제는 언니와의 연락이 끊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언니를 찾아 헤매는 이유입니다. 당시의 우리의 마음을 저울질한다면, 내 마음보다 무거운 것이 언니의 마음이었습니다.

나의 열일곱에는 언니와 관련하여 상당히 재미있는 기억이 있습니다. 3월 2일의 개학 첫날, 영어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롤모델에 대한 글을 작성하여 발표하라고 하셨으며, 친구들은 연예인, 부모님, 중학교 선생님 등 다양한 사람들을 자신의 롤모델로 꼽았습니다. 눈치 챘습니까? 나의 롤모델은 고작 나보다 3년 더 산 언니였습니다. 언니와의 연락이 언제 정확히 끊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참을 헤집어 언니의 이름을 내놓은 것을 보면 분명 그때도 연락이 되지 않고 있었을 텝니다.

언니의 이름을 P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언니의 이름에는 어디에도 P가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만약 언니가 이 사실을 안다면 자신의 이름을 알지 않느냐고 성을 낼 것입니다. 나는 S, 물론 내 이름에는 S가 들어갑니다. 내 이름을 영어로 적는다면 첫 번째로 등장하게 될 알파벳입니다. 그러면 언니는 왜 P이냐고요? 언니와 나의 나이 차이 삼 년, S에서 세 번 뒷걸음질 치면 P에 다다르게 되니까요. 그리하여 S에 연결되는 나, 내가 없으면 P에 연결되지 수 없는 언니. 우편집배원은 수신인의 이름과 집 주소가 연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편지를 폐기시킬지도 모릅니다.

언니, 혹시 언니가 나를 처음 만나러 온 날 했던 말을 기억해요? 내가 언니를 본명으로 부르지 않고, 계속해서 닉네임으로 불렀잖아요.

매일 화면 너머로만 대화하던 것과 실제로 만나는 것은 상당히 느낌이 다릅니다. 아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존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터넷에서는 서로를 ‘불리는 이름’ 대신 ‘불렸으면 하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그러니 내가 언니가 십칠 년 동안 가지고 있던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언니는 그런 내가 틀렸다는 증명이라도 하듯 끊임없이 나를 본명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채원아, 너도 내 이름 알지 않아? 이름으로 불러줘.” 하지만 나는 그날 언니와 헤어지는 순간까지 언니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습니다.

언니, 뒤늦게 고백해요. 그 당시 언니가 불러줬던 내 이름, 듣기 좋았어요.

물론 언니에게 만약 이 편지가 닿는다면, 우리가 서로에게 존댓말을 쓰는 사이는 아니지 않으냐고 혼날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내가 언니에게 혼내도 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연락이 끊겨 있던 공백 기간은 아무렇지도 않은 양 다시 언니의 동생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편지에서라도 언니의 이름을 부르면 용서해줄까요? 혜인 언니, 보고 싶어, 라고 말입니다.

언니가 나를 만나러 내 지역으로 온 다음에는 내가 언니를 만나러 언니의 지역으로 갔습니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다가 차가 꽉 막힌 것을 보고, 택시에서 내려 목적지까지 함께 걸어갔던 기억도 있습니다. 언니는 길을 걸어가면서 만난 고등학교를 하나 가리키더니, 이곳이 자신이 재학 중인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부끄럽지만 그때 처음 든 생각은, ‘언니는 이곳에서 모두를 이기고 악착같이 성공해내는 사람이구나.’였습니다. 언니가 재학 중인 학교에 대한 감상보다 언니의 성과가 먼저 떠올랐고, 그 다음으로 따르는 것은 언니에 대한 동경이었습니다.

언니는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로 전교 1등의 자리를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언니를 칭찬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학교에서 받는 장학금으로 언니는 취미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연예인 팬사인회에 응모를 하고, 좋아하는 그룹의 앨범을 구매하고, …. 멋있었던 것은 자신의 취미생활에 대한 비용 부담을 스스로 하고, 그러면서도 성적 또한 유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그 사실을 단 한 번도 고백하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언니를 좋아하는 이유가 오직 그것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언니, 나는 지금 열아홉이에요. 내가 고등학생이 되어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나는 언니처럼 이과생이고, 과학탐구는 3학년을 졸업할 때쯤에는 물화생지의 , 과목을 모두 마치게 돼요.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와 같아요. 수학이에요. 수능 응시는 물리 과 지구과학 를 할 계획인데, 역시 물화 조합으로 수능을 본다고 하던 언니가 제일 멋있는 것 같아요. , 물리도 굉장히 재밌더라고요. 물론 흥미와 성적은 별개이지만요.

돌이켜보면 나는 언니의 영향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현재에는 특목고 입시에 실패한 친구들이 대부분인 일반고에서 내신 싸움을 하고 있지만, 열넷에서 열여섯 사이에는 자사고 입시를 목표로 하면서 악착같이 공부했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생활의 첫날에 롤모델을 급히 찾다가 언니를 내세웠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내 롤모델은 그 이전부터 언니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수학을 사랑하는 이공계 지망생, 언제나 그래 왔습니다. 그러니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며 기하와 벡터까지 모두 끝내버린, 물리와 화학을 사랑하는 고등학생을 동경하지 않으리란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언니는 짧게나마 내게 공부를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국어와 영어는 언니의 수준에 맞춰 함께 공부했고, 수학은 가끔 말도 안 되게 어려운 문제를 찾아 들고 가 언니에게 질문하고는 했습니다. 당시의 어린 열네 살이 보기에 언니는 만능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언니의 실패는 기억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여전히 찾을 수 없습니다.

언니에 비해 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칙칙하기만 합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전교 1등과 같은 완벽함은 아니더라도 내신을 1점대는 띄울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특목고 입시에서 떨어진, ‘어중간한 실패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더라도 2점대 초반의 내신은 받을 줄 알았습니다. 현재 내 내신은 2점대 후반입니다. 우리 학교에서야 잘한다는 취급을 받고, 전국적으로 봤을 때도 잘한다는 취급을 받지만―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내 내신은 어중간한 놈의 것입니다.

언니, 나는 다른 과목은 몰라도 당연히 수학은 1등급일 줄 알았거든요. 아니더라고요. 나는 계속해서 부서지기만 해요. 살려줘요, 언니.

생각해보면 언니가 대단한 것은 전교 1등이라는 등수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무너지지 않는 사람, 무너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람.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진부한 말을 듣고 왔습니다. 고삼은 수능이라는 목표지점을 가진 장거리 달리기라고 합니다. 호흡 조절이 중요하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렇다면 언니는 분명히 이 달리기의 1인자일 것입니다. 언니가 단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언니가 무너졌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다시 일어나서 달렸을 것이라는, 뻔하고도 분명한 이야기입니다.

요즘 들어 잊고 있었던 언니가 계속 생각납니다. 열아홉에 나는 계속 무너지고, 넘어져 땅을 바라보고 있으면 언니 얼굴이 보입니다. 나의 열일곱은, 나의 고등학교 삼 년은 언니와 다르게 찬란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언니에게, 언니를 따라잡는 것에 그치지 않고 넘어서서 성공한 후 환히도 웃어 보이는 것. 언젠가의 꿈이었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따라갈 사람도, 따라잡아 웃음을 전송할 사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애써 외면해 왔던 칙칙한 시간들이 이제 나를 짓누를 차례입니다.

언니……, 지구과학 가 생각보다 재미있는 과목이더라고요. 오늘은 PS시라는 것을 공부했거든요. 언니랑 나 생각이 나더라. 문득, 그냥요.

언니와 연락이 끊기고 나서의 한참 뒤인 이제야, 후회하는 것이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되감아보면 나는 언니를 정말로 좋아하였는데, 마음을 솔직히 고백하는 나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기억 속의 나는 언제나 언니를 어려워했습니다. 언니는 나를 풀어주려고 일부러 장난도 치고, 우스꽝스러운 그림도 그리고, 언니와 나만의 애칭도 만들고. 언니가 어째서 먼 사람처럼만 느껴졌는지 이제야 깨닫는 순간입니다. 나는 언니를 좋아하고 사랑하였지만, 나의 열일곱은 언니처럼 빛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칙칙한 나와 찬란한 언니의,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

이제는 정말로 언니에게 혼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언니는 나에게 실망하고 화를 낼지도 모릅니다. 언니는 지켜보는 내내 계속해서, 더욱 빛나는 사람이 되어가는데 나는 계속해서 빛을 잃어가기만 합니다. 사복에서 교복을 입으며 학생이 흑백이 되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언니로 인해 반짝거림이 무엇인지 알아버렸습니다. 나는 끊임없이 언니를 동경하고, 계속해서 언니와 멀어지고….

언니와 내가 멀어진 것이 나 때문이 아닌가, 이제는 그런 생각도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이제는 지겨울 만큼 사랑한다고 속삭일 수도 있게 됐고요.

PS시는 지진파의 P파가 도착한 후 S파가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지진이 시작한 지점인 진원에서의 PS시는 0이며, 진원에서 멀어질수록, 즉 진원거리가 늘어날수록 PS시도 함께 늘어납니다. 진원거리 d는 {(P파의 속도) × (S파의 속도)} / {(P파의 속도) – (S파의 속도)} × (PS시)로 구해집니다.

언니는 분명 내게 친구의 관계로 다가왔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내가 멋대로 동경으로 바꾸었으니, 사실 생각해보면 거리가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교과서의 내용을 제멋대로 현실에 끼워 맞추는 것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지만, 언니가 이과생이었으므로 한 번쯤은, 내가 싫어하는 짓을 해 보려고 합니다. 내 이름이 S, 언니의 이름이 P임을 여전히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여전히 세 발자국 뒤에서 언니를 따라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거리가 더 벌어져 언니를 볼 수 없게 됐습니까.

진원거리 0인 부분은 언니와 나의 관계가 친구로 맺어졌을 때, 진원거리가 늘어나는 것은 우리의 관계가 친구로부터 멀어지게 되면서, PS시는 언니와 나 사이의 거리를, 못하겠어요, 언니. 나는 언니의 속도도, 내 속도도 잴 용기가 없고 PS시는 더더욱 몰라요. 무엇보다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조차 모르겠는데 어떻게 속도를 재라는 말이에요? 하나같이 기만이에요, 전부, 전부!

언니, 사실 할 말은 없어요. 내 용건은 언제나 간단했잖아요. 내가 항상 했던 말이요. 사랑해. 뒤늦게라도 해야죠, 이렇게.

S파가 언제나 P파를 뒤따라가는 것은 이미 정해진 순서입니다. 내 이름도 S라서 언니를 애타게 쫓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땅을 밟는 순간 땅은 소리를 내며 갈라질 테니, S가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은 맞나 봅니다. 나는 오늘도 가지지 못할 것을 탐냈다가, 실패하고, 넘어지고, 후회하고, 일어나지 못해 기어갑니다. 나는 당연히 열일곱이 되면 빛날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열아홉이 되었습니다. 모든 열일곱이 언니 같지는 않았고, 그냥 언니가 찬란한 열일곱이었던 것이고…. 나는 거기에 P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언니, 오늘도 미련을 접는 것에 실패했어요.

 

추신. 내가 언니를 보고 싶은 것인지, 언니의 열일곱을 사랑하는 것인지 사실 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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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부일

율오 님, 반가워요! 새로운 멘토 문부일입니다.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된다고 한 것 같은데, 이렇게 좋은 글 올려줘서 감사해요! "스파클, 세븐틴" 잘 읽었어요. 17이라는 숫자가 의미가 있죠. 우리나라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 고등학생은 중학생과는 다른 어느 세계로의 진입이라고 할 수 있죠. 청소년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그 중간의 교집합 같은 시기. 그리고 행운의 숫자 7이 주는 특별한 의미까지 더해져서!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뛰어난 비유가 아닐까요? 17살을 상징하는 혜인 언니. 화자는 그 언니를 p라고 부르는데, 다른 사람들이 정해주는 17살이 아닌 스스로 그 가치를 찾는 것으로 보여지네요. 이런 설정들이 매력적입니다. 화자는 열아홉살이 되어서 세븐틴을 기억하며, 그리워하고 있죠. '이제는 언니와의 연락이 끊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언니를… 더보기 »

핸지니

비밀댓글입니다.

고슴도치13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과 공간이 드러나 있고, 화자는 살아있는 인간이니까 소설카테고리에 올려도 좋을것 같아요. 거울이라는 웹진 단편에 올려보시면 어떨까 싶어요. 유시진님의 쿨핫이라는 만화가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