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소년

 

 

 

시곗바늘이 자꾸 절뚝이는 것 같더라니

멈춰버렸다

 

승객 여러분께 알립니다. 왜소행성과의 접촉사고로 우리 은하철도는 잠시 운행을 멈추고 차체를 점검할 예정입니다. 아직 화이트홀을 지나기 전이니 승객 여러분께서는 철도 밖을 이탈하지 마시고

 

까득까득 낯선 파동이 성가시게 굴어

밖을 쳐다봐도 어느 시대를 지나고 있는지조차 알 길이 없다

쉬고 싶은 심장에 파동은 자꾸 펌프질을 해댄다

 

파동이라면 내가 잘 알지

어느 옛 행성들은 저마다의 언어가 있었는데 그건 파동의 형태였다고

교과서엔 단 한 줄로 끝나는 걸

할아버지는 지독히도 반복해댔다

할아버지의 정신나간 뻐꾸기 시계처럼 괴상하게 튀어나왔다

 

너도 어느 한 구석에 지구의 맥이 뛰고 있을지 몰라 우리 푸른별은 말이야

 

그렇게 푸른별 푸른별 하는 마당에 지구를 항성이라 적었다고 시험에서도 틀린 참이었다

그 뒤론 귀 옆에 채를 두고

알아서 걸러들었다

어차피 할아버지도 지구어가 무언지 몰랐다

그냥, 지구인의 맥을 이어받은 이는 지구어를 이해할 수 있을 거랬다 지구인의 심장은 언제나 함께 뛰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탈했다

구구절절 나오는 이야기들이 발판을 만들어줬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가만히 웅크려 숨죽이면

미끄러지듯 굴러갔다

너무 멀리까지 왔나 문득 겁이 나면 파동이 등을 떠밀었다

 

도착한 행성은 버석한 모래

다를 것 없는 공간 중 하나

그곳에 구형 파동발생기가 있었다 가볍게 씌인 모래를 털자

선명한 1세대 낙인

지금은 단종된 모델이 싱싱하게 자맥질하고 있는 지금은, 언제지?

고개를 들어도 언제나 여유로운 우주는 답이 없다

화이트홀을 아직 안 지났는지 알게 뭐람

파동발생기는 두근거린다 맥박이 뛴다 손을 대니

언어들이 쏟아진다

 

드디어 지구어를 아는 이가 여길 찾아줬구나. 이걸 느낀다면 말이야. 그렇지?

너무 외로워. 70억은 꽤 큰 숫자가 아니었나? 지구가 터진 뒤로 지구인은 한 번도 못 봤어. 이젠 같은 은하 안에 있는지도 의심스러워.

이걸 느끼는 네가 남아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네가 어떻게 생겼든, 어떤 생각을 가졌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우린 같은 지구인이잖아.

이 말도 안 통하는 문어놈들, , 이게 비하적 표현이라면 미안해. 근데 문어가 뭔지 아는 것도 너와 나밖에 없잖아.

이 문어들이랑도 헤어지고 날을 세려다 잊어버린 지 오래야. 나는 셀 수 없는 낮과 밤을 혼자 보냈어. 여긴 시간개념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니까. 그렇지?

그런데도 지구인은 아무도 못 찾았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까?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나는 그만 이 행성에 남으려고 해.

나는 오른쪽으로 걸을 거야. 할 일이 없다면, 오른쪽으로 걸어. 내가 먼저 걸어간 길을 걸어. 발자국이 있다는 건 선물과 같아. 난 널 위해 걸을게.

 

문어가 무언진 나도 몰라

하지만 이게 은하공용어가 생기기 전이라는 것만

 

저 멀리 은하철도가 발광한다

곧 소멸할까 아찔하지만

그냥 곧 출발한다는 신호일 뿐이다

 

오른쪽으로 걸으려다, 왼쪽으로 튼다

은하철도가 이 시간에 다시 멈출지는 몰라

하지만 어느 행성이라도 맞닿은 점으로 이뤄져 있다는 건 안다

반대방향으로 돌다보면 언젠가

kakao

2
댓글남기기

로그인 후 사용해주세요.
1 Comment threads
1 Thread replies
0 Followers
 
Most reacted comment
Hottest comment thread
2 Comment authors
이병국

안녕하세요, 데이님. 처음 뵙네요. 반가워요. 시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저 우주에 환상적 공간을 설정해 놓고 시가 전개되네요. 흐름도 매끄럽고요. 다만 이런 소재의 차용은 어떻게 보면 진부해 보일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변용할 것이냐의 차이에서 의미 획득이 가능할 수 있을 거예요. 상상적 공간은 결국 현실적 공간과 별다를 바 없죠. 결국 ‘지구’라는 단어를 쓰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이곳의 무엇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일 텐데 어떤 면에서는 소통의 불가능성에 대한 것일까 싶기도 했어요. 하지만 시의 전반부를 이끄는 ‘파동’이라는 단어를 통해 할 수 있는 말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방향성만 남는 건 아쉬운 부분이었어요. 말이 많아서 혼란스러운 부분도 있고 이탤릭체로 되어 있는 부분이 과연 필요한…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