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고 싶은 너에게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은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그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거예요. 당신이 떠올린 사람은 누구인가요?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정말 죽일 정도로 싫어하는 사람을 떠올리거나, 적당히 미워하는 사람을 떠올리거나. 나는 전자에 속하는 축이었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두 손 꽉 쥔 주먹이 떨릴 정도로 미운 사람이었다. 이제는 그 악감정도 사라져버린 지 오래이지만. 어딘가 아쉬운 마음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악감정 하나로 그 사람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연결고리가 없었으니까. 지금 떠올려 보면 지극히도 유치한 짓이었다.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해 내려 한다. 돌아오는 것은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드는 창피함뿐이었지만. 정말 그를 향한 감정이 미움이었던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름조차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지만, 내게 무척이나 특별한 의미였던 것은 분명했다. 그러니 마음속에서 슬그머니 궁금증이 떠오르겠지. 그 사람은 잘 지내고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앞에 놓인 편지지를 뚫어지라 바라보기만 한다. 장문의 편지를 쓰라는 것이 어지간히도 부담되기는 했나 보다. 이름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 사람에게 장문의 편지를 쓰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말을 떼어야 할까, 라는 고민부터 시작해 네게 할 말이 있기는 할까, 라는 고민까지. 수많은 사소한 고민이 머릿속을 헤집고 지나간다. 쓰기 싫다는 일종의 회피에 불과한 것들이었지만, 내 손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죽이고 싶었던 네게. 한 문장으로 시작을 잠깐 떼어 보았지만, 발에 맞지 않는 구두를 신는 느낌이었다. 할 수 없이 그 문장은 버려졌다. 그리고 다시 기억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내가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었던 사람이 맞는 것인지, 한 번 더 물어본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치는 나의 목소리뿐. 망설이다가 다시 한 번 연필을 움직인다. 사각사각, 종이 위에서 연필이 움직이며 내는 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여러 번 움직이고 멈추기를 반복하며 연필은 마침내 한 문장을 완성해 내었다. 처음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죽이고 싶은 너에게.

끝에 진하게 마침표까지 찍혀져 있었다. 그 사람과의 인연에 끝을 찍는 것 같아 속이 아련했다. 몇 번이고 그 문장을 다시 읽어 보았다. 여전히 그 사람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잊으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몇 년간 한 사람의 존재에 대한 기억을 지우려 노력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은 없었던 것 같다. 열등감, 그것이 내가 그 사람에 대해 기억하는 것의 전부였다. 내가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된 계기. 그 사람을 잊고 살려고 했던 것의 이유. 열등감으로 시작해 열등감으로 끝나는 인연 앞에서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웃음이 패자의 웃음임을, 가슴 속의 나는 느끼고 있었다.

모 만화에서 팬보다 안티가 더 많은 한 여자 등장인물이 있었다. 나는 그 등장인물을 좋아했지만, 친구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등장인물은 열등감으로 악의 길을 걷게 된 자였다.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이 그 등장인물의 욕만 하였기에 그녀가 나쁜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사실만으로 욕을 하는 게, 정말 맞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따지면 나도 욕을 먹어야 마땅하다고 따지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그 등장인물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 등장인물만큼이나 한 사람을 미워해 본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나는 단지 그 심정을 이해한 것뿐이고, 그 심정에 공감했을 뿐이었다. 어쩌면 내가 그 등장인물을 좋아하게 된 것은 내 안의 상처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비슷한 그 등장인물을 바라보며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넌 나랑 비슷하잖아. 넌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있잖아. 그런 마음으로 그 등장인물에게 끝없이 말을 걸었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뻤다.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라도 괜찮았으니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줄 사람이 내게는 필요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니까.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이 내게 뱉어내는 말들은 늘 한결같았다. 미리 짜 맞추어 놓기라도 한 듯, 이것 아니면 저것, 저것 아니면 이것이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수는 있어도, 진심으로 공감하지는 못한다.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과 비슷한 경험이 내게는 없으므로. 그것이 그들의 한계였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내가 털어놓을 사람은 당사자밖에 없었다. 내가 그렇게도 미워하는 당사자. 그리고 난, 그 당사자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

“그 등장인물이 왜 좋은데?”

내가 좋아하는 등장인물을 주변 사람에게 살짝 고백했을 때, 그 사람의 반응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내가 털어놓은 사람 모두가 그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으니까.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 그렇다면, 너는 알겠니? 내가 그 등장인물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겠어? 죽이고 싶은 너에게, 침묵의 질문을 던진다. 널 그렇게도 싫어했던 이유. 내 심리는 그 등장인물에게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마치 날 보는 것 같아, 눈을 떼지 못했다. 내 대답은 간단명료하였으며, 그 날로 나는 ‘이상한 아이’로 찍혔다. 그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이토록 괴롭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등장인물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꿈꿔왔다, 그 등장인물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기를. 하지만 내 곁에는 그저 그 사람뿐이었다, 내가 죽이고 싶어 하는. 그 정도로 싫고 마주치기가 괴로운 그 사람이었지만 왠지 그라면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말하지 않았다. 그럴 용기가 내겐 없었다.

“공감되니까.”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한 경험이 넌 없잖아. 밝히고 싶지 않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였다. 내가 그렇게 죽이고 싶어 했던 이유를 말한다고 모두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다. 세상 살며 나 같은 경험을 하는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그렇기에 나는 내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도 믿지 않았다. 진실로 뒤덮인 거짓을 못 보고 지나칠 나이는 지났다. 예의상 끄덕일 수밖에 없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먼지만 한 값어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그 이상의 값어치를 한다. 그저 그 사실을 몰라주는 것이 아팠을 뿐이었다. 내 입장에서 바라보려, 그 노력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것만이 가슴을 찌를 뿐. 내가 죽이고 싶어 했던 당신. 당신은 나를 이해하겠나요?

“날 원망하지 마, 친구.”

친구라는 그 한 단어가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다. 온갖 달콤한 가식으로 치장한 몇 마디에 진저리가 났다. 어쩌면 난 그제야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가식이 없는 사람은 너무나 쉽게 싫증이 나고 보기 싫어진다는 것을. 그 기본적인 가식 하나 없어서 타인에게 미운털이 박히고, 원망을 받는다는 걸. 인간은 정말 이상한 생명체이다. 가식이 없는 것이 더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식으로 치장한 사람에게 더욱 호감을 준다. 이제는 가식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에게 솔직했다. 그는 나에게 솔직했다. 그렇게 그는 내게 죽이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짙고 깊은 열등감을 표출하면서 천천히 미워지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마음의 진실은 거짓으로 덮인다. 편지를 쓰며 하나둘, 밀려들어 오는 진실에 메말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거짓에 가볍게 속아버린 나 자신이 너무나도 미웠다. 난 대체 몇 번 실수하고, 몇 번 후회해야 그만할 수 있을까.

“말해봤자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쯤은, 너도 알고 있잖아?”

내가 친구라고 믿었던 존재는 그렇게 책임을 회피하더라, 손에 힘을 주어 정확하게 글씨를 적어 내려갔다. 그 사람에게 해 주고 싶었던 말들은 손끝을 지나 연필의 흑연으로 터져 나온다. 세상에는 언제나 승자와 패자가 존재해, 난 그것이 참 더럽게 느껴지더라. 문단을 바꿔 새 이야기를 꺼냈다.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 그 사람에게 느꼈던 모든 것을 털어놓을 기회가 왔다. 난 모든 사람이 승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을 원했는데. 만약 그 세상이 존재했다면, 그 사람과 나의 관계는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는 없는 세상. 그것에 대한 분풀이로 네게 살의를 느꼈던 것일까, 추측해 보고.

“그 사람이 왜 싫어요?”

진행자가 내게 물었다. 별다른 의도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게는 그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껄끄러웠고, 의도치 않게 얼굴을 찌푸렸던 것 같다. 뒤늦게야 자각을 하고 죄송하다, 사과했지만, 진행자는 크게 기분 나빠하지 않은 것 같았다. 오히려 다 이해한다는 듯 짓는 그 미소가, 긴장을 풀게 한다. 세상은 어차피 작다. 내가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한들 돌고 돌아 당사자의 귀에 들어갈 것이다. 웃었다. 당장은 그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뭐 느낀 점이라던가, 그런 거 없어요?”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묻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마치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억지로 떠올리라, 캐물으려 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 지금 내 감정이 얼굴에 훤히 비치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진행자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 전문가는 다르구나, 한 분야에 숙달된 이들을 전문가로 인정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진행자는 눈빛으로 계속 물음표를 던졌고, 나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끝나지 않을 듯한 침묵이 어색했는지 진행자는 미소를 띠며 말을 꺼내었다. 더없이 따뜻한 미소였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포옹할 수 있을 것처럼. 그러나 나는 봐 버렸다. 그 미소의 시작은 뒤틀린 입술이었다는 것을. 내려가는 끝을 애써 위로 잡아 끌어올리며 웃음을 지어낸다.

살인 충동이 일었다. 인간이란 참으로 더러운 존재였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남을 절벽 위에서 밀어버릴 수도 있는, 정의도 의리도 없는 생명체들. ‘너’보다 더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은 처음이었다. 어쩌면 넌 깨끗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지나친 깨끗함이 화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미안해, 미안해. 인간에게 더럽다 말하는 나조차도 그 더러운 인간 중 하나였다.

“이것의 목적은 오로지 치유예요.”

그렇게 말씀하신다 한들 믿을 사람이 있긴 하나요. 입가에 번지려 하는 비웃음을 이성으로 어렵게 자제한다. 가식 하나로 사람을 손에 쥐고 흔드는 그 모습이 정말로 우스웠다. 그것에 흔들리는 나도 우스웠다. 가릴 이야기, 안 가릴 이야기를 천천히 구분하며 나는 진행자를 쳐다보았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었다. 들어봤자 괜히 입맛만 씁쓸해지는 이야기라 주변 사람들은 말하였다. 흔히들 아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지만, 나는 응어리가 진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숨김없이 아픔을 나누고 나면 돌아오는 것은 쓴 미소뿐. 온통 열등감과 경쟁뿐이었던 내 어린 삶은 그렇게 상처로 남은 것 같다. 그렇게 되도록 만든 세상이 아직도 밉다.

한 번도 미워한다고 말한 적이 없는 너도 밉다. 나는 계속 너를 잡으려 뛰어가는데 그럴수록 멀어져만 가는 네가 참 원망스럽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미 내 한계를 넘어선 것 같은 넌 나를 절망에 빠져들게 하였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칼을 갈았다. 독을 품었다. 돌아오는 것은 끝없는 후회와 실망, 미안한 마음뿐이었지만.

“열등감이었어요.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된 이유.”

죽이고 싶었다는 말은 살짝 뺐다. 아직 나는 그 정도로 솔직하지 못했으니까. 본인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한 것이 ‘나’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이었다.

 

나보다 잘난 누군가를 따라잡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달렸다. 이 아래로는 까마득한 벼랑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언제나 뛰어난 자들만 치켜세운다. 자신들이 믿는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그 밑에서 따라오는 자들을 모두 밀어버린다. 모든 것은 제일 완벽한 그분을 위해서, 그들은 그렇게 말한다. 제일 앞에서 달리는 한 사람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뒤돌아보는 순간 따라잡힐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 사람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나 역시 같았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린다. 내 앞에 아무도 없기를 꿈꾸며.

“넌 죽었다 깨어나도 안 돼.”

아니야. 내가 기필코 저 녀석의 등에 칼을 박아넣고 말 거야.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어느 한 분야에서 최종적으로 우승자가 되기 위해 달렸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가 건 발에 걸려 넘어졌다. 넘어져 흙투성이가 된 얼굴 위로 쏟아지는 것은 비웃음뿐이었다. 그때 처음 심장에 화살이 박혔다. 넌 안 돼. 안 될 거야. 그 단순한 몇 마디에 숨이 막혀왔다. 다시 일어나서 달린다. 하지만 속에 품은 것은 조금 바뀌어 있었다. 순수하게 선의의 경쟁만을 품고 달리던 때는 지나갔다. 그들이 내게 “안 돼.”라고 말했을 때, 내 모든 것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목표가 조금 바뀌었다. 기필코 이 분야에서 1등을 잡겠다. 그리고 처참하게, 녀석을 죽일 것이다. 너희가 섬길 왕은 이 녀석이 아닌 나라고, 나를 향해 조소하던 이들의 머릿속에 두려움을 심어줄 것이다. 돌이켜보니 나는 그저 속상했던 것 같다. 그 감정은, 정말 누군가를 죽일 만큼 대단한 것이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무엇이 옳은 것이냐고 묻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그 질문을 과연 누가 받았을까, 헛웃음이 새어 나온다. 내 감정에는 단 한 사람이 희생당했다. 그것도 아주 무자비하게. 정작 죽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었는데.

“안녕.”

“……안녕.”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인사를 건넨다. 우리는 언제나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자신과 비슷한 위치의 사람을 경계하며, 그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을 의심하고, 그 사람을 대할 때 계산적으로 행동하고. 겉으로 티가 나느냐, 안 나느냐 그 차이였을 뿐, 결국 인간은 모두 같을 수밖에 없다. 내게 죄가 있다면, 인간으로 태어난 죄.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나이며 나 역시 인간이다. 나는 인간이기에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거울 앞에서 수없이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그 말은 본래 닿아야 할 사람에게 닿지 못했다. 우리는 한 생명을 죽이면서 태어난다. 인간은 모두 살인자일 수밖에 없다. 단순한 책임 전가처럼 들릴 수도 있다. 일부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머지 일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살인자일 수밖에 없으므로 살인한다. 이미 우리의 머릿속에 이 생각은 틀어박힌 지 오래다.

항상 널 죽일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리고 너는 날 보며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 웃음으로 내 분노를 삭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크나큰 착각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네 그 세상 다 산 것 같은 웃음은 정말 역겹기 그저 없었다. 죽일 거라는 내 원한 서린 말에 너는 그저 수긍하며, 죽여, 라고 말하는 듯했다. 내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죽을 운명인 양, 삶에 대해 연연하지 않는 네 모습은 나를 더욱 도발했다. 너를 죽이고 나도 죽겠다, 세상 끝까지 따라가서 너를 괴롭혀 주겠다, 너를 향한 원망이었다. 너는 내 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것이니, 정말 몰랐던 것이니, 그 모든 것은 누구를 위했던 것이니, 아직도 네게 묻고 싶은 물음이 정말 많다. 그리고 난 모든 대답을 들을 것이다. 그러니 죽지 마라, 죽지 마, 넌 내 손에 죽어야 하니까.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너 때문에 마음고생을 몇 번이나 했는데!”

절대 말을 직설적으로 내뱉었던 적은 없었다. 돌리고 돌려서 끝을 날카롭게 간 후, 최대한 먼 길로 둘러가 그에게 꽂아 넣었다. 너도 나만큼 아파 보라고, 그래야 내 마음을 알 것 아니냐고. 그가 정말 아프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아프면서도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았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몇 번이고 그렇게 말을 쏘았다. 더 아파해도 된다고, 내가 당한 만큼 당해봐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미안한 일, 몇 번이고 사과해도 부족한 일인 것 같지만.

정말 원망을 많이 했다. 다른 모든 사람에게 상처받았던 것보다 그 하나에게서 더 많이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남들이 비교하는 그 시선이 지독히도 싫었고, 그보다 한참 모자란 내가 죽일 만큼 미웠다. 그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그만 없다면 내가 더는 비교당할 이유가 없었기에. 내가 이 긴 마라톤에서 선두가 될 수 있으니까. 너만 없었으면, 너만 없었으면. ……나는 누구를 미워했던 것일까. 나는 무엇을 미워했던 것일까. 내가 정녕, 너를 미워했던 것일까. 너의 그 표정 하나하나, 얼굴 근육을 조금씩만 움직여 미세하게 바뀌는 네 그 표정들, 아무것도 담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던 텅 빈 검은 눈동자. 너, 는 대답해줄 수 있니, 내가 누구를 미워했는지? 내가 무엇을 미워했는지? 난 모르겠어. 너를 죽이고 싶어 했던 그것도, 이제는 빛바랜 과거의 한 조각일 뿐이라서. 내가 조금만 더 힘을 줘도 파삭 부서져 버릴 것만 같은 약하디약한 조각이거든.

나는 한 대상을 2년 동안 꾸준히 미워했다, 증오하고 원망했다. 목숨을 걸고 달리는 내게 눈길 한 번 주고는, 무표정으로 제 갈 길 가는 한 사람이 그때는 정말이지 미웠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돌이켜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행동이었는데. 따라올 수 있으면 따라와 봐라, 조소 어린 목소리로 나를 도발하는 것 같아 손에 쥔 칼을 더욱 세게 움켜잡았다. 손이 떨릴 정도로 강하게 잡았고, 그 칼을 주인에게 선물하려 더욱 열심히 달렸다. 패자의 서러움이 잔뜩 어린 다리는 힘든 줄도 모르고 쉼 없이 달렸다. 눈 뜨고 나니 주변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려 눈을 감고 달렸더니 주위를 보지 못했고,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내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내 주변 사람들은 다 떠나가고, 내 앞에 죽여야 할 대상만이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그때 정말 한참이고 울었던 것 같다. 세상은 분명 공평하다고 했는데, 내가 겪은 세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주면서 내게는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그런 세상. 나는 모든 것을 가진 네가 미웠다. 모든 것을 앗아간 세상이 미웠다. 내가 널 미워했던 이유는 네가 정말 행복해 보여서, 내가 너무나 비참하게 느껴져서.

있잖아, 잘 지내? 그 문장이 내 손에서 나온 것을 보고는 웃었다. 서로 알고 지냈을 때는 그렇게도 잘 나오지 않던 몇 마디가. 네 얼굴을 보면서 해야 하는 말인데 종이에 끄적이고 마는 것이 나인가 보다. 행복해? 당사자에게 닿을 수 없는 편지고 말임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진심으로 물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지냈을 때는 하지 못했던 말이라서 더욱 간절해지고 진심으로 묻는 것 같다. 네가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머릿속으로 생각할 때에도 내 마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봐. 너의 그 행복하다는 표정이 거짓이었음을 뻔히 알고 있었는데도 나는 날 믿지 않았다. 네가 스스로 내게 자신이 행복해 보이느냐고 물었을 때도 난 너를 믿지 않았다. 내가 그때 날 믿었더라면, 널 믿었더라면, 한 번도 가까워지지 못했던 우리 사이는 가까워질 수 있었을까? 내가 아무 잘못 없는 너를 용서하고, 너는 더는 미움 받지 아니하고, 내가 조금만 방향을 틀었었다면 지금쯤 우리의 이야기는….

내가 없었었다면 너는 더 행복할 수 있었을까?

충동적으로 문장을 적어넣고, 멍하니 바라보더니 지우개를 움직이며 지워 버렸다. 내가 그의 인생에 없었다면, 그가 더 행복해질 수 있었다는 말이, 그에게 이 편지가 닿는다면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문장을 보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긍정의 답을 내뱉었을까. 닿을 수 없어서 더 솔직해지는 것 같다. 그에게 영원히 자신을 죽이고 싶어 했던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나는 끝도 없이 솔직해진다. 내가 다음에 그를 만난다 한들, 지금 내뱉는 속마음을 모두 종이에 놓고 떠나, 진심을 내뱉을 일이 없었으면 좋겠으니까. 그리고 본인조차도 세뇌한다, 죽이고 싶은 사람이라고, 죽어도 전혀 아쉽지 않으니까 내가 죽이든 본인이 죽든 둘 중 하나라고. 이제는 잘 모르겠다, 그와 나의 사이가 과거 어땠었는지. 궁금증에 휴대전화를 들어 그에게 물어본다. 아직 남아있는 그의 전화번호는 신기한 광경도 아니었다. 반드시 그를 죽인 다음에 전화번호를 지우겠다고 다짐하던 과거 한 조각.

―우리 어떤 사이였어요?

―아무것도 아닌 사이.

즉각 날아오는 대답을 봤지만 아무 기분도 들지 않았다. 그 대답이 오래전 그의 대답을 떠올리게 하였다. 그때와 너무나 상황이 비슷해서, 정말 똑같다고 느껴지는 것 같아서. 아무 사이도 아니었구나, 대답을 보며 수긍했다. 죽고 죽이려고 했던 사이와 아무것도 아닌 사이, 서로 다른 대답을 보며 종이를 뒤집었다. 그를, 그 애를 미워하고 증오하던 내 모습이 영상을 보듯 뚜렷하게 기억나기 시작한다. 종이의 뒷면에 까맣게 낙서만 했다. 그 애를 미워했던 내가 너무나 안쓰러운데, 지금의 내가 위로해줄 방법이 없어서. 자신을 미워했느냐고 묻는 과거의 나를 떠올리고, 잠시 손을 멈추었다. 그때는 미워하는 것을 멈췄던 것 같다. 미워하는 것을 관둔 것은 아니지만, 잠시, 아주 잠시 멈췄던 것 같다. 그 애에게서 대답을 듣기 위해서 처음으로 눈을 뜨고 달리는 것을 멈췄다.

“날 미워했어?”

“아니.”

“왜? 난 너를 그렇게도 미워하고 죽이고 싶어 했는데.”

“난 널 미워한 적이 없어. 단 한 번도.”

그때도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그 애의 대답이었다. 그때 그 애의 얼굴을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걸. 정말 좋았을 텐데. 알 수 없었던 그 애의 말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 애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했다. 나보다 가지고 태어난 게 더 많아서, 나보다 더 적게 노력했는데도 내가 이길 수 없는 그 애가 정말 미웠던 것 같다.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 애에게 전부 화풀이를 했던 것 같다. 그 애를 죽이고 싶다고 하는 마음에는 그 애를 향한 원망도 있었지만, 세상을 향한 외침도 함께 담겨 있었다.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애를 미워한다. 나와 함께 성장한 그를 미워하는 것이 아닌, 그 시절의 내가 미워했던 그 애를 미워한다. 그래도 그 애가 아직 살아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내가 미워하고, 과거를 돌이켜보고, 선택을 내릴 기회를 준 것 같아서. 난 아직도 널 미워하는데, 넌 이런 날 이해할 수 있겠니? 이 불공평한 세상에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너랑 나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어. 내가 널 더는 미워하지 않게 할 계기가 생겼으면, 하지만 그것은 터무니없는 바람이겠지. 그래서 난 너를 계속 미워할 거야. 그래도, 넌 나에게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걸 알려준 첫 번째 사람이니까, 죽이려고 하지는 않을게.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면, 이 불공평한 세상에 태어난 것이니까.

죽이고 싶은 너에게. 손에 힘을 줘서 진하게 글씨를 적어내며 편지를 마쳤다. 본래는 버리고 가야 할 편지였지만, 구겨버린 후 주머니에 넣었다. 진행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편지를 가져가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치유라, 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진행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고맙다고. 그곳을 걸어 나오자 비가 내리는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우산이 없었기에, 비가 그칠 때까지 그곳에서 잠시 머물기로 했다. 그에게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 주머니 안의 구겨진 종이를 꽉 쥐며 말하였다.

“있지, 넌 정말 내게 죽이고 싶은 사람이었어.”

웃었다. 나는 언제쯤이면 그 애를 미워하는 것을 멈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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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형

안녕하세요. 다 읽고서 죽이고 싶은 사람에게 쓰는 이 부쳐지지 않는 편지의 내막이 궁금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원한과 죽이고 싶다는 충동을 목소리화하는 화자의 감정이 강력하게 느껴졌어요. 열등감이 뒤섞여 있는 이 감정을 솔직하게 언어화하고 응시하려는 노력도 느껴졌습니다. 아쉬웠던 건 소설에 구체적인 에피소드나 소재, 공간이나 이미지가 등장하지 않아 이 발화가 모호하고 막연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너와 나의 상황과 관계에 대한 힌트와 에피소드들을 곳곳에 넣어주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무차별적인 자의식 노트 같은 이 소설의 인상을 벗어날 수 있을 거예요. 후반부 죽이고 싶다는 감정이 너와의 공존을 바라는 감정으로 전이되는데, 이 역설적인 욕망을 잘 설득시키고 있는 듯합니다. 잘 읽었어요. 다음 소설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