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알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것들에 대하여

글을 작성하기까지 굉장히 고민이 많았어요. 감상&비평 게시판에 올리는 첫 글이라서 부족한 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능숙하지 못한 것도 문제이지만, 다루는 내용이 내용이니만큼 부족한 지식으로 상처를 드렸을까 하는 점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이에 대한 점은 댓글로 남겨주시면 남겨주신 내용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민하고, 글은 바로 삭제하겠다고 말씀드려요.

 


 

‘트렌스젠더 여성의 숙명여대 입학을 반대합니다.’ 해당 사건을 알게 된 것은 트위터의 실시간 트렌드에 의해서였다. 트렌드로 올라간 키워드를 포함하고 있는 트윗들을 모두 보여주는 시스템은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엿보기에 적합했다. 트랜스젠더의 입학 가능을 두고서 대립하던 사람들은 트렌스젠더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트렌스젠더(transgender), 자신의 섹스와 상반되는 젠더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의미하며, 상당수의 사람들이 의학을 통하여 자신의 젠더와 일치하도록 생물학적 성을 바꾸고는 한다. 태어나며 결정되는 섹스가 성의 전부가 아님을 말하며 사회의 고정관념에 대항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트렌스젠더를 지지한다. 반면 자신을 남성 혹은 여성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이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하며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 또한 존재한다.

어느 쪽의 입장이 정답인지에 대해 확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젠더학은 복잡하며, 젠더학에서 정의 내리는 개념들은 다양하다. 낯선 용어들에 대해 질문을 하면 간략한 설명과 함께 공부하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완벽하게 습득하고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젠더학을 공부 중이며 열린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며칠 전에는 친구가 자신이 내게 갖는 사랑(끌림)을 명명하는 단어를 찾았다고 내게 알려주었다. 이것은 이성 간의, 성적인 끌림만을 포함하고 있는 사랑에서 한 발 물러서는 과정이다.

사회는 ‘정의 내리기’라는 작업을 통하여 다소 파격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은 탐구 실험을 수행하는 학생처럼 정의된 개념들을 느릿하게 수용해간다. 그러나 이 방식대로라면 우리는 새로운 무언가를 받아들이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단어를 창조해야만 할 것이다. 사람들은 폭넓은 사고는 가질지언정 ‘완벽하게 열린 사고’는 얻을 수 없다. 때로는 가지고 있던 단어를 버리는 일도 이루어져야 한다.

 

섹스는 이분법으로 정의될 수 없다.

우리는 생물학적 성, 즉 섹스를 묻는 질문에 남성 혹은 여성의 두 가지로만 대답한다. 젠더와 달리 섹스는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지는 절대적인 개념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를 정하기 위해 어떠한 기준을 사용하는가?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떠오르는 것들은 다양하다. 그러나 떠올린 기준들이 완벽한 이분법을 구현할 수 있는지 묻는다면 잠시 망설일 것이다. 우리는 ‘당신은 남성이 아니라면 여성이다.’라는 명제가 참이라는 사실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실 사람들은 중고등학교의 교육을 거치면서 섹스가 단 두 가지로만 구성되어 있지는 않음을 배웠다.

결국 사람의 생물학적 성은 확률의 문제이다. 대게의 사람들은 23쌍의 염색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중에서 사람의 성을 결정하는 것은 23번의 성염색체이다. 부모의 세포는 복제 및 분열되는 과정을 통하여 자식에게로 전달되며, 자식은 이렇게 1번부터 23번까지의 염색체를 부모에게서 각각 하나씩 넘겨받는 구조이다. 이렇게 세포가 분열하는 과정에서 간혹 염색체 비분리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한 쌍의 염색체가 자신을 복제하였을 때는 각각 2개씩 생겨나게 되며, 이들은 2개의 세포에 각각 하나씩 나눠 들어가야만 정상이다. 그러나 간혹 2개의 세포에 염색체가 3개, 1개와 같이 배치되는 경우가 있으며 이러한 일을 염색체 비분리라고 한다.

성염색체가 X인 터너 증후군, 혹은 XXY는 클라인펠터 증후군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증후군들은 성염색체가 분리되는 과정에서 염색체 비분리 현상이 일어난 탓에 생겨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성염색체가 XX인 사람을 생물학적 여성, XY인 사람을 생물학적 남성으로 분류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들은 여성과 남성 중 어느 축에도 해당되지 않게 된다. 물론 터너 증후군인 사람은 여성, 클라인펠터 증후군인 사람은 남성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염색체 탓에 이들에게는 신체적으로 남성적, 혹은 여성적인 특징이 남들보다 더욱 짙게 나타나게 된다.

나는 작년 9월쯤, 고등학교 2학년을 거치면서 염색체 비분리에 대한 개념을 처음 접했다. 당시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증후군들을 가르치면서 성별에 대한 문제는 신경 쓰지 말자고 하셨다. 터너 증후군 혹은 클라인펠터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성별이 정의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여성 혹은 남성과 다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이들의 성별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일까?

위에서 언급한 모든 내용은 고등학교 생명과학의 ‘유전’ 단원에 포함되어 있다. 이 단원에서 가장 많이 묻는 것은 가계도 분석을 통한 유전병 발생 여부와 해당 유전병이 발생할 확률이다. ‘유전’ 단원은 A라는 인간, B, C…, 이들의 다양성에 확률이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준다. 결국은 섹스 또한 확률을 벗어날 수 없다. 물론 단순히 남자 50%, 여자 50%의 확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터너 증후군과 클라인펠터 증후군은 성염색체 비분리가 1회 일어났을 때 나타나는 증후군이다. 역시 이들의 발생 여부를 결정하는 것 또한 확률이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염색체 비분리가 항상 1회에 한정되지는 않는다. 부모가 자식에게 염색체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한 세포 당 기본적으로 1회의 복제 후 2회의 분리가 일어난다. 염색체 비분리 현상은 복제된 세포가 분리되며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반드시 1회만 일어나거나, 혹은 아예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예시로 언급한 성염색체 조합은 XX, XY, X, XXY가 전부였지만 확률에 따르면 이 외에도 얼마든지 많은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단순히 염색체 비분리가 1회만 일어난 상황에서도 일반적인 남성의 특징과 여성의 특징이 섞여 나타나는데, 이들이 1회 비분리에서 그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나타날 수 있는 경우는 수없이 다양하다. 언제까지 이 모든 경우를 단 2가지로 분류할 수는 없는 법이다. 과학은 변화한다. 섹스는 스펙트럼이다.

섹스가 이분법적으로 구성될 수 없다는 사실을 멀리서 찾아야 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 섹스가 스펙트럼이라는 사실을 주장하는 논문들도 찾고자 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당장 고등학교 수준의 내용만 복습해보아도 사회의 이분법과 모순이 발생함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익숙한 ‘남성 아니면 여성’의 이분법에 안주하며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곳에 성소수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 A에게 내 의견을 조심스럽게 밝혔다. 나는 트랜스젠더를 지지하지 않는 입장이다. A는 내게 자신은 트렌스젠더를 지지하며, 자신이 지향하는 사회의 모습이 트랜스젠더의 지지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말해주었다. 태어나면서 정의된 섹스에 반드시 얽매일 필요는 없음을 깨달았다는 사실에 A는 지지를 보낸다고 했다. 이것이 비단 A만의 의견은 아닐 테다. 나도, 내 친구도, 성소수자에 힘을 얹는 모든 사람들이 이러할 것이다.

트랜스젠더를 지지하는 A와 지지하지 않는 내가 지향하는 사회는 뜻밖에도 비슷했다. 남들에게 비치는 자신의 성별이 삶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인정한다. 트랜스젠더와 그 외 모든 성소수자들의 커밍아웃은 혁명이다. 아직까지 사회가 성소수자를 냉담한 시선으로 바라봄에도 불구하고 그 앞에서 정체를 밝힌 용기를 지지한다. 시간이 지나가며 더 많은 커밍아웃이 이루어질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성소수자의 곁으로 모일 것이다. 이제 우리의 목적은 ‘성소수자의 가시화’에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선택한 길이 실제로 우리의 이상향에 다다르게 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 또한 조금씩 제기되어야만 옳다.

트랜스젠더를 지지하지 않게 된 입장은 위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커밍아웃을 선택한 사람들의 용기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모든 성소수자들은 사회가 굳혀버린 섹스에서 스스로 벗어났다는 사실만으로 지지를 받을 이유가 충분하다. 그러나 한 시대의 영웅이 다른 모든 시대에서도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 성전환을 선택한 이유와 사회의 시선은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시기에는 이 차이가 어떤 문제를 유발시킬지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사회는 섹스의 이분법에 익숙해져 있다.

트랜스젠더를 선택한 당사자의 의견에는 상관없이 사람들은 그들의 일부 모습만을 보고 저러한 모습으로 인해 성별을 바꿨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사회가 궁금한 것은 개인의 의견과 진실이 아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명제 앞에서 그 명제가 정말로 참이냐는 질문은 중요하지 않다. 트랜스젠더의 커밍아웃으로 사람들은 섹스의 이분법을 공고화하게 될 것임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트랜스젠더의 존재는 혁명이다. 그러나 그것은 섹스의 무의미에 대한 과제는 미해결로 내버려두고, 섹스의 존재 내에 한정하여 일어나는 혁명이기도 하다. 부작용으로 섹스의 이분법을 공고화시키는 일이 따르기도 한다. A는 트위터에서 이러한 이유를 근거로 트랜스젠더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상황을 정리하여 보았을 때, 정말로 우리가 비난해야 할 사람은 커밍아웃을 한 트랜스젠더일까? 비난의 원인이 된 ‘부작용’은 사회의 인식이 만들어내었다. 제대로 된 시기를 타고나지 못한 영웅을 본 시민들이 비난해야 할 것은 영웅인가?

개개인에게 주어진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이 양은 사실 사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그럼에도 성소수자가 숨지 않아도 되는 사회라는 하나의 목적을 두고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다. 사실 나를 포함하여 이 일에 뛰어든 사람들은 알고 있다. 다수를 상대로 한 장기적인 싸움이 될 것이다. 아직 정의되지 않은, 혹은 모호한 개념들은 모순으로 돌아와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 사회는 변화를 꾀하는 사람들에게 완전무결함을 요구한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이 싸움에 뛰어든 사람들에게 ‘여유’란 존재하지 않는 단어이다. 완벽의 끝의 끝까지 몰아붙여지는 사람들은 숨 한 번 편안히 쉬는 것이 불가능하다. 무조건적인 비난은 삼가자, 생각하면서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그들이 하고 있는 작업은 이미 생겨난 체계의 일부를 뜯어내고 구멍을 다시 메꾸는 일이다. 이전과 같은 모형이어서는 안 되지만 형태가 완전히 바뀌어 구멍에 들어가지 않는 일이 발생해서도 안 된다.

현재의 체계를 구축하기까지도 수백 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거기에 뜯어내고 재구성하는 일까지 맡게 되었으니 벅차게 다가오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들은 조금씩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사람은 모였으나 얻은 것은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한계점뿐이다. 현재의 길을 고집하는 것은 완전한 정답이 될 수 없다. 이제는 옆에 나 있는 샛길로 빠져야 할 때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향하는 세상이 반드시 성소수자가 ‘숨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차별을 행할 것이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성소수자가 없는 세상이다. 현재의 사람들은 트랜스젠더의 존재가 모두가 추구하는 목적에 모순되지는 않은지에 대해 고민한다.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하지만 답은 찾을 수 없는 고민이다. 나는 트랜스젠더를 지지하지 않는다. 이는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거부한다는 말이 아니다. 섹스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성소수자 내의 갈등을 유발하는 트랜스젠더와 그 외 모든 성소수자들의 방식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A는 내게 그렇다면 무엇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대신 다른 답변을 건네었다. 사람들이 트랜스젠더를 비난하는 것에 사용하는 에너지를 대신 이 고민을 해결하는 것에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나는 섹스가 무의미해지기를 기대하지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실현시킬 수 있을지는 알지 못한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트랜스젠더를 비난하는 것이 아닌, 이러한 고민들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 것이다.

 

당신을 알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는 무엇이 있는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한다고 상상해 보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들은 이름과 나이, 조금 더 덧붙인다면 취미 정도이다. 개인에 따라 자신의 생물학적 성을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 누구도 의미 부여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섹스뿐만이 아니라 젠더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이 시스젠더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무언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은 없다.

가장 좋은 커밍아웃은 상대가 커밍아웃을 했을 때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저녁 메뉴를 묻는 등, 일상적인 얘기를 이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사람의 성정체성, 혹은 성적 지향에 의미를 부여해야 할 이유는 없다. 사람들은 여성이 남성을, 남성이 여성을 좋아한다고 해서 큰 놀라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시스젠더 여성, 혹은 남성이라고 해서 우리는 대단한 비밀을 알게 된 것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사람이 이성애자라서, 혹은 시스젠더라서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니다. 사람을 평가하는 것에는 섹스도, 젠더도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특정한 성별, 특정한 젠더이기에 당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그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나의 섹스와 젠더가 아마도 당신의 가장 큰 관심사는 아닐 것이다. 그러한 정보들을 알려준다고 해서 당신이 내게 가진 첫인상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젠더는 섹스로 인해 생겨난 개념이지만, 섹스는 생각보다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 성별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결정하는 것은 편견이 덕지덕지 묻은 행동일 뿐임을 모두는 알고 있다. 과거의 유교 사회에서 섹스는 분명 좋은 분류 기준이 되어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섹스는 사실 상 무의미에 가깝다.

이러한 사회에서 섹스의 존재를 붙잡고 트랜스젠더의 모순점을 열거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당신은 시스젠더, 트랜스젠더, 혹은 다른 젠더로 정의되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당신을 알기 위해 필요한 항목들 안에는 섹스도, 젠더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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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일

안녕하세요, 글 잘 읽었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공부하고 토론해 온 논제라서 더욱이 글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젠더 이슈를 다룰 때마다 대부분이 근본적인 사회 해결책인 인식 재고를 비롯한 인식 개선과 이를 통한 일종의 유토피아, 즉 '성소수자가 없는 세상' 만들기를 언급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퀴어 총궐기나 여러가지 성소수자 인권 운동(문집 제작, 인터뷰, 다큐멘터리 제작, 퀴어 퍼레이드 스태프 참여, 펀딩)을 진행할 때 만났던 트랜스젠더들은, 젠더 퀴어들은 모든 문제가 현실과 급박의 문제입니다. 물론 저를 포함한 트랜스젠더 지지자들이 우려하는 것도 글에 적어주신 바와 다르지 않습니다. 외려 사회가 인정하고 있는 주류 스테레오타입인 맨박스와 코르셋을 활용해 일정하고 이분법적인 성적 고정관념에 갇히고, 만드는 주체가 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짧게 줄일… 더보기 »

선우은실

안녕하세요. 율오 님! 먼저 올려주신 글에 대해서는 율오 님이 원하신다면 비공개로 게재해 두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며 글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트랜스젠더와 관련된 이슈를 다루는 글이네요. 무엇보다도 해당 주제를 본인의 관점으로 이리저리 뜯어보고 의미화 하고자 했다는 점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의 상세한 내용들을 함께 살펴보도록 할게요. -'섹스는 이분법으로 정의될 수 없다'의 내용을 보겠습니다. 소제목이 조금 더 분명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이해하기에 섹스라는 체계가 이분법적 성의 구분을 전제하는 개념이라고 생각되는데, 이런 경우 해당 문장은 '젠더는 이분법으로 정의될 수 없다' 또는 '성적 정체성은 이분법적 섹스 체계에 의해 정의될 수 있는가' 정도로 바뀔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섹스'란 생물학적 성에 근거하여… 더보기 »

핸지니

섹스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에는 저도 동의해요. 그렇기 때문에 몇몇 사이트의 회원가입 창은 남성과 여성, 그리고 기타 칸이 마련되어 있고요. 하지만 사람을 평가하는 것엔 섹스도 젠더도 영향을 별로 끼치지 않는다는 것에는 약간 고개가 갸우뚱했어요. 물론 범성애자라면 섹스에도 젠더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인간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을거에요. 하지만 여성애자라면, 섹스 스펙트럼과 젠더 스펙트럼 모두 여성 쪽을 향하고 있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겠죠.(100% 여성 쪽을 향하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기에, 스펙트럼이란 단어를 사용했어요.) 그 문단에서 의문을 가진 또다른 부분은, 섹스와 젠더를 말한다고 해서 누구도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다는 부분이에요. 저는 당연히 의미 부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에이젠더라는 것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에이젠더는…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