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¹에게

모든 졸업식은 장례식장이야
나는 죽은 네 친구들을 침묵으로 애도했어

레드카펫을 밟는 선배들
밑창에 뚝뚝 버리지 못하고 묻어나는 미련

단상을 떠받치는 것은 네 친구들의 관
소년과 소녀들, 열아홉에 지다

D에게, 나는 너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스물을 쓸 줄 모르는 나를 위해서
네가 캘리그래피로 찬란하게 써 줘야지

*

서울대를 스물세 명 보낸 3학년 부장은 유능했어
나를 싸가지 없다고 평가한 사람이기도 했지만

너를 데려오지 않으면 졸업을 시켜줄 수 없다고
오늘도 교무실은 시끄러운데

선생님, 저는 꽤 유명한 편이에요
중학생 때 작성한 시나리오를 보여드릴까요
열여섯의 졸업식에서는 장례 대신 실종 신고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암전

소녀 S: 아버지 3년 전에 살라먹은 제 꿈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나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3학년 담임이 내린 것은 일주일의 유예
여전히 관의 개수는 전교생에서 하나 부족할 것

선생님은 내게 스물을 가르치려고 애썼지만
난 이십 이상의 숫자를 읽을 생각이 없어

D에게, 너의 스물이 7일 미뤄졌을 뿐이야

*

네가 실종되었다고 말했었나
도망친 장소는 나만이 알고 있으니까 맞을지도 몰라

부모님께는 독서실을 간다고 말하고
서울역에서 안양역까지, 1호선에 몸을 얹었어

목적지는 우리의 5학년 3반 발표 시간
너는 A 예고 문예창작과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재였다

학교 맞은편의 보도,
국화 꽃잎은 하나씩 뜯겨 나가 오늘의 주제야,
참가자가 1명뿐인 실기시험을 열어주러 왔어

D에게, 그 학교에는 아무도 합격하지 못했어

*

너는 미쳐 가는 사람이었어 나는 알아
눈을 감으면 문예창작과 학생을 찾을 수 있대

형용 불가능의 난해한 모습,
그들은 동경으로 얼룩져 있다고 너는 말했어

말도 안 되는 소리,
잊어버리지는 못해 눈을 감고 더듬거리며 묻기는 했지만

이곳에 오면 꿈을 살릴 수 있나요,
재학 중인 학교는 어때요 천국인가요,

D에게, 질문에 대한 재학생의 대답은 영원히 비밀

*

열아홉의 졸업식은 장례식장이야
나는 이미 죽어버린 너를 침묵으로 애도했어

네 피는 묻지 않은 레드카펫
밑창에 뚝뚝 묻어날 미련은 불가능했던 거야

단상을 떠받치는 관은 총 242개
그 해 243명의 학생이 졸업을 맞이했고

D에게, 3년 전 우리 아버지가 날 살리기 위해 너를 죽였대

맞바꿔 살아남은 나는
10100², 컴퓨터공학과로 진학했다


¹혹은, 꿈
²십진수로 변환 시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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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경

율오님 안녕하세요. 시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마음에 걸리는 구절은 ‘형용 불가능의 난해한 모습, /그들은 동경으로 얼룩져 있다고 너는 말했어’ 정도예요. 한자어나 추상어로 이루어져 있지요? 구체적이지 않은 말로 얼버무린 느낌이니 더 구체적으로 써주세요. 그 외엔 행갈이 연갈이가 너무 비슷비슷한 형식으로 이뤄지는 것 같아요. 긴 문장, 짧은 문장을 적절히 배치해 리듬감을 주는 게 이 시에 어울릴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 부분은 넣어도 빼도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진 않아요. 다만 그 부분만 다른 행갈이, 연갈이를 보여준 점은 나쁘지 않아요. 만약 넣는다면 몇 줄 더 써봐도 될 것 같아요. 좋은 시이니 한번 고쳐보시길 바라요. 그럼 다시 만날게요.

녹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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