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무심천을 잊지 못하는 이유이다.

그날의 짙은 봄 향기는 밤이 되어도 끊이질 않았고, 잠시 더워 열어놨던 창문을 통해서 슬그머니 내 방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시원한 밤공기는 답답했던 내 마음을 맑게 해주었고, 욱신거리던 머릿속도 조금이나마 정리되게 도와주었다. 나에게서 비롯된 내 방의 퀴퀴한 외로움의 냄새는 상쾌한 새벽바람에 밀려나 내 방 밖으로 황급히 도망갔다. 우울하기만 했던 잠자리도 이제 나아지지 않을까, 쉽사리 눈을 감지 못하던 나도 그대로 가라앉을 수 있을까. 조바심에 서두르려는 마음을 붙잡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오늘만큼은 행복한 꿈을 볼 수 있으리라. 오늘만큼은 현실을 잊게 해줄 만한 꿈을 꿀 수 있으리라. 나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조그마한 미련을 담고 잠을 청했다.

밤새 창문 틈으로 들어온 봄바람은 어쩌면 꿈에서 내 바람에 있어서 가장 큰 도움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꿈속에서 내 코를 살짝 스친 향기는 나를 벚꽃과 개나리가 만개한 하천 길가를 보여줬다. 그저 내 눈에 잠깐 밟혔을 법한 그 풍경은 보면 볼수록 너무나 아름다웠다. 햇빛을 받아 빛나는 물줄기와 그 옆으로 걸어가며 해질녘의 분위기를 만끽하는 사람들과 그 옆으로 샛노랗게 퍼진 개나리는 노을빛을 받아 더욱 노랗게 자신을 빛내고 있었다. 하천 옆 도로를 따라 일렬로 쭉 늘어진 벚꽃은 꽃잎 하나하나가 흩날리며 그저 도시에 한 도로를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만들었다. 세상을 덮은 봄의 분위기에 난 그저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도 분간하지 못하고 넋 놓고 세상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색이 있다. 특히나 봄날에 내리는 노을빛은 불러오는 향수가 너무나도 짙다. 그 짙은 향수에 잠겨 눈을 감으면 숨을 헉헉대며 뛰어놀던 어린 시절이, 학원을 땡땡이치고 부모님께 걸려 눈물 쏙 빠지게 혼나던 어린 시절이, 처음으로 느꼈던 두근거림에 용기를 내서 솔직해졌던, 그 따뜻한 색으로 물들어버린 추억들이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며 머릿속을 적신다. 분명 즐거웠고, 행복했음에도 눈물이 나오는 까닭은,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갔기 때문이고, 내가 그 시간에 적응하지 못했음이 분명했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계속해서 걸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철든 고등학생이 아니었다. 분명 어젯밤은 밤을 무서워하는 게 당연한 어린아이였는데, 부모님과 떨어져 하루를 보내는 게 낯설었던 초등학생이었는데, 학교 규칙이 무서워 가기 싫다고 징징대던 중학교 1학년이었는데, 어느새 난 철이 들어야만 하는, 밤을 무서워해서도 안 되고, 부모님과 떨어져 있어야만 하고, 규칙을 지켜야만 하는 고등학생이 되어있었다. 눈 뜨면 펼쳐진 냉정한 세상에 베이더라도 아픈 걸 보이면 안 되는 고등학생이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 과거에서 눈을 돌리고 난 현실은 그저 냉담하고 차갑다. 이게 내가 밤을 무서워하는 까닭이다. 그 속에서는 내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꿈속이 너무나도 달콤했기에, 나에게는 과분한,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휴식이었기에 깨는 것이 두려운 이유이다.

아직도 난 허우적거린다. 지금 앉아있는 이곳도 꿈인 것만 같아서, 눈을 감았다가 뜨면 어린 시절, 가장 행복했을 때로 돌아가 있을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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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국

안녕하세요, 장는개님. 처음 뵙네요. 반갑습니다. 시 잘 읽었습니다. 에세이처럼 쓰신 것 같네요. 화자가 전하고자 하는 정서가 잘 드러나는 반면, 그 정서를 품는 감상적인 문장들이 많아서 시를 장황하게 만들어요. 그런 점에서 시를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시로부터 한 발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돌아보면서 감상적인 부분들을 아깝다 생각마시고 다 덜어냈으면 해요. “시원한 밤공기는 답답했던 내 마음을 맑게 해주었고, 욱신거리던 머릿속도 조금이나마 정리되게 도와주었다.”와 같은 문장은 시에서 아무런 쓰임도 지닐 수 없거든요. 이런 문장들을 덜어내고 넋두리처럼 생각되는 부분들도 좀 삭제한 이후에 관찰에 기반을 둔 문장들로 다시 정리한다면 좋은 시가 되리라 믿어의심치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