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네르스

 K가 걷는다. 속살같이 하얀 돌들을 드러낸 험준한 산을 오른다. 그는 산의 중턱쯤으로 예상되는 곳을 걷자 숨이 차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앉기에 적당해 보이는 바위 여러 개가 보였다. K는 가장 넓은 가장자리의 바위에 앉았고 이내 등을 기대 누웠다. K가 집을 떠난 지도 벌써 1년이었다. 한 달 전 그가 이 산을 발견했을 때만 해도, 그는 공중 정원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마음에 뛸 듯이 기뻤다. “자그마치 한 달을 산에 오르다니!” 그가 중얼거렸다. 그 후 그는 허기짐에 물과 식량을 먹으려 보자기를 풀었다.

 

 이 여행은 죽음의 위험을 수반한다. 목적지는 공중 정원으로 많은 여행자들이 매년 떠난다.

공중 정원은 세상의 중심에 웅대하게 솟아있는 오네르스산의 정상에 있다. 산의 정상은 그의 높이에 산의 아래에서 절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세상 어디서든 솟아있는 그 산을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K는 쉽게 산에 도달했다.(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K가 보자기를 꺼내려 들자 곧 불길함을 느꼈다. 그의 구멍 난 보자기에는 빵이 아닌 공기가 남아있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구나’라는 순응적 생각과 ‘지나갔던 다른 여행자가 있던가?’하는 살아남고자 하는 태도의 생각이 동시에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아” 짧게 한숨을 뱉고 눈을 감았다. 허기짐과 같은 자신의 상황을 잠으로 잊으려는 그의 선택이었다.

 

 잠은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그에게 찾아와 스며들었다. 잠은 그 친구인 꿈을 불러왔다. 꿈속의 배경은 그가 잠든 곳과 똑같았다. 검은 그림자 하나가 그에게 말 걸었다. “자네는 어째서 이 산에서 잠을 자는가? 이 산에서 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건가?” 그는 순간 산에 오르기 전 다른 여행자들로부터 귀가 닳도록 들었던 주의사항을 기억했다. “절대 산에서 잠을 자지 말 것”

 

 K가 눈을 떴다. 그림자의 경고같이 들리던 질문에 눈이 부릅떠졌다. 눈을 뜬 그는 서둘러 짐을 다시 챙겨서 산을 오르려 했다. 주의사항에 덧붙여진 말인 "검은 그림자가 널 죽이러 갈 것이다."를 기억했기 때문이다.

 

 공복의 허기짐은 그에게 잊혔다. 뒤돌아보면 그림자가 있을까 앞만 보고 산을 오르는 그였다. 숨이 차 헐떡이면서도 뛰다가 낮은 목소리를 들었다. "도망치려는 건가" 그가 발검을 멈췄다. "꿈과 현실을 분간할 수도 없는 것인가" 질문보다는 확신에 가까운 말투에 K는 소름이 끼쳤다. 그는 꿈에서 꿈을 인지했고 그러자 몸에 힘이 빠졌다.

 

 "절 죽이실 건가요?" K가 체념한 듯 물었다. "자네는 지금까지 산에서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그림자가 되려 물었다.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잠을 자지 않은 것이지" K는 그림자의 대답에 잠시 생각했다. "어떻게 잠을 자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인간이 어떻게 수면욕을 억누른단 말입니까?" 이해할 수 없는 말에 그는 차분히 다시 물었다. "자네 역시 산을 오르는 한 달간 잠을 잔 적이 없네." 사실이다. K는 지금 말고는 잠을 잔 적이 없다. "이 산에서 잠을 자려고 해도 잘 수가 없을걸세. 물론 잘 생각을 하는 사람도 별로 없네. 잠을 잊어버리는 거지. 눈을 다시 감아보게. 소문처럼 당신을 죽이지는 않을 테니." 그림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K는 눈을 감았다가 뜨자 상쾌한 공기를 느꼈고 거대한 석조 신전을 둘러싼 푸른 공원을 보았다. 공중 정원이다.

 

 "이건 꿈인가요, 현실인가요?" K는 더 이상 그림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느 쪽도 아닐세.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자들이 사이에서 방황하는 정원 정도라고만 해두겠네. 이곳이 자네가 찾던 곳 아닌가?" "예, 맞습니다" "이곳에 오른 목적은 무엇인가?" "알고 싶었습니다. 세상의 우위에 서 있는 기분과 그럴 수 있는 이유를 말입니다." 이 말에 그림자는 대꾸하지 않았다.

 

 하늘은 아주 쨍했고 햇빛은 따사로웠다. K는 그림자와 함께 공원을 돌았다. 공원의 가장자리에서 아래를 보자 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구름조차 없어 이곳이 높은 곳인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이름 그대로 공중에 떠 있는 공원이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원형의 공원은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애매한 크기의 공원은 중앙에 고풍스러운 석조 신전이 있고, 그 주위를 싱그러운 색들의 꽃밭들이 에둘러 쌌다.

 

 K는 이제 신전에 발을 들였다. 텅 비어있는 신전은 그 중심에 연못을 품고 있었다. K는 연못을 쳐다보았다. 연못의 물은 투명하지만, 그 무엇도 반사하지 않고 있었다.

“그건 물이 아니라네. 다만 자네의 마음 그 자체이지. 손을 대보게나.” 검은 그림자가 넌지시 말을 건넸고 K는 그의 말을 따라 물의 표면을 어루만졌다.

K의 손과 빈 공간을 구분하는 경계가 모호해졌다. 윤곽은 점점 눈으로 구분하기 힘들어졌다.

 

 K는 온몸이 흐려짐을 느끼면서 속이 어지러웠다. 그는 그의 뒤에서 검은 그림자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검은 그림자는 K와 반대로 형체가 생기기 시작했다. K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라져가는 자신과 형체를 갖추어 가는 자신을 보며. 검은 그림자는 마침내 K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K는 검은 그림자가 되었다.

 

  K는 아니, 검은 그림자였던 K는 K였던 검은 그림자에게 말했다. “난 자네를 죽이지 않았지만, 자네는 자네를 죽였네. 영원한 꿈에 살거라”

 

 검은 그림자는 이제 꿈을 찾기 위해 산을 돌아다닌다. 꿈의 빈틈을 찾아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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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형

안녕하세요, GLOBE님. 오네르스라는 산의 공중 정원으로 가는 환상적인 여정을 다루는 소설입니다. 우화 느낌이 나기도 하고, 그림자와 내가 바뀌는 부분도 형이상학적인 뉘앙스를 물씬 풍기네요. 그림자가 꿈의 빈틈을 찾아 비집고 들어가려 산을 헤매고, 나는 영원한 꿈속에 살아가게 되는 결말 부분의 변화, 대조, 대비가 좋았습니다. 아래 소설보다 다루는 언어나 장면을 엮어보려 하는 시도도 휠씬 문학적이네요. 아쉬웠던 점은 인물이 왜 공중 정원으로 가는지의 목적, 즉 "우위"를 느껴보려 했다는 인물 언급이 모호하고 관념적이며, 이 여행자가 오네르스 산을 오르게 된, 혹은 오르기 전 에피소드가 구체적으로 삽입된다면 이야기가 훨씬 풍요로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그림자와 내가 선문답을 주고받는 듯한 이런 구성이 다소 단순해 그저 오르고 대화를…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