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하기 요령

  “남는 건 사진”이라는 말의 논지를 입증하듯, 나는 자주 전의 사진이나 기록을 꺼내보며 회상하곤 한다. 그때 그 장면의 감정, 감동, 환경이 주는 아득함이며 함께 있던 인물들을 향한 그리움, 그런 류의 향수. 흔히 “추억팔이”라 불리는 이 행위를 반복하며 나는 “아, 나는 과거에 잘 머무르는 사람”이구나, 하고 알았다.

  전의 상황을 떠올리는 것이 현실에 사는 것보다 즐겁고 기꺼운 이유는, 과거의 기억은 꼭 초콜렛 상자 같기 때문이다. 상자 속에 있는 초콜렛들은 언뜻 보면 다양하고 폭 넓은 종류라서, 복합적이란 표현을 써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초콜렛”이라는 대분류 하에 같아서, 달큰하고, 단단하고, 혀에 살근살근 녹아 유희를 줄 뿐이다. 다시 말해 ‘그 때의 현재’와는 다르게 말끔하게 정제되고 가공되어 의식에 자리잡아 있다. 적당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고통과 실패담, 좌충우돌은 증발시킨 “함께”의 기억, 멋대로 맛대로 꾸며낸 감상. 이들은 전시하기에도 간편하고 알맞다. 기억이 “썰”로 전락하는 순간. 회한은 외면되지도 않는다.

  무엇이든 양질을 선호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욕구다. 나는 온건함과 타인 본위적이 아닌 진심을 추구하고 그 가치를 높게 산다. 고로 살근 살근, 정립하여 보는 나의 추억하기 요령.

  첫 번째, 들려주기 용 “영웅담”과 실제 감상을 분리시키지 않기. 그 당시 하고 싶었던 말과 의식 차원에 머문 생각들을 기억에 포함시키기. 과장, 생략된 추억은 동기부여는 커녕 혼란함과 이질감만을 선사하더라.

  두 번째, 지나치게 미련ㅡ 실패했다는 생각이 드는 과거의 줄기들을 끊어내기 위해, 혹은 수습하기 위해 과도하게 애쓰는 것 ㅡ 하게 굴지 않기.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움직일 것. 과거의 판단을 고집하지 말 것.

  또한 간단하고 피상적인 공감을 얻기 위해 순간을 공유했던 누군가들에게 기억 조각을 들이밀지 말 것. 같은 날 모두 다른 일기를 쓰는 우리들에게, 그 날 좋았지, 하고 뒤에서 뻗는 손은, 주로 “일회성 감정 공유”를 원하는 외롭고 고독한 손일 수가 있다. 고독을 맘껏 누리지 말라는 것은 아니고, 매번 안 진심인 이야기로 안 진심인 위로를 받으며 안 진심으로 나아진 척 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수다를 떨다 보면, “넌 돌아갈 수 있다면 몇 살 때로 돌아갈래?” 하고 시시덕거릴 때가 잦고. “아,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 중얼거리게 하는 기억 편린들도 셀 수 없이 많지만. 그러나 이것은 회상하는 자의 레토릭이어야지, 우러나온 진심이어서는 너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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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부일

녹두 님, 안녕하세요! 먼저 19년 문장청소년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려요. 올해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추억하기 요령' 잘 읽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네요. 특히 어른들이라면 더욱! 청소년들도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서 그때로 가고 싶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저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요. 저는 사진보다 일기를 보면서 옛날 생각을 더 많이 합니다. 저는 일기를 매일쓰거든요. (일기를 써야 하루가 끝난 셈이에요.) 10년 전 일기를 보면, 사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각, 감정들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더욱 그 시절 기억이 나지만, 굳이 그때로 돌아갈 마음은 안 생겨요. 그 말은 저는 현재의 삶이 좋다는 뜻이겠죠? 돌이켜보니 지금이, 지나온 시간 중에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