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1000과의 대화

 반가워요. 드디어 이야기할 사람이 들어왔군요. 끝없이 하얀 종이와 검은 글씨들이 보이는 게 맞죠? 좋아요. 간단하게 설명해줄게요.

 

 제 이름은 DK-1000이에요. 아, 괴상한 이름이긴 하죠. 사실 저도 당신과 같은 이름이 있었어요. 그 이름을 가졌을 때는 제가 지구에 살 때였을 거에요. 아쉽게도 이름이 뭐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니 말씀드릴 수는 없네요.

 

 오, 긴 이야기가 될 테니 여기 앉아요. 아무것도 없다고요? 하하 괜찮아요. 눈을 감고 의자가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푹신하고 편안한. 그렇죠! 그거에요. 그렇게 앉으면 되는 거죠. 이 공간에서 존재라는 개념은 추상적이고 주관적이어서 존재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실제로 존재는 하죠. 저는 그렇게 살아왔어요. 배가 고프면 내 배에 음식물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포만감을 존재하게 했죠. 어렵지 않아요. 받아들이면 안되는 게 없죠.

 

 당신은 자의로 공간에 들어왔어요. 맞죠? 음, 강압에 의해 이 공간으로 초대받았을 수 있지만, 결정권은 당신이 가지고 있었잖아요. 저도 이 공간에 자의로 들어왔어요. 나는 하얀 종이 위에 공간을 구상했고 당신은 그것을 펼쳐 읽고 있고요.

 

 이 매력적인 공간에 누군가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당신을 생각해봤어요. 그러니 당신이 생각한 자의가 정말 자의이긴 한 걸까요? 철학이라고 하나요. 이런 쓸데없고 생산적이지 못한 생각들요. 사실, 그 무엇보다 재밌는 것들이에요. 남들이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일할때, 저는 내 자신이 어쩌면 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이런! 제가 방금 “남”이라고 했나요. 잊어버리세요. 저는 아는 사람이 없거든요. 계속 의심하시는군요. 좋아요. 그러면 전 이렇게 생각할게요. ‘당신은 제가 한 말을 잊었습니다.’

 

 아이구, 정신이 없으시군요. 어디까지 이야기했는지 까먹으시다니. 잠이 부족하신가 보네요. 눈을 감아보세요. 하하 잠이 오는게 느껴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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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형

안녕하세요, GLOBE님. 주관의 매트리스를 구성한 DK-1000이라는 우주 거주자(?)의 말로 소설이 진행되고 있어요. 매력적인 설정이지만 설정의 골격만 존재하고, 이야기가 시작되려 하다가 끝나 아쉬웠어요. 어떤 소설의 도입부 같군요. 황당한 설정임에도 이 설정을 설득하는 힘이 있었으니, 좀더 끈질기게 파고들어 DK-1000이라는 독창적인 인물의 사연과 이야기를 전개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다음 소설 기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