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와 인간의 상관관계

1.

그 해 겨울에는 유독 많은 죽음이 비쳤다. 살아있는 것들의 목록에 그어지는 취소선을 보며 나는 물고기가 되기를 소망했다.

 

2.

자주 갔던 도서관은 옆에 생태공원을 끼고 있었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 간신히 한 시간을 채울 수 있는 규모의 공원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도서관에서 종종 봤던 풍경이었다. 사람들의 손에 교과서가 들려있지 않은 것이 좋았고, 사람들의 다리가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것이 좋았다. 사실 전부 거짓말이다. 생기 넘쳐 보이는 생태공원은 사실 괜찮은 장소도, 아름다운 장소도 아니다. 가까이서 눈을 가늘게 뜨고 관찰하면 고인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물고기 시체가 확인되고는 했다.

이곳에 사람들은 종종 개를 데려와서 함께 걸었고 나는 엄마와 대학 얘기를 하고는 했다. 엄마는 서울 상위 10개 대학으로의 진학을 이야기했고 나는 실패하면 전액 장학금을 받으면서 대학을 다니겠다는 실없는 얘기를 했다.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는다. 사람의 언어를 읊을 수 없는 동물들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 이해하지 못할 것임을 알아서 속에 담긴 응어리를 툭툭 던지고는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그랬다. 언어의 사용과 이해는 별개이다. 가끔 이야기가 이어지는 날에는 밑도 끝도 없는 비관이기만 해서 그리 달가운 것은 없었다.

우리 집에서 숨을 할딱거리는 행위는 금지되었다. 죽어서도 안 됐지만 살고 싶어서 아등바등 해서도 안 됐다. 죽은 듯이 조용히 살면서 각자 하루를 보내는 것이 원칙이었다. 공원에 와서 이어지지 않는 대화를 한 시간씩 하는 이유도 전부 그 규칙과 맞닿아 있었다. 죽지 않기 위해 가장 음울한 얘기를 쏟아내었고 쏟아내기 위해 외출하였다. 수능을 망치면 죽어야겠지, 중얼거리면 엄마는 비관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수험생, 다음날 시체로 발견되어… 따위의 기사 제목을 읊고는 했다.

우리는 대학이 전부는 아니지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대학뿐임을 알고 있었고 대학을 가지 않고 꿈을 이루겠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아파트를 옆에 두고 부담스럽지 않은 규모의 생태공원, 그곳을 몇 바퀴고 빙빙 도는 우리. 주제를 알고 분수를 아는 것들. 엄마는 내게 가끔 농담처럼 인터넷 소설을 쓰라고 했고 나는 연예인 사회와 마찬가지라고 거절한다. 애초에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보다 먼저 밟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꿈, 재능, 하나 같이 아름다운 단어들이었지만 결국은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우리에게는 당장 내일 먹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이 더 중요하다.

뭐든 실패하면 죽기밖에 더 하겠어. 사실은 어차피 실패할 것이니까 죽고 싶다는 이야기.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을 알아 더욱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가장 먼저 죽는 세상. 사실 모두가 살아왔던 것에 비하면 너무 쉽게 죽어버리고는 한다.

 

3.

매번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나는 매번 실패했던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나는 수시 6장으로 꿈을 이루는 것에 실패했다. 나는 달라, 애써 위로하며 3년을 버텨 왔지만 상향을 전제로 하는 학생부종합전형조차 내 목표 앞에서는 불가능을 외쳤다. 디지스트가 1지망. 네. 수시로? 아니요, 당연히 정시죠. 잘 생각했어, 과기원은 말은 안 해도 내신을 많이 보니까. 우리 학교는 전교 1등이 1.8인데, 그러면 어떡하라고. 어쨌든 내 최종 내신은 그 발치에도 미치지 못할 테니 감히 넘보아서도 안 되는 위치인 것은 변함이 없었다.

6월 모의평가를 졸았다는 말에 선생님은 한숨을 쉬었다. 내신 성적을 확인하더니 대부분의 과목이 등급의 문을 연 것을 보고 또 한숨을 쉬었다. 2등급이 10명까지라면 11등, 과 같은 등수. 올릴 수 있지. 못 올리면요. 올려야지. 내 성적표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숨을 할딱여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죽어서도 안 된다. 자신의 생사조차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선택권은 지나친 호의이다.

대학을 가배치하며 선생님은 다른 전형에 대해 묻지 않았다. 책자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을 빠르게 찾고 학과를 확인, 입력한다. 대학을 어디까지 낮출 수 있니. 상관없어요. 유일하게 받은 질문이었지만 그조차 물음표를 물지는 못했다. 형식적인 선택지를 다 죽은 생존본능은 유언처럼 밀어냈다. 내가 이 대학에 가기 위해서 새벽마다 울어가며 공부했는지 의문이 들 만큼 낮은 대학들이 엑셀에 적힌다. 숨을 멈췄다. 목 끝까지 숨이 차 오르게 살지 않으면서 죽지 않는 법을 잊어버렸다.

내 몸에게 사소한 사과를 전해야만 한다. 미안, 울음도 잊어버렸어. 나는 학교에서 화장실 문을 잠그고 펑펑 우는 평범한 학생도 되지 못했다. 그날 친구와 저녁을 먹으러 가며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친구는 내가 상담을 다녀온 것도, 그것이 대화의 썩 좋은 화재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가배치 결과는 물론이고 가배치 상담을 진행했다는 사실조차 입에 담지 않았다. 적힌 대학은 올라갈 수 있는 최대한의 수준. 남은 것은 내신이 높은 친구들에게 밀려나는 것뿐이다. 기왕이면 내가 밟는 내리막이 매끈하면서도 가파른 길이었으면 좋겠다. 둥글게 몸을 말고 굴러떨어진다. 그러면 아픔도 모른 채 죽어버릴 수 있겠지 상상한다. 이렇게 살기 싫다고 하지만 인생 역전은 만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므로. 괜찮지 않은 소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다.

 

4.

학년 초에 작성하는 진로 희망 사유는 코로나 19로 인해 제출되지 않았다.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된 양식을 인쇄한 종이는 몇 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끗했다. 각종 번지르르한 직업보다도 더욱 되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생활기록부는 작성을 허용해주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미래를 질문 받았을 뿐 꿈을 질문 받은 적은 없다. 입시를 코앞에 둔 수험생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진로희망 란에 작성했다. 물고기. 정확하게는 생태공원에서 본 것과 같이 되고 싶었다. 눈을 까뒤집고 배를 부풀리는 행동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는 채로 죽은 물고기들. 깨끗한 시체가 못내 부러웠음을 떠올린다.

죽은 물고기들의 이름을 멋대로 ‘누累’라고 지었다. 인터넷에 흔하게 돌아다니는 농담을 가져온 것이었다. “누가 그러느냐”면서 행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보인 후 “안녕하세요, ‘누’입니다.”라는 재치 있는 장난이었다. 누는 요즘 누가 자살하는데, 따위의 가벼운 말의 피해자이다. 모두가 기피하는 행동을 기꺼이 취한 누는 시체조차 건드려지지 않는다. 수습하는 사람도 없지만 뜯어먹는 사람도 없다. 나는 누가 되고 싶다.

유독 작년 겨울에는 생자의 목록에 그어지는 붉은 줄이 눈에 들어왔다.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는 언니가 수능을 망치고 정시 지원을 실패한 것을 본 계절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내가 첫 번째 누를 만난 것도 그때쯤이었다.

누는 스티로폼 위에서 아가미를 뻐끔거리며 메이데이를 외치고 있었다. 나뭇가지로 스티로폼을 치우고 누를 물에 빠뜨렸다. 가쁜 숨을 멈춘 누는 물 위로 떠올랐다. 누의 죽은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자살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 않으면 구조했더니 죽어버릴 이유가 없었다. 아니다. 누는 멍청해서 구조 받고 싶었던 것을 잊은 것이다. 흔히들 말하잖아, 물고기의 기억력은 3초에 불과하다고. 그러면 죽는 것도 잊은 채 죽어갔을까. 축복이다. 누는 너무 과분한 이름이다.

물고기 누는 땅 위에서 죽어갔다. 그렇다면 인간인 나는 누가 살던 곳으로 가 익사할 것이다. 그렇게 관계성이 성립된다. 물고기를 진로희망으로 작성한 사람을 선호하는 대학은 없다. 대학을 못 붙으면 살지 말아야지. 습관처럼 내뱉던 말은 전부 진심이었다.

익사의 고통은 화형 다음이라고 한다. 정확하지는 않아도 꽤나 상위권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말라 죽는 고통에는 왜 아무도 순위를 매기지 않았을까. 줄을 서는 것에조차 인간이라는 자격이 필요해서일지도 모른다. 누를 희망하기에는 좋은 환경이다. 줄 세우기로 대학과 학과를 정해버리는 삶과 누의 삶을 비교해본다.

선생님은 내게 디지스트가 1지망임을 다시 확인하였다. 당연히도 정시로 지원하겠다고 쐐기를 박았다. 이유를 알지 못했다면 오래 살았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 축에 들지 못하였다. 나는 누가 되고 싶었지만 누군가의 누累를 희망하지는 않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5.

디지스트를 포함한 모든 과학기술원은 수시 6장에도, 정시 3장에도 포함되지 않는 탓에 상위권에게는 비장의 카드로 불리고는 했다. 과학기술원을 지망하는 학생들이 쓸 수 있는 원서는 수시로만 총 10장. 대학 상담은 번호 순서대로 진행이 됐는데 나는 12번이었고 11번 친구는 수시를 9장 쓰는 사람이었다. 우리 학교에서 수시가 7장 이상인 사람들은 항상 한 장을 서울대로 넣고는 했고 11번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애의 추가 3장은 카이스트와 디지스트, 유니스트였지만 카이스트를 제외하고는 ‘넣을 수 있으니까 넣어본다’의 느낌이 강했다. 열아홉에 취업에 목을 매는 11번은 다수가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과학기술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선생님이 정시로의 디지스트 지원을 확인했을 때부터 누군가가 수시로 이 대학을 넣을 것임은 짐작하고 있었다. 수시로는 승산이 없다며 말을 꺼내기도 전에 꺾어버리는 것 역시 전부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 앞의 11번이었다는 사실 앞에서까지 담담함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3년 간 하나의 대학만 바라보고 달려 온 간절함조차 성적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학생부종합전형을 지원하며 기억해야 할 첫 원칙. 같은 고등학교에서 같은 대학교의 같은 학과로의 2명 이상 지원 금지. 학교에서는 나보다는 성적이 잘 나오는 11번을 챙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지만 현실 앞에서 열정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렇게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11번을 서울대에 붙여주세요. 디지스트에 붙더라도 그리로 진학하지 않도록이요. 그런데 카이스트 합격은 안 돼요. 모든 이과 학생의 꿈은 서울대가 아닌 카이스트이고 나 역시 그런 흔한 학생이거든요. 상담을 한 날의 밤에는 말도 안 되는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그 주의 주말에는 몸살이 났다. 학기 중에서는 만들어지지 않는, 순수한 공부 열두 시간을 억지로 생성한 결과였다.

숨을 할딱이지 않는 것과 죽지 않는 것 중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까. 스터디플래너를 뒤적거리면 일고여덟 시간에서 열두 시간으로 갑작스레 늘어난 공부 시간이 보인다. 그와 함께 등장한 R=VD 디지스트 21학번. 모든 흔적들이 내 망가진 열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디지스트에 입학할 수만 있다면 등수는 마지막이어도 좋은데요. 그거야 그렇지, 붙었다는 게 중요하지. 애초에 필사적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명제였다.

물고기들이 죽은 이유를 알고 있다. 그들에게는 모든 순간이 3초가 지나면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기억나지 않는 일.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명제라고는 하지만 그들의 기억이 몇 년씩의 유효기간을 가지지 않음은 분명했다. 붙들고 매달릴 것이 물고기에게는 없었다. 친구는 공부로만 이루어진 내 하루를 보며 그러다가 죽겠다고 걱정했지만 정작 현실은 그 반대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숨가쁘게 살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으며 동시에 충실하게 실현하는 중이다. 물고기들은 할딱거리고 발버둥 치는 방법을 잊어 죽어버렸다.

 

6.

익사는 가장 이상적인 현실 도피이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들은 허구한 날 강이고 바다고 뛰어든다. 물고기가 되고 싶어서. 죽어가는 것도 잊고 왜 죽고 싶어 했는지도 잊을 수 있겠지. 땅 위에서 죽은 물고기와 익사한 사람은 사실 차이가 없다. 어느 쪽이든 ‘누’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니다. 땅 위의 물고기에게는 ‘누’의 이름이 붙지만 익사한 사람에게는 ‘누군가의 누累’의 이름이 붙는다. 들숨에 한 번 날숨에 한 번 살아가기를 그만할까 하면서도 여전히 멀쩡한 이유에 대해 고찰한다. 그만. 새벽에는 입을 틀어막고 울음소리를 죽이고 공부를 하자. 밖은 개 짖는 소리로 시끄럽다. 개들의 밥통에는 먹고 남은 물고기 대가리가 자리하고 있을 테다.

소리 없이 죽어간 모든 누를 위하여 대신 괴성을 질러주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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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부일

율오 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게시판에 글을 쓰셨네요. 반갑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면 글을 쓰기 힘드실 텐데,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고 몇 년 전 카이스트에 살던 때가 떠오르네요. 6개월 동안 머물면서 학생들과 독서 모임을 했었요. 제가 만난 친구들 대부분 과학고 출신이 많았고, 기숙사 생활을 해서 새벽 3시까지 운동을 하고, 아니면 랩에서 실험 결과를 살피고 있고! 과학고 출신 중에서 일반고보다 일 년 먼저 입학한 경우도 많았고! 제가 경험한 대학 생활과 사뭇 달라서 흥미로웠죠. 율오 님도 이공계를 지망한다고 하니, 대단해보이네요. 저는 수학 과학을 너무 싫어해서! 완전 문과형 인간이어서! '물고기와 인간의 상관관계' 이 글을 보며 차분한 문장이 좋아요. 율오 님도 차분한 성격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차분한…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