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던 환상

오랜만에 꿈을 꿨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너무 선명하고도 강렬한 꿈이었다. 마치 당시에는 야만적이라며 비난받다 후대에 역작으로 칭송받은 흑백 한국 영화를 본 느낌이었다. 남동생이 있었다. 20대 초중반쯤, 하지만 그리 앳돼 보이진 않는 눈을 가졌던 것 같다. 동생은 나와 엄마를 증오했고, 복수를 하고 싶어 했다. 자신처럼 고통받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의 소망은 마침내 이뤄졌다. 그의 죽음으로써. 우리의 살인으로써. 피로 물든 눈을 하고 징그럽게도 웃던 얼굴이 아른하다. 그걸 행복이라 칭하긴 괴기하지만 기쁨이라 하겠다. 지독히도 기뻐 보였다. 놈이 생각한 최고의 복수가 겨우 이것이었다니. 왠지 눈물이 났다.

아득히 눈을 뜨자마자 갓 내린 냉수를 들이켰다. 시려오는 자극을 느끼고서야 비로소 알람을 끌 수 있었다.

꿈에서 깨면 오직 그 잔상만 남아 뇌리에서 흩날린다. 꿈은 죽음과 닮았다. 활활 불타오르다 눈꺼풀이 움직이자 말자 연소를 멈춘다. 남은 건 그저 다 타버린 재 뿐이다. 그건 너무도 작고 적어서 나는 그것이라도 간직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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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부일

사령 님, 안녕하세요!^^ 수필 게시판에서 처음 뵙네요. 닉네임이 참 인상적입니다. 수필 제목도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한편의 영화를 눈으로 읽는 느낌이네요. 짧은 영상 같기도 하고! 짧은 글인데도 감정 몰입이 되네요. 꿈은 죽음과 닮았다는 주제도 담고 있어요!^^ '아득히 눈을 뜨자마자 갓 내린 냉수를 들이켰다. 시려오는 자극을 느끼고서야 비로소 알람을 끌 수 있었다.' 이 문장이 참 재미있어요! 현실로 돌아오는 장면! 물이라고 하지만, 냉수라고 하니 더 생생! 그 냉수를 급히 마실 때 시려오는 치아까지, 그 느낌이 확 와요. 좋은 문장은 구체적이라야 합니다. 단어 하나 차이로 느낌이 더 강하게 전달되는 법!^^ 물과 냉수의 차이! 처음에 '오랜만에 꿈을 꿨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너무 선명하고도 강렬한 꿈이었다.'로 시작하는데…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