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용기를 위하여

얼마 전에는 문장청소년문학상 수상 작품집을 받았고, 그보다 더 전에는 학교의 문예공모전에 글을 제출하고 왔다.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 3학년이 시시한 문예공모전에 참가하는 것을 보고 선생님은 문예창작과를 희망하느냐고 물으셨다. 십구 년째 살아오면서 처음 듣는 질문이었다. 모두가 내 창작을 말릴 때. 그러게요, 수능이 코앞인데. 전혀 관련 없는 말로 대답했지만 선생님은 충분히 알아들으신 눈치였다. 글쓰기라는 제법 고상한 취미를 가진 학생. 선생님께 내 이미지는 딱 그 정도였고 굳이 정정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대학교 문예창작과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던 시기가 있었는데,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게 되었잖아. 정말 취미로 전락했는지도 모르지. 그런 자기위안을 하며 교무실을 나갔다.

어떻게 처음 글을 쓰게 되었는지 아직도 기억한다. 영어 교육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들을 위한 사이트에서,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의 아이들이 글을 올리는 공간이 있다고. 엄마가 지나가면서 툭 던진 한 문장이었다. ‘파피루스’라는 이름이 붙어있던 공간은 올해 초 낮은 사용률로 폐쇄되었다. 내 모든 유년기가 담겨있던 곳. 책을 좋아하는 것이 유일한 공통점이었던 우리는 그곳의 누군가를 동경했고 또다시 누군가의 꿈이 되어주었다. 몇 년이나 문장을 더 만진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은 닫혀버린 그곳에는 어느 초등학생의 꿈이 되어주었던 내가 있다.

파피루스의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가며 사라지고는 했다. 고등학교 3학년 혹은 그에 준하는 학력을 가진 사람까지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다수는 중학생이 되면서 모습을 감춰 갔다. 중학생보다 고등학생의 수가 많은 글틴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나마 가장 오래 활동했던 것이 고등학교 1학년까지 머물렀던 형이었다. 영어로 된 SF 소설을 적어 세상에 알려질 것이라는 포부를 가졌던 형, 3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지금은 어때요, 형도 여전히 문장을 사랑하나요?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서 깨달음이 늦는 편이다. 꿈이 많아서 기적의 부재를 늦게 알아챈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에도, 그보다 시간이 더 지나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파피루스에서 고등학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전부 그런 이야기이다. 우리가 펜을, 컴퓨터를 잡고 써 내려가는 문장은 대학과 취업 같은 현실보다 우선시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엄마는 여전히 글을 쓰는 나를 보며 공부 시간을 뺏기는 것이 아닌지 걱정했고 선생님들은 대학을 입에 담았다. 주변의 친구들은 인터넷 소설을 생각했다가 고개를 돌렸고 어느 날 교내 문예공모전 작품집에서 익숙한 이름을 보게 되면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닭살이 돋는다고 말했다. 엄마는 내가 아빠에게 예고에 가서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결국 나는 특목고를 목표했다가 실패하고서는 일반고로 왔다.

모두가 글보다는 공부라고 말했다. 공부를 선택한다면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이 만들어지는데, 무엇 하러 어려운 길을 택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과학기술원을 꿈꾸는 평범한 이과생이 되었다. 매일 밤 디지스트에 붙여주세요, 소원을 빌고 새벽에 울음을 삼키고 졸음을 삼키며 공부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 되었다. 붙여만 준다면, 내 전부를 잃어도 좋을 만큼 간절한 대학이 생겼다. 외행성의 위치 변화 합→서구→충→동구→합. 남중 시각은 반대로. 새벽 3시, 기숙사 침대에 누우며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개시코돈 AUG 종결코돈 UGA UAA UAG. 아침 6시, 기상하며 무의식중에 내뱉었다. 모두가 말하는 ‘독하게 공부해서 성공한 고등학생’이 되어보려고 했다. 우리 학교는 과학기술원을 잘 보내지 못하는 대학이니 반드시 수능을 잘 쳐야 한다.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 때마다 의심은 없어, 확신만 있을 뿐, 중얼거리며 잡념을 떨쳤다. 글은 대학에 붙고 나서 써도 늦지 않아. 글은 취미로만 써도 충분하잖아.

단순히 고등학생이라는 이유로 문장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너무 잔인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고등학생에게는 힘이 없다. 살기 위해서는 꿈을 죽여야 한다. 졸업식 레드카펫의 주재료가 꿈들이 죽어가며 흘린 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내가 있는 문예창작과’를 제물로 내놓았을 뿐이다.

나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글을 쓰고 싶어. 작년 이맘때쯤, 아는 언니에게 6월 모의평가 응원을 건넨 후 받은 대답이었다. 그래서 모의고사 점수보다는 실기에 조금 더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언니의 이야기였다. 사실은 전부 핑계야. 알고 있어. 고등학생에게도 꿈을 지킬 정도의 힘은 주어져 있음을 알아. 언니는 문예창작과가 가고 싶다고 했다. 망설임이 없었다. 나는 일찍 포기한 것을 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고 있었다. 다들 무섭지 않은 것 같다. 글을 쓴다고 외쳤을 때 받게 되는 시선들.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너보다 재능 있는 사람이 많은데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무엇보다도 불확실함에 대한 망설임. 정말 괜찮겠냐는, 내가 나에게 던지는 걱정을 가장한 비웃음.

어느덧 고등학교 3학년이다. 수능은 130여일, 한 달만 지나면 100일밖에 남지 않는다. 차마 글을 놓을 수는 없어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우울할 때만 글을 쓰자고 원칙을 정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을 쓰면 쓸수록 괜찮음과는 거리가 멀어져만 간다. 하지 않은 공부가 눈에 밟히고 책상에 앉아 연필이 아닌 노트북을 손에 잡은 모습에 한숨이 나온다. 시선이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수능을 코앞에 두고 글을 적는 나는 죄인이다. 지금껏 글에 들인 시간을 모두 공부에 투자했다면 수학이 지금보다 한 등급은 더 올랐을 텐데, 따위의 실없는 생각은 공부하다가 집중이 깨질 때마다 틈을 파고들고는 했다.

나의 레오파드게코. 문장청소년문학상 수상 작품집은 대상을 받은 작품의 제목을 달고 책을 발간한다. 얼마 전 택배를 받고, 가장 최근의 수상 작품집인 ‘나의 레오파드게코’를 읽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주변에서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역설적이게도 가장 멀리 있는 사람들이 해 주고 있었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세상이지만 장담하건데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문학을 통해 각자의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 노력은 언젠가 보상받을 것이라고. 앞에 펼쳐질 긴 여정을 응원한다고. 아직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해서 두려운 십대에게 먼저 문장을 사랑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이야기했다. 괜찮다고. 모든 고민과 망설임에 괜찮다는 말이 건네진다.

글을 쓴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먼저 신기함을 내비치고는 했다. 그다음은 문예창작과를 가서 먹고 살 수 있겠냐고 걱정을 했고, 마지막으로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난을 했다. 문장이 어색한 것인지, 문장을 사랑하는 사람이 어색한 것인지, 문장을 사랑하는 내가 어색한 것인지 모르겠다. 처음 몇 번은 상처 받았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지긋지긋해지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내 탓을 했다. 어쩌면 글을 쓰는 게 잘못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람들의 반응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일관될 수 있을까. 그러니까 괜찮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울 수밖에 없었다. 괜찮다와 같은 단순한 위로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계속해서 사랑을 이어가고 싶었다.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서 다시 시작을 했다고 하면 주변은 뭐라고 할까? 대상을 잘못 선택했다고 지적할까?

교내 문예공모전을 담당하고 있는 선생님께는 기말고사가 끝나면 자기소개서로 다시 찾아뵐 계획이다. 그리고 기회가 생긴다면 선생님이 가지고 계시는 내 이미지를 조금 바꿔볼 생각이다. 문예창작과를 진학할 생각은 없지만 취미라고 말할 정도로 마음이 가볍지는 않아요. 만일 제가 문예공모전에서 수상을 하게 된다면 그때는 제게 말씀해주시면 안 될까요. 나이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계속해서 문장을 탄생시켜도 된다고요.

 

널리 알려지는 SF 소설을 쓰고 싶어 하던 형이 있었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글을 쓰고 싶어 하던 언니가 있었어요. 저는 모두를 위한 가장 진솔한 글을 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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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부일

율오 님, 이 글을 읽는데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문제의식이 가득한 글이네요. 왠지 이 글이 글을 쓰며 사는 저를 위로하고 있습니다! '글을 쓴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먼저 신기함을 내비치고는 했다.' 공감 100프로! 그래서 절대로 저는 글을 쓴다는 말을 잘 안합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단 하나의 용기를 위하여'라는 제목이 얼마나 엄숙한지! 웃긴 문장! '문예창작과를 가서 먹고 살 수 있겠냐고 걱정을 했고' 예전보다 작가들이 먹고 사는 문제도 많이 좋아졌어요!^^ 여기저기 글쓰기 수업이 많다보니, 특강도 증가해서! 제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고등학교 1학년 겨울 방학, 어느 날, 어떤 단편소설을 읽고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 소설은 제주 4.3사건을 다룬 작품이었습니다. 작가가 아니라 기자를 지망했는데, 그… 더보기 »

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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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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