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나비가 보이는 여름 (수정1)

 

 

파란 나비가 보이는 여름

우리 엄마는 어릴 적 원예가를 꿈꿨다고 한다. 엄마는 무언가 가꾸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우리 집에는 화분이 적었고, 푸른 잎사귀를 드리우며 햇살을 받아 성장하는 꽃이 없었다. 엄마는 꽃 대신 나를 낳아 키웠다. 어린 나와 오빠가 혹시라도 화분 때문에 다치지 않게, 꽃을 거의 키우지 않았다. 엄마가 나만 했을 때, 부푼 기대감을 껴안고 원예부에 들었는데 알고 보니 학교 잡초를 뽑고 텃밭을 돌보는 잡일을 시켜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슬퍼 목구멍이 뜨거웠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진짜 내 외할아버지를 한 번도 뵌 적이 없다. 어릴 적 외할머니 식당에 자주 놀러 갔었는데, 그때마다 외할머니와 함께 담소를 나누던 조 씨 할아버지를 뵈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내게는 여전히 외할아버지 같은 분이시다. 난 적어도 조 씨 할아버지가 내 외할아버지, 엄마의 아빠인 줄 알고 자랐다. 내가 접할 수 있는 세계의 부피가 부풀기 시작하며, 아. 조 씨 할아버지는 진짜 내 외할아버지가 아니구나, 깨달았다.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엄마가 한참 어릴 때. 세 살 남짓한 아기 때 돌아가셨다고 했다.

난 그럴 줄만 알았다.

그러나 그건 순 거짓말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아직까지 살아계신다. 다만, 마음속에서 영영 떠나고 만 것이다. 우리는 삶을 사는 동안 크고 작은 나비효과로 서로가 서로를 만나 인연을 맺고, 운명을 결정짓는다고 한다. 사람이 죽는 게 슬픈 건, 그 사람이 나비였던 순간을 기억해서다. 그러나 외할아버지는 내게 한 번도 나비였던 적이 없다.

그건 엄마한테도 마찬가지였을까?

나는 엄마의 세계를 이해하기에는 한없이 어리고, 알 수 없는 게 많다. 엄마는 나의 시작을 보았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시작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없는 공백. 엄마의 30년은 무엇으로 채워졌을까, 궁금해한다. 엄마도 나처럼 비혼 주의를 외쳤을까. 원예가가 되어 예쁜 꽃이 가득한 정원을 가꾸며 오순도순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싶었을까. 멋쟁이 아줌마가 되는 꿈을 꾸었을까.

엄마는 나를 낳을 줄 몰랐다.

종종 파란 나비가 창 너머 일렁이는 것을 본다. 나는 햇살이 부수어지듯 한낮의 나른한 바람 소리를 들으면, 나비를 볼 수 있다. 제자리를 맴도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옛 생각에 잠긴다. 몇 년 전에 오빠와 크게 한 번 싸운 적이 있었다. 오빠는 내 존재를 미워했다. 서로 상대의 존재를 부정했던 것 같다. 아마 오빠는, 내가 흑심으로 그려진 낙서에 불과했다면 지우개로 빡빡 문대 나를 없애고 싶을 정도로, 싫어했을 거다. 오빠는 내가 왜 태어난 건지 모르겠다고, 사라지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나는 말짱한 척했지만, 내 마음은 이미 닳고 있었다. 당시 내 마음에는 지우개 가루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날. 오빠랑 심한 다툼이 있던 날, 나는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어버렸다.

부모님이 너 안 낳으려고 했는데 낳은 거래. 너 원래 지우려고 했어.

심장이 역류된다는 말은 과학적으로 불가하나, 나는 과학적인 이론을 거스른 것처럼 심장을 토해내고 싶었다. 그 순간 물리적인 힘을 지니지 않은 ‘말’도 폭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태어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아들, 딸 차별이 존재했다고 한다. 의사들은 불법적인 일이지만 은밀한 낙태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은밀한 일은 자잘한 학교 규칙을 어기는 것처럼, 중독으로 번져 나갔다. 두렵던 감정은 온데간데없고 갈수록 대담해지는 마음 같았다. 임산부에게 두꺼운 모니터 화면으로 뱃속 태아 사진을 보여주며, ‘뭐가 보이네요’라고 말하면 기뻐하는 시절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시절 딸로서, 계획에 없던 아이로서 엄마 뱃속에서 심장을 지녔다.

태아인 나는 나비가 될 준비를 하는 번데기였다.

외동아들이 될 뻔했던 오빠는, 끈질기게 심장이 뛰는 나 덕분에 맏이가 됐다. 오빠는 남동생을 갖는 대신, 칭얼거림이 심한 여동생을 갖게 됐다. 오빠와 나는 이란성 쌍둥이냐는 질문을 들을 만큼 닮아 있었다. 엄마는 신기하게 똑 닮은 두 아이 중에 나를 더 챙겼다. 엄마 눈에는 내가 자주 시들고 언제 벌레가 꼬일지 모르는 꽃으로 보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내가 다섯 살 남짓할 무렵, 나는 원인 불명 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다. 교회 권사님이라는 분과 더불어 여럿 어른들이 와 기도를 올렸다. 나는 개인 병동에 있다가 다인실로 옮겨가 히스테리를 부르기도 하고, 엄마를 괴롭게 만들었다. 엄마 아빠가 거 진 한 계절분 동안 나에게만 관심을 쏟는 새, 오빠는 고립되어 갔다. 끝내 정확한 병명과 원인을 알지 못한 채 퇴원 수속을 밟을 때마저도 어쩌면 나는 엄마 아빠의 사랑을 독식해 버렸다.

그때 삼켜버린 사랑이 많아서, 지금에서야 탈이 난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존재의 이유를 추궁할 때면 밑도 끝도 없어 오빠가 미웠다. 네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나를 부정하는 오빠가 싫었다. 안간힘을 쓰며 살고 있는 내가 두루뭉술한 잔여물로 변해가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는 내가 너무 많은 사랑을 받고 자라서 그런 거라고 말했다. 오빠한테 엄마가 관심을 더 가졌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그 말을 듣고 난 후부터, 나는 내가 깔끔히 지워졌어야 할 존재라는 걸 납득했다. 여전히 그 생각을 많이 한다. 어쩌면 나는 애당초 그려져서는 안 됐을 존재라고.

나를 부정했던 사춘기 소년은 몇 달 뒤에 성인이 된다. 그리고 그 십 년 뒤에 내 부모가 그러했듯 아이를 낳을 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꼭 당신 같은 아들을 만나서, 당신 같은 딸을 만나서. 당신 아들이 딸의 존재를 부정하는 걸 보길 바란다고, 속 좁고 비열한 상상을 한다. 그러나 마음 한 편으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애꿎은 생명이 내 분풀이 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단죄한다.

엄마는 어린 내가 심장이 뛰는 게 불쌍해서, 너무 예뻐서 지우지 못했고. 엄마는 나를 꽃처럼 가꾸었고. 나는 자라 지워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고 있다.

파란 나비가 보이는 여름이 아파서 눈물이 난다. 나비가 보인다는 건, 그래도 내가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일까?

남들은 볼 수 없지만. 물론 나조차도 볼 수 없는 허구의 존재이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는 나비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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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부일

우주디 님의 글을 여러 편을 읽으니 왠지 친해진 느낌이네요. 물론 저만의 생각이겠죠?^^ 이 글을 읽는데 웃음도 나고 슬프기도 하고!^^ 먼저 전체적인 소감을 말하면, 소설을 쓰면 참 잘 쓰겠다!^^ 나비의 상징도 좋고. 뭔가 우주디 님은 이야기를 참 많이 갖고 있구나 싶어요. 글쓰는 사람한테 아주 큰 재산이죠. 조씨 할아버지를 등장시키는 것도 매력적이고. 앞의 3편과 완전히 다른 글이네요. 엄마가 원예가를 꿈꾸고 원예부에 들어갔는데, 학교 잡초를 뽑고 텃밭을 돌보는 잡일을 시켜 실망했다 이 부분에서 한참 웃었네요. 역시 삶은 늘 배신의 연속이죠?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미리부터 기대하는 버릇을 안하게 되더라고요. 늘 제 생각과 다르니까. 그렇게 기대를 하지 않았더니 장점도 있어요. 예상치 못한 좋은 일에 더… 더보기 »

연희동 루소

흑심으로 그려진 낙서에서 마음이 얼얼해졌습니다.

흑연으로 그려진 낙서로도
나쁜 마음으로 그려진 낙서로도
읽히네요.

삼켜버린 사랑이 많아도 탈이 나나요.
그렇다면 나는 거식증에 걸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