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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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극단적인 선택, 폭력 및 성적 요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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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더욱 조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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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우리 아파트 16층에 다시 찾아왔다는 걸 선명히 느꼈다. 분명 너는 이 지루한 아파트 단지를 떠나 돌아오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목요일 저녁 5시 40분, 노을은 수평선이 아닌 빼곡한 도심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네가 주홍빛의 둥그런 잔상에 시달릴지 모르겠다.

곧 야시장이 열리고 복잡한 인파 속에서 숨을 내쉰다면 너는 미안함이 들지 모른다. 왜인지 묻지 않겠다. 물론 복수심에 찾아왔겠지. 투신 후, 10초 만에 피로 덮인 널 보는 건 정말 순식간이다. 그대로 네가 죽는다면, 나는 시한부가 되어 다섯 해를 죄책감에 압도당할지 모른다. 알고 있다. 그 꼴을 볼 사람들은 무슨 죄인가, 이런 도덕적인 질문도 영하의 온도에 굳었는데. 나는 네 옷깃은 커녕 머리카락 한 가닥도 잡지 못하리라. 부딪히는 차디찬 공기마저 감싸줄 수 없다. 남들은 우리의 말을 소설이라 믿었다. 글쎄 그것은 현실이지만, 평범함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숨긴 이야기였다. 그래서 우리가 겪어왔던 삶을 대신 써내리려 한다. 쭉 갈구해왔던 '코스모스'와 함께. 이 독백체로 한탄하는 17년의 일기가 끝나면 우리의 앞날은 온전히 네 것이 된다. 코스모스……. 기억나는가?

 

질서정연한 우주, 코스모스.

우리는 코스모스에서 태어나고 코스모스에서 저문다. 내가 태어난 후 지구는 태양을 네 바퀴 돌았고, 맞벌이었던 부모님은 나를 외할머니 댁에 낮 동안 맡겼다. 그분의 텃밭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봄에는 향긋한 진달래가 옹기종기 모여있다. 여름이면 초록빛이 머무는 곳에 장미가 홍조를 붉히고 있었다. 가을에는 아삭아삭한 대추가 열렸고. 겨울, 그 계절에는 눈이 쌓이는 부슬거림을 들었다. 마른 낙엽이 쪼개지는 소리, 차창에 서리가 얼어붙는 소리는 나의 숨소리마저 시끄럽다며 꾸짖었다. 하지만 나는 봄이 불어오면 싹이 틀 것을 알았기에. 그래서 삶의 기운이 깨어나면. 나는 잠시 나가 민들레 씨가 바람을 타고 날아갈 때까지 기다렸다.

눈동자에 풍경을 담가놓는 일, 귓가에 미세한 벌레 울음소리를 집어넣는 일은 어릴 적 나의 사소한 기쁨이었다. 때로는 할머니의 자장가를 삼아 잠에 곤히 들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자주 앓아누우셨고. 나는 대다수의 시간을 혼자서 보냈다. 맨 처음에는 TV를 계속 시청하다가 어느새 멈추게 되었다. 내가 볼 만한 내용이 없었다. 남편이 아내의 뺨을 갈기는 장면, 조폭들이 여자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장면이 오가는 강렬한 채널이 나의 어린 신경에 부딪혔다. TV 채널을 바꿔달라고 부탁하면, 할머니는 분개하며 나를 방에서 내쫓곤 했다. 난방도 안 되는 다른 방에 누워 창을 열고 가만히 밖을 응시하였다. 하늘은 새파란 박하사탕 향이 났다. 1월의 소름 돋는 바람, 그 사이로 죽은 잎새가 살랑거렸다. 조금만 지나면 바로 눈에 보이던 양떼구름은 흩어져 버리고 새로운 뭉게구름이 드리울 테니.

호기심은 내게 스며들었다. 우리로부터 늘 지나치는 것들이 당시에는 새롭게 느껴졌다. 하늘은 왜 푸른 건지, 놀이터 모래는 왜 부드러운지 현상에 관심이 많았다. 인위적인 질문이 아닌 신비하다는 감정에서 끌어낸 하나의 생각이었다.

 

나는 세상에 대하여 '생각'할수록, 그러한 공상에는 끝이 없단 사실을 조금이나마 깨달았다. 유치원에 입학했을 때, 난 아이들의 소꿉놀이에 끼지 못했다. 역할놀이에 휘둘리면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다만 맑은 공기를 느끼고 따스한 햇볕이 들이대는 창가 곁에서 나도 모르게 평온해졌다.

결국 나는 또래와 갈등이 생겼다. 고요한 분위기의 평화를 덜어내면, 아이들의 놀이는 다 어색하게 다가왔다. 결국 따돌림을 당했다. 하나도 쓸모없는 아이라며 모든 부정적인 일들은 내 탓이었다. 홀로 남겨진다는 것은 마치 심장이 튀어나올 듯한 공포였다. 나는 단지 의자에 앉으려 했을 뿐이고, 아이들은 나를 쓰러뜨린 후 발로 짓밟았다. 나는 사물함을 열어봤을 뿐이고, 그 안에는 쓰레기가 들어있었다. 또 그림을 그렸을 뿐인데 누군가 검은 크레파스로 그 위를 새카맣게 칠해놓았다. 못난 아이에게 벌을 내린다는 명분으로 난 교실 앞까지 억지로 끌려갔다. 뼈가 부러질 때까지 그들은 내 손가락을 미닫이문으로 찍어버릴 의도였다. 지겨운 반복. 어린이집 3년 동안 팔을 깨물면 마음에서 울컥 차오르는 통증이 사그라듦을 깨달았다.

매일 밤, 악몽과 가위로 인해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꿈속에서 누군가 목을 조르기에 숨을 쉴 수 없었다. 7살이 된 나는 홀로 유치원 옥상에 가려다, 계단을 가로막은 울타리가 보였다. 나는 울타리를 몇번 두드리고 흔들었지만 열리지 않았다. 아직 죽을 때가 아닌가봐. 다들 모래놀이를 할 때쯤 무리 지어 다니는 개미들을 관찰하는 나, 다른 또래들에게는 눈엣가시였다. 그러나 그 미운 짓을 멈추지 않았다. 가시덩굴로 무성한 기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도 세상을 이루는 요소들은 가슴을 들뜨게 했다. 특히 무엇보다 어둠 속의 은은한 빛깔을 좋아했는데. 밤에 잘 때는 항상 달 모양의 전등을 켜서 그런지 안정이 되었다. 마치 굴곡진 밤의 한가운데 박힌 보름달처럼…….

 

초등학교 입학을 두고 나는 친할머니 댁에 갔다. 그곳에는 막내 고모가 계셨는데. 내가 4살이 되기 전, 아버지와 고모들은 끊임없이 싸웠다. 갈등의 불씨가 산불처럼 번지면 난 어머니와 방구석에 숨었다. 전등 스위치처럼 딸깍거리는 숨소리, 불안정했다. 고모는 문을 쾅쾅 두드렸고 결국 문에 스크래치가 났다. 아버지의 거대한 목소리가 집안을 뒤집어놓았고, 그 찰나에는 내가 있었다.

4살 이후 친가와 떨어져 지내는 동안 막내 고모는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그녀는 정신과 약을 먹지 않겠다며 떼를 썼다. 그게 시답잖은 아버지가 막내 고모와 함께 죽네 사네 소리 지르면, 나는 비명이 울리는 그 음침한 빌라 밖에 서있었다. 오랜 다툼이 그칠 때까지, 폭설을 뒤집어쓰며 동사자가 되는 상상을 했다. 한겨울이 지나고 꽃샘추위가 봄을 밀어내던 날이었다. 유난히 바들거리는 눈빛으로 막내 고모는 나를 어두운 방에 유인했다.

"고모가 신기한 거 보여줄게. 따라올래?"

나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고모는 문을 거의 닫아버리고 새카만 방 안에서 나를 세뇌시켰다. 문틈 사이로 상쾌한 형광등 빛이 들어왔음에도 짙은 공기와 쾌쾌한 고모의 얼굴은 오마주 되었다. 그녀는 말했다. 아버지를 믿지 말라고, 자신을 정신병자로 만드는 놈이라고. 이후로 시간은 빨리 흘러갔다. 고모와 아버지가 미친 듯이 뱉어내는 욕지거리, 와장창 깨지는 액자와 널리 퍼지는 유리 파편들. 얼굴이 시퍼렇게 된 나는 울었다. 아버지께 두 손을 싹싹 빌었다. 제발 고모를 신고하지 말라고. 하지만 소용없었다. 사라진 노을 아래 깜박이는 경찰차의 사이렌이 그것을 증명했다. 고모는 자신을 찾아온 경찰에게 깽판을 쳤고, 아빠는 내 손목을 낚아채어 차 안에 가두었다. 나는 고모가 입원한 정신건강병원까지 끌려갔지만, 그 기억은 싹둑 잘려나갔다. 차라리 그런 기억을 잊어버리는 게, 너와 나에게 있어 최고의 행운 아닐까 싶었다.

 

겹치는 현실의 무게로부터 도망가던 나는, 별을 부여잡고 물었다. 곧 마주하겠지. 천천히 식어가는 무표정의 별님을. 불빛의 손톱만 한 노력이 어둠이란 거인을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나는 코스모스를 증오했다. 미미해도 어쩌면 우주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감격하며 살겠지만. 죽고 싶었다. 죽고 싶었다고. 하루하루 심장을 뛰게 할 것들을 찾으려 애썼다.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도 계속되는 따돌림. 아이들은 사냥 놀이에 몰려다니는 짐승처럼. 이리떼같이 먹이를 넘어뜨려 밟고는 낄낄거린다. 가해자들이 따돌림당하던 아이의 손발을 결박하여 복도를 쓸고 다니면, 나는 무조건 뜯어말렸다. 그리고 초등학교 6년간 나는 이상한 아이가 되어, 타깃이 되어, 전교 왕따가 되어 서서히 무너졌다.

숨겨놓은 무대 뒤편에는 정신 병동에 갇힌 막내 고모의 반항, 부모님의 다툼이 널브러져 있다. 아버지는 10살 된 내게 죽고 싶다고 말하였고. 그는 너무 힘들었던 나머지 운전을 하다가 핸들을 꺾어 사고를 내려 했다. 나는 시험당했다. 특히 나를 함부로 만졌던 손과 더러운 입들로 인해 불쾌한 꿈도 꾼다. 몸의 한편을 칼로 도려내고 싶었다. 6살 때, 40대 후반 피아노 학원 원장이 떠오른다. 내 몸이 너무 사랑스럽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 희롱하다가. 나를 만지고 싶다고 서슴없이 정말 그 짓거리를 했다. 그리고 내가 싫은 눈치를 보이면 그는 정색하며 하던 말이 있었다.

"왜 그래? 몸 간수 못한 네 잘못이지."

나는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던 사람들로부터 분리된 적이 없었다. 7살 때 또래 남자아이에게 공개적으로 추행을 당하고 태권도 관장에게 이를 알렸을 때는 '널 좋아해서 그런 거야.', 9살 때 사촌 오빠로 생긴 성적 트라우마를 털어놓았을 때 '오빠가 그때는 어렸어, 그건 이해해야 하지.'라며 보호받는 건 그들이었다. 신기하다. 좋아하는 사람의 몸은 함부로 대해도 되는가. 어리다는 이유로 면죄부가 생긴다. 그래서, 네가 말하고자 하는 코스모스가 이런 모습 아닌가? 잔인하고 악을 질서로 삼는 공간. 언급한 사건들은 우주공간의 조그만 점에서 일어났지만, 내 몸을 잡아먹을 듯한 상처는 크게 자랐다. 이 땅에 건네줄 다정함이 사라졌다. 그러나 혼자 죽으란 법은 없는지, 세상의 치밀함에 놀란 적도 있다.

 

초등학교 5학년에 1분 스피치 주제로 줄기세포를 조사했다. 줄기세포는 우리 몸의 모든 조직의 일원이 될 수 있어, 많은 생명에게 희망이 되었다. 매우 얇지만 기적이란 끈으로 묶이고 엉킨 세상에서, 나는 이것저것을 머리에 집어넣었다. 억지로 배우면 배울수록 가슴이 식어가는 건 필연이었다. 다만 내면에서 뜨겁게 끓어오르다 불꽃에 휩싸이는 순간은 언제나 우연이었다.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해 허덕이다 집에 와, 인터넷 사이트의 알고리즘으로 추천된 우주 관련 영상을 봤다. 그리고 슬론 장성이란 거대한 존재를 보았다. 아니, 느꼈다. 나는 눈이 녹아내릴 듯이 흐느꼈다. 의지 없는 내게 슬론 장성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런 존재는 마주하지 못했겠지.

낡은 빌라, 빛바랜 학교 외벽은 익숙했다. 새롭게 다가온 슬론 장성은 내 진로를 조금이나마 정해준 계기가 되었다. 천문학자로. 충동적이고 우스운 이유였지만 우주를 전부 탐험하는 게 목적이었다. 육체를 풀어헤치고 나아가, 우리 은하의 나선형 날개를 쓰다듬거나 달의 바다에 있는 돌을 무더기로 가져가고 싶었다. 미운 털이 박힌 코스모스여도 매력은 어쩔 수 없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 생명공학 연구원으로 진로를 바꿨다. 방과 후 과학수업에 참여하여 최우수 학생으로 뽑힌 적도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1이 되었다. 가장 예민했던 시기라, 하루에 몇 번 이상 하늘을 올려다보았으며 감성적인 글을 계속 썼다. 당시에는 소설가나 작사가가 되고 싶어 혈안이었다. 하지만 내 꿈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친척들, 특히 부모님께서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하실지 두려웠다. 몰래 글을 써가면서 나는 불만에 목이 막혔다. 하고 싶은 것을 즐기면서 살고 싶은데. 부모님은 내가 연구원이 되고 싶어 하는 줄 아셨다. 난 반항하듯 과학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 점수는 당연히 내려갔다. 직접 말해서 꿈을 조정할 생각은 아예 못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격이다.

나는 부모님과 다퉜다. 공부를 하던 중 상태가 안 좋아서 심하게 토하던 날에, 아버지가 환자 코스프레 좀 그만하라고 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과제를 하던 새벽녘, 아버지가 날 부르셨다.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된다면, 실패자가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라고 과격하게 이야기하셨다. 돌덩이 같은 말을 툭툭 던지셨다.

"실패자들은 결국 자살하는 거지. 너도 그럴 거냐?"

그런 식이었다. 부모님과의 내적 갈등은 잦아졌고. 나는 화를 낼 기운이 없었다. 끝까지 잘 해낼 줄 알았는데, 학원 숙제를 안하는 날이 부쩍 늘었다. 루트와 인수분해를 선행하면서 아이들과 눈에 띄도록 격차가 벌어졌다. 불성실한 나는 그야말로 웃음거리였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은 많은데 왜 제자리걸음인지 자책했다.

 

설상가상 중2 상반기에 조현병 증상이 심하게 나타났다. 부모님이 날 찌르기 위해, 칼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살해당한다는 망상에 마비되어 엄마가 물을 주면 싱크대에 버렸다. 방에 혼자 있어도 수십 개의 눈이 나를 훑어보는 느낌이 들었다. 이전부터 환각과 환청은 가끔 있었고 우울증과 불안장애는 내게 익숙했다. 정신질환은 초등 4학년 때 이미 공식적으로 판단이 났다. 세상은 내 편이 아니었다. 난 하루에 수십 번씩 나타나는 괴물들과 전쟁을 벌이며 이성을 되찾았다.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는 시체, 뜬금없이 나오는 섬뜩한 귀신들은 무조건 환각이었다. 하지만 학업은 이어나갔다. 중2 때 고사를 4번 봤으나 평균이 90점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었으니 기적이지.

숨쉬기 곤란하면 손에 붙든 책만 뚫어져라 보았다. 다른 곳을 쳐다보면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페이지 속의 글자들이 제멋대로 울렁거렸으나 참아야 했다. 영원 같은 두려움 속에서 길러졌고, 절박한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팔을 칼로 그었다. 붉은 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눈꺼풀도 칼로 조금씩 찌르는 아찔한 짓도 하다가. 떠오르는 끔찍하고 잔인한 상상들……. 내 몸이 모래 덩어리라면 좋았겠지. 나 자신을 모래알이 될 때까지 토막 낼 텐데, 그럼. 스스로가 괴물인 줄 알았다. 너도 알다시피, 난 아팠을 뿐이야.

 

지금의 나는 어떻게 이겨냈을까. 잘 모르겠다. 살려달라는 소리에 귀를 막아보고. 환각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고 엄마의 손에 의지하여 걸어 다니던 순간들. 정신을 차려보니 하반기에 다가갈수록 과학과 그림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갈수록 예전처럼 탐구 과목이 좋아졌다. 그리고 중3이 되어 1월에 처음으로 정신과에 들렀다. 우울증 검사지를 풀었는데. 정신과 의사는 내 상태가 심각하다며, 나를 폐쇄병동에 바로 입원시켰다.

두꺼운 책은 반입이 불가했지만 과학, 수학 교과서와 문제집 그리고 토플 문제집을 그냥 통과시켰다. 그곳에 있던 또래 아이들과 함께 병동 식탁에서 공부했다. 정신과 담당의는 그 와중에 내게 웬만해서 공부는 좀 하지 말라고 전전긍긍하였다. 모든 과목을 짬짬이 공부했던 초반과 달리 중후반에는 과학 교과서를 보거나 환우들에게 선물할 그림을 그렸다. 내 생일과 평창 올림픽의 뜨거운 날들을 그곳에서 조용히 보냈다. 밤마다 울었으나 흐릿한 건물의 환한 전등을 바라보고. 고요한 눈 소리에 파묻혀 잠에 들었다. 비록 폐쇄병동에 입원한 상태였지만, 특별히 나는 학교에 갔다 오면서 일상도 이어나갔다. 하교 후 병원 가는 버스에 타 뉴에이지와 팝송을 들으며 편히 창문을 응시하였다.

퇴원 후 정신과 약을 처방받아먹었다. 다녔던 학원을 다 끊어버리고 혼자서 공부를 이어나갔다. 학문을 차근차근 독학할수록 코스모스의 아우라에 휩싸였다. 중3 후반이 되어 12월에 고1 과정을 습득했다. 교과서를 통독하면서 모르는 질문들이 쌓였다. 현재까지 질문을 약 80개 정도 만들었고. 반 이상은 아직도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 없다. 나는 고등학교 입학포기생으로서 전문적인 사람을 찾기 어렵다. 부모님은 날 도울 수 없고. 선생님도 곁에 없으니. 그저 알 수 없는 질문들만 허공에 떠다녔지만, 궁금한 것을 그대로 놔두진 않았다. 우습게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라도 답을 찾으려 했던 우리였으니까.

 

이렇듯 방대한 양의 문제들을 사람들은 전달받는다. 이성이 있는 인간은 그것을 조금이나마 받아들여. 코스모스의 원본 중 찢어진 일부를 보면서 우리의 전부를 퍼즐처럼 끼워 맞추었다. 이 점은 꽤나 흥미로웠지만 코스모스가 우리 생활과 동떨어진 줄 알았다. 덧없는 삶에 대해 비관적이라, 작년에 나는 충동적인 감정에 홀려 아파트 2층에서 뛰어내렸다. 얼굴을 부딪혀 코뼈가 부러질 뻔했고, 눈의 실핏줄이 터졌으며, 타박상과 멍으로 얼룩진 몸을 얻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부모님께 망가진 모습으로 죄송하다고 고개를 조아리며 우는 것이 끝이었다. 정작 무엇이 잘못된 건지도 모른 채. 너에게는 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겠지만, 가끔 악몽으로 나타날 것이다. 눈이 퉁퉁 부은 엄마와 우수에 찬 눈빛의 아빠가 내 앞에 있어서. 다신 안 그러겠다는 못 미더운 약속으로 대충 정리해버린 셈이었다.

 

한 포기의 희망 없는 갈라진 땅에 남아 길을 잃었다. 코스모스가 내게 돌진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나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세상을 완전히 채우기 위해 존재한다. 그중 내가 사라지더라도. 그 존재와 허물은 결코 잊히지 않는다. 먼지 한 톨 분량에 불과해도 어딘가에 자국은 남길 거라고. 무수한 패턴을 가진 인간의 주관적인 면모는 수많은 변수에 따라 바뀐다. 이러한 변화, 코스모스는 우리가 흔히 아는 객관적 지식이 아닌 다른 영역에도 발을 걸쳤다. 질서정연한 우주는 바깥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곳까지, 빠짐없이 이어진 인간들의 세상도 포함했다.

동네 카페에 들러 얼그레이 밀크티나 마시는 2019년, 소소한 여유가 생겼다. 밤이 찾아오고 미술학원이 끝나면 가로등이 켜진 길을 걸어본다. 아이작 뉴턴에게 우주는 어린아이가 바라보는 넓은 바닷가와 같다고 보았다. 넓은 그림자는 코스모스이며 인간의 작은 불빛 즉, 감정과 이성으로 일부분을 비출 수 있다. 듬성듬성 보이는 빛줄기들은 야경을 이룬다. 어둠을 완전히 물리치는 하얀 빛이 아니어도 어떤가. 소박한 별들도 각자의 색깔을 뽐내며 진리를 비추고 있다. 그들은 먹먹한 옛일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설렘과 감탄을 자아내는 무언가가 나를 그림자 속으로 불러낸다. 끝없이 빠져드는 그것이 바로 나의 코스모스다.

 

5년이 지난 너에게 코스모스란 어떤 존재인가? '코스모스'가 벌써 생소한 단어인가, 물론 어려운 질문일 수 있다. 그럼 세상은 무엇인가? 이 질문도 심오하다. 어떤 이는 나름대로 괜찮은 곳이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이는 철창 없는 감옥이라 자부할 것이다. 벗어나고 싶지만 결국 포기하기에도 애매한 너를 어떻게 안아주고 무슨 말을 해야지. 우리 둘 다 마음을 터놓고 마음껏 울 수 있을까.

너는 이제 코스모스를 모를 것이다. 알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상관없다. 그래, 네가 맞았다. '코스모스'란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네가 마지막 날을 맞이할 때까지. 이미 바쁜 세상을 허둥지둥 알아가는 중인 너는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멀어진 친구와 문뜩 연락하여 안부를 묻고, 시험지를 채점한 후 화장실에 틀어박혀 흐느끼고, 버스정류장의 나팔꽃 화단을 찍던 다양한 너의 환영이 아른거린다. 이제라도 시간에 몸을 맡겨 흘러가듯 살아도 충분하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난 공감하기 위해 계속 달릴 테니. 설령 빈손으로 세상을 떠날 거라도 행복이 깃들기를 바랄 것이다. 네가 늘 품었던 토끼 인형이, 반대로 널 안아주기를 기도할 거야. 살아줘서 고맙다. 느리게 공전 궤도를 산책하는 이 푸른 별에서 우리가 빠르게 지나온 길은 다 헛되지 않았으니.

우리의 나란한 발자국을 보며 그 옆에 글씨를 남겨본다.
정말 수고했다. 수고했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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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부일

사랑하마 님 안녕하세요. 수필 게시판에서는 처음 뵙네요. 코스모스, 잘 읽었습니다. 문장이 상당히 탄탄합니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뜻을 차분하게 전달하네요. 힘든 상황을 묘사하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건조하게 써내려가 더욱 더 슬픔이나 아픔이 더 크게 전달이 됩니다. 상당한 문장력이네요. 그리고 미래의 자신을 회유하며 삶의 의미를 피력하는 내용도 신선합니다. 다만, 너무 끔찍한 장면을 수필에서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글틴에 올린 글은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도 작가가 고려하면 좋겠습니다. 게시판을 주로 청소년들이 찾기 때문입니다. 일기가 아니고 수필이라면 그 글을 읽을 독자도 생각해야 합니다. 글솜씨가 정말 좋아서 오랫동안 열심히 쓴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아마 그 아픔을 글쓰기로 달래지 않았을까 추측을 해봅니다. 다만 장르 선택을 잘 하면…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