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용히 아파요

초등학생 때부터 식물에 관심이 있어 관련 책을 읽었고, 관련 활동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다 작년에 처음 이사를 하고 나서, 내 방 베란다에 작은 정원까지 만들었다. 이사오기 전부터 식물을 키우고는 싶었지만 볕이 잘 들지않아 포기해야만 했는데, 이사 온 새 집은 남향인데다 통풍이 잘 되어 식물을 키우기에 최적화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식물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다고 오만하게 굴었다.

처음으로 내가 들인 식물은 다육식물이었다. 식물을 키워 본 적이 없으니 비교적 다루기 쉬운 식물부터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가족들과 근처 다육식물 파는 곳에 가서 조막만한 다육들을 네 개 샀다. 집 주위에 널리고 널린 것이 화원인데다, 그 화원에서 파는 다육식물의 종류와 크기 또한 거기서 거기여서, '죽으면 똑같은 걸로 새로 들이면 되니까'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손바닥보다 작은 다육들이 도자기 화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친절한 아주머니께서는 다육의 품종명을 적은 팻말을 화분에 꽂아 주시기까지 했다. 초코라임, 알바, 홍미인, 청옥. 이름도 참 예쁘다고 생각하며 베란다에 식물을 가지런히 놓았다.

다육은 키우기 쉬운 대신 자극적이지는 않다. 식물에 자극적이라는 말을 붙이는 게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그렇다. 방울토마토나 해바라기, 바질은 씨앗을 심고 햇볕을 쪼이면 일주일 쯤 지나 싹이 올라온다. 조그맣고 여려보이는 새싹이 한 달이 지나면 무릎까지 올라오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바쁘게 흘러가는 식물의 생장 시계를 지켜 보느라 한 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그런데 다육은 느리게 자란다. 물 그릇을 깔아 물을 주어도, 뿌리에 좋다는 비료를 뿌려도, 어제보다 얼마나 큰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채송화나 수국처럼 화려한 색의 꽃을 매번 피우지도 않으니 사람들이 흥미를 금방 잃을만도 하다. 

이렇게 자기합리화를 하며 바질과 방울토마토, 수국과 딸기, 페어리스타와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여러해살이 꽃들을 차례로 들였다. 방울토마토는 꽃도 피우지 못 하고 죽었고, 씨앗을 사다 심어 키웠던 딸기와 블루베리는 여름 캠프에 가며 엄마에게 물을 줄 것을 부탁했지만 엄마가 물 주는 것을 까먹는 바람에 말라죽었다. 페어리스타와 동생이 고른 보랏빛 꽃은 후술할 벌레의 습격에 시름시름 앓다 죽어버렸고, 수국은 또 후술할 어느 생명체 때문에 할머니 밭으로 보냈다. 무책임하게 생명을 데려와 키우겠다 설친 결과였다.

작년 겨울쯤, 식물 관리에 소홀했던 때가 있었다. 겨울이라 잎과 꽃이 다 떨어지고, 여름만큼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지 않는 식물에게서 흥미가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겨울이라 물을 많이 줄 필요가 없다는 핑계를 대며, 고작 내 책상에서 두 발짝 떨어진 거리에 있는 식물들을 잘 들여다보지 않았다. 바로 옆에서 식물들이 죽어가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유튜브나 보면서 깔깔거렸다.

그러던 어느날, 오랜만에 식물에게 물을 주다 이상한 솜뭉치를 발견했다. 흰 색의 솜뭉치는 식물의 잎에 엉겨 붙어있었고, 손으로 만지자 끈적거리며 손으로 옮겨붙었다. 송진처럼 굳어 노란빛을 띄는 것도 있었다. 그게 벌레인줄은 꿈에도 모르고 사진을 찍어 이게 뭐죠 하며 지식인에 물었고, 답변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솜깍지벌레입니다.'

 

열심히 인터넷에 검색한 결과, 이 솜깍지벌레는 귀여워보이는 이름과는 다르게, 무서운 존재였다. 식물의 잎에 붙어 진액을 빨아먹고 끈적한 솜뭉치를 남기며, 다른 식물로 잘 이동하기도 하는 벌레였다. 이미 여러 다육들이 피해를 입었는데, 딱히 손쓸 도리가 없어서 일단 이쑤시개를 이용해 벌레를 제거하기로 했다. 

솜깍지벌레는 너무 작았다. 하얀 먼지처럼 보이는 벌레가 열 중 넷, 깨보다 약간 작은 벌레가 열 중 넷, 깨 크기의 벌레가 열 중 둘 이었다. 안경을 끼고 스탠드 밝기를 최대로 올렸지만 어떤 벌레들은 너무 작은 탓에 잘 잡히지도 않았다. 깨 크기의 벌레들은 이쑤시개에 잘 잡히니 잡는게 수월하기는 했지만, 작은 벌레보다 훨씬 징그러웠다. 보기만해도 온몸이 근질거릴만큼 작고 촘촘한 다리, 통통하게 살이오른 몸통이 자세히 보여서. 한편으로는 식물의 진액을 빨아먹고 이만큼 몸집을 키웠다 생각하니 식물들에게 미안했다. 내 안에 숨어있는 폭력성 때문인지 내 식물을 이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벌레에 대한 증오 때문인지, 깨 크기의 벌레를 휴지로 톡 터트려 죽일때는 약간의 쾌감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작은 벌레는 작은 벌레대로 잡자마자 톡 하고 자갈에 떨어지며 내가 뒷목을 잡게했다. 그렇게 시간이 날 때마다 화분을 가져와 벌레를 잡았고, 결국 눈에 보이는 벌레들을 대부분 잡았다.

하필이면 솜깍지벌레를 접하기 직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읽었기 때문에, 꼭 약을 쳐야 할까 망설였다. 그러나 약을 치지 않으면 완전히 제거하기가 어렵다는 답변을 읽고는, 바로 동네 화원에 가서 살충제를 구매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십오년 인생을 살며 처음으로 혼자 약을 치는 순간이었다. 우선 방과 베란다를 잇는 유리문을 닫아 살충제가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 베란다 문은 활짝 열어 환기를 시켰다. 코로나 터진 시기는 아니었지만 미세먼지 때문에 구비해 놓은 케이에프 구십사 마스크를 끼고 안경을 쓴 다음 비닐장갑까지 양 손에 착용했다. 그러고도 불안해서 긴 소매 옷과 긴 츄리닝으로 옷을 바꿔 입기까지 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 스프레이를 식물의 잎에 갖다대고 칙칙 약을 뿌렸다. 스프레이가 이상해서 엉뚱한 곳으로 약이 튀기도 했다. 플라스틱 상자 안에 넣어놓고 약을 쳤기에 망정이지, 바닥 다 버릴뻔 했다.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약 냄새는 한약냄새였는데, 썩 좋은 냄새는 아니었다.

 

솜깍지벌레의 습격이 지나가고 여름이 되자, 이번엔 파리가 찾아왔다. 이유는, 또 나의 관리소홀. 솜깍지벌레와는 차원이 다른 생명체였다. 솜깍지벌레는 화분 안에서만 움직이기라도 하지, 이 빌어먹을 생명체는 내 방까지 침투해서 나를 하루종일 괴롭혔다. 애초에 내가 자초한 일이니 투덜거리면 안되지만, 정말 생각하는 의자에 가서 하루종일 반성해도 모자랄 정도다.

더 충격적인 사실. 이 녀석들은 보통 날파리가 아니었다. 식물의 뿌리를 갉아먹는 뿌리파리였다. 이름도 형체도 소름돋게 생겨서는, 과장 좀 보태서 백여마리가 위윙거리며 온 집안을 날아다녔다. 엄마는 당연히 식물을 다 갖다 버리라 했고.. 나는 엄마한테 강아지가 소파를 물어뜯으면 내다 버릴거냐며 맞섰다. 

벌레가 너무 많아 한참동안 베란다 문을 못 열었다. 조금이라도 열면 그 소름 돋는 벌레들이 내방으로 들어와서.. 나비모양 끈끈이를 여러개 사서 화분마다 꽂아 두었다. 딱 십 분이 지났을 뿐인데, 뿌리파리들이 끈끈이에 깨를 쏟은 것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약간 속이 메스꺼웠고.. 화분 밑에 뿌리파리 유충들이 드글거릴거라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미안해 식물들아..

그렇게 끈끈이 만으로 벌레를 퇴치하는가 싶었지만.. 이렇게 쉽게 퇴치가 되었다면 내가 이 글에 이 이야기를 썼겠는가. 이 주가량의 번데기 시절을 거친 유충들이 신나게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들의 부모보다 성가신 벌레들은 내 이 주 가량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어버렸다. 그때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식물을 버려야 할지.

결국 벌레가 가장 많이 들끓었던 다육 화분 하나는 밭으로 보냈다. 그 화분 하나가 사라졌을 뿐인데 벌레가 많이 줄어들어서,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여름이 한창 무르익어 가던 팔월, 수국에 물을 주다 노란 생명체를 발견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초코송이 모양으로 생긴 버섯이었다. 버섯! 한 개가 아닌 다섯개쯤 화분에서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니, 뒷목이 당겨왔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노란각시버섯이었다. 벌레가 생겼을 때보다 황당했고, 부르르 몸서리가 쳐졌다. 죄책감이고 뭐고 느낄 새도 없이 바로 밭에 보내버렸다. 

 

식물을 키우며 느낀 사실인데, 사람들은 식물을 쉽게 들이는 경향이 있다. 얼마전 채널을 돌리다 내 귀를 잡아끈 대사는, "그렇게 안 죽는다던 스투키를 제가 죽였어요". 그렇게 말하는 말은 얼핏 들으면 자랑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잘 안 죽는 품종견을 제가 죽였어요" 하고 예능에서 말했더라면 그 사람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 아마 사람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고 다시는 방송계에 발도 못 붙일 것이다. 

대부분의 식물은 만원 안팎의 저렴한 가격이다. 특히 다육은 값도 싸고 어디서든 구할 수 있기때문에, 충동적으로 식물을 사고 방치한다. 관심을 받지 못한 식물은 시름시름 앓다 죽어버리고, 그러면 또 새로운 식물을 구매한다. 이전에 키운 다육보다 더 관리하기 쉽고, 예쁜 식물로.

그런데, 식물도 엄연히 살아있는 존재다. 관심을 주고 햇빛도 주고 물도 주면 무럭무럭 자라고, 그렇지 않으면 시들어버리는게 식물이다. 물을 너무 많이 주면 뿌리가 썩거나 벌레가 꼬이고, 물을 잎에 뿌리고 바로 햇빛을 쬐면 잎이 타들어간다. 물을 너무 적게 주면 살이 통통하게 찌지 않고 너무 방치하면 금새 시든다. 식물 치료다, 심신 안정이다 해서 사람의 마음을 보듬어 주고 환부에 반창고를 붙여주는 식물들이지만, 한 달이 지나면 쓰레기통에 버려질 뿐이다. 마치 일회용 반창고나 붕대처럼.

사실 아직도 뿌리파리가 몇 마리 남아 있는 것 같다. 아니, 남아있다. 방금 이 글을 쓰는데 겁도 없이 내 얼굴로 돌진한 녀석이 있는 걸로 미루어보아, 더 많을 수도 있다.

몇 달이란 시간이 지났는데도 사라지지 않는 뿌리파리, 너무 축축하면 생기는 버섯, 관리를 소홀히 하면 생기는 깍지벌레.. 그 외에도 응애, 진딧물처럼 내가 아직 겪어보지 못한 벌레도 많다. 그래서 이젠 식물을 들이기 전 한번 더 생각한다. 내가 이 아이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것인지. 벌레가 생겼을때도 사랑으로 식물을 보살필 수 있을 것인지. 특히 수국같은 여러해살이 식물을 들이기 전엔 더 고민한다. 내가 책임지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들이지 않는다. 그게 너무도 당연한 것이니까. 

 

kakao
....

2
댓글남기기

로그인 후 사용해주세요.
2 Comment threads
0 Thread replies
0 Followers
 
Most reacted comment
Hottest comment thread
2 Comment authors
문부일서지호 Recent comment authors
문부일
Member
문부일

서지호 님, 안녕하세요! 부지런하게 글을 올려주셨네요. '나는 조용히 아파요' 잘 읽었습니다. 제목을 보고 서지호 님이 아프다는 이야기로 생각했으나 식물의 삶을 소재로 해서 신선했어요. 독자들이 잘 모르는 삶, 세계를 알려주면 호기심이 생겨서 몰입하기 쉬워요. 식물을 키우려면 특성과 여러가지 정보를 알아야 하고 부지런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어서 저는 애초에 키우지 않아요. 마지막에 나온 말처럼, , "그렇게 안 죽는다던 스투키를 제가 죽였어요". 이렇게 대부분은 식물 키우기를 쉽게 여기죠. 어떻게 해서 식물을 키우게 되었는지 시작해서 기승전결 구성으로 잘 풀어내고 있어요. 문장도 안정적이고, 간결해서 쉽게 읽히는 장점도 있네요. 점점 글쓰기 실력이 좋아지고 있어서 읽는 재미가 있어요. 솜깍지벌레 제거하려고 준비하는 과정을 읽으며 웃음도 나왔습니다. 과수원에 대규모로…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