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의 손길

  "나를 사랑하세요?" 매일 아침이 밝으면 스텔라는 장의 옆에 우뚝 멈춰 서곤, 그리 질문하곤 했다. 그러면 장은, 길게 하품을 하면서, 혹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를 닦으면서, 혹은 눈을 부빗거리면서 "그럼, 우리가 왜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겠어, 이 여편네야." 하고 되려 훈수하곤 했는데, 그럼 스텔라는 군말 않고 움직여 부산스레 아침 준비를 했다. 아침마다 그런 궁금증에 답해줘야 하는 이유는 뻔했다. 오십 년을 함께 살면서도, 둘은 혼인 신고 한 번 제대로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젊을 때야 부모님의 반대나 재정 상황등의 이런저런 것들로 미뤄 왔다지만, 장의 검은 피부 위에 덮여 있는 머리칼들이 하얗게 샌 지금까지도 둘은 서류상 남남이었다. 그러나 스텔라는 맨 정신으로 결혼 신고 얘길 꺼내기엔 장을 내심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고, 장은 결혼이라니, 죽을 날도 머지 않았는데 새삼스레, 란 핑계로 스텔라의 그런 심정을 외면해만 왔다. 장은 아침 식사를 마치면 늘 동네 호숫가에 앉아 낚시를 했다. 홀로 하는 날도 많았지만, 같이 늙어가는 처지의 동네 노인네들부터, 가끔은 학생들이나 청년들, 아주 어린 아이들까지… 옆에 누군가 앉아 있는 날도 있었다. 다만 스텔라가 옆에 있는 날은 없었다. 스텔라는 집안일을 돌보고, 손님을 맞고, 장에 가느라 바빴다. 그래서 스텔라는 자주 장의 낚시 하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하곤 했다. 그러면 기러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호숫가에 기러기 같은 것은 있을 리 만무한데도.

  장이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보통 여섯 시 언저리였다. 몸을 씻고 나서, 스텔라가 해 둔 저녁을 먹었고, 허술한 오두막의 벽과 닮은 재질의 테이블에 앉아 독서를 하거나, 낚시대를 보살폈다. 그동안 스텔라는 집의 온도를 살폈고, 장이 몸을 누일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장이 늦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스텔라가 요리를 마치는 시간도 일정했다. 하지만 예외인 날도 있었다. 어느날 밤, 장은 밤이 다 되는 시각에 집에 도착했고, 피곤에 절어 식탁으로 향했다. 웬일로 조리된 음식이 담긴 그릇이 놓여 있지 않아, 장은 목청 높여 스텔라 이름을 불렀지만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스텔라는 침실 입구 앞에 쓰러져 숨을 쌕쌕 뱉어내고 있었다. 전신에 열이 올라 펄펄 끓고 있었다. 장은 스텔라의 한 팔을 제 어깨에 두르고, 침대 위로 옮기려 기를 썼다. 스텔라는 작은 목소리로 괜찮다며 신음했지만 장은 다문 입을 열지 않았다. 열 두시가 다 될 때까지도 스텔라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결국 장도 잠을 청하러 침대에 누웠고, 다음 날 아침 마을의 의사 선생을 불렀다. 의사 선생은 스텔라를 이리저리 진찰해 보더니, 단순 감기는 아니라며,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도심의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장은 종종 낚시를 함께 하던 정육점집 아들의 트럭을 빌렸다.

  스텔라의 검사를 기다리며 장도 건강검진을 했는데, 도심에 나올 일도 드물 뿐더러 아주 늙은 노인들의 검진료는 매우 쌌기 때문이다. 국가의 정책이니 보험이니 하는 단어들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아무튼 그 정도 가격이면 저녁식사 재료를 고기에서 호박으로 한 번쯤만 변경하면 됐다. 몸이 노화하기는 했지만 대체로 정상적인 결과가 나왔다. 그렇게 기쁘지는 않았다. 스텔라는 폐가 병들었다고 한다. 수술을 하려면 할 순 있겠지만, 스텔라가 워낙 노쇠하였기에, 성공 가능성도 희박할 뿐더러, 성공한들 연장할 수 있는 삶의 날들도 많지 않을 것이라 했다. 의사는 입원수속을 밟겠느냐 물었는데, 장이 고민하는 사이 스텔라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나치게 담담한 반응이라 반박할 틈도 없었다. 집에 돌아가자 스텔라는 그 즉시 테이블에 앉았다. 주로 장이 상주하는 구역이라 그가 앉아 있는 광경은 꽤나 이질적이었다. 손가락으로 장을 불러, 장도 마주앉아 스텔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스텔라는 장에게 대뜸 질문했다. "장, 나를 사랑하세요?" 그 순간 장은 수십년간 같은 질문을 받아 오며, 단 한 순간도 스텔라의 눈을 맞춘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답을 할 때 제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도 고민한 적이 없었다. 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스텔라의 눈자위가 붉어졌다. "나도 당신을 사랑해서 이렇게 살아왔어요. 이제 얼마 뒤면 죽을 텐데, …" 그러면서 어렴풋한 시선을 보냈다. 결혼 얘길 꺼낼 참인가. 장은 스텔라가 미련스레 구는 것이 불편했다. 아프면 가서 쉬기나 할 것이지. 스텔라에게 이만 가서 누우라고 지시했다. 스텔라는 불만스러운 눈초릴 했지만 군말하지 않았다.

  다음 날도 장은 낚시를 하러 갔다. 그러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신음소리가 가득한 집 안에 틀어박혀 있고 싶지가 않았다. 양동이를 챙기고 호숫가에 가 앉자 로드릭이 장을 반겼다. 로드릭 탯줄 자르는 것도 봤었는데, 이제는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 방학 때만 마을로 돌아온다. 로드릭은 넉살 좋게 장에게 말을 걸어 댔다. 도시의 대학은 역시 공기부터 다르다느니, 동호회에서 수영을 배웠다느니… 허세를 떨어대다가, 급기야 물에 입수해 헤엄을 치기 시작한다. 장은 낚시대를 거둔다. 그런데 한참 수영을 하던 청년이 강해진 물살에 이기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기 시작한다. 장은 당황하여 덩달아 호수에 첨벙거리며 들어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수심이 깊어져 제 허리 이상을 넘어가자, 자신의 범주를 넘어섰다는 것을 깨닫는다. 급히 호숫가를 벗어나 마을의 다른 이들을 부른다. 로드릭은 파리해져 의식을 잃은 채로 건져진다. 목숨은 건졌지만 이상이 있는 지는 살펴 봐야 안단다. 장은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생각한다. 죽음은 한 순간의 물살에도 닿을 수 있는 것.

  집으로 돌아가자 스텔라가 기침을 하고 있다. 장은 스텔라의 옆에 가 앉는다. 이제껏 스텔라가 결혼을 바란다고 생각해 불편했지만… 스텔라가 얼마 안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생각하니 무엇이든 들어줘야만 할 것 같은 심정이다. 스텔라에게 바라는 게 있냐고 묻자 스텔라는 다시 시뻘건 눈이 된다. 울음을 참고 있는 것만 같다. 그것을 본 순간, 장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도 뜨거운 감정이 울컥 치민다. 아, 가여운 여인! 어쩌면 스텔라가 이제껏 서류와 증거에 집착했던 이유는 자신이 스텔라의 눈을 마주봐주지 않아서, 스텔라의 바람을 한 순간도 배려해주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무릇 사랑이란 상대의 하나부터 열까지를 속속들이 알고 마음을 기우는 작업 아니던가. 그들이 함께해 온 긴 시간은 그런 사랑의 부재로 밀도 없던 고행이었던 것이다. 장은 차가운 손으로 스텔라의 눈자위를 문질러 닦아 준다. 그리고 그를 껴안으려다가…, 관둔다. 스텔라의 우는 얼굴을 눈에 오롯 담기 위해서…

  죽음을 임박한 자와의 결혼. 장은 그 날 그런 것을 각오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이 스텔라의 속사정을 알려 애썼던 그 날, 스텔라 안의 의심은 종말을 맞았다. 그릇 닦을 휴지가 다 떨어진 어느 날, 장이 스프를 흘리자, 스텔라는 서랍 안 깊숙한 곳에서 이면지라며 언제 가져왔을지 모를 혼인신고서를 꺼내 왔다. 그리고 그 날, 장은 함께 낚시를 가자며 제안했다. 저녁은 굶어도 아무래도 좋았다. 하늘은 쾌청했고, 기러기 같은 것은 떠 있지 않았다. 스텔라는 그게 아쉽다며 웃었다. 난, 당신이 낚시를 간다면 당연히 외곽에 있는 바다로 가는 것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매일 보는 이 호수였군요. 과연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었으니까. 장은 바다에 가고 싶냐고 물었다. 스텔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아주 어릴 적 읽었던 책의 구절을 알려 주었다. 죽음의 방식을 스스로 택하고 싶었던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는 스스로를 강가의 배에 태우고, 물에 서서히 잠기며 물고기와 기러기의 밥이 되는 것을 택했다. 스텔라는 그런 방식이 로맨틱해 보인다고 말했다. 장은 그런 말에는 동의하지 않았고, 시답잖다고 생각했지만, 어차피 제 삶에 결혼식이라는 것은 스프가 잔뜩 묻어 사라졌고, 제 앞의 사랑하는 여인은 곧 삶을 마감하므로, 죽음의 방식을 선택한다라. 적절한 장례식을 기획하는 것은 좋아 보였다.

  둘은 그날 밤 벽에 달린 달력을 꺼내 왔다. 집 안의 다른 모든 것들과 비슷하게 헐고 낡아 먼지가 잔뜩인 달력이었다. 머리를 맞대고 스텔라의 죽음을 기획했다. 둘은 가난했고, 스텔라는 벌써부터 매일이 괴로운 기색이었기에, 날은 최대한 빨리, 사흘 뒤로 정했다. 회의가 끝나고 장은 스텔라에게 주어 없는 사과를 했다. 그리곤 양해를 구하고 그에게 입을 맞췄다. 아주 오래간만의 맞닿음이었기에, 스텔라는 놀란 눈이 되었다. 얼마만인가? 그가 저를 이렇게 아끼고,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는 것이. 스텔라는 아프고 지쳐 있었지만, 장이 은근히 저를 탐해 주길 바랐다. 그래서 한 꺼풀 씩 모르는 체하며 옷가지를 벗었다. 장이 가만 보고만 있자 금세 다시 빨간 눈이 되었는데, 장은 이제 그 표정에 면역이 아주 없었기에, 순식간에 그들은 장소를 옮기고, 노쇠한 사랑을 나누었다. 온통 빛바랜 것들 투성이인 오두막에 유일하게 검붉게 핀 것이었다. 희열보다는 압박감이, 기쁨보다는 먹먹함만이 남는 관계였다… 장은 일평생 재투성이 원피스를 입은 땅딸보 스텔라의 모습만을 알았지만, 그 날 본 스텔라의 몸은 그 이상이었다. 희고, 처지고, 투실투실한 엉덩이에 촉감도 마치 싸구려 솜을 잔뜩 모아둔 것처럼 움푹했지만, 그 피부에 닿아 있는 순간 장은 비애 넘치는 노인이 아니었다. 한 명의 남자였고, 세상에 존재하는 또 한 명의 인간이었다.

  사흘은 순식간에 흘렀다. 스텔라의 앞으로 온 우편물들을 처리했고, 공공기관에 있는 기록들에 수정을 요청했고, 만나야 될 사람들을 모두 만났다. 아주 적은 수라서 순식간에 끝났다. 오히려 죽음 전 하루는 할 것이 없어, 장과 낚시를 한 번 더 함께 다녀왔다. 마침내 스텔라 삶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둘은 한 번 더 사랑을 나눴는데, 서로에게 묘한 감정을 선사했다. 그래서 둘은 벗은 채로 바닷가로 향했다. 둘의 발가벗은 몸을 목격한 몇 마을 사람들은 놀라 부끄러움도 모르냐고 놀렸지만, 글쎄, 장 생각에 진정 부끄러웠던 것은 지나온 시간들이었다. 바닷가는 걸어서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침부터 바람이 차서, 파도는 꽤 세차게 그 기세를 펼치고 있었다. 스텔라는 자꾸 기침을 했다. 장은 마지막으로 바닥에 걸터앉곤, 모래사장에 스텔라의 몸을 닮은 모래 조형물을 만들었다. 커다란 배, 커다란 엉덩이, 못난 살가죽들 그렇지만 장에겐 유일한 그 여인이었다. 스텔라는 박수를 쳤다. "이건 무덤 대신이야." 듣기에는 여전히 무뚝뚝하기만 한 음성으로 장이 말했다. 바람이 불면 날아가 버리겠지. 스텔라와 같은 운명이다. 오후가 되자 장은 스텔라의 손을 움켜쥐었다. 스텔라는 기침을 애써 삼키고 수줍은 얼굴로 미소지었다. 그리고 둘은 바닷속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수심은 점점 깊어졌고, 이제는 장이 손을 놓아주고 스텔라 홀로 안으로 걸어설 때가 되었다. 하지만 그 순간 장은 또 생각했다. 오십 년 넘게 함께 해 온 공백을 그는- 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결코 홀로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생각은 저도 모르게 결심으로 이어져, 쥔 손에 힘이 들어갔고… 파도가 더욱 거세져 그의 발이 물 안에서 붕, 뜨게 되었다. 그는 내심 오랫동안 이런 것을 바라왔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스텔라는 손을 뿌리치지도 않고 웃기만 했다. 소리 내 웃는 것은 아주 오래간만에 듣는데, 참 듣기 좋은 고음역의 소리였다… 물이 들이친다. 마침내 스텔라의 귓구멍에도 파도가 잔뜩, 인정사정없이 들이친다. 그 소리가 꼭 기러기 울음 소리 같다.

  하늘이 맑다.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생각한다. 죽음은 한 순간의 손길에도 닿을 수 있는 것.

kakao

1
댓글남기기

로그인 후 사용해주세요.
1 Comment threads
0 Thread replies
0 Followers
 
Most reacted comment
Hottest comment thread
1 Comment authors
송지현

심상치 않은 독서 이력이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스텔라의 몸에 대한 묘사, 노인만이 가질 수 있는 육체적 감각에 대한 문장, 그리고 바다와 죽음에 대한 이미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한 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굳이 따지자면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 이 글의 단점으로 느껴졌습니다. 읽기 좋은 글이면서 동시에 기시감을 주는 글이었거든요. 특히 스텔라와 장의 캐릭터가 전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입체적인 인물에 대해서 생각해 보며 퇴고하면 정말 좋은 글이 될 것 같아요.